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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52화 (352/500)

第八十一章 암수(暗手) (2)

“흔적을 말끔히 지웠습니다.”

월도가 보고했다.

“수고했다. 이제 모두 싸움판에서 빼내도록 해.”

귀검이 침착하게 말했다.

귀무살이 열 명 이상 쓰러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싸움이 벌어지고 있어서 최종적으로 몇 명이나 살아남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지금 즉시 빼내겠습니다.”

월도가 즉시 읍했다.

부대주 네 명이 직접 움직였다.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귀무살을 지원하고 있다.

귀무살은 흩어져 있는 먹잇감이 아니다. 주변에 있는 귀무살끼리 모여서 무리를 이루었다. 그리고 그 무리는 큰 덩어리 하나로 규합되는 중이다.

망형이동을 일으키기 전으로 돌아간다.

천살단이 내놓은 패는 역시 살단이다. 하지만 주치균이 급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다.

살단이 가세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낭견대 뒤에서 구경만 했다.

귀무살에게는 천만다행이다.

만약 살단이 본격적으로 귀무살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면 출혈이 상당했을 것이다.

주치균은 귀무살을 낭견대에게 맡기고 본인은 혈마를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 비보전이 천라지망으로 거리를 상당히 좁혀놨기 때문에 수색 범위가 좁았다.

살단을 본격적으로 움직이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듯하다.

어쨌든 다행이다.

덕분에 흩어진 귀무살이 쉽게 모였다.

서너 명에서 네다섯 명으로, 다시 예닐곱 명으로…… 점점 강한 세력이 되어갔다.

낭견대가 쉽게 넘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지금이 딱 그런 때다. 부대주 네 명도 한자리에 모였다. 낭견대와 본격적으로 한판 대결을 가릴 수 있다.

그자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환히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런데 귀검이 잠적 명령을 내렸다.

더 이상의 싸움을 불가(不可), 이제는 절적(絶迹)이다. 흔적을 완전히 지우고 일시에 사라진다.

망형이동도 끝난다.

“영주님께서는 혈마에게 가실 생각이십니까?”

“알려고 하지 마라. 때가 되면 연락할 테니.”

“넷!”

월도가 즉시 부복했다. 그리고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귀검은 월도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뒷모습을 지켜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귀검은 소축령(小畜嶺)으로 올라갔다.

탄광을 운영한다고 산을 모두 헤집어 놓아서 몸을 가릴 만한 나무조차도 자라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황폐해진 산이라서 쳐다보는 사람도 없었다.

소축령에 올라서면 혈마를 감춰둔 폐광이 한 눈에 보였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혈마를 놓칠 수는 없다.

지금 귀검에게 주어진 지상 최고의 명령은 혈마를 지키는 것이다. 모든 것에 앞선 최우선 명령이다.

혈천방주가 내린 명령이 아니라 이백 년 전 혈마를 모셨던 혈의검이 내린 명령이다.

혈마를 따라야 할지 아니면 숙명처럼 혈마를 죽이게 될지 지금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귀검의 개인적인 판단으로는 양쪽 길이 다 열려 있다고 본다.

어쩌면 혈마를 죽여야 할 가능성이 더 클 수도 있다.

그것 역시 혈의검 소휘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다. 반드시 지켜야 하는.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소축령에게 올라서 지켜보기로 했다.

혈마에게 가는 길은 이미 모두 끊어졌다.

혈마가 폐광에 숨은 것을 아는 사람은 귀검과 혈마에게 길을 인도한 광부뿐이다. 그 외에는 어느 누구도 폐광을 찾지 못한다. 폐과에 숨은 줄도 모른다.

자신 역시 일부러 지워버린 흔적을 다시 만들 이유는 없다.

자신이 폐광으로 움직였다가 천살단 누군가의 눈에 띄기라도 하면 난감해진다.

귀무령이 누구에게 꼬리 밟힐 염려를 한다?

조심하는 것도 좋지만 너무 과한 것 아닌가? 이런 소심한 마음으로 무림을 횡행할 수나 있겠나.

세상일이라는 것이 그렇다.

누군가에게 꼬리 밟힐 걱정을 왜 하지 않나. 천살단주가 직접 뒤를 밟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하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는 게 최상책이다.

이 싸움에는 천살단주도 끼어들었다.

천살 단주와 한 판 승부를 벌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서 혈마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이다. 모든 일은 혈마 다음으로 미루어진다.

귀검은 소축령에 자리를 잡았다.

“찾았다!”

일비자가 씩 미소를 지었다.

한수에서 귀무살이 각기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그리고 일제히 망형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한 명만 다른 길을 택했다.

모두가 망형이동을 쳐다볼 때, 은밀히 강을 건넌 자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는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수십 리 길을 걷는 동안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은 것이다. 무인은 물론이고, 일반인들까지 모두 피했다.

일부러 산길을 택했다고 해도 완전히 사람을 피하기는 어렵다. 사람이 나타나면 숨는다고 해도 멀리서 누군가가 봤을 수는 있다.

그는 이 모든 눈길을 피해냈다.

당연한 말이지만 참응도 그를 찾아내지 못했다.

참응의 탐색 범위는 일비자의 위치와 궤를 같이한다. 일비자를 중심으로 해서 반경을 살핀다.

그는 이미 수십 리 밖으로 떨어져 나갔으니 참응에게 발각될 턱이 없다.

혈마에 대한 단서는 너무도 우연히 주어졌다.

목이나 축이고 가자고 들린 다루(茶樓)에서 누군가가 손에 쥐여주고 간 종이 한 장.

“하! 참 발 넓네. 여기서 이런 정보를……”

십이비자가 다루를 휘휘 휘둘러봤다.

일비자는 목이나 축이고 가자고 들렀지만, 이곳은 일비자와 그의 끄나풀인 내선(內線)이 만나는 장소다.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종이만 건네주고 간 자가 끄나풀이다.

십이비자가 어깨너머로 종이에 적힌 글을 읽었다.

- 왕홍탄광(王紅炭鑛). 하양양(何洋洋). 혈천방한(血天幫閑) 의(疑). 저사삽수료(這事插手了) 의(疑).

“이게 정말이면 중원이 발칵 뒤집어지는 건데. 이거 얼마나 믿을 만한 겁니까?”

십이비자가 물었다.

‘방한’이라는 말은 내선과 같은 말이다. 끄나풀이라는 뜻이다. 다만 아첨꾼이라는 뜻이 있다.

글을 풀이해보면 매우 놀랍다.

왕홍탄광에 하양양이라는 자가 있다. 혈천방 끄나풀로 의심되는 자다. 그자가 이번 일에 개입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도 의심이다. 확실하지는 않다.

내선이 하는 말 중에 ‘의’라고 적힌 말은 가장 신빙성이 낮은 말이다. 단지 뜬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도 내선의 성격에 따라서 뜻이 달라진다.

신중한 자는 신중한 표현을 쓴다. 그래서 얼마나 믿을 수 있냐고 물어본 것이다.

“구 할.”

일비자가 말했다.

십이비자는 입을 쩍! 벌렸다.

‘의’라는 말이 적혀있는데도 구 할을 믿을 수 있다고? 그렇다면 아까 그자는 내선 중에서 내선이다. 어떤 일이든 완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특별한 존재다.

십이비자가 일비자의 내선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십육비자는 비보전에서 활동하지만, 엄연히 말하면 각자 활동한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십육비자는 나름대로 강호에 자신만의 수족을 심어놓았다.

아까 그자가 그중에 한 명이다.

이런 끄나풀은 돈으로 맺어진 인연이 아니다. 의리 혹은 특별한 인연으로 얽혀 있다. 그래서 아무 조건 없이 일비자를 도와준다.

일비자 역시 저들에게 불편한 일이 생기면 기꺼이 도와줄 것이다.

“왕홍탄광 하양양이라. 탄광이 워낙 넓어서 찾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십이비자가 중얼거렸다.

탄광에서 하양양을 수배하는 동안, 그 사실이 하양양의 귀에 들어가지 않아야 한다. 약간이라도 수상쩍은 기미가 노출되면 즉시 탈출할 테니까.

“모래밭에 떨어진 바늘을 찾기지만 해봐야지. 아무 단서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 가서 은밀히 범위를 좁히면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양양이라는 이름이 흔한 건 아니니까.”

“그런데…… 아까 그자, 누군데 이토록 상세하게 보고를 해온 겁니까?”

십이비자가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런 건 묻지 않는 게 불문율이잖아. 반대로 내가 네 내선을 캐물으면 말해줄래?”

“저는 이 정도까지는. 전 쉽게쉽게 사는 편이라 내선도 돈으로 움직여서.”

“하하! 네가 돈만 가지고 움직일까.”

일비자가 웃었다.

십이비자 역시 그만의 수족을 데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누군지는 같은 비자도 알지 못한다. 아마도 영원히 세상에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가보자고. 하양양이 무슨 말을 해줄지 들어나 봐야지.”

일비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탄광 광부들은 거의 대부분 허름한 흙집에서 산다.

뜨내기나 다름없는 광부에게 멀쩡한 집을 내주는 광산은 없다. 광부 스스로 먹고 잘 곳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니 가장 돈이 들지 않는 흙집을 만들어서 기거한다.

흙집은 벽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그래도 지붕은 신경을 써서 다듬은 탓에 비는 새지 않는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 장작불을 피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바람이 싱싱 분다.

보통 이런 흙집에 광부 예닐곱 명이 같이 산다.

맨땅에 나무 침상을 올려놓고 이부자리만 깔아놓은 열악한 환경이지만, 그래도 잠을 청할 수 있는 보금자리다.

사내는 술에 취해서 휘청이며 문을 열었다.

순간, 싸한 기운이 몰아친다. 차가운 바람이 아니라 아주 기분 나쁜 느낌이 다가온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사내는 방안에 앉아 있는 낯선 자를 봤다. 한 명은 자신의 침상에 누워있고, 다른 한 명은 팔팔 끓는 주전자에서 뜨거운 물을 받는 중이었다.

거칠기 짝이 없는 광부들도 두 명 앞에서는 기죽은 듯 찍소리 못하고 앉아 있었다.

몇 명은 벌써 심하게 얻어터져서 눈두덩이 시퍼렇게 멍들었다. 입술이 깨지고, 코뼈가 내려앉은 자…… 머리가 깨졌는지 수건을 대고 있는 자도 있다.

“뭐, 뭐야?”

사내가 놀란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물었다.

“하양양?”

물을 따르던 자가 따뜻한 물이 담긴 잔을 들어서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누, 누구?”

“들어와. 밖에 보는 눈도 있고.”

사내는 친구를 대하듯 편안하게 말했다.

하양양은 엉거주춤…… 즉시 내빼려다가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고는 움찔거렸다.

“들어오라니까.”

하양양은 재촉을 받고야 집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어느새 눈앞으로 불쑥 들이닥친 사내가 다짜고짜 하양양의 멱살을 와락 움켜잡았다. 그리고 거칠게 바깥다리를 후려쳐서 넘어트렸다.

꽈앙!

하양양은 거칠게 내던져졌다.

그를 내던진 자, 침상에 누워있던 자가 하양양에게 다가와 빤히 쳐다봤다.

“술 좀 좋은 거 마시지. 화주? 그런 거나 마시니까 간이 다 썩었잖아. 얼굴이 새카매. 건강 관리 좀 하라고.”

“누, 누구신지? 제, 제게 왜 이러시는……”

“쉿!”

하양양은 시키는 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몇 마디 물어볼 게 있어서.”

“무, 무슨 말을……?”

“얼마 전에 여기 온 사람들이 있지?”

“네? 전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 모른척하지 말고. 너 혈천방 방한이라는 거 아는데, 쉽게쉽게 가면 모른 척해줄게. 괜히 버틸 생각은 하지 말고. 네 이름까지 알고 왔으면 끝난 거잖아?”

탁! 탁!

십이비자가 하양양의 뺨을 토닥거렸다.

하양양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멀거니 십이비자를 쳐다봤다.

“얼마 전에 말이야. 남자 둘, 여자 둘이 정신 잃은 환자를 업고 왔을 텐데. 알아?”

“저, 저는……”

“모른다고?”

하양양이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말 모릅니다요. 정말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이거 정말 안 봤다고 하면 곤란한데. 왜 쓸데없이 버티나. 다 알고 왔다고 했는데 말이야. 어떤 인간은 꼭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니까. 잘 들어. 난 두 번 말하지 않아. 사람이 다섯이나 왔는데, 그걸 보지 못했다고 하면 그런 눈은 파내는 게 낫지.”

스읏!

십이비자가 단검을 꺼내 하양양의 눈에 댔다.

“왜 이러십니까요! 전 정말 억울합니다! 정말 저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요.”

하양양이 애원하듯 울부짖었다.

그는 정말로 억울해 보였다. 너무 비루해서 ‘무림이 어떻고’하는 일에 끼어들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루 막일을 하고 값싼 화주에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십이비자가 단검을 들이대며 말했다.

“이번 한 번은 애교. 애교는 봐줄게. 다시 묻지. 한 명은 혼수상태였으니까 쉽게 알아볼 수 있지. 다른 사람은 뭘 하든 관심 없고, 환자만 알면 돼. 지금 어디 있어?”

십이비자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대답 여하에 따라서 정말로 단검을 찌를 기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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