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389화 (389/500)

第八十八章 사면초가(四面楚歌) (4)

생기격타를 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해결되어야 한다.

첫 번째 생기격타를 하는 순간, 온전히 상대방의 혈기를 내가 끌어와야 한다.

이런 일을 운에 맡길 수는 없다.

자신은 생기와 혈기를 정확히 보면서 조절하고 있다. 아니, 혈기를 막고 있다.

이런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혈기가 무지막지하게 흘러 들어가면 당장 모든 생기가 잡아먹힌다. 그 즉시 전체가 혈기로 물든다. 순식간에 혈마가 된다.

천만다행인 점은 자신이 한 단계씩 단계를 밟아서 혈마가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는 일시에 혈마가 되어야 하는데, 중간에 계단을 만들어 준 사람들이 있다.

혈천방도 도와줬다.

혈천방 귀문에서 혈전을 치른 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본방에서 혈마가 되었다가 돌아왔다. 진형에 갇혀서 완전한 혈마가 되었다가 구혼음소 덕분에 돌아온 적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계단이 되었다.

차곡차곡 한 계단씩 밟으면서 혈마가 되었다.

천살단도 혈마로 유도했다. 혈마가 되었다. 아주 지독한 혈마가 되어서 생기를 죽이며 다녔다. 등여산, 홀리, 해자수가 아니었다면 세상 사람들…… 정말 많이 죽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지독한 혈마였다.

하지만 천살단이 강한 수법을 써서 지독해진 게 아니다. 이미 그 단계까지 계단을 밟아 올라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까지 가야 했는데, 또 파신금령술이 깨워주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지금 상태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혈마무공도 톡톡히 한몫했다. 위기 때마다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이 한숨 돌리게 해줬다.

자신이 생기격타를 하고, 혈기가 저들 몸으로 들어가면…… 저들은 단계를 거치지 않고 단박에 혈마가 된다.

죽이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한데 이것도 문제다. 혈마를 어떻게 죽이나? 누구든 혈마를 죽이려면 혈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봤지 않은가. 혈권 안으로 들어가면 어떻게 되는지.

그것은 자신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혈마와 혈마의 싸움은…… 서로 혈권이 겹친다. 막말로 죽이지 못해서 안달한다. 그러다가 죽음이 일어나는데, 둘 다 죽는다면 깨끗하다. 최고로 좋다.

하지만 둘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으면, 남은 한 명은 세상을 피로 물들인다.

혈마의 살상력은 매우 가공스럽다. 인간을 개미 짓밟듯이 짓밟아 버린다.

혈마는 사람을 죽이면서 하루에 십 리를 이동할 수가 있다. 십 리에 걸쳐서 시신이 쌓인다. 열흘이면 백 리, 백 일이면 천 리가 피바다로 변한다.

중원에 사람이 한 명도 살지 못하게 되기까지 십 년도 안 걸린다.

이것을 어떻게 감당하나.

생기가 반드시 자신에게 들어와야 한다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둘째, 오염된 생기를 흡수한 후에도 자신의 한 조각 광목이 존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생기격타를 할 수 없다.

지금 가장 급한 사람은 홀리다. 홀리가 혈마가 되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손을 댈 수가 없다.

‘어쩌면!’

호발귀는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생기로 생기를 친다. 생기격타!

상대방의 몸속에 내 진기를 불어넣는다. 이체전공!

생기격타와 이체전공을 잘 활용하면 내 혈기를 타인에게 넘겨줄 수 있을 것 같다.

흡수하는 게 아니라 넘겨주는 방안이다.

내 혈기를 넘겨주어서 한 조각 남은 광목을 두 조각, 세 조각으로 넓힐 수 있다면…… 두 번째 문제는 해결된다. 혈기를 흡수하고도 생기가 보존된다.

이체전공! 혈기를 떠넘겨보자!

“귀검.”

“말씀하십시오.”

귀검은 언제나 사권 밖에 대기하고 있다.

“사권에 개 한 마리 놔주세요.”

“저번처럼 말입니까?”

“이번에는 생명을 거의 끊어놓았으면 좋겠는데.”

“생명을 끊어 놓는다는 말씀은?”

“한 가닥 생명줄만 남아있을 정도로. 숨이 끊어지면 안 되고, 살아있는 채로. 그리고 개가 미쳐서 날뛸 수도 있으니까 철삭을 준비해서 단단히 묶어줘요.”

호발귀는 자신의 계획을 귀검에게 말했다.

개에게 혈기를 넘겨보고자 한다.

개의 숨을 끊어놓는 것은 개가 혈기에 미쳐서 날뛸 수 있어서다. 철삭으로 묶어놓는 것도 같은 이유다.

성공하면 혈기가 대폭 순화된다.

이런 식으로 몇 번만 운용하면 혈기 걱정하지 않고 세상을 활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지를 결박해 놓는 게 나을 겁니다.”

“다 묶어놓으면 말해주세요. 이령귀화를 시작할 테니까. 혈권 안에는 절대 들어서지 마시고.”

“후후! 아직 죽을 생각 없습니다.”

귀검이 말했다.

생기가 반드시 인간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물에게도 있다. 동물의 생기를 격타해서 자신의 혈기를 넘긴다. 혈기가 넘어가든 실패하든 혈기에 생기를 격타당하면 광란을 일으킬 것이 뻔하다.

개가 미쳐서 날뛸 것이다.

그때는 비수를 던져서 숨을 끊는다.

이것도 혈기가 일어나기 전에 죽이는 것이 낫다. 아무리 개라고 해도 혈기가 일어난 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어쩌면 개가 비수를 피할 수도 있다.

혈기에 휘감긴 개는 상상 이상의 능력을 발휘할 것이 뻔하다.

“준비하는데 하루쯤 걸릴 겁니다. 철삭을 준비하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여태까지 기다렸는데, 하루를 못 기다리겠습니까. 천천히 준비해 주세요.”

“하대하라 부탁드렸는데.”

“하하! 귀검에게 어떻게 하대합니까. 이게 편해요.”

“이체전공이 끝나면 개가 광견이 될 텐데, 여기 접촉하면 어떤 결과가 예상됩니까? 물리는 것도 혈기 전달이 될까요?”

“하하! 아뇨. 물리고, 할퀴고…… 그런 식으로 전염되지는 않아요. 생기를 건드려야만 움직입니다.”

“일단 접촉은 피하죠. 주위에 화약도 매설하겠습니다.”

“그게 좋겠네요. 미쳐서 날뛴다 싶으면 즉시 폭파해 주세요. 아예 개의 뱃속에 화약을 넣어놓는 건 어떻습니까? 심지를 길게 늘이면 될 것 같은데.”

“알겠습니다.”

귀검과 호발귀는 이체전공을 적극적으로 준비했다.

드디어 준비가 끝났다.

서로 숙의한 대로 금줄 앞에서 칼 맞은 개 한 마리가 죽음 직전에 놓인 채 숨을 헐떡였다.

귀무살은 땅에 육백 근 철석 다섯 덩이를 박았다.

개를 철석 한가운데로 옮기고, 네 다리와 목에 철삭을 묶었다. 철삭 다섯 개는 철석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의 몸에 화약을 둘렀다.

심지는 오 장 이상 충분히 벌려놨다.

이 많은 것을 하루 만에 준비한 귀무살의 능력도 대단하다.

이곳이 광산이고, 근처에 광산 물품을 만드는 대장간이 있어서 가능했다.

생기 전공은 순식간이다. 심지에 불을 붙인 후, 바로 생기를 전공할 예정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변수는 뭡니까?”

귀검이 물었다.

“저 개는 생기가 소진되고 있어요. 푸른 빛이 꺼져갑니다. 생기가 약해서 밀려들어 가는 혈기를 온전히 받아낼지 모르겠고.”

이 부분은 숙의할 때는 거론되지 않았던 것이다. 개가 발광할 것만 염려했지, 생기가 꺼질 듯 흔들릴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체전공이 되는지 실험은 할 수 있다.

“오염되지 않은 생기니까 혈기를 보내기는 하는데…… 문득, 저 개만 오염시킬 뿐이지 내 혈기는 변함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괜히 저 개만 죽이게 됩니다.”

“해보지 않고는 모를 일이군요. 해보죠. 심지어 불을 붙이겠습니다.”

“붙이세요.”

호발귀도 이령귀화를 준비했다.

이미 이령귀화가 개의 생기를 더듬고 있다. 심지에 불이 붙으면, 호발귀는 눈가리개를 풀고 개를 쳐다볼 것이다. 그러면 당장 혈기가 일어난다. 혈권이 확 넓어진다.

눈에 보이는 개는 당장 혈권의 영향을 받는다.

혈기가 개를 죽이고자 달려갈 때, 타악! 혈기를 쳐낸다. 혈기가 일어난 상태에서는 이령귀화를 쓸 수 없으니 반대로 역천금령공을 쳐낸다. 생기격타를 한다.

탁탁! 촤악!

귀검이 심지에 불을 붙였다.

“붙였습니다.”

귀검이 보고한 후, 재빨리 몸을 숨겼다.

호발귀 눈에 띄면 안 된다. 개와 함께 살해당한다.

호발귀는 자신의 몸에도 철삭을 묶었다. 밀실에서처럼 몸을 고정해 놓고 혈기를 사용한다.

스읏!

눈가리개를 풀었다. 세상이 한눈에 들어왔다. 귀검이 말한 곳에서 다 죽어가는 개를 찾았다.

‘개!’

개가 살아서 헐떡인다. 푸른 빛이다! 청광멸! 사멸!

‘죽여! 죽여!’

순간, 혈기가 번쩍! 일어났다.

눈으로 죽어가는 개를 본 것이 너무 자극적이었던 것 같다. 단번에 혈기가 쫙 밀려 나갔다. 순간,

깨애애앵!

개가 네 다리를 뻣뻣하게 세운 체 바르르 떨었다.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두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그리고 심장이 터졌다.

팍!

개는 혀를 쑥 내밀더니 다리에 힘을 풀고 털썩 쓰러졌다.

죽었다. 혈기가 개를 죽였다. 혈기가 개를 죽이기 전에 생기격타가 먼저 이루어졌어야 했는데…… 생기를 만지기도 전에 죽어버렸다. 혈기에 놀란 개는 피가 급하게 뛰었다. 두 배 이상 빠르게 뛰면서 심장에 무리가 갔다.

츠으으읏!

혈기는 또 다른 생기를 찾아나섰다.

이론적으로…… 호발귀가 생각하기에는, 이 시점에서 눈을 감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혈기가 다시 잠잠해질 것이다. 사권이지 않나. 혈권 안으로 잦아들 것이다.

그런데 이것도 예측이 빗나갔다. 눈이 감기지 않는다. 혈기가 사방에서 생기를 찾는다.

타악!

토끼가 뛴다. 바위처럼 진한 회색 토끼다.

토끼가 잠시 멈춰서는 듯하더니 이내 쏜살같이 산 아래를 향해 치달려갔다.

토끼가 혈기를 느꼈다. 산정에 위험하다는 것을 감지했다.

하지만 토끼는 다리라도 부러진 듯 비틀거렸다. 토끼 역시 피가 너무 빨리 뛴다. 몸뚱이가 감당하지 못할 속도고 혈류가 빠르게 움직인다.

퍼억!

토끼의 심장도 터져 나갔다.

호발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혈기가 죽이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사실, 호발귀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크크크크! 끄아아아악!”

소축령 산정에서 괴물이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철삭을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다했다.

파아아앗!

혈기가 또 다른 생명체를 찾아 나섰다.

혈기는 토끼마저 즉사시켰다. 이체전공은 확실히 실패다

파파파팟!

혈기가 다른 생기를 찾아 나섰다. 생기가 끼어들 여지는 없다. 혈기가 사권, 아니 이미 사권 밖까지 시야로 혈권을 넓힌 이상은 모든 생명체가 말살되어야 돌아간다.

파파팟! 파파파팟!

무조건 죽이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혈기가 청광(靑光)을 찾기 위해서 번뜩였다. 다행히도 청광은 보이지 않았다. 귀무살은 철저히 몸을 숨겼다.

츠으으으읏!

혈기가 잠들었다.

호발귀는 생기가 돌아오는 것을 느끼면서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을 다시 휘돌렸다. 물레방아, 진기의 순환을 일으켜서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

“보기 좋게 실패했네.”

호발귀가 시선을 땅으로 내리깔면서 말했다.

개의 몸에 오염된 혈기를 집어넣을 생각이었는데, 혈기가 이전 대신에 파괴를 선택했다.

이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다. 혈기를 던져내면 순순히 생기를 찾아서 들어갈 줄 알았다. 설마 모든 청광멸이 혈기 이전보다 우선할 줄은 정말 몰랐다.

‘오염된 혈기를 건네줄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이놈은 무조건 죽일 생각만 해.’

이렇게 되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혈기를 끌어내면 안 된다는 전제조건이 성립한다. 즉, 오염된 혈기를 흡수할 수는 있다.

단, 생기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하지만 이럴 경우, 생기 대신에 혈기가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혈기를 흡수한다는 것이 자칫 상대를 단숨에 혈마로 변신시킬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혈기는 건네주지 못한다. 소멸, 혹은 상쇄시키지도 못한다. 지금 상황으로는 영원히 함께 존속해야 한다. 몸에서 빼내는 방법은…… 없다.

물론 이것은 호발귀에게만 해당한다.

“풋!”

호발귀는 피식 웃었다.

뭐가 그렇게 급한가. 옛날, 이백 년 전 혈마는 지금 자신이 겪은 이 과정을 모두 거쳤다. 그는 후대에 누군가는 자신처럼 생기를 건드리는 사람이 나오리라 생각했다.

혈마무공은 그런 사람을 위한 공부다.

호발귀는 지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혈마무공을 수련한다고 해서 생기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혈마가 나왔을 때, 도움이 되고자 만든 공부인데…… 어찌 된 연유인지 호발귀는 오히려 혈마무공을 통해서 혈마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렇다. 혈마무공은 혈마를 만드는 공부가 아니다. 다만, 그것 중 어느 공부가 생기를 건드린 것이다.

일단 지금 상태로 살아갈 수는 있다. 완전한 혈마가 되지 않고 이 정도 선에는 그치는 거다. 혈권, 사권을 형성한 채 조심하면서 살아간다. 영원히.

답답한 노릇이지만 혈마가 원하는 것은 이것이었다. 혈마무공을 남긴 이유다.

혈마는 이 상태에서 더 발전하지 못했다. 아니, 어느 순간에는 이 선도 무너졌다. 그래서 자진했다. 여기서 더 방법을 찾아냈다면 결코 자진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금부터는 혈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혈기를 빼내는 방법. 찾아야 해.’

“이번엔 실패했습니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보죠.”

호발귀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