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386화 (386/500)

第八十八章 사면초가(四面楚歌) (1)

천살단주가 일단 가서 보고 오라던 네 군데가 혈마 무덤이라는 혈마군총이다. 장소는 모두 네 곳에 흩어져 있었고, 서로 흩어져 있는 별개의 조직이다.

깜짝 놀랐다. 분노했다. 그리고 침착해졌다. 마지막으로는 생각이 깊어졌다.

혈마의 무덤, 혈마군총(血魔群塚) 네 군데를 본 느낌이다.

은시(恩施)를 찾을 때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지척에 은시대협곡이라는 천하명승지가 있어서, 시간이 나면 하루나 이틀쯤 더 머물렀다가 올 생각이었다.

다만, 지도에 표시된 곳이 도재장(屠宰場)이라서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도살장…… 도살장에 무슨 볼일이……’

“길이 좀 험합니다. 많이 덜컹거릴 거예요.”

마차를 모는 자가 소리쳤다.

은시는 처녀림이 울창하다. 이런 곳에 마차가 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기적이다.

정말 그때만 해도 마음이 편안했다.

“어서 오십시오. 단주님께 연락받았습니다.”

“네.”

천원주는 혈마일총 총주라는 사람을 만난 순간, 살짝 미간부터 찡그렸다.

총주는 정도 문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눈빛에 잔인함이 베였다. 깨끗한 옷을 입었지만, 피 냄새도 풍기는 것 같다. 혈마일총이라는 곳이 도살장이라서 선입견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는 뭐 하는 데죠? 아무 정보도 듣지 못하고 무조건 가보라고 해서 왔는데.”

“솔직히 천원주님 같으신 분이 오실 곳은 아니죠. 킥킥!”

총주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묘하게 기분이 나쁜 자다. 입은 웃는데, 얼굴은 웃지 않는다. 눈빛이 탐욕으로 번들거리는데, 그것이 색탐(色貪)처럼 보여서 더욱 기분 나빴다.

하지만 총주의 눈빛이 색탐이 아니라는 것은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서 알았다.

도살장 안쪽에…… 깊은 곳에…… 작은 마을이 있다.

사람이 지키고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철저히 통제한다. 보기만 해도 섬뜩한 대부(大斧)를 들고 붕붕 휘두르면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댄다.

꼭 미친놈들 같기도 하고…… 위협이 느껴져서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다.

이곳이 도재장이라서 저런 모습이 하등 이상하지 않다. 도축한 고기를 지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도축장보다 훨씬 거칠어 보인다.

“자! 안으로……”:

총주가 마을 안으로 안내했다.

천원주는 마을로 들어선 후, 몇 걸음 걷지 않아서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뭐죠? 이 사람들은?”

사람들이 땅속 감옥에 갇혀 있었다.

땅에 구덩이를 파고, 쇠로 만든 창살을 덮어놓았다. 구덩이 안에서는 심장에 대나무 대롱을 꽂은 자 두 명이 피를 질질 흘리면서 죽어가는 중이었다.

“킥킥! 곧 죽을 놈입니다. 얼마나 버텼지?”

총주가 감옥을 지키고 선 자에게 물었다.

“하루하고 반 시진요.”

“잘 지켜. 킥킥!”

총주의 눈빛이 예의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이런!”

혈마일총을 돌아보고 난 느낌이다.

“놀라셨습니까?”

총주가 잔혹한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

천원주는 총주를 쳐다봤다. 당신이 인간이냐는 말이 눈빛에 담겨 나왔다.

총주의 눈에서 피어나는 탐욕이 색탐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총주의 눈빛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탐욕, 육탐(肉貪)이다. 인간의 육체를 탐한다.

사람의 몸뚱이를 원한다.

혈마일총은 사람을 잡아놓고 희롱하는 곳이다. 그러니 근골 좋은 사람만 보면 군침을 흘린다.

이놈은 이런 식으로 죽여보면 재미있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천원주의 눈총을 알았는지, 총주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눈으로 보실 것 없습니다. 혹시 압니까? 천원주님도 이곳에 오게 될지. 큭큭!”

“뭐라고?”

“없는 말을 지어낸 것도 아닌데 화부터 내시기는…… 후후! 단주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둘러보고 없앨 것인지 남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당신은 이게 남겨질 것으로 생각하나 보죠?”

“사람 일이란 게 모르는 거 아닙니까? 하하하! 때로는 손에 피를 묻혀야 하지만, 내 손에 묻히기는 싫을 때도 있는 법이죠. 모두 같은 마음 아닙니까? 하하하!”

총주가 웃었다.

첫 번째 혈마군총, 혈마일총에서는 인간을 탐구했다.

혈마일총에서는 혈천방에서도 벌어지지 않을 사악한 짓이 마음껏 자행되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사 오기도 하고, 잡아 오기도 한다.

주로 뒷돈을 주고 사형이 선고된 자들을 빼돌린다. 혹은 혈천방 문도를 잡아 오기도 한다.

천살단 배신자도 이곳으로 끌려온다. 총주가 말한 ‘천원주도 이곳에 오게 될지’라는 말이 지닌 의미다.

이곳에 온 자들은 모두 죽을 운명이다.

그러니 죽인다. 다만, 죽이는 방법이 조금 다르다.

이들은 인체 실험에 이용된다.

독극물을 투여하고 반응을 지켜본다. 근맥을 잘라내고 다시 잇는다. 다리를 잘라냈다가 약초로 붙이는 실험도 한다. 심장에서 피를 빼내면서 시시각각 신체 반응을 살펴보기도 한다.

말도 안 되는 온갖 실험이 행해진다.

실험은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죽은 순간까지 같은 방법으로 계속 자극을 가한다.

이런 짓을 하면서 인체에 관한 자료 한두 장을 얻는다.

그런 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자료들을 보면 사람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적혀있다.

얼어 죽을 때, 불에 타서 죽을 때, 굶어 죽을 때 등등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최대 한계치를 뽑아내고 있다. 그리고 최대 한계치를 늘리는 연구가 진행된다.

정말 깜짝 놀랐다.

이곳이 천살단이 운영하는 곳이 맞나? 혈천방을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혈마일총에서 실험하는 자들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 도살꾼들이다. 하나같이 정상이 아니다. 눈만 봐도 그렇다. 모두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지 않은가.

이런 곳이 천살단주에게 전해져 왔다고? 이백 년 동안이나?

천원주는 정말 깜짝 놀랐다.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천살단주라면 이런 곳은 당연히 폐기했어야지!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

* * *

혈마이총은 섬이다.

조그만 쪽배를 타고 섬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 무슨 짓을!’

사람 접근이 통제된 섬!

배를 타고 갈 때부터 기분이 쎄했다. 혈마일총을 본 후라서 ‘이번에는 또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에게 권한이 주어지면 혈마일총은 무조건 폐쇄한다. 혈마일총에 관여된 자들도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려 이백 년 동안 저 짓을 해왔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인가.

혈마이총은? 설마 여기서도 저런 짓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겠지? 아니다. 맞을 것이다. 폐쇄된 섬에서 할 짓이 그런 짓밖에 더 있나! 천살단주!

천살단주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혈마이총에 대한 첫인상은 혈마일총처럼 패악적인 곳은 아니라는 거였다.

혈마이총에서는 무공을 수련한다.

천살단 마공관에 소장되어 있던 마공들이 모조리 유출돼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이 두루 망라된 것 같다.

이 정도라면 애교로 봐줄 수 있지 않나.

절대 마공, 혹은 절대 패공을 수련하는 무인들!

괜찮다. 이들을 데리고 천살단에 가면 당장 큰 힘이 될 수 있다. 숨겨진 힘인가?

“뭐…… 요!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떻게 그런 일이!”

천원주는 분노했다.

혈마이총 무인들은 단 한 명도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들은 완벽하게 폐쇄된 밀실에서 딱 일 년만 무공을 수련한다. 그리고는 암살당한다.

여기서는 무공을 오래 수련한 필요가 없다. 무공이 어떻게 사람을 변화시키는지만 관찰한다.

인체를 급격하게 발전시키는 무공인가?

무공을 수련시키는 초점이 신체 변화에 맞춰져 있다.

시력이 단번에 좋아진다거나, 귀가 밝아진다거나, 후각이 예민해진다거나 하는 감각기관을 발달시키는 무공부터 살단주 오택골이 수련한 반야호신공처럼 창칼에 찔려도 빨리 아무는 무공까지……

사람을 때리고 피하는 무공이 아니라 신체를 변화시키는 무공만 집중적으로 수련시킨다.

이들은 소장된 무공뿐만이 아니라 혈마일총에서 수집한 자료들도 활용한다.

그렇다. 혈마일총 자료가 이곳으로 흘러들었다.

“이 사람들이 순순히 무공을 수련해요?”

“약간의 속임수는 필요한 법이죠. 일 년 동안 수련한 후에는 출관시켜 준다는 약속을 합니다.”

“약속을 지켰나요?”

“단주님께 드린 약속은 지켰습니다. 한 명도 출관시키지 않는다는.”

“뭐요!”

“이들뿐만이 아닙니다. 저를 포함해서 이곳을 지키는 무인들도 섬을 나가지 못합니다. 죽어서도…… 못 나가죠. 이곳을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단주님뿐. 천원주님이 최초의 예외가 되겠군요.”

천원주는 혈마이총에서 추구하는 무공을 짐작한다.

혈마를 능가할 만큼 강하면서도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 무공을 창안하고자 한다. 혈마처럼 인체 기능을 높이는 쪽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곳도 이백 년을 이어왔다.

“현재까지 무공을 몇 개나 건졌어요?”

“소득이 전혀 없지는 않았습니다.”

“몇 개죠? 어떤 무공이에요?”

“비밀입니다. 천살단주가 되시면 즉시 알려드립니다. 그중에 몇 개는 혈마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몇 개요? 혈마를 잡는다고요?”

“추측만 그렇게 합니다. 혈마에게 시현해 본 게 아니라서.”

혈마이총 총주는 당당했다.

‘말도 안 돼!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짓이야!’

천원주는 분노했다.

도대체 이 짓을 해서 찾은 무공이 무엇인가? 혈마를 제거할 수 있다고? 그러면 혈마나 나타났을 때 즉시 제거하지 왜 지금까지 살려둔 것인가!

천살단주에 대한 존경심이 싹 가셨다.

그에게 일말의 동정도 느끼지 않는다. 아무리 혈마를 상대하기 위해서라지만,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다. 일 년만 수련시키고 암살이라니, 말이 안 된다.

이백 년 동안 이런 곳을 유지하려면 사건 사고도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개중에는 진실을 아는 자도 나왔을 것이고, 탈출하려고 발버둥도 쳤을 것이다.

그런 것을 완벽하게 제압했다.

세상이 혈마이총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단단히 장악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 무인들이 정말 대단한 것이다.

이곳에 비하면 오히려 천살단이 허수아비처럼 보인다.

살단은 여태까지 뭐한 것인가? 자신은 또 뭘 한 것인가? 약전주는 뭘 한 것이며, 비보전은 무엇을 탐문하고 다닌 것인가? 혈마일총, 혈마이총이 거론이나 됐었나.

천원주는 세 번째 장소를 보고 싶지 않았다.

두 곳만 봐도 소름이 끼친다. 이보다 더 지독한 곳을 보게 될까 봐 두렵다. 지금 본 것만 해도 천살단의 위상이 완전히 무너졌다. 가치관이 흔들이다.

천살단에 평생을 바쳤다는 게 후회스럽다.

혈마일총과 혈마이총의 규모가 작은 것은 아니다. 일총은 마을 두어 개를 점유하고 있다.

이총은 비록 작기는 하지만 섬 하나를 통째로 소유했다.

천살단주는 이들을 어떻게 통제한 것인가.

천원주는 이런 조직을 어떻게 통제하는지 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생기면 한 무더기를 통째로 드러내 버린다. 모두 전멸시켜버리는 것이다. 도살장을, 섬을 완전히 소각시켜 버린다.

그래도 자료와 무공은 남는다.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 시작한다. 혈마일총과 이총을 보면 그런 일이 가능하다.

이것이 여태까지 천살단주들이 해온 일이다.

일총과 이총 총주들은 왕이 된 듯 위세를 떨지만, 사실 그들 목숨도 파리 목숨이다.

저들은 서둘지 않는다. 급하게 몰아붙이는 일도 없다.

얻고자 하는 신체나 무공을 당대에서 이뤄내면 좋지만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태초의 신비가 담긴 무공이다. 신만이 사용하는, 신의 영역에 있는 무공이다.

그런 무공을 어떻게 쉽게 찾아내겠나.

다만 계속 노력하다 보면 생명이 연장되고, 무공이 조금이라도 발전하고, 혈마가 다루는 생기를 조금이라도 다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면 대성공이다.

그렇게 한 발, 한 발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혈마 상태에 이를 수 있다.

혈천방에서도 혈마일총과 이총에서 하는 일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혈천방에서 하는 짓거리를 욕해 왔는데 천살단도 똑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니.

분노한다.

혈마일총과 혈마이총은 당연히 폐쇄한다.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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