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388화 (388/500)

第八十八章 사면초가(四面楚歌) (3)

“다 쳤습니다.”

궁충이 보고했다.

소축령 정상을 중심으로 반경 삼십 장에 새끼줄이 쳐졌다.

들어갈 수 없는 금역!

귀검이 호발귀가 들어간 즉시 금줄을 쳤다. 그리고 진입자사(進入者死)라고 적힌 팻말까지 꽂았다.

정상으로 올라가는 모든 길에 세워놨다.

“수고했다. 특별히 주의해야 할 것이라도 있나?”

“없습니다.”

“그래. 그럼 사방에 다섯 명만 배치해.”

“정말 다섯 명이면 되겠는지?”

궁충이 염려스러운 듯 말했다.

“응?”

귀검이 무슨 말이냐는 듯 궁충을 쳐다봤다.

“무슨 소리야? 그 말은?”

“다섯 명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서. 혈마를 지키려면 아무래도 열 명 이상은……”

“하하하! 하하하하!”

귀검이 크게 웃었다.

“방금 뭐라고 했니? 혈마를 지킨다고? 하하하! 하하하하! 혈마를 누가 지켜?”

“네?”

“궁충. 혈마를 만나더니 생각이란 걸 잃어버린 거야? 너답지 않게 왜 이래? 하하하! 내가 금줄 밖에 귀무살을 세우라는 것은, 혈마를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천하에 혈마를 누가 지키겠다고. 귀무살이 할 일은 산정으로 올라가는 사람만 막으면 돼.”

“아! 네.”

궁충이 알았다는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귀무살이 금줄 밖을 지킨다.

사력을 다해서 지킬 필요는 없다. 그들이 보호하는 사람은 호발귀가 아니다.

귀검 말마따나 천하에 누가 혈마를 보호한단 말인가.

귀무살은 산정으로 올라가는 사람을 보호하기 위해서 경비를 선다. 그들을 뚫고 막무가내로 올라가는 자가 있다면 어쩔 수 없다. 내버려 둘 생각이다.

혈마가 있다고 경고해도 듣지 않는다면 결국 팻말에 적힌 글자의 뜻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세 명만 세워도 충분하겠는데요. 올라가는 길이 세 곳뿐이고, 그곳만 막으면 옆으로 올라가는 사람을 다 보입니다. 충분히 경고해줄 수 있어요.”

“그래? 그럼 세 명만 세워.”

“그런데 영주님께서는 정말 여기서 거주하실 생각이신지?”

귀무살이 경계를 서고 있지만, 귀검은 아예 금줄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 놓고 거주할 생각이다.

흙벽 집을 만들고, 간단하게 나무로 지붕을 얹었다. 흙바닥에는 아무것도 깔지 않아서 흙냄새가 풀풀 올라온다. 거기에 늑대 가죽 한 장 깔고 담요만 놓았다.

귀검이 산정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후후후! 주군은 마음으로 모시는 게 아니다. 몸으로 모시는 거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야 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너희가 죄송할 게 뭐야?”

“그동안 영주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했습니다. 저희에게는 영주님이 주군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모시겠습니다.”

“그렇다고 여기 있을 생각은 하지 마. 장소가 좁아.”

“하하! 알겠습니다.”

궁충이 환하게 웃었다.

‘생기격타’

호발귀는 생기격타에 대해서 고민했다.

소축령에는 걸을 수 있는 공지가 있다. 몇 걸음 정도밖에 걸을 수 없지만 밝은 햇볕을 받으면서 걸을 수 있으니 좋기만 하다. 더욱이 불어오는 바람도 시원하다.

모든 게 싱그럽다.

생기에 민감해지면 단지 땅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낀다. 기분은 들뜨지 않으면서도 상쾌해서 좋다. 머리는 맑고 명료해진다. 모든 게 단순해진다.

스읏! 슷!

호발귀는 소축령 정상을 산책했다.

이리 왔다 저리 갔다…… 몇 걸음밖에 되지 않은 공터를 기분 좋게 걸었다.

‘생기격타.’

당장 홀리의 생기가 가장 위급하다.

홀리는 도천패와 당홍을 걱정하고 있지만 기실 가장 위험한 사람은 홀리다.

홀리는 생기를 몇 번 안 썼다고 했다. 도천패와 당홍에게 식량을 갖다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몇 번 펼친 것이 전부였다고, 그 외에는 절대 쓰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어쩔 수 없이 몇 번 펼친 것이 쌍학을 수련하면서 늘 펼친 도천패나 당홍보다 훨씬 위험하다.

홀리는 예전에 생기를 사용해서 무인을 무수히 격퇴시켰다.

생기를 살인에 이용했다. 생기가 살인 맛을 알아버렸다. 청광멸, 푸른 빛을 꺼트리라는 명령을 내릴 줄 알게 되었다. 홀리는 그런 명령을 받지 않는다고 하겠지만, 이미 내면에서는 명령이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에 도천패와 당홍은 아직 살인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들의 생기는 오염되기는 했어도 순수한 편이다. 아직 혈기까지 휘감기지는 않았다.

밀실에서 홀리의 몸에 깃든 혈기를 걷어냈는데도 홀리의 오염도가 훨씬 빠르다.

사실, 그때 그 방법…… 생기를 써서 혈기를 걷어내는 방법은 매우 위험했다. 그것만 위험한 것이 아니다. 내공을 증진해주겠답시고 생기격타를 한 것도 위험했다.

자신은 정말 이들에게 몹쓸 짓을 했다.

나름대로는 도와준다고 한 짓이지만…… 건강한 음식을 준다는 게 독을 주고 말았다.

생기격타…… 지금 생각하면 소름이 오싹 돋을 정도로 위험한 방법이었다.

생기로 생기를 치는 생기격타나, 생기로 혈기를 걷어내는 생기격타나…… 모두 같은 위험을 지닌다.

생기와 생기가 접촉하는 순간, 자신의 혈기가 반대쪽으로 흘러 들어갈 수 있었다.

지금 생기격타를 당한 다섯 명이 모두 생기를 일으킨 것도 우연이 아니다.

생기와 생기가 접촉하면 우열이 없어진다. 이쪽 생기나 저쪽 생기나 똑같아진다.

약한 쪽이 강한 쪽으로 흡수되는 게 아니다. 한쪽이 움직이기는 하지만 누가 움직일지는 모른다.

밀실에서 혈기를 거둬들일 때, 오히려 혈기가 밀려들어 가서 단숨에 혈마가 되었을 수도 있다.

소름 끼치도록 운이 좋았다.

문제는 또 있다.

정말 운이 좋아서 두 사람의 혈기를 흡수하기는 했지만, 혈기를 흡수한 만큼 자신의 생기가 물들었다. 생기가 두세 개 정도 남았는데, 그 일로 인해서 한 개로 줄어들었다.

두 사람을 도운 일이 하얀 광목의 영역을 줄이는 것이라는 사실은 에도 몰랐다.

이제 함부로 혈기를 흡수할 수 없다.

홀리는 자신이 당연히 도천패와 당홍의 혈기를 뽑아낼 것으로 생각하지만, 생기격타는 위험하다.

생기를 사용하는 사람, 그 누구도 타인의 생기와 접촉하면 안 된다. 간혹 한두 번 정도 접촉하는 것은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여러 번 치면 틀림없이 생기가 길을 열어버린다.

더욱이 다섯 사람은 생기를 쓰기는 해도 보지는 못한다.

몸에서 어떤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만 알지 그것이 생기인지,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전혀 모른다.

지극히 초보적인 단계다.

저들은 지금 생기격타를 할 수 있는 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

생기격타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인데, 사실상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생기를 건드릴 수는 없다.

‘어떻게 하지?’

고민이 깊다.

저들에게서 혈기를 걷어내야 한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불현듯 살인 충동이 일어날 것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에는 화가 치솟을 것이고, 점점 생기를 사용해서 사람을 죽이는 횟수가 늘어날 것이다.

혈마가 되어가는 과정을 피할 수가 없다.

“하아!”

호발귀는 고민을 거듭했다.

“옷을 가져왔어.”

홀리가 말했다.

“옷?”

“지금 입고 있는 거 오래됐잖아. 갈아입으라고. 모습을 봤으면 좋겠는데.”

“나도 그러고 싶은데. 곧 방법을 찾아낼게.”

“너 보고 싶었지?”

홀리가 불쑥 물어왔다.

“아! 진짜, 홀리! 적응이 안 돼. 너무 단도직입적이야.”

“부부 사이에 이런 말도 못 해?”

“부부? 하아!”

“우리 부부 아냐?”

“부부…… 맞아. 그런데 이 말이 너무 쉽게 나와서.”

“쉽게 한 거 아니거든. 말해봐. 나 보고 싶었지?”

“보고 싶었지.”

“거봐. 말하니까 별것도 아니지?”

“하하하하!”

호발귀가 웃었다.

“형님한테는 아직 얘기 안 했지?”

“얘기 안 했지. 어떻게 얘기해.”

“해자수 말로는 아예 원수 대하듯이 쳐다본다면서?”

“원수까지는 아니고. 싫은 사람 대하는 느낌? 아니다. 싫은 사람도 아니고 경멸? 별것도 아닌 게 까불어. 뭐 이런 느낌? 호호호! 무시 제대로 당한다니까.”

“괜찮아?”

“괜찮지 뭐. 지금 형부하고 언니가 왜 저러는지 아는데. 알면서도 손을 쓰지 못하는 게 답답하지.”

홀리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바보야, 답답한 거 너야. 어떻게 하지? 널.’

두 사람은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진기로만 대화를 나눴다. 아무도 없는 곳에 대고 중얼거리면, 대답이 들려왔다. 얼굴을 보지 못하는 관계로 대답이라도 빨리 해주려고 한다.

도천패와 당홍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뭐라고 한마디도 해줄 수 없다.

“생각하는 거는 잘 돼가?”

“아직은.”

“방법, 빨리 찾아봐. 저 두 사람 이대로 놔두면 안 될 거 같아.”

‘바보야, 정작 문제는 너라니까.’

호발귀는 홀리에게 그녀의 상태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혈권에 관해서만 얘기했다. 혈권 안에 들어오면 누구든 전부 죽일 수밖에 없다.

혈기를 흡수하려면 사권에 서야 하는데, 아직 사권에서는 혈기를 뽑아본 적이 없다. 방법을 찾아보겠다. 별로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하는데, 모르겠다.

그 정도로만 두루뭉술하게 얘기했다.

홀리는 생기, 혈기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호발귀가 하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이따 저녁에 다시 올게.”

“그냥 쉬어. 산길 올라오기 힘들잖아.”

“왜? 벌써 내가 보기 싫어?”

“하!”

“호호! 기다려. 이따가 저녁밥 맛있게 지어서 가지고 올게.”

홀리가 환하게 말했다.

“저기…… 저녁은 해자수 시키면 안 될까?”

호발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왜 내가 지은 밥이 어때서?”

“좋지! 좋은데, 오랜만에 해자수가 지어준 밥이 생각나서. 해자수가 밥 하나는 잘 짓잖아. 정말 오랜만에 해자수 밥이 생각나서 말해본 거야.”

“내 밥이 맛없다, 이거지?”

“아니 그게 아니고……”

밥을 설 익히잖아. 반찬은 너무 짜고, 탕은 너무 싱겁고. 도대체 누룽지탕에 미꾸라지는 왜 넣는 거야?

홀리는 정말 요리를 못한다. 홀리가 가장 잘하는 요리는 고기를 굽는 것이다.

불에 구운 고기는 탄 부분을 떼어내고 먹으면 된다.

그게 제일 잘하는 거다. 비록 고기가 반으로 줄어들지만, 그래도 그게 제일 낫다.

“알았어! 안 해!”

홀리가 빽 소리 질렀다.

“아니야. 아니야. 아냐, 아냐! 오랜만에 해자수 밥이 생각나서 말한 건데, 아휴! 당연히 홀리가 한 밥이 맛있지. 얼마나 먹고 싶었다고. 피곤하니까 하지 말라는 거였지. 홀리 밥은 정말 맛있어. 요즘 살이 부쩍부쩍 쪄. 이거 보여주지 못해서 안타까운데. 요즘 살이 얼마나 쪘는지 돼지 같다니까.”

“호호호호!”

홀리가 웃었다.

“귀엽네. 당황하니까 이렇게 말이 많아지는구나.”

“아니라니까. 정말 맛있다니까.”

“알았어. 무슨 말을 해도 내 요리는 양보 못 해. 그리고 정말 해주고 싶은 요리가 있거든. 지금부터 부지런히 만들어서 이따가 저녁에 가져올게. 호호!”

“뭘 할 건데?”

“구전대장(九轉大腸).”

“아! 기대된다. 벌써 배고파.”

“호호호!”

홀리가 깔깔거리면서 웃으며 내려갔다.

“괜찮겠습니까?”

귀검이 말했다.

“휴우!”

호발귀는 한숨만 내쉬었다.

구전대장은 돼지의 대장을 삶은 다음에 튀겨서 다시 조리하는 산동(山東) 요리다. 제남채(濟南菜)의 대표적인 요리다. 화력이 아주 강한 불로 조리해야 한다.

같은 재료, 같은 불로 요리를 해도 홀리가 만들면 전혀 다른 음식이 되니 문제다.

홀리는 구전대장을 어떻게 만들어서 가지고 올까?

“어떻게, 간단한 전병이라도 준비해 드릴까요?”

금줄을 지켜선 귀무살이 농으로 말했다.

그들도 이제는 호발귀가 어렵지 않다. 호발귀가 진실로 귀검을 받아들였고, 귀무살 또한 수하로 대하고 있다.

이미 서로 간에 껄끄러운 부분이 사라졌으니 편안하게 대할 수 있다. 월도와 무지에 대한 건은 아직 숙제로 남아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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