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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67화 (367/500)

第八十四章 혈기본령(血氣本靈) (2)

연소부는 혈마 앞에 섰다.

‘괴물 새끼!’

주치균이 혼절 직전에 이 악물며 한 말이다.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혈마는 사람이 아니다. 괴물이다.

‘이런 괴물을 어떻게……’

그는 혈마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무령환살공을 수련한 살단주조차 일 검에 베이고 말았다. 혈마를 겨냥해서 만든 무공을 사용했는데도, 되잡혔다. 혈마를 잡은 적이 있는 무공인데도.

자신이 무슨 수로 혈마를 상대할 것인가!

혈마의 신법을 봤다. 혈마의 검속(劍速)을 봤고, 검력(劍力)을 봤다. 확실히 이 자는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수하들에게 도망갈 시간은 벌어줘야 한다.

‘후후! 좋아! 시작하자!’

연소부는 이를 꽉 악다물었다.

쒜에엑!

연소부는 혈마 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다른 누구보다도 혈마의 눈에 띄어야 한다.

연소부는 혈마에게 등을 격타당해서 죽은 도창이 생각났다.

너무 빨리 달려서 혈마 눈에 띄었다. 바로 옆에 다른 자가 있었는데도, 혈마는 도창을 쫓았다. 가장 활기차게 움직이는 자부터 쫓는 특성이 있다.

쒜에엑!

연소부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신형을 띄웠다.

“크크크큿!”

혈마의 눈이 연소부를 쫓아왔다.

‘됐어! 걸려들었다!’

이때부터 연소부는 뒤도 안 돌아보고 최대한 사력을 다해서 질주했다.

뒤를 돌아볼 틈이 없다. 살단에서 제일 발이 빨랐던 등창도 등이 베였다. 혈마가 쫓아오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따라잡힌다. 대여섯 걸음도 움직이기 전에 죽는다.

쒜엑!

혈마가 쫓아오기 시작했다.

“따라와! 새끼야!”

연소부는 버럭 일갈을 내지르면서 질주했다. 무턱대고 아무 곳으로나 도주하는 게 아니다. 목적지가 있다. 혈마가 숨어 있었던 폐광으로 다시 들어간다.

“따라와! 따라와!”

연소부는 연신 일갈을 내지르면서 폐광 안으로 쑥 들어갔다.

혈마가 잠시 멈칫거렸다. 아마도 불길한 예감을 느낀 게 틀림없다. 밖에서도 그랬다. 낭견대 화약을 터트렸지만, 조금이라도 의심쩍은 곳은 다가서지 않는다.

마귀 새끼가 눈치도 밝다.

“따라와! 새끼야!”

혈마는 연소부의 고함을 들었다. 킥킥대며 웃는다. 그리고 이내 폐광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걸렸어!’

연소부는 불붙은 화약 두 덩어리를 갱도 입구 양쪽 가장자리로 던졌다. 그리고 자신은 안쪽으로 계속 달려 들어갔다. 순간,

화와악! 쩌억!

등에서 화끈한 통증이 일어났다.

‘어느새!’

기가 막히다. 정말로 사력을 다해서 도주했는데 어느새 혈마가 따라 들어와서 등을 쳤다.

‘말도 안 돼!’

연소부는 계속해서 앞으로 치달렸다.

그는 보의를 입고 있다. 원래는 십이철창진 창수들이 입는 보의인데 혈마를 상대하려고 일부러 주워입었다. 아무래도 한두 칼 정도는 맞을 것 같았다.

한데 보의도 필요 없다. 혈마의 검은 보의까지 갈랐다. 그리고 안쪽 살, 등을 갈라냈다.

등줄기가 화끈거렸다. 핏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연소부는 ‘틀렸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검 한 번 맞고 확! 떠오른 생각이다.

그래도 내처 달렸다. 이런 미친놈은 지옥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 안에서, 더 안에서……

숨이 턱에까지 차올라도 꾹 눌러 참고 갱도 안으로 치달려 들어갔다.

갱도 안쪽에 수직 갱도가 있다고 들었다. 거기까지만 혈마를 유인해내면 승산이 있다.

휘익! 쉬익! 턱턱!

연소부는 갱도 중간에 심지에 불붙인 화약 두 덩어리는 더 던져놓았다.

화약 더미가 모두 네 덩어리다.

이제 이 갱도는 무너진다. 자신을 죽인 혈마가 갱도를 빠져나가려고 해도 이 화약 무더기 두 개는 지나치지 못한다. 중간에 놓인 화약 더미는 지나쳐도, 들어오면서 갱구에 놓았던 화약까지는 벗어나지 못한다.

‘넌 죽었어! 이 새끼야!’

연소부는 흰 이를 드러냈다.

자신은 죽겠지만, 그래도 혈마를 이겼다는 생각이 든다.

쒜에엑!

연소부는 날카로운 파공음을 마지막으로 들었다. 그리고 끝이다.

그의 머리는 둥실 떠올라 갱도 벽에 부딪혔다. 그리고 바닥에 나뒹굴었다.

떼구르르르루!

* * *

검벽주 임명강은 치를 부르르 떨었다.

살단 무인들이 마치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간다. 무령환살공, 혈마 잡는 무공을 충분히 수련한 주치균조차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 실려 나갔다.

할 말이 없다. 저자는 인간이 아니다.

임명강은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잘못 본 모양이구나. 잘못 생각했어.”

천살단주가 묵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혈마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이 얼마나 우둔한 발상인가. 미련했어.”

임명강은 천살단주의 독백을 들었다.

천살단주가 실패를 자인하다니. 스스로 우둔하다고 말하다니. 이런 일은 처음이다. 하지만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 묵묵히 듣기만 할 뿐이다.

“마물! 마물! 마물이었구나. 혈마는 마물이었어. 나도 그렇고, 혈천방주도 그렇고…… 모두 잘못 생각했어. 허허허! 이백 년 전 혈마를 봤어야 말이지.”

천살단주가 고개를 휘휘 내둘렀다.

“그 사람들…… 왜 이런 미련한 짓을 했을꼬.”

천살단주가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천살단주가 말하는 ‘그 사람들’이란 혈마와 대적한 경험이 있는 천살단주 그리고 혈천방주다.

제일대 천살단주는 혈마에게 죽었다. 제이대, 제삼대 천살단주도 혈마에게 죽었다.

제사대 천살단주가 들어섰을 때, 혈마가 자진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누가 죽인 게 아니다. 자신이 자신을 죽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제사대 천살단주는 물론이고 그 이후에 임명되었을 모든 단주가 혈마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그토록 잔인한 혈마를 겪었으면서 제사대 천살단주는 왜 혈마를 포기하지 않았을까? 왜 혈마를 재현해내려고 그토록 노력했을까? 왜 혈마록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들었을까? 왜 후인에게 혈마에 대한 기록을 남겼을까.

천살단주는 혈마의 적이다. 혈마에 대해서 세부적인 것을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을 알았다면 약점도 찾았을 것이고, 혈마 손에 죽어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천살단주는 혈마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으니 그런다고 치자.

혈천방은 혈마가 세운 방파다. 정확히 말하면 혈의검 소휘가 혈마를 돕기 위해 만든 방파다. 마인들의 집합처였으며, 안식처였다. 군림처이기도 했다.

혈마를 도와서 천살단을 상대하고, 무림을 피로 물들이던 천하최강 방파, 혈천방.

그자들은 혈마의 위험을 똑똑히 알고 있다.

혈마를 따랐던 제일 충신 혈의검조차도 나중에는 혈마를 죽이기 위해서 온갖 심혈을 기울였다.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모두 다 했다. 혈마를 죽이려고.

그런데 왜 그들조차도 혈마를 만들어내려고 했을까.

지금의 혈천방주는 더 이해할 수 없다.

혈천방주는 혈마의 저런 모습을 똑똑히 봤다. 혈마는 혈천방에서 육백 명 넘는 무인을 죽였다. 바로 저런 식으로, 말도 안 되는 무공을 구사하면서.

그런데도 혈마를 포기하지 못해?

혈마를 만들어서 이백 년 전의 성세를 다시 구가하고 싶다는 생각은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저 모습을 봐라. 저 모습이 충성을 다해 모실 주군의 모습인가?

그러니 혈의검 소휘가 혈마를 죽이려고 안간힘을 다한 게 아닌가. 바로 저런 모습 때문에…… 혈마가 되면 주위에 있는 모든 인간을 죽이기 때문에.

그런데 혈마가 죽고 난 후 혈천방은 왜 저런 모습을 다시 재현하려고 그렇게 애를 쓴 것인가.

미친놈들 아닌가!

혈천방이고 천살단이고 다 미쳤다.

정말? 정말 미쳐서 혈마를 만들어내려고 했다고?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혈마를 만들되, 그 앞에 한 글자가 더 붙으면 된다.

통제 가능한! 통제 가능한 혈마!

혈마는 벗이 없다. 벗을 둘 수가 없다. 천하가 모두 적이다.

천살단이건 혈천방이건 모조치 쳐죽일 대상일 뿐이다. 내편 네편이 없다.

혈마가 이백 년 전에도 저런 상태였다면 혈천방 무사하지 못했다. 마인도 사람이지 않나. 그들 역시 혈마의 적, 혈천방도도 혈마를 피해서 도망 다녔을 거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혈천방은 혈마 옆에서 건재했다. 혈의검도 혈마의 수발을 들었고, 혈마후도 존재했다. 수많은 마인들이 혈마의 지시를 받았다.

그 당시 혈마는 ‘통제 가능한 혈마’였다.

혈천방이나 천살단이 지금까지도 은밀히 불씨를 살리고 있는 혈마는 바로 그 ‘통제 가능한 혈마’다.

호발귀는 혈천방에서 날뛸 때까지만 해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혈마가 되었다가도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었다. 또 실제로 돌아왔다.

이 부분을 잘 조율하면 원하는 혈마를 얻을 수 있었다.

혈천방주가 그 많은 문도를 잃고도 웃을 수 있는 것은 혈마 한 명만 만들어내면 대세가 끝나기 때문이다. 혈마 천하 앞에서 맞설 수 있는 적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제라는 선이 끊어지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미친놈만 나타난다.

통제 가능한 혈마는 언제든 미친 혈마가 될 수 있다.

혈의검 소휘가 ‘통제 가능한 혈마’를 죽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혈마는 탄생해서는 안 되는 마물이다.

천살단주는 혈마의 실체를 똑똑히 봤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었던, 혹은 만들려고 시도했던 모든 방법이 호발귀라는 혈마 앞에서 산산 조각나는 것을 느꼈다.

호발귀를 쫓아서 폐광을 찾아올 때까지만 해도 혈마를 알지 못했다. 진심으로 알지 못했다. 단 일다경 전만 해도 혈마를 잡아서 연구할 생각뿐이었다.

혈마는 절대로 통제되지 않는다.

천살단주는 비로소 자신이 평생 엉뚱한 짓을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혈마의 본성을 보지 못했다면 결코 깨닫지 못했을 바보짓이었다.

혈천방주도 호발귀의 지금 모습을 봤다면 이제는 웃지 못할 것이다.

“후후! 이제는 정말 혈마를 재현해야겠구나.”

“네?”

천살단주의 소리에 임명강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검벽주는 호위만 하면 된다. 천살단주의 말벗을 하라고 옆에 있는 게 아니다.

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반문하고야 말았다.

혈마의 모습을 봤으면서 혈마를 재현한다고? 저 미친놈을 또 만들어 낸다고? 만들어 낼 수도 없지만, 만들 수 있다고 해도 손대서는 안 되는 마물이지 않은가.

“이상하냐?”

천살단주가 임명강을 쳐다보며 말했다.

“네. 혈마는 탄생해서는 안 될 마물입니다.”

검벽주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이것은 소신도, 의지도 아니다. 공포다. 혈마를 본 사람은 공포에 짓눌릴 수밖에 없다.

“누가 저 혈마를 잡을 수 있을까?”

“누구도 잡지 못합니다.”

검벽주가 단언했다.

정말이다. 천살단주, 혈천방주도 혈마를 잡을 수 없다. 목숨을 걸고 내기라도 할 수 있다.

혈마의 무공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니다. 혈마는 마신이다.

지옥에 있는 마신이 지상으로 튀어나왔다!

혈천방에 지옥에서 왔다는 자가 한 명 있다.

귀무살 귀무령 귀검.

그의 검이 지옥유부검이다. 지옥에서 튀어나온 검이라고 한다. 무림 최고의 검 중 하나다. 하지만 지옥유부검도 한낮 지옥 졸개의 검일 뿐이다.

저기 지옥 마왕이 있다.

혈마, 지옥 마왕!

아무도 혈마를 잡을 수 없다.

“후후! 그래서 혈마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연구해야겠지. 혈마록부터. 약점을 알아야 잡을 수 있을 것 아니냐.”

“아! 네……”

“실수! 실수! 실수! 호발귀를 죽일 기회가 수십 번이나 있었는데, 그걸 다 놓치고…… 이제는 정말 사력을 다해서 어떻게 죽여야 하나 고민하는 처지가 되었구나. 실수! 실수! 실수! 허허!”

천살단주가 탄식했다.

“혈마, 죽일 수 있습니다!”

임명강이 두 주먹을 꽉 쥐며 말했다.

“가자! 혈마가 튀어나오기 전에. 허허!”

꽝! 꽈아아아아앙!

갱도가 폭음을 일으키며 무너졌다. 하지만 혈마가 죽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왜? 혈마는 지옥 마왕이니까.

인간이라면 폐광이 완전히 무너지는 저런 폭발 속에서 살아날 수가 없다.

혈마도 죽었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인간이 아니니까. 지옥 마왕이니까 두고 봐야 한다.

천살단주는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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