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387화 (387/500)

第八十八章 사면초가(四面楚歌) (2)

혈마삼총은 놀랍게도 비보전이었다.

천살단에 있는 비보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보전과 성격이 너무 같아서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혈마일총과 이총을 본 후라서 삼총에 대해 아주 크게 우려했다. 더 잔혹한 일을 볼까 봐 두근거리는 가슴을 꾹 누르며 찾아왔다.

보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다. 무엇인지 알아야 폐쇄할 것이기 때문에 찾아왔다.

혈마삼총은 염탐꾼의 세계다.

“저희는 모두 백 명입니다.”

“지금 어디 있죠?”

“중원 각지에.”

“아! 네.”

천원주는 비보전과 세작을 담당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떻게 활동하는지 짐작한다.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어요. 혈마를 상대한다면서 세상에 간자를 깔아놓은 이유는 뭐죠? 뭘 조사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이게 혈마군총에 들어갈 만큼 중요한 일이에요?”

“뒤에 있는 질문부터 말씀드리면,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자금이 일총이나 이총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많을 겁니다. 그만한 돈을 쓰면서 아무런 일도 안 할까요.”

“뭘 주목하세요? 혈마요?”

“아뇨. 우리는 혈마와 상관없습니다. 보다 더 근원적인 힘을 조사합니다.”

“근원적인 힘이라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기적이죠.”

“기적이요?”

“기적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신체적인 기적, 정신적인 기적. 저희는 둘 다 찾아다닙니다.”

혈마삼총 총주가 말했다.

총주는 향신료 점포를 조그맣게 운영한다. 하지만 향신료의 특성상 오가는 손님은 고관대작, 아니면 거상이다.

길가에 물건을 늘어놓은 점포가 아니라 손님을 집안으로 들여서 물건을 꺼내 보여주는 고급 점포다.

총주의 점포에는 많은 사람이 오간다.

천축(天竺), 서역(西域), 남만(南蠻)…… 이국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 중 ‘백 명’에 속하는 혈마삼총 식구들이 있다.

혈마삼총은 두 명이 일개조로 운영한다. 백 명이니 오십 개조다.

세상에 아무런 일이 없다면 그들은 총주의 점포에서 머문다. 물론 그들이 기거할 방은 두 개밖에 없다. 큰 방도 아니다. 두세 명이 쓰면 딱 알맞을 정도로 아담하다.

그만큼 세상에는 일이 많다. 백 명, 오십 개 조가 상시 운용된다. 거의 대부분 외유 중이고, 점포에 와서 머무는 사람은 기껏해야 한두 개조에 불과하다.

이들은 세상에 나가서 무엇을 보는가?

기적을 본다.

엄밀히 말하면 기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곳으로 가서 기적을 확인한다.

진짜 기적이 일어났는지,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인지 살핀다.

말도 안 되는 기적이 정말로 일어난 것이라면 기적에 관한 일을 소상히 기록한다.

어떤 기적인가. 누가 일으켰는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는가.

당시 기적을 일으킨 사람의 심리상태는 어땠는지,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했기에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기록한다.

기적을 일으킨 사람을 찾아서 은자를 지급하며 기록한다.

사냥을 나갔다가 옆에서 불쑥 달려든 멧돼지를 두 손으로 밀어낸 사람이 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 범람한 강에 빠진 자식을 구하고자 강물에 뛰어든 여인이 있다. 여인은 이미 강물이 집어삼킨 자식을 안고 기어 나왔다.

숨바꼭질하다가 우물 속에 숨은 아이가 있다. 물이 말라서 사용하지 않지만, 꽤 깊어서 나무 뚜껑을 닫아놓았었다. 열 살짜리 아이가 그곳에서 십 일을 버텼다.

이 세상에는 직접 보고나 들어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인간은 극한 조건이 주어지면 반사적으로 대응하는 힘이 있다.

대부분은 그런 힘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말도 안 되는 힘이 나온다.

천하장사가 달려오는 황소 뿔을 잡고 멈춘 것은 기적이 아니다. 힘이 셀 뿐이다. 그리고 그는 똑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 다음에도 똑같은 상황이 닥치면 또 한다.

이것은 기적이 아니다.

진짜 기적은 기적을 일으킨 사람도 같은 일을 두 번 다시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지불식간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하늘의 힘!

이 힘을 생기라고 본다.

“그렇게 조사한 게 몇 개나 있어요?”

“몇 개나 있을 것 같습니까?”

“글쎄요? 예측을 못 하겠네요.”

“각 조가 기적이라고 알려온 것들은 일 년에 이삼십 개는 조사합니다.”

“그렇게 많아요?”

“대부분은 거짓이죠. 저희가 현상금을 걸었으니까, 돈을 노리고 사건을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중 한두 개는…… 이삼십 개 중 한두 개는 진짜입니다.”

“그럼 모두?”

“일 년에 백 개 이상 기적이 일어나고 있죠. 자신도 모르게, 두 번 다시 쓸 수 없는 괴력을 발휘하는 겁니다.”

“아까 기적이 두 개라고 말씀하셨는데……”

“정신적인 기적이 또 있죠. 영감! 우리는 영감도 생기의 일종으로 봅니다. 영감과 더불어서 예지력(叡智力)도 주시하고 있어서…… 무당도 관심 대상이죠.”

“그런 것은 확인하기가 쉽지 않겠네요?”

“정신적인 기적은 기적으로 분류해놓고 있지 않습니다. 관심만 갖고 기록만 하죠. 이런 부분까지 합치면 일 년에 천 개 넘게 파악됩니다. 기적이라는 게.”

“그럼 지금까지 모은 게……?”

“하하하! 세월이 장장 이백 년 아닙니까. 몇 개나 되겠습니까? 우리가 매우 관심 있게 보는 게 있는데, 이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기적이라는 것…… 숫자가 비슷해요. 확 늘어나지도 않고 줄어들지도 않았어요.”

“그러면 다른 것도 조사할 수 있겠네요? 예를 들면 혈천방에 대한 자료 같은 것.”

“하하하! 우린 무인이 아닙니다. 무공은 모르죠. 이 일에 무인은 아예 쓰지 않고 있어요. 우리에게 기적을 알려주는 사람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하는지 모르죠. 돈 몇 푼 받으려고 알려주는 겁니다. 그것뿐이에요.”

혈마삼총은 생기가 운용된 사례를 모으고 있다.

단지 사례만 모으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상태에 있어야만 생기가 일어나는지 분석한다.

혈마군총에서 그나마 혈마를 연구하는 곳이다.

이곳은 당연히 존속시킨다. 혈마를 상대하는 데는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이지만, 적어도 피해는 주지 않는다.

* * *

마지막 혈마사총!

혈마사총은 상요성(上饒城) 한복판에 위치한다.

상요성은 강서성(江西省) 북동부에 있으며, 풍광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상요성에서 가장 뛰어난 절경 열 가지를 말해보라고 하면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게 많아서 결국은 말을 못 하고 만다는 말까지 있다.

그러면 강서성에서 가장 문인(文人)이 많고 큰 서원이 어디냐고 물으면 당장 상요성 청수서원(淸秀書院)이라고 말한다.

청수서원에 기숙하면서 학문에 전념하는 문인이 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청수서원에서 배출한 관료가 이만 명에 육박하고, 동문은 삼십만 명을 넘는다고 한다.

청수서원은 남방(南方) 제일서원(第一書院)이다.

이곳, 상요성 청수서원 원주가 혈마사총 총수다.

천원주는 상요성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청수서원이 혈마사총인 줄은 몰랐다. 청수서원에 도착한 후에도 원주가 사총 총수라는 것은 새카맣게 몰랐다.

천원주는 강서성에 들어설 때부터 한 사람의 안내를 받았고, 그는 원주에게 안내할 때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쓸데없는 농담조차도 없었다.

원주는 천원주에게 청수서원을 구경시켜 주었다.

서원이 너무 넓어서 전부 구경하는 데는 나흘이 걸린다. 하지만 원주가 안내해준 곳을 보는 데는 한 시진이면 족했다.

문인들이 모여서 토론을 했다.

그들은 토론은 다른 서원과는 다르다. 천지자연의 진리에 관해서 토론을 한다. 유교에 집중하는 서원과는 달리 불교, 유교, 도교에 구애받지 않는다.

천축, 남만 그리고 세외에서 행하고 있는 풍습도 말한다.

이 세상 모든 현상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진리를 탐구한다.

그들이 토론한 것은 원주에게 보고되고, 원주는 이것을 하나의 학문으로 차곡차곡 쟁여간다.

이런 일도 이백 년 동안이나 이어져 왔다. 청수서원이 생긴 게 이백 년 전인 것이다.

혈마를 단순히 기혈 폭주 현상, 또는 특이 체질이나 특이현상으로 보지 않았다. 천지자연의 거대한 힘을 인간이 살짝 엿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혈마일총과 혈마이총은 인간이 타고난 기본 바탕을 연구한다. 원래 바탕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파악한다.

혈마삼총은 실제로 일어난 현상을 수집한다.

혈마사총은 일총과 이총을 기반으로 해서 삼총에서 파악한 현상을 풀이한다.

혈마군총은 어떻게 해서 혈마무공이 탄생했는지 근본을 파헤쳐가고 있다.

“여기서 지금까지 파악한 건 뭐죠?”

“지금까지 천원주님이 오신 적은 없습니다. 단주님만……”

“천살단주가 되기 전에는 말해줄 수 없다고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가 혈마사총인 걸 제가 알았잖아요. 제가 천살단주가 되지 않으면…… 설마?”

총주가 웃었다.

이미 선택의 여지가 없다. 혈마군총을 알았다는 것은 목숨을 내놨다는 뜻이다.

천살단주가 되거나, 제거되어야 한다. 이백 년 동안, 이 규칙이 절대적으로 지켜져 왔다.

“지금까지 이곳을 방문한 사람이 전혀 없었나요?”

“없었습니다.”

총주는 항상 웃는 얼굴이다. 무슨 말을 물어도 웃는 낯으로 대답한다.

“한 가지만 여쭤볼게요. 원주님은 학문도 높고 신망도 크신데, 왜 이 일을 하세요?”

“이 일을 주도하는 사람은 천살단주입니다. 항상 모든 일에는 중심이 있기 마련이고, 이 일의 중심은 천살단주죠. 혈마군총 총주들을 아무리 뛰어나도 수하일 뿐.”

원주가 웃으며 말했다.

“수하라는 것은 언제든 제거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특히 이 일의 중심이 무림이니, 위험부담은 상당할 수밖에 없고…… 그래도 이 자리를 물러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누군가에게 양보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이걸 이용해서 다른 생각을 할 생각도 없어요. 계속하고 싶은 거죠.”

“그게 이해가 안 되어서요.”

“다른 사람은 모르겠는데, 나는…… 완벽한 혈마가 탄생하기를 기대합니다.”

“네?”

“우리는 그 길이 반드시 열린다고 생각하고 계속 분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정확하게 혈마 탄생은 뭘 말하는 거죠?”

“천기(天氣)와 통하는 것.”

“호호! 그건 신이잖아요. 그게 가능해요?”

“생기가 천기를 엿보게 해주는 틈이라면…… 그래서 생기를 연구하고 있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까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어떤 소리를 들어도 신이 되면 좋지 않겠어요?”

“신이 되어서 뭘 하시게요?”

“천살단주는 영구불멸, 천신 무공을 말합디다. 천원주를 이리 보낸 걸 보면 그 생각도 바뀐 듯합니다만.”

“원주님은요?”

“글쎄요? 궁금함? 정녕 천기가 있다면, 그게 열린다면 무엇이 바뀔까 하는 궁금증? 하하하!”

원주가 웃었다.

혈마군총을 모두 보고 나자 생각이 깊어졌다.

깜짝 놀랐고, 분노했고, 침착해졌다가, 이제는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일총과 이총만 보면 마공관과 낭견대를 좀 더 잔인하게 확장한 듯이 보였다. 하지만 삼총과 사총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일이총의 기반이 없으면 그들의 노력은 한낱 잡설 수집이나 증명할 수 없는 추상 토론에 그치고 만다.

이들은 생기를 통해서 천기를 엿보려고 한다.

생기가 대자연으로 통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천기를 엿보지 못햇다. 그러니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이백 년 세월을 헛보냈다고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일총과 이총의 누적된 자료는 당장 활용할 수 있다.

천살단보다는 혈천방에서 훨씬 고마워해야 할 자료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총에서 수련시킨 무공 중에는 정종 무공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정정 무공이라고 신체를 급격하게 바꾸지 말란 법은 없다.

이총에서 무공을 딱 일 년만 수련시키는 것도 수련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공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는 바로 죽인다.

삼총과 사총의 자료는 혈마가 아니라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아니, 혈마도 소용이 없다. 소용이 있을까? 모르겠다. 생기를 알아야 무슨 말을 하지.

천원주는 천살단주의 행동도 비로소 이해되었다.

단주에게는 혈마를 죽이는 것보다도 연구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혈마를 통해서 천기를 열어야 한다. 생기가 지닌 비밀의 열쇠를 얻어내야 한다.

그러자면 혈마를 사로잡아야 한다.

혈마를 사람들 사이로 풀어놓은 것도, 혈마가 날뛰는 모습을 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더라. 어떤 상태에서 혈기가 튀어나오더라…… 혈마의 모든 것을 관찰하는 중이었다.

천살단주가 직접 혈마를 쫓지 않았으니 혈마군총에서 누군가가 쫓으면서 살폈을 것으로 보인다.

천살단…… 천살단은 혈마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결코, 한낱 마인으로 생각한 게 아니다. 천기로 통하는 열쇠였던 것이다. 혈마, 호발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혈천방이나 괴노가 사마를 만드는 일이 가엾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혈마는 이미 악마다. 연구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천살단주가 마음을 바꾼 이후, 자신에게 혈마군총을 보여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살단주에게는 혈마일총과 혈마이총에서 얻은 무공이 있다. 이총주가 말했던 것처럼 혈마를 상대할 수 있는 무공이 몇 개 정도는 있다.

단주는 그 무공을 사용해서 혈마를 상대하려는 것이다.

자신은 알지 못하는 것이지만 천살단주는 알고 있다.

혈마일총, 혈마이총 없애버릴까? 혈마군총을 모두 돌아본 지금은 즉답을 할 수가 없다.

생각이 깊어졌다.

- 우리가 하는 일은 딱 둘 중 하나예요. 천기를 열 수 있느냐, 열 수 없느냐? 지금까지는 열 수 없습니다.

천원주는 청수서원 원주의 말을 떠올렸다.

‘인간이 천신에 이르는 길. 풋! 가당치도 않아.’

천원주는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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