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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68화 (368/500)

第八十四章 혈기본령(血氣本靈) (3)

“혈마!”

귀검은 눈을 번쩍! 떴다.

호발귀가 깨어났다. 하지만 최악 상태, 절대 원치 않은 상황…… 혈마로 깨어났다.

“혈마! 혈마라니!”

귀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귀검은 혈마를 벌써 세 번째 본다.

첫 번째는 혈천방에서 봤다. 미친 듯이 날뛰는 호발귀를 봤다.

물론 호발귀는 그전에도 혈천방 무인들을 무참하게 도륙했다. 은사곡이나 환산만에서는 거의 완벽한 혈마가 되어서 귀문 문도를 몰살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는 확실히 혈마가 아니었으니 제외한다.

호발귀는 혈마에 가까운 상태를 혈천방에서 처음 보여주었다.

혈마가 된 호발귀는 팔당 무인들을 거의 육백 명 가까이 죽였다. 정신없이 죽였다. 아무 이유 없이, 단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앞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였다.

완벽한 혈마다.

하지만 귀검은 고개를 내저었다.

다른 사람은 모두 호발귀를 혈마라고 봤지만, 귀검은 혈마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때의 호발귀는 완성되지 않았다.

호발귀는 혈마에서 언제든 호발귀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서 혈마가 아니다.

다시 인간으로 환원할 수 있는 혈마는 혈마가 아니다.

혈마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는 혈마가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혈마는 무공처럼 일성, 이성, 삼성…… 이렇게 강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영(零) 아니면 무량(無量)이다. 완전히 혈마이거나 혈마가 아니거나.

호발귀는 혈천방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지만, 여전히 영이다. 혈마가 아니다.

혈의검 소휘는 이 시점부터 혈마는 주군으로 모셨다.

그전에도 혈마와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주군’이라는 말을 입에 담은 게 이 시점이다.

귀검도 호발귀를 향해서 ‘주군’이라는 말을 했어야 한다.

귀검은 귀무살을 데리고 혈천방을 빠져나오는 선택을 했다. 혈천방과 함께 혈마 잡는 일에 나설 수 없다. 그렇다고 방주의 명을 어길 수도 없다.

그러면 왜 혈의검처럼 혈마를 주군으로 모시지 않았나?

혈의검은 혈마가 어떤 식으로 끝맺음을 할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주종이 되었다. 그리고 결국은 종이 주인을 죽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 역할이 이백 년 동안 계승되어서 귀검에게 이르렀다.

귀검은 혈마의 종이 되어야 하며, 호발귀가 완전한 혈마가 되면 반드시 죽일 의무가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어차피 호발귀가 완전한 혈마로 변신한다면 지금 죽일 것이지 왜 혈마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혈의검은 혈마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혈마를 벗어나서 인간이 되는 것이며, 그때는 인간으로서 혈마가 지닌 능력을 가진다. 생기를 다루는 능력만 가져온 온전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

이런 바람은 혈마도 가졌던 것 같다.

혈마가 혈의검에게 말했고, 혈의검은 그런 앞날을 기대했다. 결국, 기대대로 되지 않았지만.

호발귀가 혈천방에서 날뛸 때, 호발귀는 아직 혈마가 되지 않았다. 혈마와 인간의 갈림길에 들어서지도 않았다. 그냥 혈마가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래서 수하와 함께 빠져나왔다.

다른 생각도 했다.

이때만 해도 호발귀가 혈마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호발귀에게는 자진 수단이 많다.

일단 구혼음소가 있다. 언제든 죽을 수 있다.

아니, 이런 것은 지엽적인 문제다. 가장 큰 자진 수단은 호발귀의 마음이다.

혈마와 대치되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다는 마음을 가졌으니 어떻게 혈마의 길을 가겠나. 그런 길로 들어선다 싶으면 자신 스스로 입에 칼을 물고 엎어질 것이다.

호발귀는 혈마까지 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생기격타를 하지 않고 싸울 수 있게 되면 찾아오라는 말까지 했다. 기꺼이 싸우겠다고.

귀검이 본 호발귀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런데 호발귀가 겁쟁이였나?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끝내 혈마가 되었다.

이것이 두 번째 본 혈마다.

호발귀는 미친 듯이 생기를 쫓아다녔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무작위로 죽였다.

이때도 호발귀는 혈마가 아니다. 여전히 영 상태다.

일반적인 영에서 생기를 사용하는 영으로, 혹은 일반적인 영에서 혈마로.

호발귀는 그냥 일반적인 영이다.

등여산과 홀리, 해자수가 정말 힘들게 고생했지만 아무것도 아니었다. 혈마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 더 진한 살기를 드러냈을 뿐이다.

호발귀는 혈마가 되어서 미쳐 날뛰었지만, 귀검이 판단한 혈마를 그랬다.

귀검의 판단은 모두 혈의검 소휘의 비록에 근거한다.

오직 귀무령에게만 전해지는 혈의검 비록은 혈마 상태를 명확하게 기재해 놓고 있다.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미친 상태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죽일 때, 혈마로 오인하기 딱 좋다. 무조건 눈에 띄는 동물은 모두 죽이기 때문에 완전히 돌아버렸다고 생각된다.

아니다. 이런 상태는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이런 상태는 말 그대로 정신 이상자, 미친놈일 뿐이다.

미친 자는 상대할 방법이 있다.

천살단에서도 그런 방법을 하나 찾아냈다. 주치균이 펼친 무령환살공이 대표적이다.

인제 와서 말이지만, 주치균은 호발귀를 제압할 수 있을 때 완전히 숨을 끊었어야 한다. 죽였어야 한다. 파신금령술로 폐인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주치균은 천하에 다시 없는 바보다.

이제 거의 다 왔다. 살인이 광풍처럼 몰아치면 혈마에 거의 근접한 것이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돌고 돌아서 영이 되거나, 무량 속으로 함몰되어 들어가거나.

이백 년 전 혈마도 이런 상태를 경험했다. 그리고 그는 무량으로 들어가기 전, 혈마가 되려는 순간에 자진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이백 년 전 혈마는 혈마가 아니었다. 혈마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죽었으니까.

이 세상에 탄생한 진정한 혈마는 호발귀가 처음일 것이다.

진짜 혈마는 무엇을 보고 알아내나? 분별(分別)이다.

혈마는 생기를 선별해서 죽인다. 아무 생기나 죽이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한 생기부터 죽인다.

이 차이가 있다.

곁에 미약한 생기가 있고 저 멀리 강한 생기가 있다면 강한 생기를 쫓아간다.

예전의 호발귀는 주변에 있는 생기는 무조건 소멸시켰다.

옆에 병자가 있고 저 멀리 건강한 사람이 있다면 병자부터 죽였다. 가까운 곳에 있는 생기부터 소멸시켰다. 차근차근 모든 생기를 소멸시켜 나갔다.

혈마는 건강한 생기부터 죽인다.

호발귀는 곁에 무인이 있어도 죽이지 않았다. 주위를 돌아봐서 가장 강한 자부터 죽였다.

물론 호발귀에게도 일정한 범위가 있다. 생기의 강하고 약함은 자신의 범위 안에서 정한다.

바로 곁에 있는 사람과 백 장 밖에 있는 사람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귀검이 본 세 번째 호발귀, 혈마 상태다.

이 상태가 되면 두 번 다시 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무량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혈의검과 이백 년 전의 혈마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이 상태에서 다시 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본 것일까? 어느 부분에서 희망을 품었던 것인가.

귀검은 폐광 어딘가에 천살단주가 와있다는 것을 안다.

혈마를 거의 손아귀에 넣었다고 생각할 테니, 한달음에 와서 지켜봤을 것이다.

천살단은 틀림없이 지금의 호발귀 상태를 봤다.

호발귀를 본 후에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아직도 희망인가? 아직도 강한 무공인가?

천살단주는 좌절했을 것이다.

얼마 전의 혈마는 희망을 준다. 저런 혈마를 가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치민다.

한 마디로 부쩍 욕심이 난다. 무령환살공도 통했으니 더 신이 났을 것이다.

지금의 혈마는 공포감만 안겨준다.

무작위로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는 혈마보다도 지금의 혈마가 더 강한 공포심을 안겨준다.

타협 불가, 생존 불가, 무조건 살사(殺死).

혈마가 절대로 통제할 수 없는 마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일생이 헛산 것 같은 절망감에 휘감긴다.

특히, 혈마에 미련이 많았던 사람이라면 더 그렇다.

천살단주는 혈마를 통해서 영생불사까지 꿈꿨다.

혈마처럼 생기를 자유자재로 운용할 줄 안다면 노화도 멈출 수 있다. 반로환동(反老換童)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불로불사(不老不死)가 당연해진다.

혈마의 유혹은 무림 제패를 능가한다.

이제 혈마의 본성을 봤으니 천살단주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계속 혈마를 추구할까?

‘후후후!’

귀검은 웃음이 나왔다.

혈마를 본 사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을 딱 하나뿐이다.

혈마 제거!

천살단주 역시 혈마 제거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조차 쉽지 않은 일일 터이니.

하지만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천살단이든 혈천방이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혈마를 천살단 주위에 데려다 놓기만 하면 천살단은 멸문한다. 천살단에서 제일 무공이 강한 자, 가장 진기가 강성한 자가 첫 번째 참살 대상이다.

천살단주이지 않을까?

그다음 차례는 누굴까? 모르겠다. 혈마가 정하겠지.

모든 문파, 모든 무인이 다 같은 상황에 부닥쳤다.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백 년 전의 혈마는 자진했는데 왜 호발귀는 자진하지 않았을까? 목숨이 아까워서 차마 죽지 못한 것은 아니겠지? 그만한 졸장부는 아닐 것 같은데.

어쨌든 혈마가 탄생했다.

이제 귀검은 자신이 할 바를 깨달았다.

평생 의미 없는 삶을 살 줄 알았는데 할 일이 생겼다. 난생처음으로 아주 강하게 해야 할 일이 떠오른다. 이 세상에서 반드시 이루고 죽어야 할 목표다.

혈마를 죽인다!

이것은 혈의검 소휘의 최대 목표였다. 유일한 임무였다.

혈마에게 하명 받은 명령으로, 칼을 맞고 죽었어도 백 번이고 이백 번이고 반드시 되살아나서 이뤄야 할……

혈마가 두 손을 잡고 부탁한 유일한 명령이다.

그 명령은 귀검에게 전해졌고, 귀검은 코웃음을 치면서 그 명령을 받았다.

지옥유부검을 상대할 수 있는 검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호발귀에게 생기격타를 경험했다. 지옥유부검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아마도 이 싸움은 자신의 패배로 끝날 공산이 크다.

지금 살단 무인을 도록하고 있는 혈마는 진짜다. 영에서 무량으로 넘어간 혈마 전인이다.

당신을 모실지 죽일지 결정하라고 했다.

호발귀는 ‘죽이라’라는 명령을 내렸다. 자신이 혈마가 된 것은 귀검에게 자신을 죽여달라는 명령이나 마찬가지다.

“결국,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십니까.”

귀검은 호발귀에게 존칭을 붙였다.

호발귀는 진짜 혈마다. 자신의 주군이다. 이제부터 자신은 주군을 죽여야 한다.

호발귀를 주군으로 모시지 않아도 된다. 혈천방에서 그를 외면하고 귀무살을 빼낼 때처럼, 모른 척해도 무방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혈의검의 유지도 버려야 한다.

귀검이 평생 품에 안고 살아온 지옥유부검의 뿌리가 흔들린다.

귀검은 소축령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갱도를 쳐다봤다.

꽈앙! 꽈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갱도가 무너졌다.

하지만 계속 지켜본다. 저 정도의 폭발이라면 안쪽에 있는 수직 갱도 무너졌다.

빠져나올 구멍이 없다.

유일한 탈출구는 갱구를 뚫고 나오는 것뿐이다.

혈마가 헤치고 나온다면 그를 죽일 것이고, 혈마가 나오지 않는다면 폐광에 제를 올릴 것이다. 혈마의 수하이니 당연히 그 정도 예는 차려야 한다.

귀검은 검을 놓고 일어섰다.

그는 옷매무시를 단정히 갖춘 후, 무너진 폐광을 향해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 배, 일 배, 일 배…… 일 배.

모두 칠 배를 올렸다.

“나는 주군과 함께 합니다.”

“나는 주군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을 것입니다.”

혈의검은 혈마에게 일곱 가지를 맹세했다.

혈마는 혈의검에게 답례를 하지 않았다. 묵묵히 맹세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답례로 두 가지를 말했다.

“나는 너에게 명예로운 일만 시킨다.”

“세상에서 가장 명예로운 일, 혈마 제거 명령을 네게 내린다. 혈마를 제거해라.”

영에서 영으로 돌아서면 두 사람은 멋진 길을 갔을 것이다.

혈마가 영에서 무량으로 들어선 순간, 두 주종 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길을 걸었다.

혈마후만 괴로웠던 것이 아니다. 혈의검도 괴로웠다.

귀검은 혈의검이 가졌을 만한 감정은 없다. 그에게 호발귀는 먼발치에서 지켜본 젊은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백 년간 이어온 숙원을 자신이 풀어야 한다는 사명을 느낀다.

지옥유부검을 받을 때부터 이 길은 정해진 것이다.

스읏!

절을 마친 귀검은 다시 앉았다.

소축령에 앉아서 폐광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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