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二章 암전(暗箭) (3)
쒜엑! 쒜에엑!
갱도를 향해 화살이 쏘아졌다.
적을 보고 쏘는 화살이 아니다. 무작위로 무턱대고 쏘는 유시(流矢)다.
대체로 갱도는 꾸불꾸불하게 만들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면 굽이가 있을망정, 입구는 반듯하고 평평하게 길을 내놨다. 몸을 숨길 곳이 없다.
안에서 독침을 쏘아대고 있으니, 이쪽에서는 그에 대항해서 화살을 쏜다.
화살이 훨씬 타격력도 강하고 살상 범위도 넓다.
컹컹! 컹컹컹!
개들도 와락 달려들어서 짖어댔다.
개들은 예민한 후각으로 갱도 안에 있는 사람들의 냄새를 맡는다.
그들이 어디쯤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일도 아니다. 당연히 그쪽을 향해 짖어댄다.
늑대개가 화살 목표를 알려주는 셈이다.
쒜엑! 쒜에엑!
낭견대는 끊임없이 화살을 쏘며 전진했다.
한 번에 다섯 명씩 쏜다. 일조가 쏘고, 바로 뒤를 이어서 이조가 쏜다. 다시 삼조가 쏜다. 그동안 화살을 재운 일조가 다시 앞으로 나서서 쏜다.
화살을 쏘는 사람은 모두 열다섯 명이다. 하지만 화살은 한시도 틈을 주지 않고 날아간다.
비록 한 번에 날아가는 화살은 다섯 대이지만 갱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받아야 하는 압박감은 엄청날 것이다.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을 게 뻔하다.
‘음! 놈들이 없다.’
안도는 미간을 찌푸렸다.
진기를 극한까지 일으켜서 갱도 안에 동정을 살폈다.
갱도 안에서는 어떠한 기척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예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이놈들 은신술이 장난 아니네.’
무공이 높은데 은신술까지 뛰어나다. 이러니 혈천방이고 살단이고 펑펑 나가떨어졌겠지. 혈마만 문제가 되는 게 아니다.
옆에 있는 놈들도 정말 강하다.
하지만 뚫고 나가야 한다.
안도는 자신이 일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과 마주 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먼 훗날 돌이켜보면 일생을 바꾼 가장 큰 전환점이 바로 이 순간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기서 이 난관을 뚫고 나가면 일생이 편해진다. 원하는 대로 승승장구할 것이다.
평소 불마촌이 바라던 대로 천살단 주력이 되어서 기를 펴며 살 수 있다.
이 난관을 뚫지 못하면 마인으로 전락한다.
이번 싸움에서 낭견대는 상당히 큰 피해를 본다. 어쩌면 재기가 불가할 정도로 큰 타격을 입을지도 모른다.
거기에 목적까지 이루지 못하면 그야말로 끈 떨어진 연이 된다.
마공을 수련한 정도 문파의 수하.
이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거기에 실패까지 겹쳐지면 딱 버려질 운명이다.
“이놈들! 너희 꼭 잡고 만다.”
안도는 갱도 안으로 들어섰다.
도천패가 당홍에게 등을 내밀었다.
“쌍학?”
“그래.”
“어휴! 여기서?”
“왜?”
“쌍학을 펼치면 좋기는 한데…… 보다시피…… 갱도가 좁아서 좀 힘들지 않을까?”
“아!”
도천패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쌍학은 하늘을 자유분방하게 날아다녀야 한다. 하지만 갱도는 겨우 사람 키 높이다. 위로 떠오를 수가 없다.
당홍이 도천패의 등을 손으로 탁탁 쳤다.
“오랜만에 짐 없이 홀가분하게 싸워봐. 내가 뒤에서 받쳐줄게.”
당홍이 독침과 독분을 들어 보였다.
당홍은 상당히 많은 독을 준비했다. 맞서 싸워야 하는 적이 대부분 강적이기 때문에 의외이면서도 강력한 독으로 준비했다. 실로 방어하기 힘들다.
그녀는 아직도 사용하지 않은 독이 많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독을 가졌는지 안다면 낭견대로 함부로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싸움이 갱도 안에서 벌어지면 독을 사용하기 곤란해진다.
도천패가 나서고 홀리와 해자수가 같이 싸운다. 그러면 독분을 쓰기가 어렵다. 자칫하면 이쪽 사람들까지 중독될 우려가 있다. 물론 해약이 있지만.
격전 중에는 독침만 사용 가능하다.
“언니, 앞은 나와 형부가 맡을게. 언니는 뒤에서 지원해주고. 해자수는 안에서 저 사람을 봐줘.”
홀리가 당홍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혀, 형부?”
당홍이 얼굴을 붉혔다.
“형부, 맞잖아. 아냐? 마음에 둔 남자 따로 있으면 형부라는 말, 취소하고.”
“너, 까분다?”
“지금은 까불어도 될 것 같은데? 호호호!”
홀리가 웃었다.
반면에 해자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밀실을 쳐다봤다.
호발귀에게 한 대 얹어 맞은 후부터는 가까이 가기가 꺼려졌다. 자신도 모르게 불쑥불쑥 생기를 일으키는데, 그때마다 얹어 맞으면 골병들지 않겠나.
무엇보다도 혈마로 변한 상태에서 두들겨 맞으면 한순간에 저승 간다.
“그래도 내가 낭견대를 몰살시킨 사람인데, 겨우 사람이나 지키지 있는 처지가 되다니.”
“언제는 뭐 안 그랬고? 안 그런지 얼마 안 됐잖아. 새삼스럽게 뭘 그래?”
“아! 아씨는 정말 사람 기죽이는 데는 일가견 있다니까. 알았어요, 알았어. 지키면 되지, 뭐.”
해자수가 툴툴거리며 밀실 안으로 들어갔다.
밀실 안에 들어간다고 해도 호발귀 곁으로 다가가지는 못한다. 사람이 다가오는 걸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
“내가 앞을 막는 게 좋지 않을까? 날 뚫고 나가는 놈들이 있으면 그때나 막아주고.”
도천패가 말했다.
“그것도 괜찮네요. 어쨌든 일단 아무거나 해봐요.”
홀리가 빙긋 웃었다.
스스스슷! 쒜엑! 쒜에엑!
비도탈명(飛刀奪命)이 터졌다.
사개(使介)는 비도백사(飛刀百死)의 비도탈명술을 수련했다.
불마촌에서 마공이 아닌 정종 무공을 정통으로 수련한 유일한 무인이다.
비도백사는 비도탈명술로 단 사흘 만에 백 명을 죽였다.
무공 자체는 정종 무공이지만 비도백사의 성격이 포악해서 추살 당해 죽었는데……
그가 창안한 비도탈명술이 패공(覇功)으로 분류되어 마공관에 소장되었다.
살상력이 너무 강하다는 이유다.
사개는 비도탈명술을 수련한 후, 비도를 무려 쉰 자루나 가지고 다닌다. 하지만 한 자루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
비도를 쓰더라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은밀히 사용하곤 했다.
사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불마촌 무인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살아왔다.
이번에는 정말 마음껏 비도탈명을 펼친다.
안도가 사개를 제일선에 내세운 것도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선제공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공격이 비도탈명이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쉬잇! 탕탕탕! 탕탕!
도천패는 대도를 휘둘러서 비도를 막아냈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는 날카로운 안목, 예리한 눈썰미를 요구한다. 강함보다는 빠름이다.
밝은 안목보다는 섬세한 눈길이 필요하다. 잘 지켜보는 눈길 말이다.
그 눈길이 비도를 막을 수 있는 무공이 되어 주었다.
쒜에엑!
도천패가 비도를 막는 사이, 다른 자가 달려들었다.
갱도는 네다섯 명이 움직이기에 충분할 정도로 넓다. 위로는 날아오를 수 없지만, 좌우로는 여러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 수 있다. 격전이 충분히 가능하다.
쒜엑! 쒜에엑!
도천패는 대도를 가로로 그었다. 횡소천군을 펼쳐서 낭견대를 후려쳤다. 한데,
까앙!
이번에는 도천패의 대도가 강력한 방패에 막혔다.
“웃!”
도천패는 깜짝 놀라서 상대방을 쳐다봤다.
누가 감히 대력도강이 깃든 대도를 막을 수 있단 말인가!
상대는 역사가 아니다. 힘이나 제대로 쓸 수 있을지 모를 정도로 빈약해 보인다.
“만도방패(萬刀防牌) 같은데?”
홀리가 뒤에서 빠르게 말했다.
칼 만 자루를 막을 수 있다는 무적의 방패, 만도방패.
그렇다면 만도방패를 들고 있는 자는 벽화철화공(碧花鐵火功)을 구사한다.
쇠를 백 번 이상 제련해서 만들었다는 백련제강(百鍊製鋼) 만도방패보다도 사내가 구사하는 벽화철화공이 더 위력적이다. 벽화철화공이 있기에 만도방패도 존재한다.
“그래! 어디!”
도천패는 오기가 치밀어서 대도에 진기를 넣어 만도방패를 후려쳤다.
까앙! 깡! 까아아앙!
연달아서 방패를 두들겼지만, 그때마다 대도가 방패에 가로막혀서 튕겨 나왔다.
빈약해 보이는 사내는 도천패보다 힘이 약하다. 진기도 약할 것이다. 그런데도 방패에 집중하는 힘이 굉장히 강하다. 이것이 벽화철화공의 진수다.
그 순간, 몇 자루인지 모를 비도가 방패 사이를 지나쳐서 도천패에게 날아갔다.
도천패의 대도가 막 튕겨 나가는 찰라, 앞가슴이 환히 노출된 것을 놓치지 않았다.
“어딜!”
홀리가 도천패 앞으로 나서며 검을 휘둘렀다.
까앙! 깡깡깡깡!
비도 다섯 자루가 튕겨 나가 벽에 부딪혔다.
당홍도 틈을 발견하고는 즉시 독침을 던지려고 했다. 비도를 던지는 순간, 조금이나마 허점이 보였다. 하지만 화살이 날아와서 결국은 던지지 못했다.
당홍은 미처 독침을 던지지 못하고 허리를 숙이며 화살을 피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화살이 굽혀진 등을 스치며 뒤로 흘러갔다.
낭견대는 갱도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 강력한 무공을 발휘한다. 이것이 낭견대의 진짜 무공이다.
오직 늑대개에게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승부!”
홀리가 다시 도천패에게 앞을 비켜주었다.
순간, 도천패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도를 네 번이나 내리쳤다.
대력도강을 품은 대도가 천근의 무게를 담고 방패를 후려쳤다.
까앙! 꽝! 꽝! 꽝!
대력도강이 폭발할 듯이 거칠게 터졌다.
까아아아앙! 꽝!
드디어 만도방패가 깨졌다. 대력도강이 벽화철화공을 짓눌렀다. 그리고 방패를 들고 있던 자를 단숨에 피투성이로 만들어서 저승 고혼으로 날려버렸다.
“크아아악!”
처절한 비명이 뒤를 이었다.
그때, 흩어진 호흡을 가다듬을 틈도 없이 이번에는 투망이 날아와 전신을 덮었다.
도천패는 한걸음 뒤로 물러서며 대도로 투망을 걸었다.
촤라라라락!
대도가 투망을 둘둘 말아 감았다.
도천패는 투망을 앞으로 확 잡아당겼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상대방의 안면을 가격했다. 한데,
쒜엑!
귀를 찢는 파공음이 터졌다.
상대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느닷없이 불쑥 장창을 찔러 왔다.
“웃!”
도천패가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대도는 놓아버렸다. 상대는 끌려오는 것이 아니다. 끌리는 힘에 달려오는 힘까지 가세했다. 두 힘이 장창 한 자루에 모여서 가슴을 찔렀다.
대도를 잡고 있으면 장창을 피할 수 없었다.
슈우우웃! 타앙!
어김없이 홀리가 앞으로 튀어나와 장창을 쳐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녀도 순순히 뒤로 빠지지 않았다. 검 끝이 파르르 떨린다 싶더니 이내 독아(毒牙)를 드러냈다.
파라라락!
검이 혈접(血蝶)이 되어서 날았다. 상대방의 머리를 혈맥참으로 날려버렸다.
“크아악!”
낭견대원이 또 한 명 쓰러졌다.
홀리가 뒤로 빠지고 도천패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즉시 투망에 얽혀 있는 대도를 움켜잡았다. 머리가 깨져서 죽어가는 자의 가슴을 발로 걷어찼다.
퍼억!
사내가 뒤로 붕 날아가 떨어졌다.
하지만 세 사람도 즉시 신형을 날려서 벽에 찰싹 달라붙어야만 했다.
쒜엑! 쒜엑! 쒜엑! 쒜에엑!
화살이 무더기로 날아왔다.
도천패가 대도를 휘둘러서 팔방풍우(八方風雨)를 펼쳤다. 칼이 풍차처럼 휘르르릉! 휘돌았다.
화살이 사방으로 퉁겨나갔다.
이번에 쏘아진 화살은 유시가 아니다. 갱도 안으로 들어선 자들이 눈으로 보고 쏜 것이다.
“이놈들이 이렇게 강했나?”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생기를 사용하지 않고 진기 무공을 펼칠 때, 낭견대는 제 능력을 발휘한다.
원래 낭견대는 혈마를 잡기 위해서 탄생시킨 괴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아!”
도천패가 크게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