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六章 개벽도로(開闢道路) (2)
왜 갑자기 당홍에게 생기가 발현한 것일까?
사전에 어떤 징조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허공 계단이 나타났다.
갈망! 갈망이다.
당홍의 내심에 강해지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마음이 쌍학을 수련하면서 점점 더 강해졌고, 그녀의 갈망은 한 걸음 더, 한 걸음 더…… 더 높은 곳을 향했다. 그리고 드디어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드러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단은 그녀의 갈망이 그려낸 무공이다.
그녀에게 생기를 발현시킬 씨앗이 심어지지 않았다면 그녀의 갈망은 갈망으로 끝났을 수도 있다. 어쩌면 한두 번쯤 계단이 보였다가 안 보였을 수도 있다.
전혀 생기를 모르는 인간도 평생 한두 번쯤은 기적 같은 힘을 드러내거나, 놀라운 영감을 떠올릴 때가 있다. 생기가 불쑥 고개를 치밀 때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으키고 싶어도 일으킬 방도를 모른다.
당홍은 생기격타를 당했다.
호발귀로부터 생기를 표출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생기는 갈망이라는 틈을 파고들었고, 드디어 그녀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것을 계속 사용할 것인지 아닌지 구분이 서지 않는다
분명히 그녀가 찾아낸 생기는 정상적이다. 무공이 펼쳐진 것처럼 보인다.
홀리처럼 두 발이 땅에 붙는 느낌도 아니다.
해자수처럼 돌풍에 휩싸이는 것도 아니다. 등여산처럼 기분이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것도 아니다.
당홍 앞에 모습을 드러낸 생기는 무공의 일환이다.
평상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오직 쌍학이라는 무공을 펼칠 때만 보인다. 그것도 허공으로 뛰었을 때, 그녀가 도약할 때, 무공을 전개할 때만 보인다.
분명히 무공처럼 보인다.
생기인가, 무공인가?
이 구분도 서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생기라고 해도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느낌마저 든다.
사용해도 괜찮다는 느낌이 강하게 일어난다.
당홍은 당연히 사용하겠다는 태도다. 그녀는 이 생기가 혈기로 발전한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혈기를 일으킬 만한 요소가 티끌만큼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천패도 생기격타를 당했고, 같이 쌍학을 수련했는데 왜 그에게는 발현되지 않았나?
도천패는 당홍만큼 갈망이 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쌍학도 무공 수련의 일환이다. 당홍과 손발을 맞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쌍학으로 획기적인 무공 발전을 이룬다거나, 천하제일의 절공을 만들어내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이것이 말뚝 역할을 하는 자와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나비의 차이점이다.
도천패와 당홍은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홀리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홀리가 잘못 판단했다고 해도, 일단 ‘혈기’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께름칙해진다.
“일단은 몇 번 더 써볼게. 이게 만약 생기라면 또 다른 일이 나타나겠지. 더 놀라운 현상이. 생기가 겨우 이 정도에서 그친다고는 생각되지 않아.”
“당매.”
“내 말 먼저 들어.”
“말해.”
도천패는 당홍을 말릴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육 단 도약도 할 수 있었을 거 같은데, 나는 오 단도 못 했어. 간신히 사단을 밟았을 뿐이야.”
“사단만 해도 대단한 거야.”
“대단하기는 해도 이 정도는 노력하면 할 수 있잖아.”
“할 수 있지.”
“그러니까 말이야. 난 아무래도 내가 노력해서 얻은 성취라고 생각해. 조금만 더 해보고, 여기서 다른 게 나타나면 그때 다시 얘기해보는 게 어때?”
“굳이 육 단, 칠 단 도약을 하지 않아도 우리 쌍학은 완전해. 지금 상태도 좋아.”
“더 발전할 수 있는 거잖아.”
“당매, 욕심 안 부려도 돼.”
“욕심을 부릴 수 있으면 부려야지, 왜 안 부려? 기왕 무인이 됐으면 천하제일 소리는 들어봐야지.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무공을 갖는다는 거, 꿈 아니야? 누구나 다 바라는 거잖아. 왜 나는 하면 안 되는 건데?”
“……”
도천패는 해줄 말이 없었다. 당홍은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인데, 무슨 말을 하나.
여기서 억지로 말리면 싸움만 일어난다. 당홍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당홍이 도천패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는 무인이기 이전에 독인이야. 내 주무공은 독섬칠공이라고. 만약에 생기가 발현했다면 무공보다는 독공에서 시작했어야 맞아. 하루 중 대부분을 독과 함께 살고 있잖아.”
“휴우!”
도천패는 한숨만 내쉬었다.
홀리나 해자수는 엄밀히 말하면 한 걸음 멀리 떨어져 있다. 타인이다.
그래서 그들은 객관적으로 말을 할 수가 있다. 냉정하게 이건 이것이라고 말한다.
도천패는 이미 당홍과 한 몸이다. 일심동체다
그녀의 소망, 바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소 억지를 부려도 만류할 수가 없다.
“좋아. 해봐.”
“정말?”
“그래. 어차피 생기가 곧바로 혈기로 바뀌지는 않잖아. 호발귀도 혈기가 드러나기까지는 시간이 걸렸으니까. 뭔가 또 다른 증상이 나오겠지.”
“고마워.”
“하지만 다른 증상이 나오면……”
“알았어. 그때는 바로 중단할게.”
“계단이 보이는 거 외에 다른 어떤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말해줘야 해. 우리 같이 헤쳐나가야 하잖아.”
“당연하지.”
당홍이 활짝 웃었다.
홀리와 해자수에게는 할 일이 한 가지 더 생겼다.
도천패와 당홍이 쌍학 수련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당홍이 계속해서 계단을 밟기로 한 이상, 그녀의 변화를 살펴봐야 한다. 티끌만큼이라도 혈기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면 즉시 만류해야 한다.
“난 이거 안 했으면 좋겠는데. 생기가 맞는데, 왜 자꾸 아니라고 그럴까. 이런 건 본인이 제일 잘 알지 않나? 정상인지 아닌지 누구보다 본인이 알 거 아냐.”
해자수가 말했다.
“그 본인이 생각하기에 정상이라는 거예요.”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정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머리 큰 사람이 알아서 한다는데 누가 말리나.”
해자수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어다.
“언니. 한 가지만 말하자.”
“계집애. 너 일부러 사납게 말할 필요 없어. 뭔데, 말해봐. 이상한 거 나타나면 말하라고?”
“아니. 호발귀는 혈마가 되면 자신을 죽여달라고 했어. 언니도 같은 마음이야?”
“당연하지.”
“그럼 언니, 우리가 언니를 죽이게 하지 마.”
“어멋! 너 참 기분 나쁘게 말한다? 너는 내 목숨이 네 손에 있는 것처럼 보이니?”
“언니!”
“해자수도 말조심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이 먹을 대로 먹었고, 혼인까지 한 사람에게 ‘머리 큰 사람’이라니? 해자수는 말 너무 막 하는데, 고치는 게 좋아.”
‘혈마!’
홀리와 해자수는 당홍의 말을 듣는 순간, 퍼뜩 혈마를 떠올렸다.
당홍은 사뭇 도전적으로 말한다. 그녀는 해자수에게 ‘해자수’라고 말한 적이 없다. ‘아저씨’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반말도 하지 않았다. 사납게 쏘아붙인 적도 없다.
지금 당홍은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쩌면 호발귀보다도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홀리와 해자수는 당홍에게 나타난 계단이 생기 발현 현상이라고 확신했다.
“후유!”
홀리와 해자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토해냈다.
당홍이 하늘을 난다.
탁! 타타탁!
이제 오 단은 가볍게 밟는다.
예전에는 삼단을 밟을 때도 굉장히 힘들어 보였다. 날아가는 속도와 착지점을 파악해야 한다.
어디에서 탄력을 얻을 것이지 궁리해야 한다.
모든 움직임을 정확하게 계산한 후에 생각에 딱 맞춰서 움직임을 이끌어낸다.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자연스럽다.
당홍은 생각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비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닌다. 굳이 어떤 계산을 하지 않아도 몸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나비가 허공을 날아가는데 힘들어 보이는 거 봤나? 아주 편안하고 자연스럽지 않은가.
당홍의 모습이 그랬다.
오 단을 밟고 다시 도약한다.
아름답다. 편하다. 부드럽다. 그녀의 모습은 나비처럼 매우 자연스러웠다. 정말 어깨에 날개가 달려있어서 허공을 훨훨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
물론 겉모습만 그렇다.
그녀는 물 위에 떠 있는 오리처럼 계속 움직이고 있다.
오리는 두꺼운 지방질 때문에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갈퀴가 달린 두 발을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다. 그래야 물 위에 떠 있을 수 있다.
물 위는 조용한데, 물밑은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인다.
당홍도 그렇다. 매우 편안해 날아다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또 다른 부분에서는 부지런히 계산을 하고 있다.
몸이 허공에 체류할 수 있는 시간, 땅이 끌어당기는 중력, 반탄력을 얻을 수 있는 장소, 재도약에 필요한 힘……
모든 사항이 종합적으로 버무려져서 즉각 계산되었다.
머릿속으로 계산하는 게 아니다. 몸이 스스로 터득해가고 있다.
징검다리를 건널 때 이쪽 디딤돌에서 다음 디딤돌로 건너뛰기 위해서는 계산이 필요하다.
디딤돌 사이의 거리, 도약에 필요한 힘, 다리를 벌리는 각도.
디딤돌을 밟은 후에도 할 일이 있다. 몸을 고정시키기 위해서 적절한 힘으로 멈춰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디딤돌을 밟았어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물에 떨어진다.
무작정 힘껏 뛰는 것이 아니다. 디딤돌을 밟은 후에는 멈춰야 한다. 그러자면 적정한 힘이 필요하다.
너무 강해서도 안 되고, 모자라서도 안 된다.
딱 알맞은 힘!
이런 계산을 한 후에야 다음 디딤돌로 발을 내민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계산을 하는 사람은 없다. 징검다리를 보고 그냥 건너뛴다. 분명히 계산했지만, 의식하지 못한다. 몸이 알아서 뛰어주었다.
그런 일이 당홍에게도 일어났다.
마지막 육 단째, 그녀는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리고 비룡번신(飛龍翻身), 몸을 뒤집었다.
쫘아아아악!
그녀가 들고 있는 검에서 검초가 터져 나왔다.
“아!”
해자수가 탄성을 토해냈다.
당홍은 검초를 빠르게 변화시켰다. 지금까지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검초…… 검이 열세 개로 변해서 쏟아져 내리는 환우검(幻雨劍)이 드러났다.
꽈꽈꽈꽈! 꽈지지직!
당홍은 검을 열세 가닥으로 나눴지만, 밑에 있는 사람은 수백 개로 늘어나는 환상을 봤다.
검이 무려 백여 개 이상으로 갈라져서 쏟아져 내린다.
어디로 피할 곳이 없다. 땅 위에서 저 검을 맞이했다면 망연히 서 있을 수밖에 없다.
기껏 한다는 것이 머리 위로 직격하는 검 몇 개 막는 것이 고작이다.
“아! 정말 환상적이네.”
해자수가 감탄을 터뜨렸다.
그런데…… 당홍은 검초를 선보이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정말로 검초를 땅에 박아버렸다.
꽈찌지지직!
“위험! 피해!”
검초의 영향권에 들어있던 홀리와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뒤로 훌쩍 물러섰다.
파팟! 꽈앙! 꽈지지직!
사방에서 흙먼지가 뿌옇게 피어났다.
당홍은 검초의 위력을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홀리와 해자수를 위험에 빠트릴 생각은 없었을 것이고……
위력이 어떻게 되는지, 검초가 목표에 닿을 무렵에는 검세가 어떻게 변하는지, 모든 부분을 소상하게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당홍의 검초는 홀리와 해자수가 서 있던 자리까지 훑고 지나갔다.
당홍을 믿고 가만히 서 있었다면 큰 부상을 면치 못했을 경이적인 검초다.
“호호호호! 호호호호호!”
깔깔거리면서 웃는 당홍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때 멋있지?”
당홍은 홀리와 해자수가 매우 위험했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검초를 자랑했다. 검을 들어서 검신을 쳐다보며 본인 스스로 감탄하는 중이다.
“이 정도면 누구든 상대할 수 있을 거야. 그렇지? 하! 아깝다. 이걸 진작 배웠으면 형옥 그놈들……”
홀리와 해자수는 서로를 마주 쳐다봤다.
“이거 생기 맞는데.”
해자수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홀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기라고 말해줘도 믿지 않는다. 그러니 이것이 생기라는 것을 증명해 주어야 한다.
홀리를 당홍을 쳐다보며 빙긋 웃었다.
“언니, 축하해요. 드디어 생기를 쓰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