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二章 암전(暗箭) (5)
쉣!
당홍은 이상한 느낌에 고개를 돌렸다.
일단 어둠이 보였다. 그리고 흐릿한 영상이 보였다. 검이 달려드는 모습도 확인했다.
“웃!”
당홍은 급히 신형을 비틀었다.
쒜에엑!
검이 몸을 스치며 흘러갔다.
‘은영마도!’
당홍은 검의 정체를 알았다. 한데…… 이 검이 은영마도라면 정말 이상하지 않나. 은영마도는 어둠과 완전히 동화되어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보인다.
상대방의 움직임이 다소 둔화되었다.
빠른 속도로 움직임을 감춰야 하는데, 신법이 마공을 따라가지 못한다.
은영마도를 유지하는 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희끄무레한 그림자를 남긴다.
‘잡았어!’
쒜에엑! 쒜에엑!
당홍은 즉시 뿌연 어둠을 향해 독침을 던졌다.
여섯 살 때부터 수련한 독활칠수가 유감없이 펼쳐졌다. 독침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퍼억! 퍽! 퍽!
독침이 꽂히는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홍은 마음으로 소리를 들었다.
은영마도를 펼치던 자는 머리, 가슴, 배 세 군데에 독침을 맞고 비틀비틀 물러섰다. 아니, 바로 뒤로 벌렁 쓰러졌다. 한순간에 정신이 아득해졌을 것이다.
“이걸로 빚은 갚았고!”
당홍이 말했다.
“용케 잡았네?”
도천패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저놈, 당황했나? 은영마도를 제대로 펼치지 못했어. 내 앞에서 그러면 안 되지.”
“하하하! 내가 봐도 약간 미숙했어.”
도천패가 말했다.
도천패의 눈에도 은영마도가 보였던 듯하다. 당홍이 독침을 던지지 않았다면, 그가 대도를 떨쳐냈을 것이다.
“이놈들 무공, 재미있지 않아?”
“상상 이상으로 강해.”
“좋지 뭐. 어디 한번 끝까지 해보지.”
당홍이 다시 몸을 추슬렀다.
도천패가 대도를 꽉 움켜쥐고 다시 앞으로 나섰다.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낭견대 무인들이 일시에 쥐약이라도 먹은 듯 갑자기 무공이 약해졌다.
쒜에엑!
마공을 펼친다. 한데 너무 환히 보인다.
마인이 양손에 든 검을 현란하게 움직였다.
‘쌍수격공검(雙手隔空劍) 같은데?’
양손의 움직임이 어찌나 빠른지 손목이 서로 붙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홀리는 완전히 붙어 있다고 보였던 양 손목 사이에서 틈을 찾아냈다.
손과 손 사이에 빈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여서 이상할 지경이다.
이렇게 되면 쌍수격공검은 무너진다.
생각은 곧바로 행동으로 이어졌다.
슈웃!
검이 쌍수격공검 사이를 파고 들어갔다. 양손 사이, 손목과 손목의 틈으로 슬며시 흘러 들어갔다. 그리고 곧바로 상대방의 가슴에 검을 꽂았다.
“후욱!”
상대방이 몹시 놀랐는지 눈을 부릅떴다.
놀라기는 홀리도 마찬가지다.
쌍수격공검은 틈이 없는 검법이다. 어디를 어떻게 공격해도 검날에 부딪힌다.
거대한 풍차와 싸우는 느낌이 든다. 검이 회오리 물결 속에 파묻힌 듯한 느낌?
지금처럼 틈이 환히 보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이놈들 이상해. 갑자기 둔해졌어.’
당홍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정말 이상하다. 사람은 그렇다고 치자. 늑대개들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로 느려졌다. 늑대개가 맹렬하게 달려들기는 하는데, 그 움직임이 눈에 훤히 보인다.
슈숫! 슈우우웃!
당홍은 거침없이 비도를 던졌다.
비도가 날아가 정확하게 늑대개의 미간을 꿰뚫었다.
깨깽! 깨애앵!
늑대개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당홍이 늑대개를 죽이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다. 별로 내세울 것도 없다. 매우 당연한 일이지 않나. 하지만 당홍 자신은 이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마치 다른 세상에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들은 멀쩡한데, 갑자기 낭견대와 늑대들만 느려졌다.
은영마도에 당할 때만 해도 저들은 날카로움의 극치였다. 아주 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강한 모습이 전혀 없다. ‘이건 뭐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형편없다.
쒜엑! 쒜에엑!
비도를 연달아 쳐냈다.
비도는 늑대개한테도 꽂히고 낭견대 무인도 꿰뚫었다.
다른 때 같으면 얼마든지 막아낼 비도인데, 이제는 막지 못한다. 던지는 족족 급소에 맞고 나가떨어진다.
초일류 고수가 갑자기 삼류 고수로 전락한 느낌이다.
‘이건 정상이 아니야. 분명히 정상이 아니야. 누군가 도와주고 있어. 혹시 호발귀가?’
당홍은 호발귀를 쳐다보고 싶었다. 하지만 쳐다보지 못했다.
지금은 싸움 중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둔해졌다고 해도, 달려드는 칼에는 눈이 없다. 어린애가 내지른 칼에도 베이면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흐른다.
상대방이 일류 고수이든 삼류 고수이든 싸움판에서는 방심해서는 안 된다.
쒜엑! 쒜에엑!
그녀는 계속해서 비도를 내던졌다.
더운 희한한 것은 마공의 단점이 한눈에 읽힌다는 점이다. 저자는 가슴, 저자는 미간, 저놈은 다리…… 취약한 곳이 보자마자 즉시 눈에 띄었다.
비도를 던지는 손길에 망설임이 있을 리 없었다.
쒜엑! 쒜에엑!
“커억!”
비도와 독침이 던져질 때마다 비명이 울렸다.
도천패는 대도를 거침없이 휘둘렀다.
예전에는 대력도강이 상대방에게 막혔다. 방패에 막혔고, 투망에 막혔다. 곧바로 몸통을 치지 못하고 교전을 거듭했다. 반격까지 허용했었다.
한데 이제는 막히지 않는다. 마음 놓고 칼을 휘두른다. 그리고 곧바로 상대를 타격한다. 병기에 부딪히는 일도 없고, 신법을 사용해서 몸을 피할 이유도 없다.
상대가 너무 느리다!
쒜에엑! 퍼억!
낭견대 무인들이 푹푹 나가떨어졌다.
주의해야 할 건 화살이다. 화살 공격만은 아직도 예리하다. 하지만 저들도 마음 놓고 화살을 날리지 못한다.
낭견대 무인들이 앞에서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당홍이 독을 살포할 수 없듯이 저들도 화살을 쏘지 못한다.
그 사이에서 홀리와 도천패는 낭견대 무인들을 차분차분이 도륙해 나갔다.
‘졌다!’
안도는 쓰게 웃었다.
수하들이 피떡이 되어 널브러져 있다. 늑대개는 독침과 비도를 맞고 쓰러졌다.
칼에 맞아서 몸뚱이가 양분된 놈도 있다.
낭견대는 더욱 처참하다. 시신이 갱도 입구에서부터 안쪽 십여 장까지 산처럼 쌓여 있다.
남은 자는 안도 자신까지 세 명이다.
“너희는 몸을 피해라.”
안도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이토록 침착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약간 놀랐다.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되는데…… 지금에서야 대사형의 풍모를 배운 것 같은 기분이다.
“네?”
수하가 되물어왔다. 안도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내가 너희들한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이 길로 몸을 피해서 평범하게 살아라. 천살단이든 혈천방이든…… 네놈들에게는 모두 적이다. 네놈들을 보면 어느 쪽이든 다 죽이려고 들 거야. 네놈들이 수련한 공부, 마공 아니냐. 그러니 무공은 잊어버리고, 평범하게 살아. 남의 눈길 끌지 말고.”
수하 두 명은 서로를 쳐다봤다.
이미 승산은 없다. 이 싸움을 지속하면 자신들 역시 죽을 길밖에 없다.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들은 이대주에게 머리를 숙여 보인 후, 갱도 밖으로 신형을 튕겨냈다.
‘바보 같은 놈들.’
안도는 멀어져가는 수하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저들이 언제까지 천살단과 혈천방의 눈을 피해서 살 수 있을까? 평생 배운 짓이라고는 마공 수련한 것밖에 없는데, 뭘 하면서 살 수 있을까.
저들의 삶은 무척 고달플 것이다.
이리 버티고 저리 버티다가 끝내는 이판사판 심정으로 무공을 드러낼 것이고, 그러면 참살당한다.
저벅! 저벅!
안도는 세 사람을 향해 걸었다.
“내가 세 명을 모두 상대한다는 건 어림도 없고, 한 명만 싸워줬으면 좋겠는데.”
“내가 하지.”
도천패가 앞으로 나섰다.
스읏! 슷!
두 사람은 말없이 검과 칼을 들어 올렸다.
안도는 잠깐 망설이다가 아직 미완성인 마공 탈백섭혼공(奪魄攝魂功)을 끌어냈다.
그가 익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은 백골마천공이다. 그러나 이들의 무공을 보면 백골마천공으로는 옷깃도 건드리지 못한다.
적어도 일세를 풍미할 정도의 마공, 백골마천공보다 두 배는 더 강력한 마공이 필요하다.
‘아직 미완성이기는 하지만……’
츠으으으으읏!
안도의 신형이 흐릿한 안개로 휘감기는 듯했다.
벌써 도천패의 이지를 흔들고 있다. 몽혼약에 취한 듯 정신도 몽롱해질 것이다. 실제로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그의 진기가 아직 강제로 정신을 몽롱케 할 정도로 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계속 진공을 풀어낸다.
도천패는 차분히 상대방을 검을 쳐다봤다.
병기가 부딪치기 전에 진기가 흘러들어와서 경맥을 건드린다. 진기끼리 탐색을 먼저 한다.
분명히 정상적인 무공은 아니다.
이 무공 또한 극점에 이르면 검을 펼치기도 전에 싸우려는 의지를 말살시킬 수 있다.
‘탈백섭혼공!’
다행히도 도천패는 진기 탐색을 당한 경험이 매우 많다.
호발귀는 늘 생기격타를 했다. 무공을 증진해주는 방편이었는데, 생기로 진기를 건드렸다.
그런 경험이 있어서 탈백섭혼공을 즉시 알아챘다.
안도에게는 운이 나쁜 날이다.
스으읏! 까앙! 까아아앙!
두 사람은 순식간에 어우러졌다. 검과 칼이 부딪치면서 십여 초나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다.
‘호발귀.’
홀리는 밀실을 쳐다봤다.
호발귀는 싸움이 시작된 후에도 밀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싸우는 내내 생기격타로 도와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안도가 탈백섭혼공을 펼치지 않았다면, 낭견대가 갑자기 약해진 이유를 몰랐을 것이다.
호발귀가 저들의 생기를 짓눌렀다.
그 때문에 저들이 본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중간에서 진기가 끊긴 자도 있을 것이고, 처음부터 제대로 진기를 끌어내지 못한 자도 있었을 것이다.
싸움이 정리되자 호발귀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도천패는 안도와 본래 무공으로 싸우고 있다.
생기격타로 짓눌리지 않은 탈백섭혼공과 대력도강이 전심전력으로 부딪치는 중이다.
호발귀는 도천패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안도에게는 생기격타를 쓰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무인 대 무인의 싸움이니 서로가 본래 무공으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고마워.”
홀리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녀가 중얼거린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호발귀와 해자수는 밀실에 들어가 있다. 도천패는 싸우는 중이고, 당홍은 뚫어지게 도천패를 쳐다본다.
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귀담아들을 사람은 없다.
홀리는 자신의 음성이 호발귀에게 전해졌다고 확신했다. 모든 사람이 못 들어도 호발귀만은 들었을 것이다.
호발귀는 가까이 다가서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늘 곁을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도와줄 거면서 왜 거리를 벌리는지 모르겠다.
이 싸움을 벌인 후, 홀리는 마음이 편해졌다.
호발귀가 도와주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니 천군만마를 등에 업은 듯 힘이 솟는다. 이제는 불안한 마음이 말끔히 가셨다.
낭견대와 살단이 몰려왔을 때는 불안한 마음이 다소 있었지만, 이제는 마냥 편하기만 하다.
누가 와도 좋다. 누구하고라도 싸울 수 있다.
흘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도천패의 싸움을 지켜봤다.
탁!
대력도강이 안도의 머리를 쳐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