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三章 암로(暗路) (2)
“이런 건 내가 할 수 있어. 옆에 보물을 두고도 몰라보네.”
탁!
당홍이 도천패의 등을 때리며 말했다.
도천패가 당홍을 돌아보면서 활짝 웃었다.
“정말 보물을 옆에 두고도 몰라보고 있었네. 자, 무엇을 해드릴까요? 제가 해드릴 일은 없습니까?”
도천패가 농담처럼 말했다.
“어험! 방해된다. 물러나 있어라!”:
당홍도 위엄있게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도천패가 하인처럼 허리를 굽히며 뒤로 물러섰다.
당홍은 갱도 안쪽에 독분을 뿌렸다.
입구 쪽에는 바람이 불어서 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안쪽까지는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
독분을 폭넓게 뿌려 놓으면 살단 무인들이 함부로 들어서지 못하게 저지하는 효과도 있다.
직접 타격을 가하지 않더라도 뒤에서 밀려드는 무인들을 제지할 수 있는 것이다.
양수겸장!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살포다.
당홍은 저들 열다섯 명이 충분히 중독될 수 있는 만큼 넉넉하게 뿌렸다.
독분은 땅에 묻혀 있는 형태다. 그러다가 발로 밟거나 바람이 불면 위로 올라온다.
땅에 있는 먼지를 전혀 건드리지 않고 움직일 수 있으면 모르겠다.
그 외에는 모두 걸려든다. 바짓단에 살짝 스치기만 해도 독분이 솔솔 피어 올라온다.
“자! 우리는 뒤로.”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살단 무인들은 연신 십이철창진을 전개하며 걸어왔다.
가만히 걷기만 해도 독분이 피어날 판인데, 저런 식으로 창을 거세게 휘두르면 여지없이 중독된다.
“절명독?”
“백화초(魄花草) 독분(毒粉). 즉사.”
“다른 사람하고는 적이 다 되어도 당매하고 적이 되면 곤란하겠어.”
“그렇지? 나는 바람만 안 피우면 독 안 써.”
“바람피우면 독을 쓴다는 얘기로 들리네.”
“당연하지.”
“목숨 아까워서 바람 못 피우겠네.”
“뭐라고! 독을 안 쓰면 바람피우겠다는 거야?”
“아! 실수. 요놈의 주둥이가. 지금 뭐 말이 그런 식으로 흐르게 되어 있잖아.”
“호호호!”
당홍이 웃었다.
그들은 십이철창진은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저들은 곧 피를 토하며 죽을 것이다.
살단 무인들이 창을 휘두르며 독분을 뿌려 놓은 곳까지 왔다.
파팟! 파팟!
그들은 여전히 창을 휘둘렀다. 독분이 뿌려진 것을 전혀 모르는 듯 거침없이 걸어왔다.
이제 곧!
한데 원하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살단 무인들이 독분 뿌려진 땅을 거침없이 지나쳤다. 분명히 내지르는 창에 독분이 피어올랐을 텐데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어! 저거!”
당황이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살단이 언니 독에 관해서 연구를 많이 했나 보네.”
홀리가 말했다.
“이게 연구한다고 해독할 수 있는 독이 아닌데?”
“천살단에는 약전이 있어요. 약전주는 흑포부시단도 만들어 낸 의원이자 독인이죠. 그 사람들 이미 언니가 즐겨 쓰는 독에 대해서 파악해 놓은 것 같아요. 여기서 나가면 독을 좀 바꾸는 게 어때요?”
“정말 그래야겠네. 내가 너무 방심했나? 그러나저러나 이제 어떡하지? 독이 저렇게 됐으니.”
당홍이 난감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고. 황소 같은 남편 둬서 뭐해? 이럴 때 써먹어야지.”
도천패가 대도를 들고 일어섰다.
“이놈들!”
도천패가 쩌렁 일갈을 내지르며 대도로 장창을 후려쳤다.
여섯 명이 창을 찌르더라도 그들은 갱도 전체를 찌른다. 도천패 한 사람에 집중되는 창은 두 개가 고작이다.
대도로 쳐내는 창도 두 개만 치면 된다.
하지만 도천패는 전력을 다하지 못했다.
대도로 중단에 있는 장창을 후려치는 동안, 상단으로 장창이 몰아쳐 왔다. 얼굴과 가슴을 노린 창이다.
“웃!”
도천패는 급히 물러섰다.
언뜻 보기에는 창 두 개만 상대하면 될 것 같은데, 실은 네 개를 상대해야 한다.
그것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창이다. 또 다른 창들도 급히 방향을 바꿔서 쳐올지 모른다.
뜻밖에도 창진이 만만치 않다.
“타앗!”
도천패가 물러나는 사이, 홀리가 거센 고함을 내지르며 십이철창진으로 달려들었다.
힘껏 도약해서 도천패의 왼팔을 밟았다. 그리고 한 번 더 도약했다. 십이철창진의 상단 창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려고 한다.
단숨에 창대를 잘라낼 생각이다.
그때, 창진이 좌우로 쫙 갈라졌다.
쒜에엑!
맨 뒤에 있던 도부수 세 명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그들이 각기 다른 도법을 구사했다.
대도가 마치 뱀처럼 매끄럽게 날아온다. 영사십도(靈蛇十刀)다. 대도가 도천패의 도법처럼 굳건한 기운을 품고 날아온다. 금강도법(金剛刀法) 같다.
칼을 쏘아내는데, 도풍(刀風)이 마치 우렛소리처럼 꾸르릉 소리를 낸다. 천뢰금도(天雷金刀)가 틀림없다.
세 명이 각기 다른 도법을 전개했지만, 마치 한 사람이 펼친 듯 정확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졌다.
쒜엑! 쒜엑! 쒜엑!
영사십도는 다리를, 금강도법은 배를, 천뢰금도는 홀리의 검을 옭아맸다.
“후웃!”
홀리는 허공에서 신형을 바뀌어서 뒤로 훌쩍 내려섰다.
그러자 도부수가 뒤로 쭉 빠지고, 다시 장창을 든 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아니, 이미 창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창을 내지를 때마다 공기가 출렁거렸다. 그때,
“컥!”
느닷없이 도천패가 상반신을 크게 휘청이면서 신음을 토해냈다.
“왜 그래!”
당홍이 깜짝 놀라서 도천패를 쳐다봤다.
“으음!”
도천패가 이 앓는 소리를 흘렸다.
언제 어떻게 당했는지 왼쪽 가슴 아랫부분에 손가락 굵기의 비수가 꽂혀 있었다.
비수는 자루만 보일 정도로 깊이 꽂혔다. 당연히 피는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다.
왼쪽 가슴 아래…… 자칫했으면 심장이 뚫릴 뻔했다.
도천패 같은 사람이 어떻게 비수가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을까? 아니, 비수는 누가 던진 것인가?
갱도 안에는 장창을 든 사내와 대도를 든 자들밖에 없는데.
“조심 좀 하지!”
당홍이 속상해서 빽 소리 질렀다. 한데,
“끄으으윽!”
도천패가 또 비명을 질렀다.
도천패는 웬만해서는 비명도 삼키는데, 비명이 고스란히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굉장한 타격이었던 것 같다.
“허리!”
홀리가 소리쳤다.
도천패가 비명을 내지르면서 허리를 움켜잡았다. 홀리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봤다.
“일월혈! 지실혈!”
홀리가 매우 매우 급하게 소리쳤다.
그렇다. 도천패가 당하고 있는 것은 파신금령술이다. 이미 두 군데를 당했고, 마지막 한 군데 연액혈만 남았다.
순간, 당홍이 빽 소리 질렀다.
“엎드려!”
도천패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당홍은 도천패를 향해서 누런 독분을 확 뿌렸다. 도천패 주위 삼사 장을 완전히 독분으로 휘감아 버렸다.
“쿨럭! 크윽!”
도천패가 독성을 이기지 못하고 거친 기침을 토해냈다.
일월혈, 지실혈…… 이 두 마디를 듣는 순간, 당홍은 주치균을 떠올렸다.
주치균이 어디 있는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그가 손을 쓰고 있다. 단순히 도천패를 죽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폐인을 만들 생각이다.
파신금령술이 완성되면 도천패는 폐인이 된다.
혈마조차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버린 파신금령술인데, 도천패가 어떻게 감당하겠나.
그러느니 차라리 도천패를 중독시킨다. 도천패 주위를 맴돌며 마지막 연액혈을 찌르려는 주치균까지 중독시킨다. 누구도 도천패 주위에 다가서지 못하게 만든다.
도천패는 비수 두 대를 경혈에 박은 채 독분까지 들이마셨다.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주치균이 전개한 파신금령술은 아주 깊이 꽂힌다.
쿵!
도천패가 쓰러졌다.
당홍의 판단은 매우 빠르고 적절했다. 독은 해독하면 된다.
“들어!”
당홍이 급히 외쳤다.
순간, 홀리가 재빨리 달려들어서 당홍과 함께 도천패를 들었다. 그리고 뒤쪽을 향해 내던졌다.
두 여인은 생각 같아서는 도천패를 밀실로 넣고 싶었다. 당홍이 도천패를 잡으면서 ‘들어!’하고 외칠 때까지만 해도 도천패를 밀실에 넣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홀리가 도천패를 잡는 순간, 밀실이 발각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와락 치밀었다.
지금도 주치균이 사용하는 무령환살공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무령환살공은 혈마에게 특화된 공부다. 혈마를 잡기 위해서 천살단이 특별히 만든 무공이다. 하지만 갱도 안처럼 시야가 막힌 곳에서는 완벽하게 통하고 있다.
지금 주치균은 낭견대 은영마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은밀하다. 어둠이 곧 주치균이다. 어떤 공부, 어떤 진기로도 주치균을 파악해 낼 수 없다.
밀실이 드러나면 호발귀가 죽는다. 혈마가 되든, 되지 않든 무조건 죽는다.
그 생각이 일어나자 도천패를 밀실에 넣을 수 없었다. 그래서 십이철창진에서나 빼내자는 생각에 뒤로 던진 것이다. 주치균에게는 전혀 보호되지 않는데.
“아! 어떡해!”
홀리가 신음을 흘렸다.
이제 마지막 한칼, 비수가 연액혈에 꽂히면 도천패는 영영 폐인이 된다.
‘파신금령술!’
호발귀는 몸을 일으켰다.
파신금령술에 도천패가 당했다. 그러면 당홍도 당할 것이고 홀리도 당할 것이다. 모두 당한다.
진기라면 무령환살공을 파악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은 듯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혈마가 나서야 한다.
그렇다고 무령환살공의 먹잇감이 될 생각은 없다. 전에처럼 맥없이 파신금령술을 당할 생각도 없다.
지금은 주치균이 보인다.
무령환살공은 생기를 숨기는 공부다. 생기를 숨기면서 진기도 숨기고, 형체도 숨긴다. 모든 기운 일체를 숨긴다. 사자(死者)처럼 기척 없이 움직인다.
하지만 무령환살공이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다.
지금 당장은 호발귀가 혈마가 아니라는 점이다. 혈마도 아니지만, 인간도 아니다. 또 혈마이면서 인간이다. 혈마가 죽이라는 욕구를 토해내고, 자아가 참으라고 말한다.
현재 그는 반인반혈이다.
수태음폐경에 갇힌 자아, 인간의 모습이 무령환살공의 약점을 찾아가고 있다.
주치균은 생기를 어둠 속에 숨겼으나 그 어둠은 시커멓지 않다. 단단한 암석처럼 응어리져 있다.
혈마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인간의 눈에는 보인다.
진기로 파악하려고 했다면 파악할 수 없었을 것이다.
혈마의 혈기는 당연히 보지 못한다. 혈기에 대항하도록 만들어진 공부이지 않나.
진기로도 파악할 수 없고, 혈기는 아예 보지 못한다.
밝은 대낮이라면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지만, 어둠 속에서는 그조차도 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무적이다.
그런데 묘하게도 지금 호발귀는 인간의 진기와 혈마의 혈기 사이에 있다. 혈마의 기운, 혈기를 가지고 인간의 눈으로 관찰한다.
이성 잃은 혈마가 아니라 이성이 존재하는 인간이기에 가능하다.
홀리나 도천패, 당홍도 조금만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었으면 자신이 보는 암석 같은 기운을 찾아냈을 것이다.
아니 도천패나 당홍은 찾아내지 못했다. 진기로는 볼 수도, 찾을 수도 없다. 하지만 홀리는 찾을 수 있다. 홀리는 생기를 쓰면서 아직 혈마가 되지 않았다.
그녀가 생기를 일으키면 주치균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 때문에 생기를 쓰지 않는다. 오직 그 하나의 이유로 주치균에게 당할 위기에 놓였다.
저벅! 저벅!
호발귀가 밀실을 걸어 나갔다.
“어! 어! 이러면 안 되는데. 움직이면 안 되는데.”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다가오려고 했다. 하지만 새파랗게 빛나는 호발귀의 눈을 본 순간 얼음처럼 얼어붙고 말았다.
호발귀의 눈은 혈마의 눈이다. 인간의 눈이 아니다. 맹수가 먹이를 노리는 눈이다.
“으으……!”
해자수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저벅! 저벅!
호발귀는 해자수를 지나쳐서 밀실을 걸어 나갔다.
“아! 이…… 이거 안 되는데. 혈마로 변하면 안 되는데. 이봐! 좀 참지. 이봐, 호발귀. 나 좀 봐주지. 응?”
해자수가 어쩔 줄 몰라서 애원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