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六章 개벽도로(開闢道路) (3)
“형부, 저거 생기 맞아.”
홀리는 도천패에게도 말했다.
순간, 도천패와 당홍의 미간이 와락 일그러졌다. 왜 똑같은 말을 계속하냐는 뜻인 것 같다.
“봤잖아. 우리가 위험했던 거.”
“하하하! 그것 때문에 생기라는 거야?”
“아니, 형부까지 왜 이래? 위험한 검초가 문제가 아니라 그런 검초를 예사롭지 않게 전개한 게 문제라는 거지. 이미 우리는 언니 안중에 없는 거잖아.”
“어멋! 그래서 화난 거야? 처음 펼치는 검초였어. 내가 너무 흥분했나 봐.”
당홍이 말했다.
“하하하! 당매, 대단했어. 그 정도 검초라면 자랑할 만해.”
도천패가 말했다.
홀리도 해자수도 놀란 눈으로 도천패를 쳐다봤다.
도천패도 방금 그 검이 매우 위험했다는 것을 안다. 수련하는 검이 아니라 실전 검이었다.
땅 위에 적이 있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전개한 검이다.
당홍과 도천패는 미안한 마음 같은 것은 일절 없었다.
당홍은 생기에 물들기 시작했으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적어도 도천패는 이성적인 말을 해야 하지 않나. 지금 당홍 편을 들어줄 때가 아닌데.
도천패는 여전히 당홍만 쳐다보며 말했다.
“세상에! 난 지금처럼 아름다운 검, 이렇게 강한 검을 본 적이 없어. 내가 맞받아도 곤죽이 되었을 거야. 하하하! 그만한 검을 얻었는데 당연히 자랑하고 싶지.”
“그렇게 강했어?”
도천패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단연 으뜸!”
“호호호!”
당홍이 만족해서 웃었다.
“이거……”
해자수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술을 달싹거렸다. 하지만 홀리가 눈짓을 하는 바람에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그래도 홀리를 향해서 소리 없이 물었다.
‘왜? 왜 말을 하지 말라고?’
홀리가 눈짓을 했다. 일단 조용히 하라고.
홀리는 비로소 쌍학이 당홍 혼자서 전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당홍 혼자 발전한 것이 아니다. 도천패도 발전하고 있다. 생기를 당홍만 느낀 게 아니다. 도천패도 느꼈다.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언니, 내가 너무 예민했나 봐.”
홀리는 당홍에게 사과했다.
“그래, 계집애야. 네가 너무 예민해서 그래.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언니, 그런 사람 아닌데.”
“비꼬는 것처럼 들려. 너도 말조심해야겠다.”
홀리는 당홍이 무슨 말을 하건 개의치 않았다.
당홍은 이미 생기를 지나쳐서 혈기로 접어들었다. 듣기 좋은 말을 해도 시빗거리로밖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혈기에 물들기 시작한 징조다.
그 대신 홀리는 도천패에게 말했다.
“형부, 그 쌍학. 나도 한번 해 봤으면 하는데.”
“쌍학을?”
“언니가 검초를 너무 멋있게 펼쳐서. 나도 허공에서 혈맥참을 쓰면 어떨까 싶네?”
“하하하!”
“호호호!”
도천패와 당홍이 기분 좋게 웃었다.
“그게 뭐 어렵다고. 해봐. 가가.”
당홍이 도천패를 보고 등을 내주라는 시늉을 했다.
홀리는 당홍의 허리끈을 받아서 자신의 허리에 맸다. 그리고 당홍처럼 도천패의 등에 업혔다. 당홍처럼 도천패의 어깨에 손을 얹고, 두 발을 등에 바싹 붙였다.
“여기서 어떻게 도약해?”
홀리가 당홍에게 물었다.
그냥 등을 박차고 뛰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등에 업혀보니 마음대로 박찰 수가 없었다. 그러면 도천패가 타격을 입는다. 자칫 등 근육이 손상될 수 있다.
“호호호! 저절로 알게 돼.”
“저절로?”
“에휴! 가가가 신호를 보낼 거야. 그 신호에 맞춰서 뛰기만 하면 돼. 신호가 어떤 것인지는 그냥 알게 되니까 신경 쓰지 마. 그냥 뛰기만 해.”
당홍이 다정하게 말했다.
이럴 때 보면 생기나 혈기가 전혀 작용하고 있지 않다. 예전의 언니일 뿐이다.
“그럼 형부, 부탁해요.”
홀리가 도천패의 등에 바싹 붙었다.
도천패가 어떤 신호를 보내주나, 신호를 보내면 저절로 알게 된다고 했는데…… 순간,
스으읏!
도천패의 등 근육이 마치 발판처럼 뭉쳤다.
홀리는 깜짝 놀랐다.
견갑골을 이용해서 등 근육을 움직일 수가 있다. 하지만 도천패는 견갑골을 이용하지 않았다. 등 근육이 저절로 움직여서 단단한 발판을 만들어 주었다.
“뛰고 싶을 때 뛰어.”
도천패가 말했다.
타악!
흘리는 그야말로 마음껏 등을 박차고 허공으로 치솟았다.
도천패 등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 힘껏 박차고 튀어 올라도 된다.
홀리가 뛰어올랐을 때, 그녀의 몸을 묶었던 줄이 거세게 퉁겨졌다.
도천패가 순간적으로 홀리의 몸을 다시 한번 퉁겨 올렸다. 홀리의 뜻에 따라서 위로 올라갈 수도 있고, 아래로 쏘아 내려갈 수도 있는 교묘한 조정술이다.
홀리는 위로 솟구쳤다.
쒜에엑!
홀리는 허에 둥실 떠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착각일까? 일시 허공에 멈춰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땅에 서 있는 사람들이 뚜렷하게 보였다.
검에 진기를 모으고 혈맥참을 일으켰다.
파르르릉!
검 끝이 파르르 떨렸다.
‘딱 좋은 위치! 누구든 공격할 수 있어. 땅에서 공격하는 것보다 두세 배는 더 강할 거야.’
혈맥참을 쓰기에 최고 이상적인 장소에 섰다.
그때, 줄이 다시 움직였다. 스르르 밀려온 경기가 그녀의 몸을 굳건하게 받쳐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도 바로 반응했다.
땅이 두 다리를 잡아주었다. 그녀는 허공에 떠 있는데, 땅의 기운이 밀려와서 두 다리를 꽉 잡았다.
‘생기!’
호발귀가 그토록 생기를 쓰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끌어내고 말았다. 아니다! 그녀가 끌어낸 것이 아니다. 저절로 일어난 것이다.
‘시간이 없어!’
홀리는 급박함을 느꼈다.
빨리 생기를 풀어야 한다. 생기는 일단 쓰기 시작하면 계속 사용하게 된다.
본인이 끌어내지 않아도 생기가 스스로 작용을 한다. 목숨을 끊지 않고는 빠져나가지 못한다.
호발귀가 그토록 염려했는데, 자신이 혈기에 휘감기는 것을 감수하면서 혈기를 제거해주었는데.
“타앗!”
홀리는 급하게 검을 쳐냈다.
쫘아아악!
혈맥참이 터졌다. 순간적으로 일곱 가닥의 검기가 지상으로 쏘아졌다. 아니! 검이 사라졌다. 분명히 일곱 가닥이 쏘아졌는데…… 중간에서 감쪽같이 소멸해 버렸다.
홀리가 검을 거뒀다?
딱 반 호흡 후, 정말 짧은 순간이 지난 후…… 검이 지상 가까운 곳에서 불쑥 나타났다.
파아아앗!
혈맥참이 터졌다. 강맹하고 빠른 혈맥참이 아니라 무척 아름다운 혈맥참이다.
홀리는 혈맥참을 땅 위에 터뜨리지 않았다. 혈맥참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본 순간, 즉시 거뒀다. 이 검초가 땅에 터지면 해자수와 당홍이 휩쓸린다.
물론 두 사람은 즉시 피하겠지만, 조금의 위협도 가하고 싶지 않았다.
타악!
줄이 다시 당겨졌다.
그녀는 검을 거두고 다시 도천패의 등 위로 올라탔다.
“와우! 이게 혈맥참이군! 정말 멋있었어. 당매의 검보다 더 신비로운데? 하하하!”
도천패가 웃으면서 말했다. 감탄했다는 표정도 잊지 않았다.
“거봐! 동생도 나랑 똑같이 할 수 있잖아. 이거 된다니까. 동생도 계단을 본 거야? 체공 시간이 만만치 않아. 호호호!”
당홍도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홀리가 말했다.
“형부. 형부도 생기가 발현하고 있었네.”
“무슨 소리야?”
도천패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형부 등을 박차고 솟구칠 때, 나도 모르게 생기가 튀어나왔어요. 생기가 일어나는 감각을 꽉 억눌러 두었는데…… 그런 감각을 통하지 않고 생기가 나온 거예요.”
“하하하! 홀리, 억지가 너무 심한데? 이제는 나까지 생기를 쓴다고 말하는 거야? 난 계단 같은 것도 보이지 않는데? 하하하! 내가 뭘 했다고 생기를……”
“발판!”
“……”
도천패가 홀리를 쳐다봤다.
“형부는 아주 든든한 발판이야. 아주 굳건한. 형부가 그 상태에서 대력도강을 펼치면 광풍폭우가 일어나. 가까이 다가설 사람이 아무도 없을걸? 생기 발현이 제대로 되고 있는 거야. 솔직히 말해봐요. 언니가 등에서 도약할 때, 뭔가 느끼죠?”
“내가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을 것 같은데?”
“말해봐요.”
“아무것도 느낀 게 없다면 믿을까?”
“안 믿죠. 제가 이번에 생기를 쓴 게…… 순서가 바뀌었어요. 감각을 느껴야 생기가 나오는데, 이번에는 생기가 나오고 감각을 유지했어. 형부가 생기를 끌어낸 거예요.”
내가 홀리의 생기를 끌어냈다. 후후후후! 이거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기 고수가 되어 있었군. 그런 말을 하고 싶어서 쌍학을 써보겠다고 한 건가?”
도천패의 음성이 차가워졌다.
홀리가 당홍을 보며 말했다.
“내가 쓴 혈맥참은 진기를 사용한 게 아니라 생기가 끌어낸 거야. 언니가 펼친 것하고 같아. 그거 분명히 생기야. 언니는 그 생기가 형부하고 이어져 있어. 언니와 형부, 쌍학을 수련하면 안 돼.”
“너 참 웃긴다. 네가 뭔데 되고 안 되고 명령을 해? 아니라고 했으면 믿어야지.”
당홍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홀리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두 사람…… 언니, 형부. 정말 잃고 싶지 않아서 하는 말인데. 쌍학을 계속 쓰면 결국은 우리와 생사 혈전을 벌이게 될 거야. 넷이 전부 생기를 쓰면 모두 혈마로 변하겠지. 정 하고 싶으면 해. 어떻게 말려. 사용하고 싶다는데.”
“협박이야?”
“협박, 맞아. 협박이야. 언니도 봤잖아. 이 생기라는 것, 거두고 싶어도 어느 순간부터는 거둘 수 없어. 의원이니까 나보다 더 잘 알 것 아냐. 호발귀도 거두고 싶어 했어. 혈기를 쓰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하지만 결국은 쓰게 되잖아.”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 당분간 보지 않는 게 좋겠다.”
당홍이 차게 말했다.
“같은 생각이야. 남은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매일 이것 때문에 다툴 거야. 언니는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거니까. 차라리 언니, 형부가 혈마가 되면 그때 죽일래.”
홀리가 냉정하게 말하고 돌아섰다.
“야! 이게 어디서! 좋게 봐주니까 눈에 뵈는 게 없어! 어디서 살린다 죽인다 지랄이야!”
당홍이 빽 소리 질렀다.
홀리는 이미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녀가 당홍의 말을 듣고 우뚝 멈췄다. 그리고 뒤돌아선 채 차게 말했다.
“언니, 내게 구혼음소가 있다는 거 잊지 마. 언니는 여자라서 모르겠는데, 형부는 죽일 수 있어, 호발귀는 구혼음소에 적응케 하는 실수를 해서 죽이지 못했지만, 형부에게는 그런 실수 하지 않아. 단번에 죽일 거야.”
“이건 좀 심한데. 홀리, 선 넘었어.”
도천패가 기분 나쁜 듯 말했다.
“그때 알겠지. 혈마라면 죽을 거고, 혈마가 아니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죽지 않으면 목숨으로 사과하죠. 하지만 장담해요. 형부는 죽을 거예요.”
홀리가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걸어갔다.
“쟤 정말 보자 보자 하니까. 해자수, 가서 네 아씨한테 전해. 우리 눈에 띄면 죽는다고. 절대 눈앞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어디 감히 음문촌 계집이.”
“휴우! 고깝게 듣지 말고. 나도 아씨 말이 맞는 것 같아. 두 사람이 쓰는 거 생기가 분명한데 뭘. 누가 봐도 생기인데 두 사람만 아니라고 하니 답답한 거지.”
“해자수. 가! 싱거운 소리 하지 말고.”
해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가긴 가는데…… 내가 보기엔…… 두 사람의 움직임으로 봐서는 우리 아마 한 달도 안 돼서 싸울 거 같아. 생기 진척이 굉장히 빨라. 에이, 나도 모르겠다.”
해자수가 손을 들어서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홀리 뒤를 따라서 휘적휘적 걸어갔다.
“웃기네. 쟤네.”
당홍이 코웃음을 쳤다.
“생기라고 해도 그렇지. 자기들만 쓰라는 법은 없잖아? 안 그래? 자기들도 쓰면서. 제 입으로 실토했잖아. 생기로 혈맥참을 일으켰다고. 그럼 방금 썼네. 근데 왜 우리만 쓰지 말라는 거야!”
당홍이 도천패를 보면서 말했다.
“시기심이야. 시기심. 질투지.”
“그렇지?”
“나는 생기를 쓴 적이 없어. 발판 어떻고 하는데…… 후후! 당매는 계단이 나타나는 거 외에 다른 거 있었나?”
“아니, 그거밖에 없었어.”
“다른 현상이 나타나면 말해줘. 그나저나 이거 이런 식이면 곤란한데. 왜 정당한 무공을 생기라고 우길까? 아! 음문촌 여자는 어쩔 수 없나?”
“해자수도 그래. 음문촌에 기웃거리더니 더러운 냄새가 몸에 밴 것 같아.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정말 그런가 봐. 에이, 모르겠다. 한 번 더 할까?”
“좋지! 자! 업혀!”
도천패가 등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