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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74화 (374/500)

第八十五章 만연개래(蔓延開來) (4)

겨울은 몹시 추웠다. 다른 겨울도 추웠지만 올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사람들 말로는 백 년 이래 최고의 추위라고 했다. 까마귀도 얼어 죽을 날씨라고.

“아이구! 추워!”

아침에 눈을 뜨면 잠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부자리를 돌돌 말고 더욱 안으로 파묻혀 들어갔다. 방 안에 화로를 피워놨지만 극심한 한파를 이겨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그만 일어나야지?”

“조금만 더 있다가.”

“아침은 먹어야지.”

“아침은 무슨. 조금 더 누워있다가 아침 겸 점심 먹자. 아이구, 추워! 뭔 놈의 날씨가 이러냐?”

사람들은 해가 충천에 뜬 다음에야 어슬렁어슬렁 기어 나왔다.

물을 얼어붙어서 먹을 물을 구하려면 얼음을 깨야 했다. 음식을 밖에 내놓으면 꽁꽁 얼어붙어서 돌덩이가 되었다.

거기에 폭설까지 내렸다.

길도 끊기고, 오가는 사람도 없고…… 산골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최악의 겨울이었다.

“으! 춥다! 추워!”

해자수가 옷에 묻은 눈을 탁탁 털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뭐 있어?”

“있기는 뭐가 있어요. 아휴, 추워. 무슨 날씨가…… 이 정도 추위면 얼어 죽는 사람도 꽤 나올 것 같은데.”

해자수가 화로로 쪼르르 달려가서 불기를 쬐며 말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돌아다녀도 토끼 한 마리 안 보이네. 이러다가 우리 굶어 죽는 거 아닌지 모르겠어요. 우리 내기합시다. 굶어 죽는지, 얼어 죽는지.”

해자수는 산에 쳐놓은 덫을 살펴보고 오는 길이었다.

하루에 한 번씩 열 군데에 이르는 덫을 살펴보지만,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게 벌써 열흘째다. 날씨가 너무 추우면 짐승도 돌아다니지 않는다.

“앉아. 내가 국 끓였어.”

“아휴! 또 그거……”

해자수가 먹기 싫은 듯 미간을 확 일그러트렸다.

육포를 물에 불린 후에 팔팔 끓인다. 그러면 뜨거운 고깃국물이 된다.

한데 워낙 깊은 산속이고, 길마저 끊긴 터라 간 맞출 것을 구하지 못했다. 소금도 없고, 향신료도 없다. 채소라도 몇 개 넣으면 좋으련만.

맛이 전혀 없는 완전 맹탕 고깃국이다.

맹물에 고기 건더기 몇 개를 넣은 것인데, 그것이 한 끼 식사다. 그냥 있는 대로 먹어야 한다. 정말 맛없이 물 마시듯이. 매번 모든 식사가 이렇다.

그나마 육포도 몇 개 남지 않았다.

남은 것마저 떨어지면 말 그대로 초근목피로 남은 겨울을 나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자수는 음식에 대해서 투정을 부리지 못했다.

음식 이야기만 나오면 홀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갱도에 갇힌 호발귀는 살았을까 죽었을까? 죽었을 것 같다.

갱도가 폭파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호발귀의 그림자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갱도 안 밀실에는 음식이 넉넉하지가 않다.

혈마까지 다섯 사람이 밀실에 들어갔을 때, 그들은 귀검이 비축해준 식량을 상당량 소진했다. 처음에는 귀검의 말을 쫓아서 사냥도 하지 않아서 식량을 대부분 소진했다.

호발귀 혼자 하루에 한 끼 그것도 간신히 죽지 않을 정도로만 먹는다고 해도 보름을 견디지 못한다. 한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식량이 떨어지고도 남았을 기간이다.

지금도 호발귀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미련은 버리지 못하지만, 더불어서 호발귀가 죽었을 것이라는 확신도 점점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홀리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호발귀를 떠올린다.

호발귀는 지금 이 맹물 고깃국조차도 없어서 못 먹고 있다.

“자!”

홀리가 고깃국을 내놨다.

“아! 그놈 맛있어 보이네. 아씨가 끓여준 국물 맛은 잊을 수가 없다니까. 킥킥!”

해자수가 고깃국을 받아서 매우 소중한 듯 조금씩 국물을 마셨다.

육포를 끓인 국은 맛이 많이 우러나지 않는다. 고깃국이 아니라 뭐라고 할까? 약간 찝찔한 맛이다. 그래서 맛있게 먹는 방법을 찾아냈다. 후루루 들이켜는 것보다 이렇게 음미하면서 마시면 그래도 고기 맛이 조금은 난다.

“생기 썼어?”

홀리가 물었다.

“웬 걸요. 안 썼죠. 걱정하지 말라니까 그러네.”

해자수가 말했다.

어떤 일이 있어서 묻는 게 아니다. 홀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를 썼냐고 묻는다.

생기를 쓰지 마라. 혈마가 된다.

두 사람은 호발귀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생기를 봉해 두려고 노력한다.

“운공은?”

홀리가 물었다.

“운공이야 하죠. 운공조차 안 하면 몸이 찌뿌둥해서. 아씨, 걱정하지 말라니까. 운공을 해도 생기 근처에는 얼씬도 안 한다니까. 내가 생기에 들어가는 맛을 알잖수. 전혀 그런 거 없어요.”

홀리가 해자수를 쳐다봤다.

해자수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그냥 눈 꼭 감았다가 번쩍 뜹니다.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안 한다니까요. 그런 아씨는…… 뭐 푸른빛인지 초록빛인지 뭐 그런 거 안 보여요?”

“난 안 해.”

“이거 참! 아씨! 내가 아씨보다 나이가 많아도 훨씬 많거든. 아씨는 안 하는데 나는 한다? 이건 또 무슨 논리요?”

“걱정되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그 걱정이라는 걸 하지 마시라니까. 괜히 사서 걱정하고 그려셔.”

해자수가 활짝 웃었다.

“난 다 마셨으니까 이만.”

“밑에 가려고?”

“킥킥! 가서 방해 좀 해야지. 좀이 쑤셔서.”

“뭐하러 자주 가. 알콩달콩 신혼 재미 느끼게 내버려 두지.”

“바로 그래서 깨러 가는 거예요. 배 아프게, 누군 이 추위에 개고생하는데 둘이 찰싹 달라붙어서. 그런 거 꼴 보기 싫어서 갈라놓으려고 갑니다. 킥킥!”

해자수가 웃으면서 일어섰다.

도천패와 당홍에게 가려는 것이다. 홀리와 있는 것보다 그들하고 티격태격 싸우는 게 더 재미있는 것 같다.

귀검은 폭파된 갱도 주변에 귀무살을 배치했다. 갱도를 뚫고 나올 수 있는 모든 요소에 자리를 잡았다.

귀검은 소축령 산 정상에 움막을 짓고 기거한다.

바람이 씽씽 부는 곳, 차가운 바람이 그대로 몰아치는 곳에 움막을 짓고 기거하는 것을 보면 귀검이 혈마를 죽이겠다는 말은 진심인 듯하다.

귀무살도 마찬가지다. 이 엄동설한에 그들은 맡은 지역을 떠나지 않고 있다.

눈이 쌓이면 눈을 치우고, 한파가 몰아치면 나무로 얼기설기 만든 조그만 움막 안으로 들어가서 불을 피우고 견딘다. 모두가 극한의 고통을 겪고 있다.

휘이이잉!

휘 산정에서 맞이하는 겨울바람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차갑다.

귀검은 오늘도 소축령에 앉았다.

흑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산정에서 맨몸으로 혹한의 겨울바람을 맞이했다.

귀검은 곰 한 마리를 잡았다. 고기를 귀무살에게 나눠주고, 가죽은 벗겨서 두툼한 담요로 만들었다. 아무래도 소축령에서 긴 겨울을 나려면 방한복이 필요했다.

찬바람이 곰 가죽을 후려쳤다.

곰 가죽은 상당히 따뜻하다. 가죽이 워낙 두꺼워서 바람이 스며들지 않는다.

이왕 지켜볼 거면 갱구 근처에서 지켜보는 게 어떠냐는 말도 있었다. 소축령 산정보다는 갱구 쪽이 바람도 훨씬 덜 불고, 기거하기도 편해서다.

소축령은 너무 춥다.

귀검은 소축령을 고집했다. 소축령에서 봐야 갱구를 비롯해 산 전체가 환히 보인다.

호발귀가 반드시 갱구로 나오라는 법이 어디 있나. 갱구는 무거운 흙더미와 돌로 가로막혀서 뚫고 나오기가 힘들다.

오히려 호발귀가 나온다면 산 어딘가 다른 쪽을 통해서 나올 것 같다.

그러니 소축령에서 산 전체를 지켜보는 게 훨씬 넓게 볼 수 있다.

귀무살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움막 안에 틀어박혀서 농담을 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 상관이 없다. 움직이지 않아도 된다. 귀무살은 인간 미끼다. 그러니 굳이 감시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요소요소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귀무살은 자신들이 인간 미끼라는 걸 안다.

혈마가 나타나면 생기를 찾을 것이고, 그들은 당장 혈마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다.

귀무살이 할 일은 저항이 아니다. 싸우지도 못한다. 혈마를 상대로 싸워? 어림도 없다.

혈마가 나타나는 순간, 최선을 다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화탄을 쏘거나, 아니면 설원에 모습을 드러내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된다.

혈마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 역할을 하기 위해서 사방 구석구석에 흩어져 있다.

귀무살은 낭견대와의 싸움에서 열한 명이 당했다. 남아있는 사람은 부대주를 포함해서 마흔두 명 밖에 안된다. 그들 마흔두 명이 이인 일조로 나눠서 열한 군데에 퍼져 있다.

사실상 산 전체에 진을 쳤다.

다소 감시망이 느슨한 거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 혈마는 살기가 충천해서 결코 이 열한 군데의 함정을 피해가지 못한다.

사박! 사박!

등 뒤에서 눈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귀검은 고개를 살짝 돌려 걸어오는 사람을 봤다.

홀리다. 그녀는 하루에 한 번씩 소축령에 올라와서 귀검과 대화를 나눈다.

홀리가 옆에 와서 앉았다.

“아무 일 없어요?”

“없다.”

귀검이 늘 하던 말을 했다.

“무심한 사람이네요. 죽으면 죽었다고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후후!”

귀검이 웃었다.

“왜 웃어요?”

“믿어지지가 않아서.”

“호발귀가 죽었다는 게요?”

“아니. 음문촌 계집이 이렇게 순정적일지는 몰라서.”

“호호호!”

홀리가 웃었다.

귀검의 말은 비위를 건드린다. 하지만 홀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사실 귀검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음문촌 여자들은 매우 활기차다. 사내를 수시로 갈아치운다. 어젯밤에 같이 정분을 통한 사내가 사냥을 나갔다가 죽는 경우는 왕왕 있다.

곰이나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다. 그러면 그날로 사내를 잊고 다른 사내를 찾는다.

이것이 음문촌 여인들의 사는 방식이다.

이런 삶이 고스란히 베여 있으니, 이 습성을 아는 사람들을 홀리가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차라리 도초처럼 가짜 혈마와 마구 살을 섞으면서 사는 게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호발귀가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요? 상대가 안 될 텐데.”

“혈마를 죽일 가능성이 칠 할에서 팔 할? 그 정도는 되지.”

“그러니까 그 칠 할에서 팔 할이 뭐냐고요?”

이 부분에서 귀검은 입을 다물었다.

어떤 수단이 있는 것 같긴 한데, 입을 꾹 다물어 버린다.

혈마의 죽음과 혈의검 소휘의 죽음은 시기를 같이한다. 혈마가 죽을 때 혈의검도 죽었다. 하지만 혈의검은 후인을 남겨 놓고 죽었다.

그는 사람들이 혈마를 연구할 것을 알았다. 혈마 부활도 예상했다. 탄생해서는 안 되는 혈마인데…… 그래서 혈마가 일으키는 증상에 대해서 적어 놓았다.

그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혈마 제거 방법을 연구하라고 했다.

혈천방이나 천살단과는 다르게 귀무령은 오로지 혈마 죽이는 방법만 연구했다.

사실 귀무령은 혈마에 집중하지 않았다. 역대 귀무령은 혈천방과 천살단의 싸움에 집중했다. 혈마는 죽었기 때문에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혈의검의 유지는 귀무령을 통해서 이어졌지만 거의 잊힌 명령이었다.

그러니 혈마 죽이는 방법은 사실상 크게 발전하지 않았다.

거의 혈의검 소위가 생각한 방법 그대로, 날것 그대로인 셈이다.

거기서 아주 조금 발전했으려나? 문득문득 ‘세상에 이런 말도 안 되는 괴물이 나타나면 어떻게 죽이나, 이 방법으로 죽일 수 있나?’하고 생각하다가 ‘어? 아니야. 이 방법이 더 낫겠어.’ 하는 수준, 딱 그 정도 선에서 혈마 제거 연구가 그친 상태다

귀검이라고 다를 바 없다. 귀검도 호발귀가 나타나기 전에는 혈마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다.

혈천방과 천살단이 혈마를 연구한다는 사실을 알았어도 내버려 두었다.

혈마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추운데 내려가라.”

귀검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려가려고요. 올겨울은 유난히 추운데 여긴 더 춥네요.”

홀리가 일어섰다.

사박! 사박!

그녀가 눈을 밟고 내려간다.

그래도 귀검은 호발귀가 묻힌 갱도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여 있다. 나무들은 나뭇잎을 떨궜다. 시야가 확 넓어졌다.

누군가가 설원에 피를 뿌린다면 단박에 드러난다.

휘이이잉!

귀검은 몰아치는 한풍을 맞으면서 무너진 폐광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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