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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79화 (379/500)

第八十六章 개벽도로(開闢道路) (4)

등여산은 허리의 검을 네 자루나 찼다. 왼쪽에 두 자루, 오른쪽에 두 자루를 찼다

머리에는 방갓을 쓰고, 웃은 경장으로 바꿔 입었다.

옷소매와 바짓단은 언제 어디서든 싸울 수 있도록 끈으로 질끈 묶어놓았다.

언제라서 싸울 수 있는 호전적인 무인의 모습이다.

그녀는 일부러 그렇게 입었다.

세상은 여자 혼자 다니는 것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누군가는 말을 걸어온다. 그 말이 희롱일 때도 있고, 그녀의 미모에 반해서 단순히 찬탄할 때도 있다.

문제는 어느 경우든 그녀가 즉각 반응한다는 점이다.

푸른 빛이 보인다. 푸른 빛을 살짝 누르기만 하면 음심이 가라앉을 것 같다. 아니, 틀림없이 가라앉는다. 아주 깨끗한 마음으로 정화된 새로운 남자가 탄생한다.

미친!

우습게도 정말 그런 생각이 일어난다.

그러니 누가 되었든 함부로 말을 설 수 없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었다. 검기로 충만한 무인, 곧 검을 빼 들 듯한 무인…… 이 정도면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등여산은 겉모습만 바꾼 게 아니다.

눈앞에서 푸른 빛이 일렁이는 것 같으면 즉시 신법을 펼쳐서 자리를 피했다.

이것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길이다.

그녀는 이미 자신에게 혈기가 생겼다는 것을 자각했다.

푸른 빛과 연관된 살인도 네 번이나 경험했다. 정암사 살인 외에 또 다른 살인을 세 번이나 했다.

그녀에게 말을 건네온 사내는 여지없이 죽었다.

혈마가 되지 않는 방법은 무조건 이 푸른 빛을 피하는 것뿐이다.

푸른 빛! 타인의 생기!

생기를 보는 순간 혈기가 일어난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호발귀와 함께 겪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지 비교적 쉽게 알았다.

옛날, 호발귀가 겪었던 일들이다.

그녀의 지금 상태로 보아서 완전히 의식을 잃고 미쳐서 날뛰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은 그래도 푸른 빛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은 선택의 여지가 남아 있다. 푸른 빛을 눌러야 한다는 욕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지만, ‘지금 당장 몸을 빼내야 해!’라는 마음도 강하게 일어난다.

혈마가 육(六), 도망치는 마음이 사(四) 정도 된다.

“타악 투 파 비투 쏘 추우 탄……”

등여산은 구혼음소를 읊었다.

홀리에게서 배운 삼 단계 구혼음소 중 첫 번째 구결을 외웠다.

살인, 자살!

이 단계나 삼 단계는 필요 없다. 오직 자신을 죽일 수 있는 구혼음소만 필요하다.

쿠웅!

몸이 구혼음소에 제대로 작용했다. 심장에 피가 들이붓는 듯 매우 급하게 뛰었다. 갑자기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면서 숨이 막혀왔다.

뇌도 자극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시 시야가 차단되면서 새까만 암흑이 찾아왔다.

‘이렇게 죽는구나.’

“우욱! 케엑!”

등여산은 입으로 피를 뿜어냈다.

기관지가 상한 것 같지는 않고, 폐가 손상을 입은 것 같다.

구혼음소의 영향력은 매우 강력했다. 몸을 엉망진창으로 뒤틀어버렸다.

그녀가 그런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은 황급히 도망쳤다.

‘다행이다. 다행이야. 천만다행이야.’

등여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푸른 빛이 보였고, 빛을 끄자는 욕구가 너무 강렬하게 일어났다. 그래서 구혼음소를 읊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미친 듯이 몸을 뒤틀자 사람들이 도망쳤다.

푸른 빛이 꺼지지 않고 살았다.

이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구혼음소가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또 불행이다. 구혼음소라면 숨을 끊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등여산은 죽기로 작심했지만 죽지도 못했다.

“으음!”

그녀는 신음을 흘리면서 일어섰다.

‘생기가 없는 곳……’

생기 없는 곳이 어디 있을까? 산으로 들어가도 생기는 있다. 바다로 가도, 강으로 가도 생기는 있다. 생기가 끝없이 보인다. 이 세상은 온통 생기 투성이다.

그녀의 상태는 호발귀보다도 더 심하다.

“취저 처 타마 뭘롱 닌비라 가마러……”

그녀는 계속 구혼음소를 읊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태가 천살단이나 혈천방에게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알게 되면 호발귀를 잡으려고 할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천살단주가 즉시 달려올 것이다.

단주는 그녀라고 해도 봐주지 않는다. 그녀에게 혈기가 생긴 것을 알게 되면 바로 달려온다.

등여산은 천살단주와 싸우고 싶지 않았다.

천살단주는 혈마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이상해진다. 자상한 할아버지가 절대로 아니다.

혈마를 생포해서 혈기에 대해 알아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 집념이 매우 강하다.

‘이건 저주야! 누구도 알아서는 안 돼!’

“스루파 나후 사라 럼 로럼 루미리……”

구혼음소를 읊고 또 읊었다.

그녀는 자진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지금, 이 상태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목숨을 끊었으면 좋겠다. 이대로 숨이 떨어졌으면……

하지만 여기서 아주 큰 문제가 생겼다.

구혼음소가 제대로 읊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혼음소가 자신에게도 작동하는 것은 확인했는데, 끝까지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혈마후가 혈마를 행해 읊는 구혼음소에는 사정이 담겨 있지 않다.

엄밀히 말하면 타인이 타인을 죽이는 것이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을 죽인다.

거기에 사정이 담겨 있을 수는 없다.

아주 냉철하게, 아니 반드시 죽인다는 집념을 가지고 구혼음소를 읊는다.

하지만 내가 나를 자해할 때는 아무래도 머뭇거림이 있다. 살짝 칼을 그을 때만 해도 머뭇거림이 있는데, 자진할 때는 오죽하겠나. 더 심한 망설임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그녀는 생기가 예민하게 활동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강하게 작동한다.

생기는 살고자 하는 본능이다. 죽이고자 하는 구혼음소를 온전히 받아들일 리 없다.

그녀가 읊는 구혼음소는 중간에서 맥이 뚝뚝 끊긴다.

등여산은 홀리를 떠올렸다.

이 세상에는 제대로 된 구혼음소를 읊어줄 사람이 있다. 그리고 그녀도 자신의 모습을 보면 기꺼이 구혼음소를 읊어줄 것이다. 마음은 아프겠지만.

‘홀리! 홀리에게 가야 해!’

그녀는 호발귀가 갱도에 묻혔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아직도 홀리가 정신 잃은 호발귀를 데리고 끝없이 도주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한수에서 떨어진 후에 벌어진 일은 전혀 알지 못했다. 애써 무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호발귀를 쫓아가면 천살단주가 따라붙으니까, 혼자 떨어져 나온 것인데. 지금도 자신을 뒤쫓는 자가 있지 않은가. 천살단주의 눈이 따라붙고 있다.

그런 자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는 홀리가 어디 있는지 알 것이다. 그러니 뒤쫓는 자를 잡아서 물어보면 된다.

어쩔 수 없이 무인과 접촉한다.

제발! 제발 그를 죽이지 않기를!

“비투 쏘 추우 탄 치 미탕 호 아 피우……”

등여산은 구혼음소를 계속 읊었다.

뒤쫓는 자를 납치했다. 아마도 천살단주가 보냈을 무인일 것이다. 상대가 누군지 모르겠는데, 검으로 뒷목을 쳐서 혼절시킨 후에 산으로 끌고 왔다.

자꾸 푸른 빛이 보인다.

사내는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다. 말을 할 수 없는 처지다. 그런데도 자꾸 푸른 빛이 보인다.

- 흐흐흐흐! 계집! 예쁘네.

사내가 음심을 토해낸다.

저 빛, 푸른 빛만 살짝 누르면 음심이 누그러질 텐데.

“처러카 미이 개자오라 도미 조 ……”

등여산은 사력을 다해서 구혼음소를 토해냈다.

구혼음소를 거부하던 혈기도 결국은 타격을 받았는지 핏물을 뿜어냈다.

“우욱!”

등여산은 구토와 동시에 피를 한 사발이나 토해냈다.

다소 눈앞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푸른 빛이 보이지 않고, 무인의 얼굴이 보인다.

무인은 혼절에서 깨어난 상태였다. 하지만 등여산의 모습을 보고는 새파랗게 질린 채 덜덜 떨기만 했다.

마혈이 제압되어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눈앞에서는 웬 미친 여자가 피를 토해내고 있으니 기절초풍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호발귀 알지?”

“조, 조금요!”

무인이 덜덜 떨면서 말했다.

“아는 대로 말해.”

등여산이 차갑게 말했다.

사내는 호발귀가 혈마가 되어서 날뛴 것, 낭견대와 살단을 몰살 지경으로 몰아넣은 것, 그러다가 결국은 갱도에 묻힌 것까지 상세히 말했다.

이 자는 역시 천살단주가 붙여놓은 자다.

사내는 귀무령이 소축령에 있으며, 등여산이 찾고자 하는 홀리도 함께 있다고 말해주었다.

“크크크크! 크큿!”

등여산은 입으로 괴소를 쏟아냈다.

사내의 말을 듣는 동안 푸른 빛이 자꾸 일렁거렸다. 이 자는 음심이 너무 강하다. 말을 하면서도 계속 눈알을 데룩데룩 굴린다.

자신의 몸을 쓸어본다.

사내들은 왜 다 이 모양일까? 보기 싫다.

나중을 위해서라도 이런 음심은 좋지 않다. 반드시 고쳐야 한다.

등여산은 손을 뻗어서 푸른 빛을 눌렀다.

* * *

쒜에엑!

한 사람이 신형을 쏘아왔다.

그는 즉시 죽은 무인에게 달려가 생사확인부터 했다.

“으음!”

신음이 새어 나왔다.

무인은 죽었다. 매우 잔인한 손속에 목숨을 잃었다.

목뼈가 분질러진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등여산은 무인의 머리를 완전히 뒤로 돌려버렸다. 머리가 뒤로 돌려져서 등 뒤를 쳐다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장에도 일 권을 쳐냈다.

심장 부위가 시퍼렇게 울혈이 져있다. 갈비뼈를 부러트리면서 심장까지 으깨진 것 같다.

‘이건 확실히 정상이 아니야.’

밀운은 미간을 찡그렸다.

등여산 뒤에는 천살단주의 눈이 따라붙었다. 등여산이 호발귀에게 가면 즉시 보고가 되며, 천살단주가 움직인다.

등여산도 자신의 뒤에 단주의 그림자가 붙은 것을 알기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한다. 그림자를 제거하는 것은 단주에게 검을 드는 행동이다.

등여산은 정말로 단주와 싸우기를 꺼렸다.

다행인가? 호발귀와 살단의 싸움이 있은 후, 천살단주는 그림자를 거둬들였다.

그때부터 등여산은 자유였다. 아무도 그녀를 쫓지 않았다.

그녀는 호발귀에게 돌아가도 무방했다. 사실상 호발귀가 갱도에 묻힌 후이기 때문에 찾아갈 수도 없었지만…… 탄광 근처에 가서 애도 정도는 표해도 무방했다.

그런데도 찾아가지 않았다.

호발귀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그녀는 아직도 천살단주가 그림자를 붙여놨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천살단주가 그림자를 거두자, 당장 밀운이 곤란해졌다.

천원주의 명을 받들어서 책사를 데려가야 하는데…… 등여산의 행방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천원 사전(四殿) 중 세작전을 활용했다.

세작전 소속 삼만 명 간자가 등여산을 찾기 위해 사방을 뒤졌다.

그중 한 명이 여기서 죽어 있다. 등여산을 찾았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는데……

사내를 죽인 것은 등여산이 확실하다.

오면서 여러 가지 사실을 수소문했는데, 검 네 개를 소지한 사람이 납치해갔다는 소리를 들었다.

검 네 자루를 소지한 무인이라면 등여산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등여산이 무인을 납치할 이유도 없지만, 납치했다고 해도 그런 행적을 노출할 정도로 미숙하게 행동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책사가?

아무래도 책사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도대체 무엇이 등여산을 변하게 했나.

밀운은 등여산이 혈기에 휘감긴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죽은 무인을 보고 등여산이 천살단을 증오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고 생각했다.

아니, 무인이 죽은 모습을 보면 단순히 잔인해진 것이 아니다. 성정이 완전히 바뀌었다. 정도에서 사도로 돌아선 것이 틀림없다. 마공을 수련한 사람처럼 심성이 변했다.

‘음! 일단 보고는 올려야겠지?’

이 사실을 빨리 천원주에게 보고해야 한다. 그리고 명령을 다시 받아야 한다.

미련은 신영을 띄웠다.

등여산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사실은 진작 따라잡아야 했는데…… 등여산이 사람들을 피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찾기가 매우 힘들다. 하지만 죽은 무인의 시신에 온기가 남아 있는 것을 보면 등여산은 멀리 가지 못했다. 틀림없이 지척에 있다.

‘오늘 안에는 뒤를 잡을 수 있어.’

쒜에엑!

밀운은 급하게 신형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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