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一章 암수(暗手) (1)
“귀무살이 추살 당하고 있습니다.”
귀검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각이 있는 자라면 지금 시점에서 귀무살을 건드리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서로 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언뜻 보면 귀무살이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 같지만, 천살단이 혈마를 쫓는 데도 상당한 장애가 된다.
사리판단이 미숙한 자의 행동이다.
“누가 쫓고 있나?”
“낭견대입니다.”
“귀무살을 추격하기에는 최적이군.”
“겉으로는 낭견대가 쫓는 듯하지만, 주치균이 뒤에서 조종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애들 중에 주치균을 상대할 만한 자가…… 없지?”
“그래서 곤란합니다. 주치균도 여차하면 달려들 텐데, 하면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저희가 가볼까 합니다.”
창파가 말했다.
“창파.”
귀검이 나직한 음성으로 창파를 불렀다.
“네.”
“너 정도 되면 한 수가 아니라 두어 수 정도는 앞을 내다봐야 한다. 주치균을 상대하는 것은 좋으나,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있는지, 싸움의 대가는 찾을 수 있는지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우린 무엇을 하고 있나?”
“웃! 죄송합니다.”
창파가 무엇이 생각난 듯 급히 허리를 숙였다.
“알았으면 됐다.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정말 몰랐다면 문제지.”
귀검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귀무살은 현재 혈마에게 집중하고 있다. 망형이동을 펼친 것도 혈마 때문이다.
흔히 송사리가 연못 물을 흐려놓는다고 말한다.
망형이동이 바로 이런 행동이다. 겨우 쉰 명 안짝의 귀무살이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시야를 차단했다.
고요한 연못을 마구 휘저어서 흙탕물을 만들었다.
비보전의 천라지망은 흙탕물을 가라앉히는 작업이다.
귀무살은 할 일을 마쳤으니 조용히 대기하는 것이고, 비보전은 흙탕물을 가라앉히면서 혈마를 찾는다.
여기서 귀무살과 비보전은 시간 싸움을 하고 있다.
비보전이 흙탕물을 빨리 가라앉히면 혈마가 드러난다. 귀무살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 그때가 되면 다시 망형이동을 전개해야 한다.
혈마가 상처를 치료하고 일어설 때까지 비보전이 찾아내지 못하면 귀무살 승리가 된다.
지금 이런 싸움을 하는 중이다.
‘주위에서 소란이 일어나면 안 돼. 흙탕물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야 연못 밑바닥을 볼 수 있지. 혈마를 잡으려면 물이 고요해져야 하는데…… 낭견대가 오히려 분탕질을 치고 있어. 이러면 천라지망이 깨진다. 지금까지 기울인 노력이 헛수고가 돼.’
귀무살 입장에서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낭견대가 귀무살을 건드린 것이 아니다. 망형이동을 건드린 것이다.
그래도 된다. 이것도 천살단이 취할 수 있는 방법 중 한 가지다. 다만 지금까지 비보전이 기울인 노력이 허사가 되었다는 것만 달라질 뿐이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귀검이 창파에게 물었다.
“망형이동을 재가동합니다.”
“그렇지. 이제야 판단이 제대로 돌아왔군. 다시 시작해.”
“알겠습니다.”
창파가 대답했다.
망형이동을 재개하면 한곳에 머물러 있던 귀무살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천살단에 대한 타격도 가한다. 이제부터는 싸움도 피하지 않는다.
이들은 천라지망을 헤집고 다닐 것이다.
그물을 뒤집어 버린다. 물론 자신들 앞에 가로막는 자들은 모조리 찢어버린다. 천라지망에 동원된 장한이나 무인들을 가차 없이 베면서 움직인다.
이런 움직임은 천살단의 전면 개입을 불러올 것이다.
최소한 귀무살을 잡을 수 있을 만한 무인들이 대거 투입된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
귀무살도 부담이고, 천살단도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없다. 혈천방을 상대하는 것도 아니고 귀무살을 치기 위해서 천살단 무인들을 대거 투입한다는 것은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귀무살도 전면전은 사양했고, 천살단도 그렇게까지 부담을 가지면 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양쪽이 모두 일정한 선에서 멈춘 까닭이다.
귀무살은 망형이동으로 만족한다. 자! 이제 우린 할 일 다 했다. 너희가 찾아봐라!
천살단은 천라지망으로 만족한다. 이제 찾아보겠다. 대신, 너흰 꼼짝하지 마라.
움직이는 즉시 목을 쳐버릴 테니까, 피 보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양쪽이 그런 암묵적인 약조하에 움직였다.
그것을 낭견대가 흔들어 버렸다.
이제 귀무살도 움직인다. 천라지망을 흔들어 버린다. 천살단은 천라지망을 유지하기 위해서 전면 개입을 한다. 귀무살을 보는 족족 척살할 것이다.
그야말로 전면전이다.
낭견대가 첫 단추를 끼웠고, 망형이동이 두 번째 단추를 끼운다.
“싸움은 어느 선까지 진행하실 생각이신지요?”
“끝까지 갈 수는 없지. 우리 목적은?”
“혈마입니다.”
“그래. 어느 정도 싸우다가 빠져야 할 순간이 올 거야. 연락, 잘 유지해라.”
“네!”
“네 연락망에 귀무살의 존폐가 걸려 있다.”
“명심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연락망은 반드시 붙잡고 있겠습니다.”
창파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 * *
“이런 미친!”
비보전주는 당황했다.
낭견대의 원한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귀무살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귀무살도 즉각 반격할 것이다. 지금까지 좁혀온 거리가 순식간에 깨진다.
물론 천라지망은 계속 유지한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수색 양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마을 장정들은 완전히 뒤로 물리고 오직 무인만으로 수색을 개시한다. 귀무살의 반격이 예상되기 때문에 단독 행동을 철저히 금지해야 한다.
“움직이는 자들을 쫓아라. 이 미친놈들!”
비보전주는 화가 들끓었다.
도대체가 망형이동이 무엇인지 알고나 건드린 것인가. 이제 조금만 더 수색하면 혈마에 대한 단서를 잡을 수 있는데.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비보전주는 즉시 서신을 적었다.
‘사실을 고한다고 해도 이미 싸움이 시작된 이상 달라질 건 없어. 이제부터는 전면전이야.’
그래도 단주에게 사실을 고해야 한다.
낭견대의 행동을 뒤로 물릴 수는 없다. 이제 싸움은 시작되었다. 그러니 천살단의 전력을 기울여서 귀무살을 싹 쓸어버려야 한다.
오직 이 한 가지 선택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 당장 단주님께 달려가라.”
비보전주는 급히 휘갈겨 쓴 서신을 호위 무인에게 던지다시피 건네주었다.
비보전주는 그가 떠나는 것도 보지 않았다.
그의 눈길은 이미 지도에 틀어박혔다. 한정된 인원으로 천라지망을 유지하려면…… 낭견대에 휩쓸리지 않을 무인들이 필요하다.
바로 지역 토착 무인들이다. 그들은 싸움판에서 한 발 떨어진 후, 계속 귀무살을 지켜봐야 한다. 절대로 싸움에 가담해서는 안 된다.
비보전주는 다시 서신을 적어갔다.
이번에는 꽤 여러 통을 작성해야 할 것 같다. 그것도 매우 급하게.
“의욕이 넘치는 걸 뭐라고 할 수가 있나. 때로는 판을 흔드는 것도 필요하지.”
비보전주의 서신을 받은 천살단주는 피식 웃었다.
“어떻게 조처할까요?”
검벽주 임명강이 물었다.
“살단주가 뒤에서 낭견대를 조정한 모양인데…… 살단주의 직위를 복권시켜. 이번 귀무살 사냥은 살단이 전적으로 맡으라고 해. 필요한 인력이 있으면 아낌없이 쓰고. 기왕 귀무살을 유린할 바에는 철저하게 해야지.”
“전부 죽이라는 말씀……”
“전면전인 걸 몰라? 이왕 시작된 싸움이면 이겨야지. 얻어맞고 우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아.”
“알겠습니다. 바로 전하겠습니다.”
검벽주가 부복했다.
누가 봐도 지금은 낭견대를 자제시켜야 할 때다. 아니, 처음부터 귀무살을 건드리지 말았어야 한다. 이번에는 확실히 살단주 주치균이 과하게 움직였다.
물론 낭견대가 살검을 들었지만, 그 뒤에 살단주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꼭 비보전주가 서신에 적어서 보내와야만 아는 것이 아니다.
검벽주는 단주가 당장 멈추라는 명령을 내릴 줄 알았다.
한데 전면전? 너무 뜻밖이다. 오히려 더욱 격려하고 있지 않나. 잘했다고 박수친다.
살단 대 귀무살.
오랜 싸움, 숙명적인 싸움, 견원지간이 다시 부딪친다.
어쨌든 단주의 명령은 즉시 이행되어야 한다.
검벽주는 지체하지 않고 즉시 전서를 날렸다.
“또 한 놈 잡았군.”
낭견대 무인들은 기분 좋게 웃었다.
늑대개가 귀무살의 발목을 잡고, 그 사이에 여러 명이 달려들어서 난자한다.
귀무살의 무공이 아무리 높아도 거의 이십여 명이 일제히 달려드는 데는 대책이 있을 수가 없다. 더욱이 낭견대는 하나같이 마공을 수련했다. 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는다.
그렇게 한 인간을 피떡으로 만들어서 죽이는 게 제법 쏠쏠하게 맛이 좋다.
컹컹컹! 컹컹! 컹!
늑대개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려간다. 앞으로 달려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측면으로 돌아가는 놈도 있다.
늑대개가 달려가는 모습만 봐도 귀무살이 어디 있는지 짐작된다.
“이번에는 어떤 놈일까? 귀무령이라는 놈은 제 새끼들이 죽어 나가는 데 코빼기도 안 보이고.”
“원래 마도 놈들이 그래. 목숨은 지독하게 아낀다니까.”
낭견대는 사냥하는 기분으로 뒤를 쫓았다.
사나운 늑대무리가 사슴을 쫓는 기분이다. 사슴이 빠르게 도망가지만, 결국은 잡힌다.
껑껑껑! 껑껑! 커어엉!
서둘 필요도 없다. 어차피 도망가지 못한다.
낭견대는 개들이 거칠게 짖어대는 곳으로 걸어갔다.
멀리서부터 무인 한 명이 검을 들고 늑대개와 대치하고 있는 게 보인다.
무인은 상당히 당황한 표정이다.
늑대개들을 공격하려고 검을 쓰고 있는데, 개들이 거리를 주지 않는다.
개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지어대기만 한다. 그렇다고 움직이는 것을 허락하지도 않는다. 귀무살이 움직이려고 하면 즉시 달려들어서 물어뜯는다.
말했잖은가. 늑대개는 일반 사냥개와 다르다고.
불마촌에서 이미 수없이 각종 도법과 검초를 겪어봤다. 무인의 칼에 대응하는 방법을 숙달시켰다. 한 마디로 무인과 싸울 줄 아는 무림 개라고 할 수 있다.
“이야! 이게 누구셔? 사람인가, 마귀 새끼인가?”
낭견대원이 웃으면서 나타났다.
귀무살의 인상이 확 일그러졌다.
“키키키! 뭐하러 입 아프게 그런 걸 물어. 보나 마나 마귀 새끼잖아. 저게 사람 새끼야? 내 눈에는 마귀 새끼밖에 안 보이는데, 다른 놈이 또 있어?”
다른 낭견대원이 장단을 맞췄다. 그때다!
쒜에에엑! 쒜엑! 쒜엑!
사방에서 날카로운 파공음이 일어났다.
“웃! 이게 뭐야?”
낭견대 무인이 당황했다. 지금까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개들을 상대하던 귀무살이 언제 그랬냐 싶을 정도로 매우 빠르게 개들 사이를 누비고 다녔다.
쒜엑! 쒜에엑!
늑대개들이 순식간에 검을 막고 나가떨어졌다.
스읏! 슷!
사방에서 귀무살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 명이 아니었다. 네 명…… 귀무살 네 명이 함정을 파고 기다렸다. 늑대개가 달려들게끔 귀무살 중 한 명이 미끼가 되어서 앞으로 나섰다.
“이놈들이!”
낭견대 무인이 급히 병기를 쳐들었다.
하지만 귀무살은 벌써 움직였다. 사납기로는 낭견대가 훨씬 앞서지만, 귀무살은 이미 살인에 능숙할 대로 능숙해진 사람들이다.
언제 공격하는 것이 가장 쉽게 죽일 수 있는지 안다.
쒜에엑!
검이 다리를 베어갔다.
낭견대 무인이 피식 웃으면서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토록 빤히 보이는 수법에 당하리라 생각했나. 한데,
“흑!”
뒤로 물러서던 무인이 급히 경악성을 토해냈다.
그의 코에서 진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아니, 귀에서도 핏물이 흘러내린다.
“이, 이게……”
“후후!”
낭견대 무인과는 정반대로 귀무살은 웃음을 흘렸다.
귀무살은 사람을 죽이는것에 무공만 고집하지도 않는다.
무조건 죽이기만 하면 된다. 주변 지형지물은 물론이고 죽은 시신까지도 이용한다. 하물며 독을 쓰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할 수 있다.
“병신, 무공보다 사는 법을 배워야지. 죽이는 법을 배우거나.”
푸욱!
검이 등을 뚫고 가슴 앞으로 삐져나왔다.
낭견대 무인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또 한 자루의 검이 그의 목으로 떨어졌다.
귀무살 네 명은 늑대개 세 마리와 낭견대 무인 세 명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귀무살이 낭견대 무인들에게 포위당한 체 도륙된다. 반면에 귀무살도 낭견대 무인을 죽인다.
싸움은 혼전 양상이다.
현재는 어느 쪽이 우세한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