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三章 암로(暗路) (1)
“음!”
“이런!”
신음, 탄성, 경악……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원래부터 낭견대는 무시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이런 식으로 무너질 만큼 약하지는 않았다.
“몰살인가?”
“두 명 빠져나간 것 같은데, 몰살이지.”
“안도도 못 나왔지?”
“그놈이 수련한 무공, 백골마천공이야. 우리보다 약하지 않아. 그런데…… 음!”
몇 번을 고쳐서 생각해도 낭견대의 몰살은 이해할 수 없다.
이토록 완벽하게 패하기도 힘들 것이다. 낭견대 몰살이라니. 불마촌이 시상에서 지워졌다니.
그들을 멸절시킨 사람은 혈마가 아니다.
홀리, 도천패, 당홍, 해자수…… 우습게도 혈마 주변을 떠도는 어중이 네 명이 불마촌을 지워버렸다.
“이제 좀 실감이 드나?”
주치균이 놀리듯이 말했다.
낭견대에게 선수를 준 것이 못마땅했는데…… 까딱했으면 지금 저 자리에 누워있을 사람은 살단 무인일 것이다.
“싸움을 본 소감은 어때?”
주치균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연소부와 장향동은 침묵했다. 무슨 말을 할까? 몰살이 뜻밖이라고 할까.
낭견대가 예상보다 약했다고? 아니면 저들 무공이 이 정도인 줄 몰랐다고?
어떤 말도 살단 부대주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다.
낭견대가 몰살당했으니 이제는 자신들 차례다. 살단이 나가서 싸워야 한다.
한데 어떻게 싸울까? 백골마천공을 단숨에 베어버린 칼을 어떻게 상대할까?
막막해졌다. 정녕 저들이 이토록 강할 줄은 생각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낭견대가 저들을 뚫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피해를 주고 물러설 줄 알았다. 서로 피 터지게 싸운 후에 퇴각하는…… 그런 그림을 그렸다.
“자, 그럼 시작해야지? 누가 먼저 들어갈래?”
주치균이 말했다.
그 말에도 부대주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싸우는 것은 두렵지 않다. 언제든 싸울 수 있다. 다만 어떻게 공격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낭견대는 가장 모범적인 공격 방법을 보여주었다.
활로 길을 열고, 무인들이 뒤따라 들어간다. 개들이 앞을 막고, 무인들이 공격한다.
이것보다 더 완벽한 돌파방법은 찾아보기 힘들다.
한 가지 남은 게 있다면 아예 갱도 자체를 붕괴시키는 게 있는데, 그것은 천살단에서 원하지 않는다. 단주는 어떻게든 혈마를 생포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 어떻게 공격할까? 그것이 답답한 것이다.
“왜들 그래? 그토록 자신 있다더니.”
“저들의 진짜 실력을 가늠할 수 없어서 그렇습니다.”
장향동이 말했다.
“실력이 있든 없든 싸워야지? 살단이 언제부터 상대 실력 파악하고 싸웠어? 하하! 갈수록 실망인데? 왜 이래? 재미없게. 이러면 살단이라고 할 수 없잖아?”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거듭된 놀림에 연소부가 먼저 나섰다.
“그래야지. 가봐.”
주치균은 어떻게 갈 거냐고 묻지 않았다. 오로지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연소부가 일어섰다.
“우리가 먼저 간다.”
살단 무인들은 긴장을 풀지 못했다.
처음, 갱도를 볼 때만 해도 느긋한 기분이었다. 찾는 게 문제지 잡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아니, 저놈들을 잡아야겠지. 싸움이 끝난 후에 몇 명이나 살아남을까?
그래도 살단 체면이 있지. 많이 당하지는 말아야 하는데.
방심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 모두 팽팽하게 긴장의 끈을 잡아당겼다.
“독공이 예상된다. 충분히 대비하고. 도천패와 홀리가 전면에 나서는 것 같다. 대력도강과 혈맥참에 대비해라. 내가 해줄 말은 없다. 최선을 다해서 싸우고 살아남아라.”
연소부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말 중에 가장 적합한 말을 해줬다고 생각한다.
‘지금 상황에서 이것보다 더 확실한 말은 없어.’
살단 무인들도 싸움을 봤으니 말할 필요가 없다. 나머지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공격 방법도 스스로 찾아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죽이는 방법을 열어야 한다.
무공으로 뚫고 나간다!
“가자!”
연소부가 앞장 섰다.
“조금 쉬었다가 오지. 지치는데.”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지쳤으니까 더 빨리 와야지. 저놈들이 언제 사정 봐주는 것 봤어? 제일 공정하지 못한 놈들이 저놈들이라니까.”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꼭 남 일처럼 말하네. 우리가 싸워야 한다고. 지금 당장. 그런데 여긴 괜찮지?”
도천패가 당홍의 등에 금창약을 바르며 말했다.
괜찮지 않다. 상처가 굉장히 심하다. 뼈가 상하지 않았나 우려될 정도로 검이 깊게 박혔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 정도는 멀쩡한 거야.”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 해자수가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기 계속 있으면 공격만 당하잖아. 어떻게든 탈출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현실적인 문제다.
모두 암울한 눈으로 점점 다가오는 살단 무인을 쳐다봤다.
인원이 무려 스무 배가 넘는다. 한 사람당 스무 명씩은 꺾어야 한다. 그것도 전력이 아니다.
살단 무인 중 한 무더기는 아직도 뒤에 남아있다.
더군다나 저들은 낭견대보다 강하다.
가장 염려되는 사람은 뭐니 뭐니 해도 주치균이다. 주치균이 개입하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그래도 어떻게 방법이 없으니까. 뚫고 나갔으면 좋겠는데 그럴 만한 틈도 안 주고.”
도천패가 말했다.
포위망을 뚫고 싶어도 뚫을 수가 없다. 그나마 갱도 안에서 맞이하는 게 조금 낫다.
적을 한 면에서만 맞이하기 때문에 그나마 상대할 여력이 있다.
만약 사방에서 포위된 채 상대해야 한다면 그때는 정말 견디기 힘들 것이다.
“어떻게? 아까 그대로? 아니면 내가 이거 한 번 써볼까? 설마 지금도 때리진 않을 거 아니야.”
해자수가 호발귀를 흘깃 쳐다보면서 말했다.
“때릴걸?”
“그럴까?”
“그럴 거예요. 그것도 더 세게 때릴 것 같은데요? 호호!”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겠지? 그래. 저놈은 원래 인정머리가 없었어. 정신 좀 빨리 돌아오지 왜 저럴까?”
“그러게요. 혈마도 융통성이 있으면 좋을 텐데.”
당홍이 말했다.
생기를 쓰지 못하면 해자수는 거의 싸움을 하지 못한다.
살단 무인들에게는 그의 은신술이 통하지 않는다. 또 갱도 안에서는 은신술을 펼칠 수도 없다.
은영마도처럼 절정의 마도를 펼쳐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이상은 방법이 없다.
“그럼 나는 호발귀 곁으로. 나보고 호발귀를 지키라니까 지키기는 하는데, 내가 뭐 지킨다고 도움이 되나? 여차하면 이거 써야 하는데, 호발귀가 가만있지 않을 거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잖아. 그냥 구경하는 것밖에는.”
해자수가 투덜거리면서 밀실로 들어갔다.
해자수 말이 맞다.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다.
살단 무인들이 밀실을 파악하고 안으로 들어서면 어떻게 하나? 할 것이 없다.
생기를 쓰면 당장 호발귀에게 직격당한다. 은인문 무공을 쓰면 살단 무인들 밥이다.
한대 얻어맞는 것을 각오하고 생기를 쓸 수도 있다. 문제는 해자수를 치기 위해서 호발귀가 혈기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혈마로 둔갑할 가능성이 크다.
해자수가 생기를 쓰지 않아도 호발귀는 살단 무인들을 발견해낸다. 그리고 그들을 죽이기 위해서 혈기를 일으킨다.
그것 역시 혈마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떤 경우든, 밀실이 파악되면 호발귀는 혈마가 된다.
“언니, 독 있으면 지금 쓰지?”
홀리가 살단 무인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홍이 어색한 표정으로 웃었다.
홀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아는데…… 갱도 밖으로 독을 흘려보낼 수가 없다. 바람이 역으로 분다.
바깥에서 갱도 쪽으로 불기 때문에 일절 손을 쓰지 못한다. 그렇지 않았다면 홀리가 말하기 전에 먼저 사용했을 것이다.
독침과 비도도 쓰지 못한다.
비도는 늑대개와 낭견대 무인들에게 모두 사용했다.
독침도 몇 개 남지 않았다. 상처를 치료하느라고 비도를 미처 거두지 못한 것이 한이다.
주변에 있는 시신에게서 몇 개는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비도는 그냥 던져서는 소용이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암습 형태로 던져야 효과가 있다.
지금처럼 두 눈 빤히 뜨고 있는 데다가 던지면 누구든 쳐낼 것이다.
또 당홍은 비도술에 능하지 않다.
독활칠수는 엄밀히 말하면 비도술이 아니다. 비침은 날릴 수 있지만, 비도하고는 무게나 형태가 다르다. 독활칠수를 비도에 응용할 수는 있지만, 위력이 많이 떨어진다.
당홍도 이래저래 난감한 상황이다.
“괜찮아요, 언니. 우리,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저자들 충분히 막아낼 수 있어.”
홀리의 음성에는 확신으로 가득 찼다.
“생기를 쓰려고?”
“호호! 생기를 어떻게 써요. 큰일 나려고요?”
홀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면?”
“우리는 이기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안심해도 될 것 같아요.”
그때다. 당홍이 뭔가 생각난 듯 급히 물었다.
“호발귀! 호발귀 맞지?”
“호호호!”
“역시!”
당홍이 손뼉을 치면서 활짝 웃었다.
“그럼 그렇지. 그런데 왜 우리를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지? 아까 그거 생기격타, 맞지?”
“저도 추측만.”
“아! 아까 그거!”
도천패도 낭견대와의 싸움이 생각난 듯 손으로 이마를 '탁' 쳤다.
확실히 낭견대가 너무 무기력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강했는데, 나중에는 형편없었다.
“그럼 이건 도살인데. 싸움이 아니라 도살이야. 문주놈, 정신을 차려놓고는 모른 척하고 있네.”
도천패가 캄캄한 밀실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정말 그러네. 이건 도살이야. 살단이 됐든 뭐가 됐든 혈마가 개입하면 도살이 될 수밖에 없어.”
당홍도 모든 근심걱정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었다.
쒜엑! 쒜에엑! 타탁! 탁!
살단 무인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살단 무인은 지금까지 두 가지 절진을 선보였다. 칠성합격진과 철고방진이다.
두 진법 모두 철저한 수비를 바탕으로 간헐적 공격을 가하는 방식이다.
살단은 이번에도 새로운 진형을 선보였다.
제일선에 장창을 든 창수 여섯 명이 배치되었다. 안도선에도 일선과 똑같이 창수 여섯 명을 배치했다.
제삼선에는 대도를 든 도부수 세 명이 뒤따랐다.
낭견대가 사용한 화살 공격도 삼선 형태였는데, 병기만 바뀌었을 뿐이지 진형은 비슷하다.
아! 인원도 약간 달라졌다. 다섯 명에서 여섯 명으로 늘었다.
쒜에엑! 쒜에엑!
제일선 창수 여섯 명이 중단으로 창을 내질렀다.
일선 창수들이 창을 거둘 때, 이선 창수들이 상단으로 창을 내질렀다.
일선과 이선이 교대로 창을 내지른다. 무척 빠르게.
너무 빨라서 일선 창이 거둬지기도 전에 이선 창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인다.
삼선 도부수들은 언제 움직일지 예측하기 힘들다.
그들은 갱도 입구에서부터 창을 쓰기 시작했다. 앞에 아무도 없는데, 무작정 창을 내질렀다.
장창으로 반드시 무엇을 찌른다는 생각은 없다. 찌르는 행위만 존재한다.
창끝에 무엇이 걸려도 좋고, 걸리지 않아도 좋다는 식이다. 창을 내질러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창을 쓰는 것처럼, 밥을 먹기 위해 젓가락을 드는 것처럼 창을 쓴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한 발, 한 발…… 살단 무인들이 폐광 안으로 들어섰다.
다른 자들은 아직 들어서지 않았다. 부대주의 명령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듯한데…… 갱도 밖에서 팔짱을 낀 채, 안쪽 상황을 예의 주시한다.
“이놈들로만 승부를 가릴 셈인가?”
당홍이 말했다.
“그런 것 같은데. 그만큼 뭔가 있다는 거지. 이 창진에 대해서 뭔가 아는 것 없어?”
“전혀.”
“십이철창진(十二鐵槍陣)이에요. 창끝에 쇠사슬이 달려 있어서 앞으로 쏠 수 있어요. 창 한 자루 길이만큼 더 깊이 공격할 수 있으니까…… 접근하기가 어렵겠네요.”
홀리가 말했다.
“창끝에 쇠사슬? 이건 반칙인데. 그럼 이거…… 싸울 방도가 없잖아?”
도천패가 난감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