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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85화 (385/500)

第八十七章 인식혈권(認識血圈) (5)

호발귀는 미간을 확! 찡그렸다.

어디선가 들어본 음성이다. 귀에 익다. 하지만 얼핏 누군지 생각나지 않는다.

더욱이 혈마님? 혈마를 혈마님이라고 부를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지만 상대방의 물음에 응대할 시간이 없었다. 호발귀는 음성이 들리자마자 즉시 혈기의 움직임에 주시했다.

인간의 음성이다. 살아있는 자의 음성이다. 혈기가 인간의 음성에도 작동하나?

이 부분도 항상 고민됐던 부분이다.

눈으로 보는 게 혈기를 건드린다면, 귀로 들리는 것, 피부로 느끼는 것도 작동할 수 있다.

피부에 닿는 것은 그만큼 가까이 다가온 것이니 당연히 작동할 것이고…… 귀에 들리는 것은 어떤가? 여기에도 반응하나?

만약 반응한다면 다시 갱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음성에 대한 대처방법을 떠올린 후에 다시 나와야 한다.

혈기는 조용했다.

‘휴우!’

호발귀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스럽게도 음성은 혈기를 자극하지 않는다.

“귀검입니다!”

사내가 자신을 밝혔다.

“귀검?”

호발귀도 응대했다.

상대가 귀검이라면 굳이 응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싸우고자 한다면 싸워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귀검과는 생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비무 약속을 해놨는데……

갑작스럽게 달려온 이유가 뭘까? 자신이 여기 있는 줄은 어떻게 알고?

여러 가지 의문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소신 귀검, 혈의검 소휘의 유진을 이어받아서 혈마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귀검이 일어서서 큰절을 했다.

귀검은 자신의 뜻을 밝혔다.

당신이 호발귀라면 충성할 것이고, 혈마라면 죽이겠다는 뜻도 명확하게 말했다.

“지금 뭡니까?”

귀검의 물음이다.

“글쎄……? 반인반혈(伴人伴血)? 아직은 사람인데, 혈마도 있으니까. 지금은 호발귀지만 찰나 뒤에는 혈마가 될 수도 있고. 뭐라고 말해야 하나?”

호발귀도 자신의 사정을 있는 그대로 말했다.

그는 귀검이 하는 말에서 거짓을 읽지 못했다. 귀검이 사실을 말하니, 자신도 사실대로 말한다.

“일단 감시해야겠습니다. 인간으로 있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귀검이 침중하게 말했다.

“기분이 묘한데요? 엊그제까지만 해도 서로 검을 맞댔던 사이 아닙니까. 우리는.”

호발귀는 귀검의 뜻을 받아들였다. 혈마가 되면 죽이겠다는데 사양할 이유가 없다.

또 귀검이 혈의검 소위의 유진을 이어받았다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월도와 무지, 내가 죽여야 한다는 거…… 알죠?”

“혈마님께서 죽이시겠다면 언제든지. 하지만 지금은 혈마님을 죽이는 데 꼭 필요한 칼입니다. 혈마님을 죽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될 때, 내드리겠습니다.”

“부탁이 있는데.”

“말씀하십시오.”

“지금 그 자리에 깃발 하나 꽂아줘요.”

“깃발 말입니까?”

“깃발. 그리고 지금 당장 개 한 마리를 잡아서 나 있는 쪽으로 보내줘요.”

“개요?”

“혈기 범위를 알아야겠어요. 나한테는 즉살할 범위가 있고, 상대를 밀어낼 범위가 있어요. 그 범위를 알아야 조금이라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은데.”

호발귀는 혈권과 사권을 말했다.

“알겠습니다. 일단 여기 깃발을 꽂아 놓겠습니다. 그러면 여기가 사권, 이 너머는 안전지대군요. 하하하! 고맙습니다. 아직은 인간인 혈마를 모시게 해줘서.”

귀검이 말했다.

혈마가 나왔다는 말은 곧 모든 귀무살에게 전해졌다.

귀무살은 즉시 병기를 챙기고 단단히 긴장했다. 지금은 괜찮다고 하지만 혈마 상태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일단은 싸움이 벌어질 것에 대비해야 한다.

그들은 즉시 호발귀를 포위했다.

포위하는 범위는 매우 중요하다. 자칫하면 혈마를 건드린다.

호발귀의 위치와 깃발 간의 거리를 목측했다. 대략 이십오 장이다. 상당히 먼 거리인데, 이 거리가 안전하다. 솔직히 이해할 수 없는 거리다.

이 정도로 먼 거리라면 춤을 춰도 모를 것이다. 환히 트인 개활지만 아니라면.

귀검은 거기에 오 장을 더 보탰다.

반경 삼십 장 거리를 벌리고 포위한다.

홀리와 해자수가 당장 달려왔다.

“호발귀! 나야! 홀리!”

홀리는 귀검에게서 대충 설명을 들었다. 그래서 깃발이 꽂힌 곳에서 더 들어가지 않았다.

“미안.”

호발귀가 한 첫 마디다.

“뭐가? 뭐가 미안해?”

“이렇게 만날 수밖에 없네.”

“무슨 소리야! 정말 고마워. 살아있잖아. 살아있을 줄 알았어. 호호호! 살아있어 줘서 고마워. 살아만 있어 주면 돼. 내가 늘 말했잖아. 다리가 잘려도 좋고 팔이 없어도 좋으니까 살아만 있어 달라고. 내가 늘 말했잖아.”

홀리가 울먹거렸다.

“어떻게 지낸 거야? 먹는 것은 어때? 먹는 것, 다 떨어졌잖아. 지금 고기라도 갖다 줄까? 어디 아픈 데는 없어? 다친 데는? 화약이 폭발했는데 다치지는 않았어? 갱도가 무너져서 죽은 줄 알았단 말이야. 아냐, 아냐. 살아있을 줄 알았어.”

“홀리.”

“응?”

“천천히…… 천천히.”

“아! 미안.”

“지금 아픈 데는 없어. 몸은 괜찮은데, 이놈의 혈기는 감당하지 못하겠고.”

“호호! 새삼스럽게 뭘 그래. 언제는 혈기를 감당한 적 있어? 항상 감당하지 못했잖아.”

흘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은 거리가 멀어서 소리를 빽빽 지르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가 조금 마음이 진정된 후에는 진기를 이용했다.

홀리는 음문촌 사람들이 사용하는 차탕음(嵯璗音)을 사용했다.

음문촌 사람들은 이쪽 산봉에서 저쪽 산봉으로 말을 건넬 수 있다. 바람이 아무리 세차게 몰아쳐도, 폭우가 쏟아져도 정확하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한다.

호발귀는 음공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이령귀화가 홀리의 코앞에 이르러 있었다. 그러니 이령귀화에 소리를 얹으면 곧바로 그녀에게 전해졌다.

진기 실린 음성은 상대방의 귀에 또렷하게 전달되었다.

홀리는 호발귀의 상태를 계속 묻고 또 물었다. 이미 귀검에게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도 또 캐물었다. 귀검이 말리지 않았다면 밤새도록 물었을 것이다.

귀검이 개를 끌고 와서 말했다.

“잠시 비켜서지. 지금은 혈권을 파악해야 하니까. 앞으로 날이 많잖아. 회포는 천천히 풀고.”

혈마가 혈기를 일으킨다.

이번 일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그래서 귀검과 홀리만 남고 모두 뒤로 물러서기로 했다. 삼십 장 밖에서 포위하고 있던 귀무살도 사십 장 밖으로 물렸다.

“보냅니다!”

귀검이 말했다.

귀검은 개의 목에서 줄을 끌러냈다.

개가 호발귀를 향해 걸어갔다.

사전에 소고기를 뿌려놨다. 깃발부터 호발귀가 있는 곳까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소고기를 던졌다.

개가 한 조각씩 먹으면서 앞으로 나갔다.

지금 호발귀는 이령귀화를 일으키기만 했을 뿐, 탐색은 하지 않고 있다. 사권을 넓히지 않았다. 그러니 개가 혈권 안에 들어선 후에야 알게 된다.

진기로 기척을 알아낼 수도 있다.

호발귀는 괜찮다고 했다. 기척을 감지하는 것은 생기가 진기를 훨씬 앞선다.

한 걸음, 한 걸음…… 고깃조각을 먹으면서 천천히 나아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쒜엑! 퍽!

단검이 눈에 보이지 않을 속도로 날아와서 개의 정수리를 뚫었다.

깨앵!

개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홀리, 귀검. 이제 뒤로 물러나 줘요. 아주 멀리. 내가 파악해야 할 거리가 있으니까. 눈에 안 띄게 몸을 바싹 숨기고. 대략 반 시진 정도만 숨어있으면 될 것 같은데.”

두 사람은 즉시 호발귀가 하는 말을 알아들었다.

“알겠습니다!”

귀검이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호발귀 음성은 지극히 정상이다. 방금 혈기를 느끼고 개를 죽였지만, 혈마가 일어나지 않았다. 혈마가 입에 달고 사는 괴소도 흘리지 않았다.

호발귀는 보통 인간의 모습이다.

“마성이 없어. 그죠?”

홀리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래. 마성이 없어. 지극히 정상이야. 이런 사람을 마인이라고 할 사람은 없지.”

귀검이 홀리의 어깨를 잡았다.

“난 여기 있으면 안 될까요? 내게는 살수를 안 쓸 텐데.”

“나중에.”

귀검이 다시 홀리를 잡아당겼다.

홀리가 섭섭해하자, 옆에 있던 해자수가 말했다.

“아이고, 아씨. 나는 지금까지 한 마디도 못 했어. 한마디도. 이제 앞으로 주야장천 서로 얘기하고 그럴 텐데 뭐. 자, 갑시다. 반 시진만 기다리면 되는데 뭘 그렇게 안타까워하시나.”

해자수도 홀리를 잡아끌었다.

그제야 홀리가 자리를 떴다.

호발귀는 갱도 밖으로 나왔다.

귀검이 밖에 있어 준 덕에 큰 도움을 받았다. 상당히 힘들었을 일들이 술술 풀렸다.

호발귀는 개가 죽어있는 곳을 쳐다봤다. 대략 십오 장!

‘혈권이…… 이렇게 넓었어?’

십오 장이면 큰 집이 서너 채는 늘어서 있을 거리다.

혈권이 이렇게 넓었나? 혈권이 이렇게 넓다면 사람 사는 마을에는 들어서지 못한다.

귀검이 깃발을 꽂은 곳, 사권의 끝자락까지도 꽤 넓었다.

혈권에서 대략 십여 장 정도는 더 뻗어 나갔다. 그러면 도합 이십오 장이다.

범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

호발귀는 기가 막혀서 입을 쩍 벌릴 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밀실에서 생각하기에는 혈권이 겨우 사오 장 정도, 사권까지는 십여 장 정도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밀실에 있는 동안 훨씬 더 넓은 곳에서 사냥해온 셈이다.

혈권이 너무 넓다. 이걸 좁히는 방법이 없을까? 이령귀화로 혈권을 넓혔으니까 좁히는 방법도 찾으면 나오지 않을까? 아니, 이건 혈기가 뻗어 나간 거리이니 가능했던 것이고.

어떻게든 혈권을 좁혀야 한다.

무인으로 치자면 혈권은 자연스럽게 기척을 탐지할 수 있는 거리가 된다. 누군가가 미미한 소리만 흘려도 당장 알아들을 수 있는 안심 거리다.

그러니 이런 거리는 넓으면 넓을수록 좋다.

무인에게는 좋은 것인데, 호발귀에게는 지극히 안 좋다. 기척을 탐지할 수 있는 거리를 좁혀야 한다고 말하면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미친놈?

일단 혈권, 즉시 죽일 수밖에 없는 거리를 알았으니 됐다.

사권은 충분하다. 십여 장 정도 거리라면 어떤 생명체도 밀어낼 수 있다.

다만 이령귀화를 한도 끝도 없이 쳐낼 수는 없다.

혈천방에서처럼 백 명, 이백 명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면 막을 방도가 없다는 거다. 어떤 무리가 작심하고 공격해 온다면 결국은 혈마가 될 수밖에 없다.

생기가 없는 곳에서 그런 공격을 받는다면…… 막말로 모두 죽이면 된다. 하지만 마을 근처나, 혈천방처럼 사람이 많은 곳이면, 그 끝은 매우 처참하다.

‘내가 끝장날 일이 왜 이렇게 많냐. 혈마가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강한 것은 좋은데…… 혈마처럼 강하면…… 후후! 이런 걸 원하는 천살단주, 혈천방주는 또 뭐야. 후후!’

호발귀는 쓰게 웃었다.

호발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알았다. 위험한 상황도 파악했다. 혈기와 생기에 대해서 알았으니…… 이제는 해법을 찾아갈 때다.

반 시진 후, 귀검과 홀리, 해자수가 다시 찾아왔다.

세 사람은 많은 얘기를 나눴다

호발귀는 갱도에서 나와 조그만 바위에 등을 기댄 채, 따스한 햇볕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대화를 했다.

귀무살이 사방 삼십 장을 포위하고 있다.

삼십 장 안으로 들어서는 모든 사람, 모든 동물을 통제한다. 그러니 호발귀는 안심하고 여유를 즐겨도 된다. 갱구에서 나온 날이니 오늘만큼은 편히 있어도 된다.

귀검이 말했다.

“주군. 소축령에 거처를 마련했습니다. 당분간 몸을 추스른 후에 움직이시는 것이 좋을 듯해서.”

“소축령이요? 거긴 사방이 한눈에 보이잖아요. 너무 시야가 넓은 곳 아네요?”

홀리가 말했다.

“소축령에서 산을 보면 시야가 탁 트여 있지만, 눈길을 조금만 위로 주면 하늘이고, 조금만 아래로 깔면 땅이지. 숲을 봐도 사람은 잘 보이지 않아. 이곳 갱도는 환히 보이지만 일부러 눈길을 주지 않는다면 상관할 것 없고.”

“그래요? 몰랐네요.”

홀리가 말했다.

“우선 몸도 마음도 추스를 필요가 있으니 당분간 소축령에서 거주하시죠?”

“고맙습니다.”

호발귀가 대답했다.

“주군. 혈마가 수하에게 존대하는 법은 없습니다. 이후에는 하대를 부탁드립니다.”

귀검이 정중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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