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390화 (390/500)

第八十八章 사면초가(四面楚歌) (5)

“뭐야? 그게 정말이야?”

“정말이라니까.”

“아니, 그럼 혈마가 또 나타난 거야?”

“혈마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살성이 나타난 것만은 틀림없어. 그냥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인다니까.”

“아! 참 그게 하필이면 이 근처야.”

“글쎄 말이야.”

“좌우지간 당분간 몸조심들 해. 어디 갈 때 혼자 다니지 말고.”

“뭐 같이 다니면 뾰족한 수 있어? 그런 놈이 나타나면 죽는 수밖에 더 있냐고.”

“그렇지. 우리가 떼거리로 다녀도 혈마란 것이 나타나면 바로 모가지 끽! 이지. 무슨 수로 그런 놈들을 당해.”

“그래도 조심들 해.”

“그러나저러나 사광(四鑛) 쪽에서도 혈마가 나타나서 갱도를 무너트렸다 어쨌다 뒤숭숭한데, 하필 이럴 때…… 에이!”

광부들이 치를 떨면서 얘기했다.

어떤 때는 무인보다도 일반인들이 소식이 더 빠를 때가 있다. 지금처럼 귀무살이 산속에만 틀어박혀 있을 때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일반인들 사이에 흘러 다니는 소식을 듣고 알 수밖에 없다.

‘혈마가 나타났어?’

보통 살인귀 정도로는 혈마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한 마을 전체를 씨 말릴 정도로 살겁을 저질러야 혈마라고 말한다. 닥치는 대로 죽이는 놈이 나타났다.

‘이것저것 물불 안 가리고, 눈에 띄는 사람은 모조리 죽여버린다. 흠! 정말 혈마인가.’

무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로 그 정도 살인을 저지르는 자가 나타나면 토박이 무인들이 제일 먼저 나선다.

일반 살인자라면 잡아서 관아에 넘기고, 마인이라면 즉참한다.

혈마가 계속 위세를 떨친다는 것은 토박이 무인들이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는 거다.

그럴 경우, 명망 있는 무림 문파가 나선다.

문파일 경우도 있고, 세가(世家)일 경우도 있으며, 어떤 때는 유명한 무인일 때도 있다. 적어도 한 지역을 움켜잡고 있는 자들이 나서서 해결한다.

탄광은 소식이 매우 늦다. 광부들 입에서 흘러나온 소문은 최소한 사나흘 정도는 묶은 것들이다. 이미 세간에는 이런 말들이 사나흘 전부터 퍼져 있었다.

그렇다면 혈마는 명망 있는 문파나 이름난 무인도 해결하지 못했다는 거다.

정말 혈마다.

“그거참. 이런 소식조차 이렇게 늦게 알게 되다니. 귀무살이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무지가 툴툴 웃었다.

“뭐라고!”

귀검은 무지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혈마가?”

“네. 혈마가 또 나타났습니다.”

“음!”

귀검은 침음했다.

호발귀는 많은 나날을 무림에서 보냈다. 그동안 혈기로 죽인 사람도 상당히 많다. 그중에 한 명이라도 구사일생, 목숨을 건졌다면 혈마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호발귀가 생기격타를 일으켜서 죽인 자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무지, 혈도, 창파. 너희 셋은 지금 즉시 혈마의 행방을 쫓아.”

“알겠습니다.”

세 명이 일제히 대답했다.

“행방만 쫓아라. 절대 부딪히지 말고.”

“넷! 저희도 혈마와 부딪칠 생각은 없습니다. 끔찍하거든요. 후후!”

창파가 긴장해서 말했다.

그들 세 명도 호발귀가 개를 어떻게 죽이는지 봤다.

호발귀는 갱도에서 나온 개를 두 마리를 죽였다. 한 마리는 십오 장 안, 혈권으로 들어왔을 때 죽였다. 또 한 마리는 십오 장 너머에서 죽였다.

한 마리는 그나마 비수를 던져서 죽였지만. 다른 한 마리는 심장을 파열시켜서 죽였다. 십오 장 밖에서 손도 대지 않고 심장 파열을 시켰다.

그런 자는 감당하지 못한다.

“호발귀가 갈지, 내가 갈지 모르겠다만…… 누군가가 찾아가면 즉시 길 안내를 할 수 있도록 조심해서 따라다녀.”

“알겠습니다.”

쒜엑! 쒜에엑!

세 명이 즉시 신형을 통겨냈다.

“책사! 책사예요!”

홀리는 혈마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자마자 당장 등여산부터 떠올렸다.

홀리는 혈마가 나타났다는 말을 귀검에게서 처음 들었다.

솔직히 그녀는 등여산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호발귀가 생기격타와 혈기를 연관 지어서 말할 때, 등여산이 걱정되기는 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미처 그녀에게까지 신경이 돌아가지 않았다.

현재, 그녀는 호발귀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도천패와 당홍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두 사람, 도천패와 당홍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이제는 아예 사람들이 접근하면 다짜고짜 쌍학부터 사용한다. 다가오는 사람이 누가 되었든 아랑곳하지 않고 무공을 펼친다. 단순한 위협이 아니다. 살수를 전개한다.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아성을 쌓아놓고 있다.

사냥하지 말라는 말도 이미 어겼다. 그들은 사냥을 한다. 거침없이 돌아다니면서 살상을 벌인다.

지금은 짐승만 죽이고 있지만, 살인 목표가 짐승에서 사람으로 옮겨오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호발귀가 빨리 혈기를 제거해 줬으면 좋겠는데.

솔직한 심정이다. 호발귀에게는 부담이 될까 봐 말하지 못하고 귀검에는 몇 번 푸념 삼아 말한 적이 있다.

눈앞에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으니 어떻게 신경을 쓰겠나. 등여산을 생각하면 그저 ‘아무 일 없을 거야. 똑똑하니까’하고 위안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런데 아무 일 없는 게 아니었다. 대단히 큰일을 겪고 있었다. 혈마라니!

“이건 호발귀한테 말해줘야 해요. 호발귀만이 처리할 수 있어요.”

홀리가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그녀는 곧 귀검에게 손목을 잡히고 말았다.

“호발귀, 지금 혈기를 거두지 못해.”

홀리가 깜짝 놀라서 귀검을 쳐다봤다. 무슨 말이냐는 눈빛이 귀검을 찔렀다.

“앉지. 들을 말이 있어.”

귀검은 호발귀의 현재 상태를 그대로 말해주었다.

어차피 홀리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호발귀가 왜 도천패와 당홍의 상태를 알면서도 손대고 있지 않은지, 홀리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걸…… 그걸 왜 말 안 했대요? 나한테?”

“주군이 바보는 아니지 않습니까. 혈기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 걱정하지……”

“아!”

귀검이 말하는 중에 홀리가 무언가를 알았다는 듯이 탄성을 토해냈다.

“나! 나야! 내가 위험한 거야.”

홀리는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귀검에게 말을 듣기 전까지, 애써 무심했던 일이 있다. 마음에 걸렸지만, 일부러 무시했다.

이상한 느낌이지만 도천패, 당홍과 자꾸 어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혈기가 낯설지 않다.

자신도 그들 속에 섞여서 쌍학을 펼치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다.

발판을 박차고 하늘로 솟구쳐서 터트린 혈맥참!

도천패는 더 강한 발판을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약하다. 더욱 큰 탄력을 일으켜야 한다.

당홍도 도약이 그게 뭔가. 자신이 당홍과 함께 뛴다면 그녀를 허공 높이 던져버릴 것이다.

그 중심에, 하늘과 땅 사이에, 도천패와 당홍의 중심에 자기가 들어서서 두 사람을 조절한다.

이건 이미 쌍학이 아니겠지만 훨씬 더 강력하고 효율적인 무공이 탄생한다. 이 세상에서 감당할 사람이 없는 가공할 무학이 터져 나올 것 같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왜 이러지? 미쳤나?’

그렇게 자책해왔지만…… 이것이 혈기였다.

귀검의 말을 듣고, 호발귀가 자신에게 말하지 못한 부분을 생각하자 모든 게 명확해졌다.

홀리는 멍하니 밖을 쳐다봤다.

“우리 참 우습게 됐네.”

홀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지금 누가 누구를 봐주고…… 그럴 사이가 아니라는 거지. 호발귀는 소축령에 갇혀서 꼼짝도 못 하는 처지가 되었고, 책사는 이미 미쳐서 날뛰고, 두 사람 미치기 일보 직전이고 나는 이렇게 되고…… 우리 왜 이렇게 됐을까? 풋!”

홀리가 웃었다.

귀검은 한마디도 말해주지 못했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사방이 꽉 막혀서 이 상황을 뚫고 나갈 방법이 없어 보인다.

홀리가 한참 동안 밖을 쳐다보고 있다가 힘없이 귀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사실대로 말해줘요.”

“그러지.”

“지금 우리 중에서 혈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호발귀에요. 호발귀가 왜 우리한테 혈기에 대해서 말해주지 않은 거죠. 책사가 저렇게 될 것, 알고 있었죠?”

“아는 대로 말해줄 수는 있는데, 정확하지는 않아.”

“네.”

“호발귀는 혈마 무공에 의해 차근차근 혈마가 되었다고 해. 단계를 밟아서 혈마가 된 게 그 정도이고, 다른 사람들은 그 단계를 밟지 못한다고 그러더라고. 이유도 말해줬는데, 솔직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고.”

“뭐라고 말했는데요? 이유.”

“생기가 오염되면 일정 기간 숙성 기간을 거친 후에 혈마가 된다. 여기서 하얀 광목, 빨간 광목을 말했는데, 혈기 오염도를 말하는 것 같더군. 오염도가 오 할 이상이 되면 비로소 혈기가 드러나는데, 이때 드러나는 충동이 살심, 불쾌감, 경멸, 오시.”

“풋! 그럼 우린 전부 오 할이 넘었네요?”

“이때 혈기의 존재를 알게 되면 이미 늦다. 혈기를 빼내는 방법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우리네요.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말해주지 않은 거네요. 그럼 그 전에 아는 사람도 있어요?”

“호발귀, 혈마 같은 경우인데…… 호발귀는 본의 아니게 생기를 건드려서 알게 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혈마 한 사람이겠지. 오염이 시작되자마자 알게 된 경우가.”

“풋! 혈마는 무척 예민한 사람이었겠네요.”

“그때 도움이 되는 게 혈마무공이라고 하더군.”

“네에.”

“이령귀화나 역천금령공도 그때부터 안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그때부터 일 할, 일 할…… 일 할씩 단계적으로 혈기에 물드면 호발귀 같은 상태가……”

“그 말을 왜 나한테는 안 해줬지? 해줘도 되는데.”

홀리가 섭섭한 듯 말하면서 귀검을 쳐다봤다.

“부탁이 있어요.”

“음!”

귀검은 대답 대신 침음을 흘렸다.

지금 하는 부탁이라면 치명적일 게 뻔하다. 가급적 듣고 싶지 않다. 들으나 마나 최악의 부탁이다.

“나는 책사한테 가볼게요. 지금 이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은 귀검하고 나밖에 없어요. 아니, 엄밀히 말하면 귀검만 할 수 있어요. 내가 아는 구혼음소는 불안해서.”

“……”

“귀검, 제가 떠나면 형부하고 언니 죽여줘요.”

“……”

귀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부탁일 줄 알았다.

혈마를 단박에 무너트리는 방법은 구혼음소가 유일하다. 그리고 구혼음소를 아는 사람은 귀검과 홀리밖에 없다.

두 사람은 이제야 느끼는 것이지만, 혈마가 혈의검과 혈마후에게 구혼음소를 알려준 것이 바로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을 예상해서가 아닐까 한다.

이백 년 전 혈마도 생기격타를 했을 것이다. 아마도 혈의검과 혈마후, 양쪽 다 해줬을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 아끼는 수하이니 해주지 않았을 리 없다.

물론 혈마도 호발귀처럼 잘 모를 때 한 행동이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된다. 혈마가 되면 전혀 손 쓸 방도가 없다는 것을. 지금의 호발귀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여기서 찾아낸 것이 구혼음소가 아닐까 싶다.

너희는 혈마가 된다. 그럴 수는 없지 않나. 그러니 서로 죽여라.

혈마는 구혼음소를 자신을 죽이는 도구로 전수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내용은 혈의검과 혈마후가 서로 상잔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지. 도천패와 당홍. 죽이지.”

귀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를 막는 방법은 죽이는 것밖에 없다.

도천패, 당홍, 책사…… 누구든 이미 이 길에 들어섰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호발귀가 이체전공을 한다고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어느 세월에 할지 모를 일이다.

그동안 새로 탄생한 혈마는 세상을 완전히 피바다로 만들 것이다.

시간이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혈마는 사람을 죽인다.

홀리가 힘없이 일어섰다.

“저 사람 한 번 더 만나보고 싶은데, 만나면 발길이 안 떨어질 거 같아서. 형부와 언니를 죽이고 나면 곧바로 내게 와줘요. 책사를 죽일 수 있을지 모르겠네. 죽이지 못한다면 이쪽으로 끌고 올 테니까 마중 나와줘요. 여기까지 못 끌고 올 것 같아서. 구혼음소가 통할지도 모르겠고.”

“통할 거네.”

귀검이 말했다.

혈마가 혈의검에게 구혼음소를 전한 게 혈마후를 노린 거라면 통할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일단 바로 와줘요.”

“그러지.”

귀검이 무겁게 말했다.

“해자수도 잘 관찰하고요. 언제 혈마가 될지 모르는 사람이니까요.”

귀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홀리는 터벅터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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