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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54화 (354/500)

第八十一章 암수(暗手) (4)

컹컹컹! 컹컹! 컹컹!

개 짖는 소리가 아주 가까이에서 들린다.

바깥 사정은 계속 나빠지고 있다. 지금만 해도 갱도 밖으로 나가면 당장 개들과 부딪히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 정도로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왔다.

이제 폐광이 노출되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도 마음이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표정도 나쁘지 않았다. 일그러진 얼굴이 아니라 기쁨에 들뜬 얼굴이었다. 모두가 즐거운 마음으로 활짝 웃었다.

호발귀가 일어섰다. 움직인다.

이것만큼 좋은 일이 어디 있나. 더군다나 호발귀는 삼마돌각수를 쳐냈다.

물론 손속은 맵지 않다. 아주 어설프다.

솔직히 이런 무공으로는 낭견대 무인조차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 당장에 실전에 가세할 수도 없을뿐더러, 크게 도움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호발귀가 혼절했다가 깨어난 사람이다. 어느 누가 혼절에서 깨어나자마자 정상적으로 무공을 펼칠 수 있겠나. 지금 방금 깨어났다는 점을 참작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방금 정신을 차린 사람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강한 반응이다.

옛날, 호발귀가 진기로 혈마 무공을 펼칠 적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본다. 조금만 시간을 더 주면 호발귀도 무인 한 명 몫을 충분히 해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벗어나는 게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다.

“밖에 사람 많아요?”

당홍이 물었다.

당홍도 고수이니 어느 정도는 감을 잡을 수 있다. 하지만 더 정확한 방법이 홀리와 해자수에게 있다. 두 사람이 생기를 일으키면 바깥 상황을 눈으로 본 듯이 확인할 수 있다.

“저런 놈들 백 명, 천 명 와도 마찬가지지 뭐. 낭견대는 내가 맡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해자수가 호언장담했다.

그럴 수 있다. 그는 탕호를 비롯해서 제이 낭견대를 몰살시킨 경험이 있다. 한수에서는 불마촌장이나 다름없는 허경과도 싸워서 흠집을 냈다.

낭견대라면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나 왔는지 알아두면 좋죠. 이제 곧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어디 한번 알아볼까?”

스읏!

해자수가 눈을 살며시 감았다.

몸이 돌풍 속으로 딸려 들어간다.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강력한 태풍에 휘말린다.

해자수는 전신을 방개(放開)했다.

온몸을 활짝 열고 티끌만 한 저항도 일으키지 않은 채, 돌풍 속으로 몸을 실었다. 그때,

쒜엑!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멀찍이 떨어져 있던 호발귀가 어느새 해자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발을 쭉 뻗어냈다.

해자수는 생기 속으로 함몰되어 들어가다가 갑자기 날벼락을 맞았다. 철벽이 불쑥 솟구쳐 올라왔다. 너무 급하게, 미처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앞이 막혔다.

“웃!”

해자수는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토해냈다.

폐광 안에 어떤 위협이 있겠나? 아무 위협도 없다. 그래서 안심하고 다소 편안한 마음으로 돌풍에 몸을 싣던 참이다. 하나, 생기에 뛰어들자마자 불쑥 철벽이 일어섰다.

퍼억!

철벽은 곧바로 해자수를 후려쳤다.

“커억!”

해자수는 단발마를 내지르며 나가떨어졌다.

호발귀가 정척퇴(正踢腿)로 해자수를 차올렸다. 앞발로 차올린 발길질에, 앞발 뒤꿈치에 명치를 얻어맞았다.

해자수는 거칠게 나가떨어졌다.

줄 끊어진 연처럼 날아간 몸뚱이가 석벽에 부딪힌 후에야 쿵! 하고 떨어져 내렸다.

“커억! 컥!”

해자수는 숨을 쉬지 못하고 거친 신음만 쏟아냈다.

“엇!”

“어! 어!”

모두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다.

호발귀가 혈마가 된 것인가? 그렇다면 막지 못한다. 모두 죽는다. 혈마와 싸운 자치고 살아난 자가 없다.

그래도 최대한 막기는 해야 한다.

홀리와 도천패가 호발귀 앞을 가로막았다.

방금 호발귀가 쳐낸 정척퇴는 삼마돌각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고 빨랐다. 해자수가 방심하지 않았어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도천패? 정식으로 겨뤄야 한다. 약간이라도 방심하면 당한다.

호발귀는 절대 미숙하지 않다. 완전히 정상적인 모습이다. 문제는 혈마인지, 아닌지다.

단지 해자수를 알아보지 못해서 일격을 가한 것이라면 차라리 낫다. 정신 이상을 일으켜서 미친 짓을 했다고 해도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다.

혈마만은 되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해서 호발귀를 경계했다.

호발귀는 일격을 가한 후에는 다시 조금 전의 상태로 돌아갔다. 아무런 감정변화도 보이지 않은 채 멀뚱멀뚱 두 사람을 쳐다보기만 했다. 적어도 혈마 모습은 아니다.

당홍은 재빨리 해자수에게 달려가서 부축해 일으켰다.

“괜찮아요?”

“커억! 컥컥컥!”

해자수가 연신 가쁜 숨을 토해낸 끝에 간신히 호흡을 되찾았다.

“이, 이건 뭐야? 나는 왜 이렇게 세게 때려? 어구! 어이구 배야! 아이고 배야!”

해자수가 배를 움켜잡고 쩔쩔매며 일어섰다.

해자수는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격타당한 상태에서도 농담을 잃지 않았다. 호발귀의 공격이 단순한 실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색한 장면을 피하고 싶었다.

자신이 인상을 찡그릴수록 호발귀가 이상해진다. 호발귀가 혈마가 아니다. 만약 혈마였다면 숨이 붙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혈마는 이런 식으로 격타 하지 않는다. 진기를 확 빨아들여서 꼼짝달싹 못 하게 만든 후, 단숨에 죽인다.

격타 방식이 분명히 다르다.

격타당한 와중에도 순간적으로 떠올린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은 몇 날 며칠 동안 혈마를 쫓아다니면서 지켜봤기 때문에 할 수 있었다.

이때 당홍이 뭔가 생각난 듯 급히 홀리를 보며 말했다.

“생기 한 번 일으켜봐!”

“네?”

“생기! 생기를 일으켜봐! 호발귀가 공격해 올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이 사람이 생기에 반응한다는 거예요?”

홀리도 퍼뜩 깨달아지는 게 있어서 급히 말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아니구나. 맞으면 큰일 나는구나. 맞지 않게 조심하고!”

쒜에엑!

홀리가 호발귀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동시에 생기를 일으켰다. 두 발을 땅에 찰싹 붙였다.

쒝!

호발귀는 홀리보다도 더 빨랐다. 홀리가 다가서기도 전에 호발귀는 이미 그녀의 면전에 서 있었다. 그리고 삼각 형태로 곧추세워진 삼마돌각수가 떨어졌다.

‘앗!’

홀리는 깜짝 놀랐다.

반격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달려들었지만, 지금 공격은 워낙 빠르다. 피할 틈이 없다.

혈마가 다시 환생해서 공격해 오는 것 같다. 삼마돌각수가 아니라 생기로 쳐왔다면 다시 혈마가 되었다고 믿었을 것이다.

“앗! 피해!”

“피해!”

당홍과 도천패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홀리는 피하지 못했다. 피할 만한 거리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대신에 생기를 확 풀어버렸다.

생기까지 풀어버렸으니 삼마돌각수가 터지면 죽은 목숨이다.

그녀는 일체의 방어막이 없었다. 목숨을 호발귀에게 맡기고 처분만 기다린다.

쒜에엑! 퍼억!

삼마돌각수가 그녀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녀 옆에 있던 석벽을 거칠게 후려쳤다.

츠으읏!

공격을 끝낸 호발귀는 다시 구석진 곳으로 물러섰다.

언제 다가와서 공격했냐는 듯 호흡 한 올 흐트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일행을 쳐다봤다.

“아! 다행이네.”

“휴우! 놀라라.”

도천패와 당홍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신을 차린 해자수도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한숨을 토해내며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방금, 홀리는 죽을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호발귀의 공격이 무뎌서 피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었다.

“확실하네. 생기에 반응하는 거.”

당홍이 말했다.

해자수가 얻어맞은 것은 생기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에 예외는 없다. 홀리도 생기를 일으켰다가 하마터면 상당한 타격을 받을 뻔했다.

그런데 여기서 호발귀는 아주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

생기를 타격할 때는 완전히 예전의 혈마로 돌아간다. 생기 대신에 진기를 활용하고는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빠른 움직임으로 공격해 온다.

생기를 풀면 호발귀도 혈기를 푼다.

혈기가 빠져나간 호발귀의 공격은 상당히 무뎌진다. 코앞까지 다가온 삼마돌각수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무디다.

“가만…… 그럼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나와 아씨의 주무기는 생기인데…… 호발귀 앞에서는 쓰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러면 나는? 나는 어떻게 싸우라고?”

해자수가 멍하니 도천패를 쳐다봤다.

“큭큭! 예전의 은인문 술사로 돌아가야지 뭐. 하하! 우리까지 그거 안 배운 건 천만다행이잖아. 고급스러운 술을 마시다가 값싼 술을 마시면 영 고역일 거야?”

도천패가 당홍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필 비유해도 술에다가 비유해? 생기가 비싼 술이야?”

“비싼 술이지. 은인문 술사가 방방 날았으니까.”

“그렇네. 동생은 음문촌 무공 혈맥참이라도 있지. 해자수님은 정말 어떡해?”

“지금 나 놀리는 거지?”

해자수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호호호! 맞아요. 놀리는 거. 호호호!”

당홍과 도천패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난 피하지 못했어.’

홀리는 눈빛을 반짝 빛냈다.

모두 자신이 삼마돌각수를 피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호발귀의 손속에는 사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사실은 전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삼마돌각수는 정수리로 떨어졌다. 생기를 거뒀을 때, 호발귀의 손과 자신의 머리는 불과 한 뼘 차이밖에 나지 않았다. 떨어지는 속도를 감안하면 불가피하게 타격당한다.

그런데 호발귀의 손이 머리를 스치면서 지나갔다.

호발귀가 일부러 방향을 틀지 않았다면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회피(回避)다.

‘날 알아보지? 아니, 묻지 않을래. 알아보는 게 분명한데 물어서 뭐해. 대답할 수 없으니까 하지 않는 거잖아. 무슨 문제인지 같이 걱정했으면 좋겠는데, 미안. 내가 능력이 안 되네.’

홀리는 무심히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를 향해서 웃지 않았다. 접촉도 하지 않았고, 가까지 다가서지도 않았다.

호발귀는 모든 것을 거부한다.

호발귀는 다정다감한 사내다. 결코,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이 아니다. 남들은 그를 배반해도, 그는 남을 배반하지 않는 미련퉁이다.

그런 사내가 거리를 둘 때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홀리는 그 이유를 혈마에게서 찾았다. 생기를 극구 거부하는 것도 그렇고…… 혈마 때문에 거리를 두고 있다.

또 뭐가 있나? 껄끄러운 부분이?

호발귀가 원하지 않는 것들은 모두 하지 않을 셈이다. 그러면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조심해서 다가간다.

지금은 이 정도 거리가 딱 적당하다.

생기는 사용하지 말 것, 접촉하지 말 것, 말도 걸지 말 것, 웃지도 말 것……

죽여! 죽여! 죽여! 죽여! 죽여!

혈마의 명령이 계속된다.

그런 마당에 생기까지 일으키면 정말 감당할 수 없다.

홀리와 해자수는 ‘이거 미친놈 아냐?’하고 생각될 정도로 급하게 공격했지만, 호발귀는 최대한 공격 수위를 낮춰서 경고를 보내는 선에서 그쳤다.

생기를 사용하지 마라. 생기는 사용하면 할수록 오염된다. 몸 안에서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없다. 하지만 몸 안에 있는 생기를 끄집어내서 공격에 사용하면 오염을 피할 수 없다.

생기가 오염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지 않나. 감당하지 못할 살심이 일어난다. 혈마가 된다.

이 살심은 누구도 이겨낼 수 없다.

생기는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어쩌다 한두 번 사용해서 괴력을 발휘하면 족한 것이다.

진기처럼 늘 무공 전반적인 부분에 사용하면 끔찍해진다.

생기에 대한 경고는 호발귀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처였다.

호발귀는 다시 벽에 등을 대고 쭈그려 앉았다.

가급적 서로 간의 거리를 벌린다. 혈마의 명령이 들리지 않는 순간까지는, 그렇지 않으면 혈마의 명령을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인간관계를 맺지 않는다.

늘 거리를 벌려놓고 있어야 한다. 거리가 좁혀지는 순간 살심이 튀어 나갈 것이다.

자신이 제어할 수 있는 살기라면 얼마든지 감당하겠지만, 가까운 거리에서 불쑥 튀어 나가는 살기는 감당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살인이다.

죽여! 죽여! 죽여!

호발귀는 혈마의 음성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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