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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84화 (384/500)

第八十七章 인식혈권(認識血圈) (4)

“오랜만에 뵙습니다.”

창파가 찾아왔다.

“제 자리를 지켜야지. 부대주나 되는 사람이.”

귀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창파를 쳐다봤다.

귀무살에게 제일급 경계령을 내렸다. 이제 곧 혈마가 뛰쳐나올 것 같아서 하루 십이시진 내내 자리를 뜨지 말고 경계를 유지하라고 지시해 놓은 터이다.

“귀무령님도 참…… 사 개월 반 만에 찾아뵀는데, 타박부터 하십니까?”

창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귀무살들에 대한 보고는 궁충이 일괄적으로 맡아서 하고 있다. 창파나 월도, 무지라고 찾아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지난 사 개월 반 동안 직접 보고한 적이 없었다.

그들도 부대주이니 귀검만 만나서 몇 마디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다. 하다못해 안부라도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들이 맡은 거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창파가 거점을 버리고 달려왔다.

‘급한 일이 생겼군.’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귀검이 손으로 옆자리를 톡톡 쳤다. 옆으로 와서 앉으라는 지시다. 말은 투박하게 했지만, 그도 창파가 반가운 것이다.

창파가 서슴지 않고 옆으로 와서 앉았다.

“그래, 할 말이 뭐야?”

“할 말 있다고 말씀 안 드렸는데요.”

“겁이 없어졌구나.”

“그렇습니까? 하하하!”

창파가 웃었다. 하지만 곧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말했다.

“십칠 거점에 있는 죽도(竹刀)가 겁에 질렸습니다.”

귀검이 무슨 소리냐는 듯 창파를 쳐다봤다.

“오늘 아침에 죽도가 찾아왔더라고요. 새벽 댓바람에 와서 하는 말이, 겁쟁이라고 해도 좋은데 십칠 거점에는 도저히 무서워서 못 있겠다고 합니다.”

“무슨 소리야?”

귀검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 축시(丑時)쯤 되었나? 그쯤에 갑자기 무언가에 습격당하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칼을 들고 일어섰는데, 어둠 속에서 호랑이가 노려보고 있더랍니다.”

“호랑이?”

“딱히 호랑이는 아니고…… 그놈 말을 그대로 전해드리면 갑자기 귀신이 나타나서 자신을 확 덮치더라는.”

“귀신?”

귀검은 말끝을 높였다.

이게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귀무살이 귀신에 눌려? 귀신을 봤다고? 귀신도 베어야 할 놈들이 귀신에게 주눅 들어서 무섭다고 말을 해?

“하! 이것 참 말씀드리기도…… 아마도 어둠이 무서웠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귀무살이 참…… 귀무살이 이런 일을 말을 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해서 꾹 참으려다가……”

창파도 말을 하기 창피한지 몇 번이고 하던 말을 안으로 삼켰다. 하지만 보고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는지, 뒷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죽도 그놈, 지금 맡은 십칠 거점이 재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 무섭기도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무서움이 가시기는커녕 살이 덜덜 떨려오기까지 하더랍니다.”

“진짜 겁에 질렸군.”

“네. 그래서 조처를 취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찾아뵀습니다.”

“황권(黃拳)은?”

귀검이 물었다.

황권은 죽도와 함께 십칠 거점을 담당하고 있는 귀무살이다.

두 사람은 같이 붙어 다닌다. 십칠 거점을 맡은 동안에는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죽도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황권이 모를 수 없다.

“황권은 괜찮습니다. 죽도가 이러는 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보면……”

황권은 전혀 모른다. 죽도만 겁에 질렸다.

“죽도는 내가 알지. 목숨이 아까운 줄 모르는 놈이야. 그런 놈이 네게 와서 보고할 정도라면 무슨 일인가는 있었다는 것인데…… 그런데 그게 무슨 일인지 죽도도 황권도 모른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래서 보고드리자고 생각을……”

“혈마다.”

귀검이 창파의 말을 잘랐다.

“네?”

“혈마가 나타났어.”

귀검은 직감했다. 혈마가 나타나서 경고한 것이다.

“십칠 거점을 물려라. 지금 당장! 귀무살 전원에게 특급 경계령을 내리되, 십칠 거점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해. 그곳에는 내가 직접 간다.”

“직접 말씀입니까?”

“가자!”

“지금이요?”

창파가 놀라서 일어섰다.

귀검은 벌써 일어서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귀검이 사 개월 반 만에 소축령을 떠나는 순간이다.

텅텅텅! 텅텅!

밀실에서부터 이령귀화를 쳐냈다.

이령귀화는 그가 잠들어 있는 동안 역천금령공과 함께 혈권 안을 감시했다. 그리고 호발귀가 눈을 뜨자 당장 사권까지 탐색 범위를 넓혔다.

텅텅텅! 텅텅텅텅!

주변을 살피는 작업은 갱도 밖으로 나설 때까지 계속되었다.

갱도 안에서 밖으로 나오며 푸른 하늘을 봤다.

하늘이 저렇게 아름다울 줄은 미처 몰랐다. 밤하늘도 아름답고, 대낮에 보는 하늘도 눈이 실릴 정도로 아름답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구나!

휙! 휘이이익!

바람이 땅을 쓸면서 지나갔다. 너무도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다.

호발귀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당연하다. 호발귀가 감지하는 생기는 삶이다. 삶을 느낀다. 모두가 잊고 지나치는 숨 한 모금에도 감격을 느낀다.

삶이 절절히 아름답게 다가온다. 죽음이 잔혹한 만큼 생이 아름다운 것이다.

스으윽!

갱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텅텅텅! 텅텅텅텅!

이령귀화가 계속 울린다. 쭈우욱 범위를 넓혀 나갔다.

지난밤, 호발귀가 또 한 가지 난관에 부딪혔다. 밀실에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다.

바깥세상으로 나오면 눈이 작동하게 된다. 눈으로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혈권과 사권의 범위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시야를 식별하지 못하는 어둠 속에서의 혈권과 눈으로 시야를 식별할 때의 혈권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무공은 그렇다. 생기는 어떤가?

텅텅텅!

호발귀는 이령귀화를 울리면서 갱구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순간,

“훅!”

호발귀는 고개를 내밀자마자 바로 갱구 안으로 들어갔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갱구 밖으로 고개를 내밀면서 바깥 풍경을 쳐다봤다. 순간, 혈권이 쭉쭉 늘어났다.

아니, 혈권이 늘어나는 것은 알 수 없다. 혈권이 어디까지 뻗어 나가는지도 모른다. 이령귀화가 일어나는 곳이 혈권 마지막 부분이다. 혈권 마지막 부분부터 더 나아가서 이령귀화가 닿지 않는 곳까지가 사권이다.

바깥을 보면서 이령귀화를 흘렸는데, 자신이 상상할 수 없는 범위까지 쭉쭉 뻗어 나갔다. 그러다가 팍! 증발해버렸다. 이령귀화가 허공에서 사라졌다.

혈권이 이령귀화가 소멸하는 시점까지 뻗어 나간 것이다.

이것은 거의 무한대의 확장이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혈권이다. 사권을 만들 수가 없다. 혈권이 진기가 닿는 범위를 초과한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눈으로 보이는 곳 모두가 혈권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생명체가 혈권에 들어온다.

이렇게 되면 혈권은 두 종류가 된다.

하나는 밀실에서 감지한 것처럼 특정 범위로 한정되는 때도 있다. 이때는 사권도 만들 수 있다.

두 번째는 시야로 잡히는 혈권이다. 눈으로 보는 모든 풍경이 혈권이 된다.

‘눈으로 보는 것은 모조리? 그럼 머리 뒤쪽은? 뒤쪽은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혈권이 한정될 것 같은데.’

호발귀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내밀었다.

지금부터는 사람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다. 전혀 낯선 길을 자신이 개척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어린애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차근차근 배워나간다.

지금만 해도 많이 배웠지 않나? 생기와 혈기에 대해서 이만큼 알게 된 것이 어디인가. 처음 혈마무공을 접할 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지 않았나.

스읏!

호발귀는 구멍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혈권의 범위를 좁히기 위해서 상반신은 내밀지 않고 머리만 살짝 내밀었다.

앞에 산이 보인다. 이령귀화를 쳐냈지만, 끝없이 번져가다가 툭! 사라졌다. 눈에 보이는 모든 곳이 혈권이다. 이곳에 들어오는 모든 생물체가 혈기에 끌려온다.

이번에는 이령귀화를 머리 뒤쪽으로 던졌다.

츠으으읏! 촤아아악!

일정한 범위 밖에서 이령귀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숨에 혈권이 파악되었다. 사권도 짚어졌다. 이령귀화가 일정한 범위 안에서 활발하게 움직인다.

맞다. 눈으로 보지 않으면 혈권과 사권을 정할 수 있다.

호발귀는 다시 갱도 속으로 들어갔다.

바깥세상으로 나가기가 이렇게 힘이 드나.

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혈권이라면…… 만약에 사람이 눈에 띄면 그 즉시 혈마로 변한다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밤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제는 이령귀화가 생기를 탐지해서 경고했지만, 사람은 보지 못했다. 만약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면 그는 즉시 혈기에 의해 생기격타를 당했을 것이다.

하마터면 누군가를 죽일 뻔했다.

어제는 정말 운이 좋았다.

‘눈으로 보면 안 된다고? 이거 정말…… 너무 하잖아. 안 보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

오랜 고민 끝에 호발귀는 옷을 찢어서 눈을 가렸다.

사실, 그는 빛 한 점 들지 않는 깜깜한 밀실 안에서도 그동안 잘 살아왔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햇볕 속에서 걷는 것처럼 편안하게 지냈다. 물도 찾아 먹었고, 쥐의 내장을 꺼내고, 껍질을 벗겼다. 쥐를 구울 때는 모닥불을 밝혔지만, 불 피우는 것조차도 어둠 속에서 자연스럽게 해냈다.

불편한 점이 전혀 없었다.

갱도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갱도를 살펴보기도 했다.

횃불 없이 이곳저곳을 살펴보면서 다녔다. 빠져나갈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왜 그때 횃불을 켜지 않았지? 횃불을 만들 수 있었는데. 보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으니 횃불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조금이라도 지장이 있었다면 당장 밝혔을 것이다.

호발귀는 자신의 감각을 믿기로 했다.

자신의 감각은 장님처럼 발달하여 있다. 세상을 감지할 수가 있다.

이령귀화가 장님의 지팡이 역할을 한다. 장님이 지팡이를 움직여서 주변에 있는 물체를 알아내듯, 이령귀화가 주변을 더듬는다. 생물체를 찾아 나선다.

그러니 나무나 돌도 자연스럽게 찾아낸다. 굴곡진 형태를 감지해낸다. 길을 알려주고, 벽을 말해준다.

이령귀화를 펼치지 않고 어둠 속을 걸었다면 한 걸음도 옮기지 못했을 것이다. 이령귀화가 사물을 더듬어주니 주변이 명확하게 식별되었고, 자신도 모르게 횃불 없이 다녔던 것이다.

그렇다면, 시야가 혈권을 무한정으로 넓힌다면, 눈을 차단한다.

호발귀는 옷을 찢어서 눈을 단단히 묶은 후 갱도 속을 걸어봤다.

편안하다. 역시 이령귀화가 밝은 횃불처럼 사방을 더듬어준다.

이번에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이 파놓은 갱도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밖으로 나가본다.

뭔가가 껄끄럽다. 불안한 마음이 일어난다.

그동안도 횃불 없이 다녔다. 눈을 가리고 움직이는 것과 똑같다. 하지만 의식하지 않고 움직이는 것과 눈을 가린 후에 움직이는 것은 뭔가가 다르다.

심리적인 압박감이 있다.

‘달라진 것은 전혀 없다. 자신을 갖고. 하! 내가 눈을 감고 세상으로 나갈 줄은.’

호발귀는 갱구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벌써 몇 번째 들락거리는 것인지 모르겠다. 구멍만 뚫으면 당장 나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츠으읏!

이령귀화가 당장 일어섰다.

혈기가 작동하지 않는다. 혈권 안에는 아무도 없다. 이령귀화가 혈권 밖에서 사권을 형성해 나간다. 서서히 청광을 찾아서 세력을 넓힌다.

‘이쯤에서 생기를 발견했는데.’

어제 청광을 후려친 곳…… 생기를 찾아서 경고를 보낸 곳.

역시 푸른 빛이 잡힌다. 사람이 있다. 사람은 왜 이렇게 고집이 세나. 짐승 같으면 위험하다 싶은 곳은 얼씬거리지 않는데, 어제 그런 경고를 받고도 또 와있다.

스으읏! 타앙!

청광을 향해서 이령귀화를 쳐냈다.

순간, 생기가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생기는 즉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부족하다. 한걸음으로는 사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 물러나!

스읏! 타앙!

청광이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

됐다. 이제 생기가 보이지 않는다. 이령귀화가 아무것도 감지해내지 못한다.

‘됐어. 일단 이렇게 하면 사람을 죽이지 않을 수 있어.’

호발귀는 빙긋 웃었다.

혈권에 아무도 없다. 사권에도 없다. 누군가가 들어오면 즉시 이령귀화를 쳐낸다.

됐다!

그때 사권 밖에서 우렁찬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혈마님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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