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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48화 (348/500)

第八十章 회복(回復) (3)

파앗!

호발귀는 눈을 떴다.

죽여! 죽여! 죽여!

머릿속에서 악마의 속삭임이 회오리쳤다.

변한 것은 없다. 아주 긴 잠을 자고 일어난 기분이다.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죽여! 죽여!

살심이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푸르른 생기를 한두 개쯤 꺼트리면 기분이 개운할 것 같다.

이런 생각이 저절로 일어난다.

아무 거리낌 없이…… 전날에 만취했던 사람이 해장기를 느끼듯, 살인 욕구를 느낀다.

사람을 죽이면서 어떤 쾌감을 느끼는 것일까?

검으로 찌르는 맛? 솟구치는 피? 아니다.

그런 쪽에서 쾌감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살인마 대부분은 생명이 스러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쾌감을 느낀다.

호발귀는 사람이 죽는 모습에서 전혀 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스러져가는 생명을 보면 연민을 느낀다. 누가 되었든 한순간이나마 ‘죽지 마!’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혈기에 물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푸른 빛이 꺼지는 것을 보면서 극심한 쾌감을 느낀다. 죽는 모습이 아니다. 빛이 꺼지는 것을 보면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외형 속에서 빛이 빠져나와 허공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즐긴다.

혈마의 사명은 빛의 환원이다.

사람이 몸뚱이 안에 가둬놓고 있는 생기를 우주 속으로 돌려보내는 작업이다.

사람이 죽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푸른 빛…… 가죽 포대를 터트려서 그 안에 갇힌 생기를 우주 속으로 흘려보내야 하는데. 잠에서 깨어났으니까 아침 식사를 하기 전에 한두 개 정도만 흘려보낼까?

그러면 딱 기분이 좋겠는데. 상쾌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거야.

호발귀의 머릿속에서 울려 나오는 울림은 그런 종류다.

사람들이 말하는 살기, 살심과는 크게 다르다.

살인이 아니다. 생기를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내는 작업이다. 연못에 갇힌 잉어를 큰 강에 풀어놓는다. 그러니 대단히 잘한 일이지 않나.

이러니 혈마는 살인을 자연스럽게 한다. 살인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오히려 머릿속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것이 고통스럽다.

잉어가 강에서 마음껏 헤엄치지 못하고 연못에 갇혀있는 것을 보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지 않나.

잠깐만 움직이면 잉어에게 자유를 줄 수 있는데, 그걸 모른척하다니.

푸른 빛! 생기!

호발귀 눈에 우리에 갇힌 푸른 빛 네 개가 보였다.

스읏!

쓱 호발귀는 일어나 앉았다.

어떻게 된 일인지 생기가 밝기가 똑같지 않다. 두 개는 흐리고 두 개는 맑다.

‘맑은 것부터.’

호발귀는 푸른 빛을 꺼트리기 위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웃!’

호발귀는 적이 당황했다.

오른손이 움직이지 않는다. 손을 뻗어서 생기를 꺼트려야 하는데, 정작 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돌덩이라도 된 듯 꼼짝하지 않는다.

‘왜……? 웃!’

호발귀는 팔이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찾다가 불현듯 한 생각이 치밀었다.

진기봉맥!

‘진기봉맥! 진기봉맥이 맞아! 제대로…… 제대로 먹혔어! 혈이 마비되었어!’

시끄럿! 죽여! 어서 죽여! 어서 꺼트리란 말이야!

머릿속에서 다급한 울림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진기봉맥이라는 생각을 밀어내려고 했다.

‘후후! 그게 통했네. 몽중행이 현실로…… 삼마돌각수가 실제로 경혈을 타격했어.’

호발귀는 의식이 없었다. 한데도 몸을 움직였다. 실제로 왼손에 삼마돌각수가 담겼고, 수태음폐경을 마비시켰다. 진기봉맥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후후! 후후후! 후후후후!’

호발귀는 앙천광소를 터트리고 싶었다. 마음껏 소리 지르면서 승리를 만끽하려고 했다. 한데 웃음이 터지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만 짧게 웃었다.

죽여! 죽여!

죽이라는 명령이 너무 강렬하다. 두 눈에 푸른 빛만 일렁거린다. 반드시 꺼트려야 할 빛이다.

인간이라는 가죽 부대에 담긴 빛을 꺼내서 우주로 돌려보내야 한다.

살명(殺命)에 짓눌려서 승리의 기쁨이 사라졌다.

호발귀는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봤다.

기쁨을 드러낼 수는 없다. 하지만 살명에 휘둘리지 않고 다시 한번 돌이켜볼 시간은 얻었다.

머릿속에서는 계속 죽이라는 명령이 빙빙 맴돌지만, ‘아냐’라는 말을 할 수 있다.

홀리와 해자수는 생기가 매우 혼탁하다. 도천패와 당홍은 매우 강건하다.

눈을 떴을 때, 맑은 생기를 터트리려고 했다.

도천패와 당홍이 대상이다. 당시에는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겠다.

자칫했으면 두 사람은 죽었다.

‘어째서 혈기가……?’

호발귀는 홀리와 해자수에게서 혈기를 봤다.

혈마를 걱정할 정도로 진한 혈기는 아니지만, 조금씩 혈색이 진해지고 있다.

스읏!

호발귀는 왼손을 들어 올렸다.

슛! 슈우웃! 탁!

혈기가 홀리를 향해서 뻗어 나갔다.

오랜만에 펼쳐보는 생기격타다.

자신의 생기로 홀리를 생기를 쳤다. 자신의 생기가 푸른 빛이 아니라 붉은빛, 혈기이기 때문에 깊게 들어가지 못하고 잠깐 몸을 두들기는 선에서 그쳤다.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혼탁한 기운을 걷어내는 데는 충분하다.

홀리를 물들인 혈기는 매우 초보적인 단계다. 피부 속으로 스며들지도 못하고, 겉만 물들인 정도라고 할까?

그 정도로도 생기를 혼탁하게 만드는 데는 충분하지만.

홀리 전신에서 새파란 생기가 번뜩였다.

죽여! 죽여! 죽여!

악마의 속삭임은 더욱 강하게 들려왔다.

생기격타는 호발귀의 혈기를 자극한다. 외부에서 건드린 생기가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 혈기가 생기를 쫓아서 세상 밖으로 튀어 나간다.

‘강렬해.’

호발귀는 홀리를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누가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지, 무엇을 바라는지 다시 한번 생각했다. 그리고 살심을 꾹 눌러 참았다.

혈기를 걷어낸 후의 생기는 매우 강렬한 빛을 뿌린다.

보통 사람이 연녹색을 띤다면 홀리가 흘리는 생기는 빛이 나는 파란색이다. 샛별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도천패나 당홍의 생기보다도 더 강렬해졌다.

이러니 혈기가 미칠 수밖에 더 있나. 더 따라가려고 발버둥 치는 게 아닌가.

스스스스스!

방향을 바꿔서 해자수의 몸도 격타했다.

생기격타틑 홀리와 해자수의 몸에 깃들었던 혈기를 단숨에 빨아들였다. 그리고 잠시 몸 안에서 꿈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혈기에 혼합되었다.

구르르릉!

혈기가 요동쳤다.

자신의 혈기만으로도 살심을 억누르기가 힘든데, 외부의 혈기마저 빨아들이고 있다.

“으음!”

호발귀는 신음을 흘렸다.

굉장한 충격이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풀로 만든 배를 타고 떠도는 것 같다. 거센 혈기가 몰아치면서 ‘죽이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마구 뒤틀린다.

하지만 호발귀는 쓰러지지 않았다.

‘죽어도 그렇게는 못 하지. 네 말대로는 못해.’

굳건하게 정신을 다졌다.

이곳이 꿈속인가, 현실인가. 아직도 잠에 취해있나? 아니면 술에 취한 것인가?

어지럽다. 입에 신물이 고이는 것을 보니 멀미도 일어나는 것 같다.

혈기가 마구 극성을 부렸지만, 오른팔에 남겨진 자각이 여전히 그를 일깨워주었다.

지금 상태는…… 정확히 말하면 반혈반인이다.

절반은 혈마이고 절반은 인간인 호발귀다. 어느 쪽이 우세하다고 할 수도 없다. 아니, 혈마가 조금 우세하긴 하다. 죽여야 한다는 마음이 무척 강하니까.

이것은 구 할 구 푼 대 일 푼의 싸움이다.

혈마가 구 할 구 푼을 차지하고 있고, 자각은 겨우 일 푼만 남아서 발버둥 친다.

‘혈마가 되는 것은 피하지 못해. 다만 시간을 좀 늦출 뿐.’

호발귀는 암울한 눈으로 짙은 어둠 속에서 잠들어 있는 네 사람을 쳐다봤다.

이 사람들을 해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언제 혈마가 되어서 죽인다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떠나야 하나.’

호발귀는 차라리 은밀히 몸을 빼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일어서려고 했다.

그때, 당홍이 잠에서 깬 듯 꿈지럭거렸다.

호발귀는 다시 눈을 감았다. 혈기에 휘말린 상태로 이들과 같이 움직일 수는 없다.

지금도 머릿속에서는 죽이라는 살명이 끊임없이 터져 나오고 있으니까.

“이건 해보고 싶지 않은 건데.”

“그게 무슨 소리야.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일단은 정신부터 수습해야 할 거 아닌가.”

당홍과 해자수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나눴다.

“해. 잘못되면 내가 책임지지.”

도천패가 큰 소리로 말했다.

“거 사람…… 책임질 수도 없으면서…… 어떻게 할까요? 그래도 해보는 게 낫지 싶은데.”

해자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해요. 잘못되면 저도 책임질게요.”

홀리가 말했다.

“휴우! 나도 모르겠다.”

당홍이 반쯤 체념한 듯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호발귀에게 독섬칠공 중 관독법을 펼쳤다.

호발귀의 몸을 꿰뚫어 본다. 그리고 조금만 먹어도 그 자리에서 절명한다는 맹독을 투여했다.

비독(砒毒)이다.

당홍은 광산 근처에서 비석(砒石)을 찾아냈다. 비석으로 흙가마를 만들어 고와서 비상(砒霜)을 만들어 냈는데, 붉은 쪽에 가까운 누런 색이다.

비상 중에서도 최상품이다.

호발귀는 독섬칠공을 수련해서 독기에 저절로 반응한다. 웬만한 독은 바로 중화시킨다. 하지만 혼절한 상태에서도 비상을 중화시킬 수 있을까?

독섬칠공이 너무 잘 들어도 문제다.

관독법으로 비상을 투여하는 것은 경혈이 꽉 막혀 있기 때문이다.

진기를 아무리 밀어 넣어봐도 퉁겨내기만 하니, 치료할 방법이 전혀 없다.

그래서 비상을 투여해서 굳은 경맥을 풀려는 것이다.

그러니 호발귀가 당홍처럼 즉각 독섬칠공을 끌어올리면 비상을 투여한 보람이 없다.

이독법이 작용하면 소화해 버릴 것이고, 차독법을 쓰면 밀어낼 것이다.

비상이 침투해서 경혈을 녹일 즈음, 독섬칠공이 발동되어야 한다.

독섬칠공이 아예 일어나지 않거나 조금 늦게 일어나도 비상의 독기가 장기를 녹이게 된다.

그야말로 시기를 잘 맞춰서 독공을 일으켜야 하는데, 혼절한 사람에게 이런 것까지 요구하는 것은 너무 무리가 아닐까 싶다. 아니, 틀림없이 무리다.

‘후웁!’

당홍은 숨을 꾹 눌러 참았다.

호발귀의 입안에 비상 가루를 털어 넣었다. 그리고 진기로 힘차게 비상을 유도하기 시작했다.

비상이 혀와 목젖을 태우기 전에 독기를 유도해야 한다. 순간,

꽈앙!

갑자기 강력한 반탄력이 일어나면서 비상을 튕겨냈다.

‘훅!’

당홍은 하마터면 튕겨 나온 독가루를 흡입할 뻔했다.

호발귀는 비상 가루를 뱉어냈을 뿐만 아니라 이미 몸 안에 침투한 독기도 밀어냈다.

차독법이 아주 강하게 작용했다.

호발귀의 몸에는 어떤 독도 침투하지 못하게끔 강력한 반탄력이 형성되어 있다.

바깥에서 흘러들어오는 모든 진기, 독기를 밀어낸다.

‘예상했어!’

당홍은 서둘지 않고 반탄력의 흐름을 잡았다. 그리고 독섬칠공 전인기를 사용해서 고기를 결에 따라 찢듯이 반탄력을 찢어냈다.

철벽을 헤집고 틈을 만들었다.

츠읏!

찢어진 틈으로 비상이 다시 흘러 들어갔다.

타앙!

독기가 다시 튕겨 나왔다.

그녀는 서툴지 않았다. 계속해서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진기를 찢고 독을 흘러 넣었다.

다시 튕겨 나오면 그녀도 물러섰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상도 깊숙이 스며들었다.

호발귀가 아무리 굳강해도, 본인 스스로 일으키지 않는 독강은 한계를 지닌다.

‘다행이야. 혈기가 마물은 아니었어. 휴우!’

당홍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간혹, 살아있는 생물이 인간의 몸 안으로 들어가서 작용할 때가 있다. 음양마고가 그렇다.

마고는 살아있는 상태에서 약물을 복용한 것처럼 강력한 음심을 일으킨다.

이런 경우에는 전인기를 사용해도 진기의 결이 찢어지지 않는다.

혈기는 찢어졌다. 강력하게 저항했지만 결국은 전인기의 손길에 찢어지고 말았다.

‘정말 다행이야. 다행.’

당홍은 계속 집중해서 반탄력의 결을 찢어내고 비상을 밀어 넣었다.

딱딱하게 굳은 경맥을 깨우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그녀는 투여한 비상이 이독법에 이끌려서 한쪽 구석에 쌓이고 있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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