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二章 암전(暗箭) (1)
낭견대 무인들이 폐광 안으로 진입했다.
낭견대는 공격할 때 순서가 있다. 언제나 늑대개를 앞세운다. 늑대개가 적을 포위하고 위협을 가하니 서둘 필요가 없다.
그 뒤에 유유히 나타나서 숨을 끊어 놓으면 된다.
이것이 전형적인 낭견대 공격 방법이다.
한데 지금은 방법이 달라졌다. 늑대개를 대동하지 않고 낭견대 무인이 단독으로 움직였다.
스읏! 슷! 스으읏!
한 명, 그 뒤에 두 명, 또 그 뒤에 세 명.
일차로 여섯 명이 진입했다.
이들은 정탐조다. 또 선발대다. 낭견대가 들이치기 전에 먼저 들어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당연히 공격받을 것을 예상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늑대개는 뒤에 떨어져서 다른 사람의 손에 잡혀있다.
일인일견(一人一犬), 늑대개 한 마리에 주인 한 명이 붙는다. 그러니 이들에게도 자신만의 늑대개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개를 버리고 폐광 안으로 진입한다.
늑대개도 주인이 혼자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도 짖지 않는다.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금방이라도 호랑이라도 잡아먹을 듯 요란하게 짖어대던 개떼가 일시에 조용해지자 사방은 그야말로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만큼 적막했다.
그렇다고 여섯 명이나 되는 무인이 그냥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일단, 여섯 명 모두 절정마공을 수련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검을 맞지 않을 자신이 있다. 나름대로는.
스스! 스스스슷!
그들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매우 은밀하게 사방을 살피면서 안으로 진입했다.
슷!
맨 앞에서 길을 인도하던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이제 곧 어둠이다. 폐광 깊은 곳이어서 빛이 스며들지 않는다. 그러니 눈을 어둠에 익혀 놓아야 한다.
모두 살며시 눈을 감고 어둠을 익혔다.
폐광 안은 칠흑처럼 어둡지만, 횃불을 밝히지 않는다.
그들의 목적은 염탐이나 싸움이 아니다. 안으로 깊숙이 진입해서 폐광 안쪽에 개장국 세 그릇을 놓아야 한다.
폐광을 안쪽부터 차단해야 한다. 혈마 일행이 공격을 피해서 안쪽으로 도주하지 못하게끔 차단하는 역할이다.
스읏!
눈이 어둠에 익자, 앞선 자가 걸음을 떼어놓았다.
그들은 벽에 바싹 붙어서 걸었다. 그래야 길을 잃지 않고, 무언가에 부딪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스읏! 스으으읏!
한 명이 나아가면 뒤이어 다섯 명도 따라갔다.
“컥!”
앞서서 걷던 부인이 갑자기 외마디 신음을 흘리며 부르르 떨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털썩!
그가 무릎을 꿇더니 거목 쓰러지듯 거칠게 무너졌다.
‘암습!’
뒤따르던 무인들이 즉시 양쪽 벽으로 쫙 붙었다.
병기를 꽉 움켜잡고, 전신 진기를 극도로 끌어 올렸다. 어디서 공격을 해오든 반격할 태세를 갖췄다.
한편으로는 쓰러진 자를 쳐다봤다.
그는 이미 절명했는지 꼼짝도 하지 않는다. 팔이 꺾인 자세로 넘어졌는데, 솜털 한 올 움직이지 않는다.
어떤 수법에 당했는지, 단 일격에 즉사다.
처음, 신음을 흘리면서 무릎을 꿇은 게 전부다. 그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츠으읏! 촤아앗!
다섯 무인은 즉시 마공을 끌어냈다.
적은 분명히 앞에 있다. 사위가 너무 캄캄해서 찾아낼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그들은 벽에 등을 붙이고 사방을 훑었다.
인기척이 없다. 어디 숨어 있을 만한 것도 없는데 도대체 어디에 숨었나.
벽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한 명이 쓰러진 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그가 사인을 살폈다. 몸을 뒤집어서 피가 흐르는 곳을 찾으려고 했다. 검에 맞았는지, 암기에 당했는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상대방의 수법을 알아내면 방비가 조금 쉬워진다. 한데,
“크윽!”
시신을 살피던 짧은 단발마와 함께 풀썩 쓰러졌다.
“뭐야!”
벽에 붙어 있는 자가 속삭이듯 말했다.
“뭐 본 거 있어?”
“못 봤어. 암기인가?”
“아니. 파공음이 없었다. 암기는 아냐. 독이다.”
다른 자가 말했다.
그들은 두 명이 독에 중독되어서 죽었다고 확신했다.
누가 공격해오는 걸 보지 못했다. 사람이 직접 다가와서 공격한 것은 아니다.
암기가 날아오는 소리도 못 들었다. 아주 작은 비침이 날아들어도 공기를 찢는 소리가 울린다.
어떤 암기든 허공을 부수지 않고는 날아들지 못한다.
그들은 어떤 소리도 듣지 못했다.
같은 자리에서 쓰러진 두 명이 암기에 맞아서 죽은 것은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독밖에 없다.
“혈마는 아니지?”
“혈마는 이런 식으로 죽이지 않아. 독이 맞아. 당홍이라는 계집이다. 계집이 여기 있어.”
스스!
그들은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피독단을 꺼내 입에 물었다.
독을 조금이라도 피해 보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중독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당홍이 쓰는 독이라면 틀림없이 절명독이다. 그들이 지닌 피독단으로는 당홍의 독을 이겨낼 수 없을 것이다. 암산 당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들은 누가 말을 하지 않아도 본인 스스로 호흡을 절제했다.
거친 숨을 버리고 길고 가는 숨을 택했다. 가급적 폐기(閉氣)를 오래 유지했다.
그러면서 앞사람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앞사람이 일정 거리를 나아갈 동안 남은 사람은 움직이지 않았다. 서로의 거리가 삼 장 정도 벌어졌을 때에서야 비로소 또 한 사람이 움직였다.
앞사람이 왼쪽 벽에 붙어서 움직이면 다음 사람은 오른쪽 벽으로 붙었다.
공격을 받더라도 떼로 죽는 경우는 없어야 한다.
그러면서 앞사람이 쓰러질 경우, 어떻게 죽는지 알려고 노력한다. 특히 지금처럼 독에 중독되어서 죽을 때는 암산 여부를 세밀히 파악해서 보고해야 한다.
보고는 맨 마지막에 남은 사람이 한다.
여섯 번째 사람은 폐광 안으로 들어서지 않는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꿈쩍하지 않고 앞사람들을 지켜본다. 그러다가 모두 쓰러지면 지체없이 물러나서 보고한다.
물론 쓰러지지 않고 목적지까지 다가가도 그는 움직이지 않는다.
맨 마지막 사람은 지켜보는 것이 주어진 임무다. 어떻게 보면 가장 재수 좋은 놈이다.
그런데…… 입구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낭견대원이 털썩 무릎을 꺾었다.
“끄으으으윽!”
그는 앞사람이 들으라고 일부러 큰 비명을 흘렸다.
“뭐야?”
앞에서 걷던 무인들이 당황해서 즉시 뒤돌아봤다.
이번에도 기습을 당했다. 앞에서 공격이 있을 줄 알았는데 가장 뒤에 있는 자를 쳤다.
도대체 어떤 수법인가.
남은 세 명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의 이동 수법이 모두 막히고 있다. 이렇게 움직이든 저렇게 움직이든 결국은 전멸이 예상된다. 독을 쓰는 자는 침입자의 수법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
‘분산되면 공격당한다.’
‘모이는 게 낫겠어.’
흩어져서 공격당하는 것보다는 밀집해서 움직이는 쪽이 나을 것으로 보였다.
세 명은 즉시 한 자리로 모였다.
서로 등과 등을 맞대서 삼각 형태를 이루었다. 그리고 사방을 경계했다.
맨 뒤에 있는 자가 죽었다는 것은 뒤에서도 공격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 앞만 경계해서는 안 된다. 사방을 두루 살펴야 하는…… 상당히 피곤한 싸움이다.
스스스슷!
그래도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조심을 거듭하면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털썩! 털썩! 털썩!
세 명이 일제히 쓰러졌다.
‘크윽!’하고 짧은 단발마를 쏟아냈지만, 폐광 밖으로 흘러나가지는 않았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자신들이 어떻게 당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들이 수련한 마공은 마공관에 소장될 만큼 지독한 것이다. 정통으로 무공을 수련한 무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파괴력을 지녔다.
그런 마공을 써보지도 못했다.
어디서 어떤 공격을 받아도 즉각 응대할 수 있도록 경각심을 곧추세웠지만, 결국은 힘없이 무너졌다.
“으음! 지독하군.”
도천패가 중얼거렸다.
“뭐가 지독해?”
당홍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다.
“지독하지. 사람을 단숨에 죽여버리잖아. 이건 뭐 무공이고 뭐고 필요 없네. 그냥 픽픽 쓰러져버리니.”
“그러면 호랑이는?”
“엉?”
도천패가 뭔가 깜빡 실수한 듯 당홍을 쳐다보며 눈을 끔뻑거렸다.
“호호호! 얘들은 이렇게 죽이는 게 얘들 방식이고, 호랑이는 물어뜯고 발로 후려쳐서 뼈를 부러뜨려 죽이는 방식이고. 어떻게 죽이는 게 더 잔인해?”
“하! 내가 또 말실수한 모양이네. 취소.”
“아니. 일반적으로 모두들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런가?”
“얘들이나 호랑이나 자기들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다만 주어진 무기로 최선을 다하는 거지. 잔인하다는 판단은 죽음을 지켜본 사람들이 하는 거고. 사실, 모든 죽음이 잔인한 거야. 수명이 다해서 죽는 자연사만 빼고.”
“그러네. 하하!”
도천패가 어색한 듯 웃었다.
“그럼 이거 손대면 안 되는 거지?”
도천패가 시신을 보면서 말했다.
“지금은. 두 시진 정도 지나면 건드려도 돼. 그 정도면 독기가 빠질 거야.”
그때, 해자수가 밀실 안에서 걸어 나오며 말했다.
“하! 이거 지독하네. 한 방에 나가떨어진 거야?”
“봐. 내 말이 맞지?”
당홍이 도천패를 보면서 활짝 웃었다.
“엉? 무슨 말이 맞다고 그러는 거야? 혹시 내 험담 한 거야? 내 뒤에서?”
“험담은 무슨. 생기도 쓰지 못하는 은인문 술사에게 무슨 험담을 해요? 그런 것 없어요. 하하하하!”
도천패가 유쾌한 듯 웃었다.
“분명히 내 험담이네. 쯧! 하기는 뭐, 험담해도 할 말 없지. 밥값도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하! 그 조그만 놈이 이자들을 모두 죽인 거야?”
해자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시신들을 쳐다봤다.
시신들을 죽인 것은 사즙지주(死汁蜘蛛)라는 작은 거미다.
크기는 팥알만 한데, 황소도 단번에 쓰러트리는 맹독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거미는 거미줄에 걸려든 파리나 모기, 나방, 잠자리 같은 곤충을 잡아먹는다. 거미줄로 묶어놓고 독액을 몸 안에 투여한 후, 살이 녹으면 빨대로 쭉 빨아 먹는다.
사즙지주는 거미줄을 치지 않는다. 또 먹이도 다람쥐나 토끼, 크게는 사람까지 포식 대상으로 삼는다.
생존 방식이 일반 거미와는 완전히 다르다.
사즙지주는 맹독으로 동물을 쓰러트린 후,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그리고 살 속에서 독액을 뿜어내 주변 살을 녹여 먹는다. 살 속에 알도 낳는다.
하지만 사즙지주도 약점이 있다. 독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내지 못한다. 사즙지주가 뿜어낸 독은 외부에서 흡입한 것이다.
그러니 독액을 뿜어내서 동물을 쓰러트린 후에는 어린애도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으로 변한다.
이런 단점을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서 사즙지주는 동물이 쓰러지자마자 바로 살을 파고 들어간다
동물의 사체 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뿜어낸 독을 다시 빨아들인다.
그 시간이 대략 두 시진이다.
두 시진 안에 사체를 건들면 피부로 스며드는 맹독을 만진 것과 같아진다.
당홍은 사즙지주 다섯 마리를 풀었다.
낭견대 무인 한 명이 시신을 만지고 죽는 바람에 한 마리를 풀지 않았다.
시신 여섯 구 중 다섯 구에 사즙지주가 틀어박혀 있다. 자신이 뿜어낸 독을 빠른 속도로 빨아들이고 있다. 또 독액을 뿜어내서 살을 녹여 먹고 있다.
“이거 회수는 할 수 있는 건가?”
해자수가 물었다.
“회수해야죠. 또 써먹으려면.”
“두 시진만 지나면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거야?”
“아뇨. 배불러서 움직이지 않아요. 적어도 하루는 지나야 다시 써먹을 수 있어요.”
“그러면 이놈들…… 두 시진 동안은 이대로 내버려 둬야겠네? 건들지 말고.”
“사즙지주, 귀여워하셨잖아요. 만져보셔도 되는데.”
“좌우지간 못됐다니까. 사람이 삐딱해.”
해자수가 당홍을 쳐다보며 고개를 휘휘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