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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53화 (353/500)

第八十一章 암수(暗手) (3)

“가만! 잠깐! 아무 말도 하지 말고, 한마디 더 듣고 대답해.”

십이비자가 단검을 눈에 댔다.

“네가 쌀과 고기를 준비하고, 장작도 패놓는 것을 본 사람이 있어. 그러니 괜히 못 봤다, 모른다 이딴 소리는 하지 마. 성질만 나니까. 서로 피곤하게 가지 말자. 왜 좋게좋게 가도 되는 것을 힘들게 가려고 해. 말해. 혈마, 어디 있어?”

“……”

하양양은 눈만 끔뻑거릴 뿐, 말을 하지 못했다.

입술이 달싹이는 것을 보면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 모양인데, 차마 겁이 나서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답은 들으나 마나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니까. 말해. 아니면 눈깔 파이던가. 난 괜찮아. 남아도는 게 시간이거든. 네가 말하지 않아도 어차피 뭐 그놈들 여기 어딘가에 있겠지. 곧 찾아낼 거야.”

“으으……!”

하양양이 신음을 흘렸다.

이마에서 굵은 식은땀이 북북 흘러내리고 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닐까? 술에 취해서 혼탁해진 눈동자에는 진한 두려움만 스며 있다.

“말해.”

십이비자가 단검을 눈에 대고 채근했다.

“으으!”

“네가 말하지 않으면 우리가 못 찾을 것 같아? 조금 시간이 걸리긴 하겠지만 찾는 데는 문제 없어. 장담하지. 말해! 그놈들 어딨어? 좋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해봐?”

“저, 정말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순간, 십이비자가 환하게 웃었다.

“말했다! 원하는 대답은 아니지만.”

푸욱!

십이비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단검으로 눈을 푹 찔렀다.

“으아아악!”

당연히 거친 비명이 토해져 나왔다.

하양양은 손으로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눈을 움켜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그래도 십이비자는 한 올의 인정도 담지 않고 차갑게 말했다.

“이봐, 이봐. 너무 뒹굴지 마. 아직 눈 하나가 남았잖아. 밝은 세상 계속 보고 싶으면 지금부터라도 바로 말하라고.”

십이비자가 발로 하양양의 목을 밟았다.

흙집에는 하양양 말고도 여섯 명이나 더 있다. 하지만 누구도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혹여 불똥이 자신들에게 튈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눈을 파낸다고 했잖아. 당연히 봐야 할 걸 못 봤으니까. 준비되면 말해. 마지막 질문을 할 테니까.”

“아아악! 아악!”

하양양은 사내의 말이 들리지 않는지 연신 비명만 쏟아냈다.

정말 모른다. 뭘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말하지 않을 리 없다.

십이비자가 살짝 일비자를 쳐다봤다.

일비자도 인상을 찡그린 채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

‘이자, 맞다. 혈천방한이 맞아!’

십이비자는 일비자의 눈빛에서 모종의 확신을 읽었다.

일비자는 하양양의 가련한 모습보다도 자신에게 정보를 준 내선을 더 믿는다.

십이비자가 차갑게 말했다.

“우리가 네 선에서 그칠 것 같지? 이제 너와 연관된 모든 사람이 다 죽어. 잘 들어. 이제부터 너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할 거야. 이미 널 알았잖아. 그러니 샅샅이 조사해서 네 일가붙이를 다 죽일 거야. 부모가 살아있으면 부모를 죽을 거고, 형제가 살아있으면 형제도 죽을 거고. 조카, 사촌 할 것 없이 다 죽어. 너 하나 때문에. 안 그럴 것 같지? 그런다니까. 믿어도 좋아. 다 죽어. 자, 이제 말해. 혈마 어디 있어?”

“아악! 아아악!”

하양양은 눈이 찔린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비명을 내질렀다. 사내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셋 센다. 그 이상은 안 봐줘. 셋 세는 동안에 말해. 하나, 둘……”

그때였다. 연신 비명을 내지르며 데굴데굴 구르던 하양양이 슬쩍 몸을 뒤틀었다.

스읏! 푹!

하양양은 어느새 비수를 움켜쥐고 있었다. 손에 들린 비수가 십이비자의 복부를 깊이 파고들었다.

“윽!”

십이비자가 인상을 확 찡그렸다. 하지만 그도 반사적으로 단검을 휘둘렀다.

푸욱!

단검이 하양양의 목에 틀어박혔다.

“켁!”

하양양은 짧은 단발마를 내지르더니 눈을 뒤집어 깠다. 검은 동공이 위로 쳐들리고, 흰자위만 가득 남았다.

하양양은 즉사했다.

“뭐야!”

일비자가 황급히 달려와서 십이비자를 부축했다.

스읏!

십이비자가 복부에 박힌 비수를 뽑아냈다.

“제길!”

비수를 본 십이비자가 나지막하게 투덜거렸다.

비수가 새카맣다. 독비(毒匕)다. 비수를 뽑는 순간, 비릿한 냄새가 확 풍겼다. 비수에 묻힌 독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매우 강한 독인 것만은 틀림없다.

놈이 귀무살과 연관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이놈 역시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았어야 했는데.

일비자가 화난 눈으로 하양양을 쳐다봤다. 그래봤자 이미 목이 꿰뚫려서 죽은 시신에 불과하지만…… 이런 자를 앞에 두고 방심한 자신을 말할 수 없게 미웠다.

“이봐! 정신 차려! 이게 무슨 꼴이야!”

“바, 방심. 방심…… 내가 방심을. 후후!”

십이비자가 웃었다.

사실은 십이비자가 방심한 게 아니다. 하양양이 너무 연극을 잘했다. 그는 정말로 광부처럼 보였다. 십이비자가 눈을 찔렀을 때도 일반 사람이나 다름없이 행동했다.

무인은 조금이라도 다르게 반응한다. 무인은 즉각적으로 반격 모습을 보인다.

하양양은 그런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진실로 완벽하게 평범한 광부였다. 그래서 무방비 상태로 가까이 다가갔고 일격을 당한 것이다. 중간에 의문이 들어서 일비자에게 확인까지 해보지 않았나.

어쩌면 하양양은 무공으로 겨뤄도 십이비자에게 밀리지 않는 고수였을지도 모른다.

또 하양양은 눈을 너무 깊게 찔렸다. 반격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약간 방심했다.

맞다! 이 순간 완전히 방심했다!

“제길…… 이렇게 가기는 억울한데…… 틀렸네. 하악! 학! 하아악!”

십이비자가 큰 숨을 몇 번 몰아쉬더니 고개를 떨궜다.

절명했다.

“이런!”

일비자는 이를 꽉 깨물었다.

혈마가 있는 탄광까지는 찾아왔는데, 혈마를 도와준 방자까지 찾아냈는데, 막판에 일이 뒤틀렸다.

하양양은 결국 혈마의 거처를 밝히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리고 십이비자까지 저승으로 동반해서 데려갔다.

스읏!

일비자는 검을 뽑았다.

이 방에 있는 사람들, 한 명도 살려줄 생각이 없다.

이들은 귀무살과 연관이 없다. 하지만 하양양과는 친분이 있다. 그러니 죽는 거다.

‘모두 죽인다!’

쒜에엑!

일비자가 신형을 번뜩이며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 *

“응? 이런!”

귀검은 침음을 흘렸다.

어디서 정보가 흘러나갔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혈마 위치가 노출된 것 같다.

탄광으로 늑대개들이 몰려든다.

컹컹! 컹컹컹컹!

개 짖는 소리가 소축령까지 뚜렷하게 들려왔다.

낭견대 무인만 온 게 아니다. 살단 무인도 몰려왔다. 비보전 무인들, 시골 토박이 무인들까지…… 천라지망에 관여했던 모든 무인이 모여드는 것 같다.

사방이 온통 시퍼런 검기로 채워졌다.

정보가 어디서 새어나갔을까?

어디서 정보가 새어나갔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발등을 찧으면서 후회할 정도는 아니다.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

지극히 은밀하게 움직여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주 쉽게 발각될 수도 있다. 비밀스럽게 잘 움직인 것은, 발각되지 않는 운이 따라주었을 뿐이다.

귀검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지금 당장 탄광으로 내려가서 난장을 부리는 것이 한 방편이다.

많은 자를 때려 높여서 시선을 끌어모은다. 그리고 모인 시선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저들을 자신이 유인하는 사이에 탄광에 숨은 혈마는 몸을 피한다.

그렇게 해도 저들은 탄광 주변을 뒤질 것이다. 늑대개가 혈마의 냄새를 맡을 것이고 혈마에게 다가갈 것이다.

‘내가 직접 혈마를 데리고 빠져나오거나 모든 것을 걸고 싸우는 수밖에.’

지금 상태에서 천살단과 싸우면 귀검도 승부를 장담하지 못한다.

귀검 곁에는 귀무살이 없다. 혼자서 단신으로 살단 무인들과 부딪쳐야 한다.

저들은 염려하지 않는다. 저들 뒤에서 지켜보고 있을 천살단주를 염려한다.

‘해자수는 나 못지않다. 홀리도 강하고. 당홍, 도천패.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버텨줄 수 있지. 어정쩡하게 나서서 죽도 밥도 안 되느니 결정적일 때 힘이 되어 주는 것이……’

귀검은 탄광이 포위되는 걸 보면서도 나서지 않기로 했다.

귀검은 암울한 눈으로 탄광을 쳐다봤다.

혈마가 무사하기를 빈다.

* * *

컹컹! 컹컹컹! 컹!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이거 우리 발각된 것 같은데?”

해자수가 바깥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말했다.

자신들을 탄광으로 밀어 넣은 자는 절대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안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없어서 몇 번 들락거렸다. 싱싱한 고기도 필요했다.

해자수와 도천패는 사방 곳곳에 체취를 묻혔다.

무엇보다도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멧돼지, 사슴, 꿩 등을 무심히 들고 들어온 것이 실수다.

폐광은 지극히 은밀했지만, 늑대개를 피하지는 못했다.

“안쪽으로 탈출할 수 있을까?”

해자수가 말했다.

“아니. 출구가 없어.”

홀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갱도가 얼마나 깊은지는 알 수 없다. 굉장히 깊다. 하지만 반 시진 정도를 걷다 보면 수직으로 뚝 떨어지는 낭떠러지 갱도를 만난다. 길이 끝난다.

홀리와 당홍은 그곳까지 탐색을 해봤다.

물론 수직 갱도는 탐색하지 않았다. 갱도가 너무 깊어서 줄을 타고 내려가더라도 상당히 긴 줄을 준비해야만 한다. 벽호공(壁虎功)으로는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다.다

횃불을 밝혀서 밑으로 던져보기도 했는데, 밑이 까마득하다.

“거기도 광부들이 뚫은 데잖아. 잘 찾아보면 밑으로 내려가는 수레 같은 것이 있을 텐데. 내가 가서 찾아볼까요?”

“찾아봤지. 삭아서 부서졌더라고.”

“쯧! 그럼 할 수 없죠.”

해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럼 우리 외통수 걸린 거네? 빠져나가는 길이. 앞쪽밖에 없다면…… 가지 뭐.”

도천패가 대도를 잡고 일어섰다.

모두 같은 심정이다. 이왕 앞으로 빠져나가야 한다면 저들이 조금이라도 방심하고 있을 때 빠져나가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어쨌든 안에서 더 머뭇거리면 안 될 것 같았다.

“문주, 일어설 수 있나?”

도천패가 호발귀를 보면서 말했다.

호발귀는 눈만 끔뻑거렸다. 말을 못 알아듣는 듯하다.

도천패가 무릎을 꿇고 앉았다가 일어서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리고 호발귀에게 해보라고 손짓했다.

“이렇게! 이렇게 일어설 수 있냐고?”

호발귀가 슬그머니 일어섰다.

“아! 말을 알아듣네! 일어설 수가 있어!”

홀리가 기뻐서 와락 달려들려고 했다. 누가 봐도 호발귀를 안으려는 모습이 분명했다.

그 순간, 호발귀가 손을 들어서 홀리의 가슴을 격타 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엇!”

홀리가 깜짝 놀라서 즉시 물러섰다.

호발귀는 손가락 세 개를 오므렸다. 팔십일수 중 삼마돌각수다. 송곳처럼 모아진 손가락으로 가슴을 타격했다. 매우 맹렬하게, 수법에 걸려들면 요행을 바라지 못할 정도로 강력하게.

하지만 힘만 세었지 위력은 없다. 삼마돌각수에 힘이 가득 들어가서 오히려 속도를 빼았는다. 속도가 죽으니 타격력도 볼품없어 보인다.

“휴우! 알았어! 알았어! 손 안 델게.”

홀리가 두 손을 휘휘 저으며 호발귀를 달랬다.

호발귀는 날뛰지 않았다.

몇 걸음 걷다가 벽에 등을 기대고 섰다. 다행히 주저앉지는 않았다. 그 정도의 힘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몸이 상당히 둔해 보인다. 진기를 제대로 쓰지 못한다.

‘혈마’라고 하면 생기다.

호발귀는 생기도 활용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호발귀가 보여준 아주 작은 움직임…… 하지만 이 정도의 움직임만으로도 호발귀의 현재 상태를 알아보기는 충분했다.

“난감하네. 몸에 손이나 대게 해주어야 엎고라도 가지.”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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