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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92화 (392/500)

第八十九章 임시방편(臨時方便) (2)

암반 동굴은 찾을 필요가 없다. 이미 찾아놓은 동굴이 있다.

소축령에서 번을 서지 않는 귀무살들이 암반 동굴을 찾아서 기거하고 있었다.

“이 정도면 어떻습니까?”

궁충이 말했다.

“음! 꽤 넓군.”

“저희 편히 지낸다고 말씀드렸잖습니까.”

궁충이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귀검은 귀무살이 거주하는 동굴에 처음 와봤다.

수하들을 돌보는 것보다 금줄 곁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다.

암반 동굴은 꽤 넓다. 예전에는 곰이나 호랑이가 사용했던 듯 짐승 뼈가 곳곳에 놓여 있다. 뼈가 삭아있는 것을 보면 꽤 오래전에 남겨진 것 같다.

“철석은 어떻게 됐어?”

귀검이 동굴을 돌아보면서 물었다.

“오백 근짜리 세 덩어리를 모았습니다. 천오백 근이면 항우도 꼼짝 못 합니다.”

“용케 모았군.”

“철삭 이야기를 들으면 더 놀라실걸요? 철석과 철삭을 통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 묶이면 정말……”

궁충이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툭! 툭!

귀검이 궁충의 어깨를 쳤다.

하루가 급하지만, 철석을 준비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래서 다소 시간이 지체되어도 탄탄한 쪽을 택했다.

사흘 만에 만든 것치고는 정말 훌륭하다.

이 정도 철석과 철삭이라면 한 달이 걸린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동하겠습니다.”

귀검이 말했다.

“갑니다.”

호발귀가 말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호발귀는 세 걸음쯤 걸은 후에 우뚝 멈춰 섰다.

“가세요.”

호발귀가 말했다. 세 걸음을 걷자 사권에 사람이 걸려들었다. 금줄 밖에서 대기하던 귀무살이다.

귀무살이 즉시 앞으로 달려나갔다.

저벅! 저벅!

호발귀는 사권에서 생기가 잡히지 않자, 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곧 다시 멈췄다.

“가세요.”

귀무살이 즉시 물러섰다.

두어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귀무살은 사권이 넓혀지는 시간 차이를 알아냈다.

저벅! 저벅!

호발귀와 귀무살이 호흡을 맞춰서 같이 움직였다.

호발귀는 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권에 걸려드는 사람이 없다. 귀무살은 여전히 호발귀를 감싸고 있지만, 누구도 사권 안으로 들어서지 않았다.

양쪽 걸음이 딱 맞아떨어졌다.

서로 이십오 장이라는 거리를 두고 있다. 한데도 길 없는 숲에서 쫓아오는 귀무살까지 정확하게 거리를 벌렸다.

호발귀는 눈가리개를 하고 길을 나섰다.

척! 척! 척척!

호발귀와 귀무살이 숲길을 헤치면서 동굴로 향했다.

“왼쪽으로 갑니다.”

귀검이 말했다.

귀검이 말한 것과 호발귀가 움직이는 걸음에는 이십오 장의 거리 차이가 있다.

호발귀는 귀검이 말한 대로 이십오 장을 걸은 후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령귀화가 주변을 더듬는다.

나무, 바위, 흙, 풀…… 길의 형태까지 주변 모든 것을 눈으로 본 듯이 잡아낸다.

스읏! 쓱!

처음에는 무척 힘들 것 같았는데, 걷다 보니 평상시 걸음으로 걸을 만큼 호흡을 맞췄다.

“동굴입니다.”

귀검이 말했다.

귀무살이 동굴 입구를 중심으로 좌우에 섰다. 그리고 일렬로 도열했다.

물론 서로 간의 거리는 여전히 이십오 장이다.

그들은 호발귀가 자신 앞을 지나갈 때, 머리를 숙여서 예를 올렸다.

호발귀는 그들이 취하는 예를 보지 못했다. 사권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혀 감지가 안 된다. 다만 짐작으로 예를 취하고 있다고 느낄 뿐이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동굴 안에서 철갑 채우는 소리가 들렸다.

호발귀는 손수 철갑을 채웠다. 혈권 안으로 들어설 사람이 없으니 손수 채워야 한다.

“귀검.”

“네.”

“해자수를 시켜서 형님과 형수님을 불러주세요.”

“해자수요?”

“네. 생기를 쓰면 두 사람을 유인할 수 있죠. 사권에는 들어오되 혈권에 들어서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요.”

“도천패와 당홍이 말을 안 들을 겁니다. 두 사람, 상당히 사나워졌어요. 이젠 정말 살인도 불사할 기세입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하하하!”

호발귀가 웃었다.

“형님과 형수님은 사권에 부딪히는 순간부터 미친 듯이 날뛸 겁니다. 혈기를 감지하거든요. 그거 생각하고 있어요. 해자수는 안으로 들어서되, 오는 즉시 동굴 벽면에 달라붙으라고 하세요. 두 사람에게 휘말리면 안 되니까.”

“네.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하지만 해자수의 생기도 건드려야 하니까, 동굴 밖으로 나가게 하면 안 됩니다. 세 사람이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임시로 입구를 폐쇄하세요.”

“정말 생기격타를 하실 것인지?”

“혈기를 뽑아야죠. 만약 혈기 뽑는 데 실패하면 세 사람 모두 죽일 겁니다.”

호발귀가 차게 대답했다.

귀검은 죽인다는 말이 피부로 와닿았다.

혈마가 되는 길을 막지 못한다면 호발귀가 직접 죽이겠다는 것이다. 해자수는 아직 멀쩡하지만, 생기를 아는 사람이다. 언젠가는 생기를 쓰게 되어 있다.

해자수는 홀리만큼이나 위험하다.

“내 생각대로 혈기를 뽑아내면, 세 사람은 정상이 될 겁니다. 그러면 곧바로 책사에게 보내세요. 홀리는 당장 내게 보내시고. 이 세 사람만이 등여산을 내게 데려올 수 있습니다.”

일단 깨끗하게 정화된 생기만이 등여산을 데려올 수 있다는 말이다. 혈기의 영향을 받아도 단박에 혈마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하지만 세 사람이 등여산을 데리고 동굴에 올 즈음에는 모두 혈기가 일어난 상태가 된다.

호발귀는 다섯 명을 상대로 혈기를 뽑아야 한다.

성공할 가능성이 일(一)도 안된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확실하다. 그리고 실패하면……

“동굴 입구에 화약을 매설하겠습니다. 섭섭하셔도……”

“아뇨. 그러잖아도 부탁드리려던 참이었는데. 만일의 경우, 우리 여섯 명. 이곳에서 나가면 안 됩니다. 절대로. 여섯 명 중 쌩쌩한 사람이 있더라도 모두 묻어주세요.”

“모두가 멀쩡하다는 건 어떻게 압니까?”

“……”

호발귀가 일시 침묵했다.

호발귀도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다섯 명 전부를 멀쩡한 상태로 돌이켜 놓기에는 이미 많이 늦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전원 무사하지 못하면 전원 옥쇄다.

“이번에 내가 사용하는 생기격타는…… 생기를 알기 이전 상태로 돌려놓는 거예요. 솔직히 저도 아직 방법은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전에는 내보낼 수 없고…… 어떤 경우이든 나는 나가지 못할 겁니다. 귀검, 마지막 인사는 하지 않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우선 해자수를 보내서 도천패와 당홍을 데려오겠습니다.”

귀검이 동굴 밖에서 읍했다.

“내가?”

해자수가 귀검을 빤히 쳐다봤다.

“가서 도천패와 당홍을 유인해 와야겠네.”

귀검이 땅을 쳐다보며 말했다. 표정을 보이기가 싫은 것이다.

“어쩐지. 다들 바쁜데 나만 한가하다 했지. 무슨 일인가는 시킬 줄 알았어.”

해자수가 엉덩이를 탁탁 털며 일어섰다.

“귀무살이 머물렀던 동굴, 말하는 거지?”

해자수가 귀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귀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호발귀는 단단히 잘 묶어 뒀고?”

귀검이 고개를 번쩍 들어서 해자수를 쳐다봤다. 그의 눈길에는 당혹감이 스며 있었다.

“알고 있었나?”

“키키키! 이봐. 내가 은인문 술사야. 주변에서 돌아가는 게 내 눈에 안 보일 거 같아? 철석을. 그 무거운 쇳덩어리를. 오백 근짜리를 세 덩어리나 옮기는데,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냐고. 당신도 참 웃긴 사람이야. 킥킥!”

해자수가 귀검을 보며 웃었다.

귀검은 눈빛을 반짝 빛냈다.

해자수는 이미 무슨 일인지 알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선다. 도천패와 당홍을 유인하는 게 어떤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괜찮나?”

귀검이 오히려 해자수에게 물었다.

“이봐! 아씨가 혈마한테 달려갔어. 혈마한테 가면서 나한테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단 말이지. 뭐 만나도 할 말이 없긴 해. 잘 살아라. 이건 아닐 거고. 건강해라. 이것도 아닐 거고.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정말 마지막에는 할 말이 없어. 그러니까 그냥 가신 거라고. 한마디로 죽음을 각오했단 말이지.”

해자수가 씩 웃으면서 귀검을 쳐다봤다.

“괜찮냐고? 천만에. 어떻게 괜찮을 수 있어. 이제 곧 죽으러 갈 몸인데.”

“음!”

“그런데도 말이야. 난 호발귀, 그놈을 믿어. 지금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지 말 안 해줘서 모르겠는데…… 말을 안 했다는 것은 날 죽일 수도 있다는 거잖아? 그래도 나는 그놈을 믿어. 그놈이 하는 일치고 잘못된 일이 하나도 없었거든. 자! 그럼 가.”

해자수가 손을 들어 보인 후 휘적휘적 걸어갔다.

꽝! 꽝! 꽈아앙!

도천패가 미친 듯이 대력도강을 휘둘러 댔다.

“아! 저 미친놈.”

해자수는 혀를 끌끌 찼다.

이쯤 되면 도천패나 당홍이나 자신들도 생기가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사실 저들은 진작 알았다.

당홍이 바보인가? 당홍은 독의의 후인이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진작 깨달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생기를 쓰고 있다.

이미 생기에 휘말려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홍도 이것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은거지에 틀어박혀서 나오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밖으로 나오면 누군가는 죽이게 된다는 것을 안다.

여기서 저들을 동굴로 데려갈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

호발귀는 생기를 쓰라고 했다. 맞다 생기를 쓰지 않고는 저들을 유인하지 못한다. 귀무살이 지닌 무공으로는 곤죽이 되도록 얻어맞기 딱 십상이다.

“자! 그럼 달음박질 좀 해볼까? 이거 오랜만에 돌풍 속으로 들어가겠네.”

해자수는 눈을 감고 온몸이 돌풍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고 상상했다.

촤아아악!

그의 내면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역시 이거야!’

해자수는 기분이 날아갈 듯 상쾌해졌다.

온몸을 찢어발길 듯 거세게 일어나는 돌풍인데, 이 바람이 이렇게 그리웠을 줄이야.

‘자! 가자!’

거센 돌풍이 그를 휘어잡아 허공 높이 솟구쳐 올렸다. 순간,

촤촤촥! 촤촤촤촥!

한쪽에서 철벽이 거세게 차올라왔다.

사방에서 둘러쳐지는 게 아니다. 저 멀리서 철벽이 일어나더니 그를 향해 확 덮쳐온다.

“아이고, 무서워라.”

해자수는 히죽 웃으면서 철벽이 일어선 반대 방향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철벽을 무너뜨리지 않고 오히려 철벽을 피해서 도주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 옛날에 호발귀를 유인하던 때가 떠오른다. 지금이 그때와 똑같다.

쏴아아아!

도천패와 당홍이 빠르게 쫓아왔다.

생기는 생기를 감지한다. 어느 누구보다도 빨리 감지한다. 그리고 어떤 푸른 빛보다도 생기가 일으키는 푸른 빛을 먼저 제거하려고 달려든다.

호발귀와 쫓고 쫓기면서 터득한 경험이다.

등 뒤에서만 철벽이 세워지는 게 아니다. 허공에서도 철벽이 세워졌다.

‘저놈의 쌍학!’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철벽이 세워지는 모습으로 쌍학을 느낄 수 있다.

파파파팟! 파파팟!

등 뒤에서 거센소리가 울렸다.

타타타탁! 타타탁!

뭔가가 날아와 바닥을 찍었다. 당홍이 암기를 던졌다.

해자수는 돌풍에 온몸을 맡겼다. 등 뒤에 철벽이 세워진 이상 그가 할 것은 없다.

저 철벽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할 것이 있지만 단지 도주하는 것이라면 생기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된다.

자신은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두 발은 그야말로 젖먹던 힘까지 쥐어짜 내서 치달리고 있다.

휘이이익!

귓가로 바람이 흘러갔다.

해자수는 그 소리가 마치 먼 나라의 일처럼 아늑하게 들렸다.

자신은 그것보다 더 센 바람, 더 강한 용권풍에 휘말려 있다.

정신이 어지럽다. 온몸이 팽글팽글 돈다.

“따라와. 킥킥! 그래 계속 따라와.”

해자수는 웃으면서 치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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