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三章 암로(暗路) (3)
푹!
“큭!”
홀리는 아주 격한 신음을 흘렸다.
느닷없이 아래 가슴뼈에서 극심한 통증이 일어났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뼛속에서부터 저려 나왔다. 한순간에 전신에서 기운이 쭉 빠지면서 몸이 무너진다.
아랫배에 비수가 박혔다.
“하아아악!”
홀리는 끝없이 밀려드는 고통에 가슴을 움켜잡고 무너졌다.
주치균이 목표를 바꿨다.
도천패를 타격하다가 느닷없이 홀리로 방향을 변경했다.
파신금령술을 전개하는 데는 시차가 필요없다. 혈을 치는데 한두 시진 정도는 문제가 안 된다.
주치균은 그야말로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이쪽을 공격하다가 막히거나 싫증 나면 다른 쪽을 공격하면 되니까.
어차피 이곳에 있는 모두를 폐인으로 만들 생각이니까.
“후후! 네가 호발귀 계집이냐?”
홀리는 상대가 주치균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았다.
이 음성, 주치균이다.
주치균이 갱도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들어왔을까? 보이지 않았는데. 자신들이 십이철창진에 한 눈이 팔린 사이에 살며시 들어왔을 게 분명하다.
그러고 보니 살단 무인들이 우르르 달려들다가 갱도 밖에 대기한 것은 하나의 눈속임이다.
‘잡아야 해! 무령환살공은 혈기로 잡지 못해. 오직 진기만이 잡아낼 수 있어.’
츠으으읏!
홀리는 고통을 이겨내고 진기를 끌어 올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진기를 충만하게 채웠다. 하지만 일월혈을 통해서 진기가 새어나갔다.
마치 가죽 포대에서 바람이 빠지듯이 솔솔 진기가 흘러나갔다.
일월혈은 매우 중요한 혈이다. 단 일격을 받았을 뿐인데, 몸을 움직이기가 상당히 불편해졌다.
‘거의 왼쪽 반신은 마비된 것 같아. 다음은 지실혈!’
홀리는 슬며시 움직여서 갱도에 등을 댔다.
뒤를 막아야 한다. 벽에 등을 붙이고 있으면 지실혈을 공격하지 못할 것이다. 앞쪽에 다시 일격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파신금령술만은 피해야 한다.
“파신금령술을 알아볼 줄 알았어. 등여산! 그 계집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게 그런다고 막아지는 게 아니야.”
‘어디야! 어디 있어!’
홀리는 웅웅 울리는 주치균의 음성을 쫓았다.
일단 그를 발견해야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다. 진기를 아무리 이끌어도 찾지 못하겠다.
주치균이 유들유들 말해왔다.
“너희를 죽일 생각은 없다. 무공만 버리고 초야에 묻혀서 편히 살라는 거야. 그게 그렇게 어렵나? 남들 죽이지 말고, 다치게 하지 말고 그냥 얌전히 살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마귀 종자 새끼들이라서 그런가?”
주치균의 음성에서 적의가 물씬 묻어나왔다.
보통 적의가 아니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 수 없다는, 피비린내가 물씬 맡아진다.
“순순히 지실혈을 내놓지? 안 그러면 한 대 더 맞아야 하는데, 손해가 크잖아? 오른쪽 일월혈도 뚫어버릴까? 가만! 그러면 어떻게 될까? 아! 궁금해.”
주치균이 즐거운 듯 키득거렸다.
“파신금령술을 두 번 전개하는 거야. 오른쪽, 왼쪽. 정말 궁금해. 어떻게 될지.”
주치균의 음성이 윙윙 울렸다. 왼쪽에서 들리는 듯하기도 하고 오른쪽에서 들리는 듯하기도 하다. 그가 어디에 있는지 종잡을 수가 없다.
‘내 앞에 있어. 오른쪽 일월혈? 가능성 있어.’
주치균이 파신금령술을 두 번 펼친다고 했다. 왼쪽과 오른쪽…… 비수를 여섯 대 꼽는다.
가능성 있다. 못할 리 없다.
홀리는 오른쪽 일월혈에 오른팔을 붙였다. 그리고 검에 진기를 주입했다.
혈맥참을 떨친다. 상대방을 찾아낼 수 없다면 몸 주위를 일시에 검기로 감싸버린다.
쒜에엑!
홀리는 검을 맹렬하게 휘둘렀다. 몸 주위를 완벽하게 검기로 감쌌다. 주치균을 볼 수 없으니 무조건 주위에 검을 휘두르고 보자는 심산이다.
일단 놈이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막는다.
한데, 묵직한 힘이 날아와 그녀의 검을 탁! 쳐냈다. 정확하게 검배를 두들겼다.
“욱!”
홀리는 엄청난 충격에 하마터면 검을 놓칠 뻔했다.
주치균은 검을 정확하게 보고 친다. 밝은 대낮처럼 자신을 보고 있다.
‘틀렸어.’
홀리는 처음으로 절망감이 밀려들었다. 낙심이 아주 컸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스읏!
그녀는 다시 검을 들어 올렸다.
오른쪽 일월혈을 격타당해도 죽지는 않는다. 그러니 아픔이 일어날 때, 그 순간에 혈맥참을 터트린다. 딱 한 번 더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
홀리는 반격을 취하기 위해서 만반의 태세를 갖췄다.
그때다.
“악!”
네다섯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당홍이 비명을 토해냈다.
“이런!‘
홀리는 당황했다.
자신을 공격할 줄 알았는데 당홍을 공격했다.
”언니!“
”이 새끼, 나로 방향을 바꿨네.“
”당했어요?“
”그럼 당하지, 내가 견딜 수 있어? 호호!“
당홍은 아픔이 전신을 회오리칠 텐데도 여유를 잃지 않고 키득키득 웃었다.
반명에 홀리는 힘이 쭉 빠졌다.
주치균을 찾아내지 않으면 싸우지 못한다. 아예 상대가 안 되고 있지 않은가.
주치균은 자신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 이래서는 싸울 방도가 없다.
’찾아야 해. 어떻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홀리는 횃불을 떠올렸다.
진작 횃불을 밝혔으면 좋았겠지만…… 지금은 횃불조차도 밝히지 못한다. 횃불이 십이철창진 너머에 있다.
갱도 안쪽에는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준비해놓지 않았다.
옷에라도 불을 붙이면 어떨까? 그럴 수도 없다. 불길을 댕겨주는 인화 물질이 없다.
하지만…… 횃불을 밝힐 수는 없지만, 부싯돌을 켤 수는 있다.
부싯돌을 치면 잠깐이라도 빛이 반짝일 것이고, 놈이 어딨는지 눈으로 찾아낼 수 있다.
스으읏!
홀리는 품에서 부싯돌을 조용히 꺼냈다.
“언니! 등을 벽에 붙이고, 지실혈을 내주면 안 돼요.”
“나 바닥에 누워있어.”
“그래요?”
“이거 죽음만 기다리는 꼴이네. 죽이든 살리든 마음대로 하라는 거잖아. 비참하다.”
당홍이 말했다.
“그렇지? 비참하지? 하하하!”
주치균이 두 여인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는 서둘지 않는다. 어차피 다 잡아 놓은 먹잇감이다. 천천히 즐기는 일만 남았다.
홀리가 빠르게 말했다.
“언니! 조금만 더 힘내요. 언니, 잘하는 거 준비하고.”
당홍은 홀리의 말에서 반격의 느낌을 얻었다. 하지만 무슨 수로 반격할까? 반격할 거리가 전혀 없다. 그때!
탁! 타악!
갱도 안에서 부싯돌 치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노란 불똥이 팍! 튀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 어둠 속에서 불빛이 반짝 빛났다.
한데 어처구니없게도 당홍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부싯돌에서 터지는 불똥만 봤다.
부싯돌에 비친 주치균을 찾아야 하는데, 오히려 두 눈이 밝은 불빛을 봐버렸다.
순식간에 더욱 짙은 어둠이 찾아왔다.
“아! 미안! 못 봤어.”
당홍이 체념한 듯 말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갱도에서 주치균의 웃음소리가 크게 울렸다.
“역시 혈마 계집이라 포기를 모르네. 최후까지 버티겠다는 건가? 그래도 안 되는 거 알잖아?”
주치균의 음성이 사방에서 웅웅 울려왔다.
주치균은 무령환살공과 함께 회성음도 사용한다. 갱도 안에서 펼치는 두 절공은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적어도 위치를 숨기는 데는 최적 무공이다.
이 순간, 홀리는 마음을 침착하게 갖기 위해 무지 애를 썼다.
당황하면 당한다. 침착해야 한다. 차분하게 살펴야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냉정해야 할 때다.
주치균이 펼치는 무령환살공은 원래 혈마에게만 유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기는 속일 수 있지만, 진기는 속이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진기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일까?
무령환살공은 은영마도처럼 어둠과 동화되어서 자신을 숨겨 버렸다. 하지만 그래도 최종적으로 움직인 후에는 기척을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비수를 찌르고 물러갈 때는 느낌을 얻어야 한다.
한데 주치균에게서는 어떤 느낌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갑자기 어둠 속에서 칼이 푹 쑤셔지는 것 같다.
‘이걸 어떻게 잡지?’
“언니, 형부에게 했던 거 다시 하면 안 될까?”
홀리가 물었다.
당홍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말을 끊었다.
“형부에게 했던 거, 내게도 해줘.”
홀리가 재차 말했다.
독을 전신에 살포하는 것이다. 일부러 독에 중독된다.
자신은 중독을 피하지 못하지만, 중독된 사람을 찌르는 주치균도 같이 중독된다.
사람을 찌르면 옷자락이 펄럭거린다. 몸에 묻은 독분도 같이 움직인다. 숨을 완전히 폐기한 상태에서 검을 쓴다고 해도 독분이 코 밑에 묻는 것은 피하지 못한다.
사람인 이상 주치균도 폐기를 풀 때가 있다. 바로 그 순간에 그도 중독된다.
그런데 당홍이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이미 했어.”
“뭐?”
“이 사람 지금 중독된 상태잖아. 나 중독 풀지 않았거든. 그리고 난 지금 이 사람, 꼭 껴안고 있어. 호호호!”
당홍이 웃엇다.
‘음!’
홀리는 침음했다.
도천패의 몸에 독분이 잔뜩 묻어 있다. 당홍은 도천패와 몸을 붙이고 있는 상태다.
그런 상태에서 일월혈을 격타당했다. 홀리가 생각하고 있는 그 일이 이미 일어난 것이다.
“그 독은 정말 많이 알려진 것 같네. 다른 거는 없어?”
“준비해 볼게. 저놈 워낙 악귀 같아서 통할진 모르겠는데, 해봐야지 뭐.”
당홍이 대답했다.
“하하하하! 마귀 종자 새끼들이 누구에게 악귀라고 하나. 아무래도 말 많은 혈마 계집부터 처리해야겠네. 자, 그럼 시작해볼까? 계집! 잘 막아봐.”
주치균이 말했다.
‘아!’
홀리는 탄식했다.
그녀는 당홍의 음성에서 그녀에게도 더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다른 독이 없다.
다만 독이 없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주치균이 마음 놓고 활개를 칠까 봐 준비한다고 말한 것이다.
당황은 더 이상 쓸 독이 없다.
쓸 독이 있다고 해도 주치균이 꺼리는 것 같지도 않다. 독 같은 것은 얼마든지 써보라는 투다.
‘할 수 없어!’
홀리는 이를 악물었다.
이제 주치균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생기만 남았다.
등여산의 말을 빌리면 생기를 쓰자, 주치균을 파악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생기는 무령환살공의 먹잇감이다.
하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다만 생기를 일으키면 당장 호발귀가 뛰쳐나온다.
호발귀에게 얻어맞는다거나 죽임을 당하는 것은 억울하지 않다.
그가 혈마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하는데, 자신을 죽인 호발귀가 혈마로 변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생기를 끌어내야 하나?
홀리는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였다. 그때,
“빌어먹을 새끼! 막기는 뭘 막아? 새끼야, 넌 이제 뒈졌어.”
갑자기 갱도에서 해자수의 음성이 들려왔다.
“해자수! 들어가! 안 돼! 숨어!”
홀리가 화들짝 놀라서 급히 외쳤다.
해자수는 호발귀하고 연관되어 있다. 호발귀가 갱도로 나온다는 것은 호발귀가 나온다는 것이다.
“아씨, 이미 늦었어. 그놈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놈이 아니잖아.”
해자수가 묘한 소리를 했다.
‘호발귀가 나왔다!’
“안돼!”
홀리는 바로 일갈을 내질렀다. 동시에 와락 생기를 끌어 올렸다.
호발귀의 목표를 자신으로 바꾼다. 그래야 주치균에게 달려들지 않는다.
아니, 이것은 해자수에 대한 무언의 명령이다.
해자수가 밀실 안으로 들어가서 생기를 끌어내는 거다. 그러면 호발귀의 목표는 해자수가 된다.
주치균을 거들떠보지 않고 해자수에게 달려간다.
호발귀가 갱도 안에 있으면 안 된다. 주치균에게 또다시 파신금령술을 당하게 할 수는 없다.
파아아앗!
홀리는 생기를 극한으로 끌어냈다.
두 발이 땅에 찰싹 달라붙는 듯했다. 아니, 이내 두 발 모두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아주 위험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