第八十九章 임시방편(臨時方便) (3)
쒜에엑! 퍼억!
철판이 날아와서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해자수는 깜짝 놀랐다.
몸 주위에 세워진 철판이 자신을 치기는 처음이다. 자신이 검을 들어서 철판을 갈라내기는 했어도, 철판이 원래 세워진 곳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
이번에는 아예 철판이 날아와서 몸을 치고 지나간다.
‘이게!’
위험이 코앞에 닥쳤다. 하지만 어떤 일도 할 수가 없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돌풍에 몸을 맡긴 이상 계속 용권풍에 몸을 싣고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 그게 최선이다. 철판이 용권풍을 들이친다면 그것은 철판이 강한 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지.’
쒜엑! 쒜에엑!
철판이 계속해서 몸을 스치며 지나갔다.
‘이크! 이번 건 정말 위험했어.’
‘헉! 이렇게 가까이!’
철판이 계속 몸을 스쳐 가면서…… 해자수는 철판이 몸통을 두들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지막 순간에 간신히 비틀듯이 몸을 비껴가고 있다.
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치지 않는 듯하다.
당홍이 살심을 품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도 아직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는 의식이 굉장히 강하다.
‘살려주는 거야? 나야 살려주면 좋지. 조금만 더 버티자고. 이제 다 왔어.’
해자수가 죽을힘을 다해서 돌풍을 일으켰다. 지금도 최선이지만, 더 강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력으로 당홍의 손에서 벗어나는 길만이 당홍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는 길이다.
팡! 팡팡!
돌풍이 휘몰아쳤다.
해자수도 사력을 다하고, 도천패와 당홍도 사력을 다한다.
그들은 쫓고, 쫓기면서 동굴을 향해 치달렸다.
“아!”
해자수는 갑자기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키킥! 크크크크! 키이익!”
입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괴성이 터져 나왔지만, 그 부분은 알지 못했다. 자신이 입으로 괴상한 소리를 흘리면서도 정작 자신은 듣지 못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게 뭐야? 이게 뭐지?”
눈앞에 동굴이 있지만 차마 들어갈 수가 없었다. 동굴 안으로 들어가면 영원히 나오지 못한다는 느낌이 확 일어났다. 거대한 악어가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뭐 이런 괴물 같은 게…… 다 있지?”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
동굴 앞에 이르자 그토록 맹렬하게 일어났던 돌풍이 싹 가셔 버렸다. 어떤 바람도 일어나지 않았다. 일순간에 동굴이 그를 무장해제 시켜 버렸다.
“아!”
탄식밖에 나오지 않았다.
해자수는 동굴이 자신을 끌어당긴다고 느꼈다. 실제로 자신도 모르게 거대한 흡입력에 이끌려서 한 발, 한 발 동굴 속으로 딸려 들어가고 있었다.
자신의 생기가 누군가에게 빨려 들어간다.
‘안 돼! 이대로 들어가면 죽어!’
해자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직감했다. 그래서 급히 돌풍을 일으키려고 눈을 감았다. 용권풍을 상상했다.
‘돌풍이 일어난다. 용권풍이, 소용돌이가…… 빨리! 휘말려 들어갈 거야.’
하지만 돌풍은 일어나지 않았다.
해자수는 그제야 귀검이 한 말을 떠올렸다.
- 동굴로 들어가면 벽에 달라붙어라.
해자수는 재빨리 동굴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즉시 동굴 벽에 찰싹 달라붙었다.
“크크크크크! 크크크!”
도천패와 당홍이 자신의 등 뒤를 바싹 따라 들어왔다.
잠시 두 사람의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바로 등 뒤까지 따라와 있었다.
도천패와 당홍은 거칠게 동굴 속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해자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동굴을 향해서 걸어 들어갔다.
“크크크! 크크크크!”
두 사람이 연신 괴소를 흘렸다.
이미 제정신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한 조각 인성이나마 지켜왔는데, 이제는 그것조차도 남지 않았다.
해자수가 알던 도천패와 당홍이 아니다.
“으으……”
해자수는 덜덜덜 떨었다.
동굴 벽에 달라붙을 때까지는 보지 못했는데, 도천패를 따라가다 보니 앞쪽에 호발귀가 보였다.
이게 뭔가! 지금 호발귀는 완전히 혈마이지 않나.
살기! 살기! 악마가 뿜어내는 살기!
잔혹하게 일그러진 얼굴, 새빨간 눈동자, 혀를 깨물었는지 질질 흘러내리는 피……
“아!”
탄식 밖에 나오지 않는다.
호발귀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완전한 혈마다.
도천패와 당홍은 혈마에 굉장히 강렬하게 반응하고 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반응한다.
두 사람은 해자수를 쫓아올 때까지만 해도 손속에 사정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지만 혈마를 마주한 지금은 전혀 사정을 두지 않는다. 두 사람은 호발귀와 싸우려고 한다.
‘으……!’
나오는 건 신음뿐이다.
이대로 내버려 둬서는 안 될 거 같은데. 이거 어떡하지?
‘어떡하지? 정말로 어떡하지? 이건 모두가 다 죽는 길인데. 이대로 가면 안 되는데.’
그러다가 문득 자신이 귀검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 호발귀가 나한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나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이겠지
‘에잇! 모르겠다. 죽으면 죽는 거지.’
해자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 * *
모든 작업은 사권에 있을 때 끝내야 한다.
도천패와 당홍이 혈권으로 들어서면, 그때는 혈마와 혈마의 싸움만 남는다.
츠으읏!
이령귀화가 도천패와 당홍의 몸을 훑었다. 해자수도 찾아냈다.
순간, 세 사람의 혈기에 반응했는지, 혈기가 불끈거렸다. 밖으로 뛰쳐나올 셈이다.
‘아직! 아직 아니야!’
이령귀화를 뒷받침하고 있던 생기가 즉시 앞으로 나섰다.
내가 한다!
생기가 나서자 혈기가 잠시 주춤거렸다.
이령귀화는 안으로 숨겼다. 조금이라도 더 이령귀화를 유지해서 세 사람을 더듬었다면, 당장 혈기가 이령귀화를 제치고 세 사람을 타격했을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령귀화는 안으로 잦아들고 생기가 앞으로 나섰다.
호발귀도 이 정도 순환은 해낼 수 있다.
그동안 사권을 유지하면서 계속 혈기를 어떻게 눌러야 하는지 연구했다.
혈기가 생기를 제치고 앞으로 뛰쳐나가는 순간을 느낀다.
그러니 그 찰나에 생기를 앞세우면 혈기는 뒤로 밀린다. 억지로 눌러놓는다.
‘혈기는 생기격타를 하지 않아. 오직 파괴만 할 뿐. 혈기는 안으로 누르고 생기, 하얀 광목으로 생기격타를 한다. 순수한 생기, 아주 맑은 생기. 아주 강렬한 푸른빛으로.’
하얀 광목이 오염된 물감에 닿으면, 당장 물감이 빨려들어 온다. 그때 뿌리까지 확 뽑아내는 것이다. 당연히 저쪽 물감은 뿌리 뽑히고, 이쪽은 새빨갛게 물든다. 하얀 광목이 뽑아낸 물감에 젖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것이 혈기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츠으으읏!
생기가 도천패에게 다가갔다.
탁! 생기격타! 생기가 생기를 쳤다.
순간, 도천패의 생기가 확 달려들어서 깨물었다. 아주 강력한 이빨로 물었다.
탓! 타악!
호발귀는 즉시 생기를 거뒀다. 그러자 꽉 문 이빨이 생기를 놓지 않고 딸려 나왔다.
‘됐어!’
순식간으로 생기가 혈기를 뽑아냈다.
도천패 성공! 다음은 당홍!
내 혈기가 도천패나 당홍에게 흘러 들어가지 않게 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오직 순수한 생기로만 타격하는 것이다. 생기격타에 쓰이는 생기는 순백색의 생기다.
한 개 남은 생기 중에서도 가장 깨끗한 생기만 쓴다.
반대로 말하면 호발귀는 가장 깨끗한 생기가 즉시 오염된다. 혈기로 변해서 혈기 영역으로 넘어간다. 수태음폐경은 약해지고, 척택혈도 무너진다.
스읏! 타악! 탁!
당홍은 순식간에 성공했다.
순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이령귀화가 멈추려고 한다. 물레방아에서 역천금령공이 낙하하는데, 이령귀화가 반등하지 않는다. 그러자 역천금령공이 추월해서 이령귀화와 섞이려고 한다.
두 개가 섞이면 혈기와 생기의 구분이 없어진다.
‘해자수가 남았어!’
호발귀는 사력을 다해서 이령귀화를 쳐올렸다. 마지막 한 올, 잠력까지 끌어내서 이령귀화를 이끌었다.
타악!
간신히 이령귀화가 물레방아 위로 치고 올라갔다.
다시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하지만 이령귀화가 반등하는 힘이 현저히 떨어졌다. 아주 힘들게 반등한다. 힘이 거의 소진된 듯…… 지금 당장 멈춰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이 상태로 견딜 수 있을까?
이령귀화의 반등이 약해졌다는 것은 생기가 거의 소멸하였다는 뜻이다.
받쳐주는 힘이 없으니 일어서는 힘도 없다.
이 상태에서 해자수의 혈기마저 뽑으면…… 그때는 정말 혈마가 되는 게 아닐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일단은 다섯 사람을 한자리에 모아야 한다.
‘이것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 나머지는 나중에. 뭐 어떻게든 되겠지.’
등여산과 홀리는 바깥세상에 내놓으면 방법이 없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자신만의 이기심인지 모르겠지만 홀리와 등여산이 서로 상잔하게 만들 수 없다는 생각이다. 만약에 그녀들을 죽여야 한다면 그 일은 자신이 한다.
이 업보는 자신이 안고 간다. 그래야 하지 않나. 그게 맞는 것 같다.
호발귀는 도천패와 당홍이 멈춰 선 것을 확인했다.
다시 이령귀화를 이끌었다. 그리고 존재 자체가 희미해져 버린 생기를 끌어냈다.
생기가 일어섰는지 아닌지 확인이 되지 않는다. 전혀 어떤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이령귀화가 있으니까.’
이령귀화가 일어났다는 것은 아직 생기가 있다는 것이다.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미약해도 여전히 존재한다.
스읏!
이령귀화를 내밀었다. 혈기의 움직임도 주시했다.
혈기가 이령귀화를 제치고 앞으로 나가면 둘 중에 하나, 해자수가 당장 혈마가 되거나, 혈기가 해자수를 찢어버리거나 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혈기는 뛰쳐나가지 않았다.
기의 존재를 느낄 수 없지만, 이령귀화의 뒤에 생기가 있는 게 확실하다.
스읏!
마지막 순간에 이령귀화를 빼냈다.
생기를 느낄 수 없으니 생기격타가 이루어지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것을 가지고 생기격타를 시도했다. 꼭 헛손질하는 느낌이다.
퍽! 타악! 탁!
텅 빈 힘이 해자수를 두들겼다.
생기를 눈에 볼 수 없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그게 생기라고 확신했다.
맞을 것이다. 생기가 맞을 것이다.
파앗!
해자수의 혈기가 뽑혀 나왔다.
“휴우!”
호발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즉시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의 물레방아에 집중했다.
사권은 생각하지 않는다. 혈권만 생각한다. 아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은 느끼고, 밀어내고 할 정신이 없다. 자신을 추스르기도 급급하다.
당장 도천패, 당홍, 해자수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츠으읏! 츠읏!
힘이 거의 떨어져 버린 이령귀화를 어떻게든 살리려고 노력했다. 반등, 반등, 오직 반등에만 힘을 기울였다. 이대로 이령귀화가 사라지면, 생기가 죽으면 혈마가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세 사람의 혈기는 뽑아냈지만, 사실은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가야 한다.
정말로 세 사람을 위한다면 두 번 다시 오염되는 일이 없도록 생기가 일어나는 부분을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두 번 다시 혈기가 끼어들 여지를 남겨두지 않아야 한다.
어디를 어떻게 막아야 할지 모른다. 뭘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다.
건방진! 뭘 거기까지 생각하나.
호발귀는 다음에 이들이 혈기에 물들어서 오면 그 혈기조차도 뽑아낼 자신이 없었다.
생기가 거의 사라졌다. 최악의 상태다
“으……”
호발귀는 입을 열 정신도 없었다. 오직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의 순환에만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