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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41화 (341/500)

第七十九章 자경(紫經) (1)

- 지도료(知道了).

간단한 회답이다. 딱 세 글자만 보내왔다. 그 외에 더 붙어 있는 말이 없다.

‘알았다니. 더 할 말도 없다는 말씀이신가.’

“단주님은?”

“백사(白紗)에 머물러 계십니다.”

비보전주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뭐가 알았다는 건가? 지도료라니. 알았다? 귀무살을 놓쳤다고 보고했는데, 망형이동 때문에 더는 추격할 수 없다고 보고했는데 알았다고 대답해 왔다.

그렇다면, 알았으면 돌아봐야 하지 않나. 돌아오지 않고 백사에 머물러 있다는 말은 무엇인가?

- 망형이동 때문에 귀무살을 놓친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분발해봐. 비보전이라면 찾을 수 있잖아? 난 자네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비보전주는 단주의 음성이 귓가에 닿는 듯했다.

단주는 종종 말보다도 행동으로 책망을 한다. 말로는 알았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래서 뭐?’라고 반문하는 듯하다.

지금이 딱 그렇다.

‘찾아내라는 소리군.’

비보전주는 단주의 의중을 파악했다.

그냥 찾아내라는 말이 아니다. 깊이 있게 찾아내라는 말이다.

막연히 추측하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딱 꼬집어서 말해야 한다. 보고를 올린 대로 찾아가기만 하면 어김없이 호발귀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명령을 무시하면, 아니 명령을 어기면 상당한 문책을 당할 것이다.

비보전주 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당연하다.

자리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비보전주라는 자리는 얼마든지 비워줄 수 있다.

그동안 십육비자를 잘 훈련했다. 십육비자 중 누구라도 비보전을 맡을 자격이 있다.

다만 이런 일로 인해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비보전이 가장 잘해야 하는 일을 하지 못해서 물러난다는 것은 두고두고 치욕으로 남을 터이다.

“망형이동이라. 그럼…… 망에는 망으로 상대해줘야겠지.”

“망입니까?”

이비자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망형이동을 잡을 방법은 망밖에 없어. 지금 즉시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쳐라.”

“어느 정도나 생각하십니까?”

이비자가 천라지망의 범위를 물었다.

“사방 백오십 리.”

비보전주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즉시 말했다.

이비자는 너무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무슨 말인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 백오십 리라고 하셨습니까?”

“귀무살이 흩어져 있는 게 사방 백 리야. 그러면 백오십 리는 펼쳐야 잡아낼 수 있지.”

“으음!”

이비자는 신음했다.

천라지망…… 하늘을 가두는 그물, 하늘에서 넓게 펼쳐져서 뚝 떨어지는 그물.

천라지망을 펼친다고 할 때는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범위가 백오십 리에 이른다는 말을 듣자 비로소 천라지망이 어떤 것인지 새삼 실감 났다.

십이비자에 의하면 귀무살은 사방 백 리에 흩어져 있다.

아니 십이비자는 귀무살이 흩어져 있는 범위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는 이쪽저쪽으로 뒤쫓으면서 대략적인 윤곽을 보고해 왔을 뿐이다.

사방에 흩어져 있는 세작들이 귀무살의 위치를 알려왔다.

보고된 위치를 일일이 지도에 표시해 보니, 펼쳐져 있는 반경이 무려 백 리나 된다.

그 가운데에 점을 찍고 사방 백오십 리를 포위한다.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밀집 대형을 이룬 추격꾼들이 땅을 헤집고, 풀숲을 헤쳐가면서 포위망을 좁힌다.

호발귀가 이미 백오십 리 밖으로 벗어났다면 몰라도 안에 있다면 걸려들 수밖에 없다.

“전주님. 백오십 리를 막아내려면 동원하는 인원이 십만 명이 넘습니다.”

“십만 명이 아니라 백만 명을 동원하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지. 한 시진 내로 포진을 완성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이비자가 대답했다.

천라지망은 천살단 무인만으로는 펼칠 수가 없다. 예상 동원 인원이 십만 명이나 되는 만큼 몇몇 문파에 통문을 보내서 협조를 구해야 한다.

천살단은 이런 일에 대비해서 무림 문파와 연계를 다져놨다.

그렇다고 해서 중원 각 문파에 모두 통문을 보내고, 고수를 보내라고 할 수는 없다. 당장 필요한 무인은 백오십 리를 장악할 수 있는 인근 문파다.

귀무살 무인이 흩어져 있는 백 리의 중심은 모전리(母田里)다.

모전리를 중심으로 해서 반경 칠십오 리 밖에 어떤 문파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칠십오 리 안쪽에 있는 문파는 대기 상대로 준비한다. 포위망은 칠십오 리 밖에서 펼쳐진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안 된다. 이백 리 밖에 있는 문파는 달려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오차 범위는 십 리 이내, 그 안에 무림 문파가 몇 개나 있을까? 모전리를 중심으로 반경을 그리느니 만치 몇 문파라고 단정할 수 없다.

그들 문파를 모두 동원해도 천라지망은 형성되지 않는다.

이비자는 즉시 세부 계획을 수립했다.

“동원할 수 있는 문파는 모두 다섯 개. 북쪽에 오검문(悟劍門)과 이가문(李家門). 동쪽에는 파벽권문(破壁拳門), 남쪽은 태룡문(太龍門), 구무방(救武幫). 음!”

이비자는 신음을 흘렸다.

동원할 수 있는 문파를 선정했는데, 하나같이 중소문파다. 태룡문 같은 경우에는 문도수가 스무 명이 채 안 된다. 작은 동네의 무관(武館)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도 상관은 없다.

이들 문파를 동원하는 것은 사람을 통제할 목적이지, 이들로 천라지망을 꾸미려는 것은 아니다.

천살단이 통문을 보내면 이들 문파가 즉시 인근 마을 장정들을 규합한다. 마을에서 마을로, 또 마을로…… 마을에 있는 장정들이 사람 띠를 형성한다.

수색은 이들이 한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반면에 지리는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안다.

처음에는 포위망이 옅을 수 있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갈수록 모이는 장정이 많아진다. 거리를 좁힐수록 입이 벌어질 정도로 거리가 좁혀진다.

중심점인 모전리에 가까이 다가가면 거의 십만 명에 이르는 장정들이 산과 들을 메울 것이다.

물론 백오십 리 안에 있는 무림 문파가 장정들도 가만히 손 놓고 기다리고 있지만은 않는다. 천라지망이 발동하는 순간부터 바로 주변을 뒤진다.

백 오십 리 안쪽이 발칵 뒤집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외곽부터 포위망을 좁혀오니 빠져나갈 수 있겠나. 지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숨어 있을 만한 곳은 모두 뒤지면서 다가오는데.

무림 문파는 이들 뒤에서 만일을 대비한다. 싸움이 벌어지면 즉각 무인들이 달려나가서 맞대응한다.

물론 이들 문파는 귀무살을 상대하지 못한다. 싸움이 벌어지면 너무 쉽게 뚫릴 것이다. 하지만 이 싸움이 추격의 단초다. 일단 싸움이 벌어지면 그때는 천살단이 즉각 가세한다.

문제는 이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데 그냥 말로만 움직일 수 있느냐는 거다.

요즘은 뭐든지 사람을 썼다 하면 돈이 들어간다.

십만 명을 움직이려면 천살단 재정이 휘청할 정도로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

그래서 천라지망 같은 경우에는 원래 단주에게 보고부터 하고 시행한다.

그것을 비보전주가 단독으로 처리하고 있다. 만약에 천라지망이 무휴로 돌아가면 비보전주는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그러니 반드시 성과를 내야만 한다.

상당히 위험한 추적이다.

물론 비보전주의 판단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지극히 옳은 판단이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천라지망이 아니면 망형이동을 잡아낼 방법이 없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현재 상태로는 천라지망을 형성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서쪽을 막을 문파가 없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문파가 이백이십 리나 떨어져 있다. 무려 칠십 리나 달려와야 한다.

“한군데 있기는 한데.”

오비자가 말했다.

이비자가 고개를 들어 오비자를 쳐다봤다.

무림형도(武林形圖)에 기재되지 않은 문파라면 마방(魔幫)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 오비자가 거론할 정도면 완전한 마방은 아니고 정사 중간이 아닐까 싶은데.

“여기 강변에 수왕적(水王摘)이 있어. 그놈들은 세력도 꽤 되고, 괜찮을 것 같은데?”

“수왕적에 연락할 수 있나?”

“해봐야지, 뭐.”

“이놈들, 믿을 수는 있어? 괜히 천라지망에 구멍이라도 뚫리면 곤란해져.”

“이놈들이 가부(可否) 하나는 분명히 해. 아예 움직이지 않거나, 확실히 협조하거나 둘 중 하나야. 일단 움직이면 믿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데.”

“좋아. 그러면 서쪽은 수왕적에게 맡기고.”

수왕적은 강을 무대로 노략질을 일삼는 수적이다. 당연히 정도에서는 받아주지 않고, 마도에도 끼지 못하는 정사 중간의 어중간한 집단이다.

천살단이 수왕적을 이용하면 체면이 구겨진다.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다. 오히려 수왕적이 제안을 거절할까 봐 불안해할 처지다. 무조건 저들을 움직여서 천라지망을 완성해야 한다.

사실, 저들이 귀무살과의 충돌을 염려해서 움직이기 싫다고 하면 억지로 움직이게 할 방도는 없다.

당장, 천라지망에 틈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놈들은 내게 맡겨. 나와 인연이 있어서 거절하지는 못할 거야.”

오비자가 자신 있게 말했다.

“천라지망을 펼쳤습니다.”

이비자가 보고했다.

“서쪽은 결국 수왕적을 썼나?”

“네. 방법이 없어서.”

“아니, 잘했어. 지금처럼 어수선할 때는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어. 이용할 수 있는 것이면 모두 이용하는 게 좋아. 수왕적. 후후! 오비자가 꽤 발이 넓어.”

비보전주가 만족한 듯 웃었다.

일반인들로 천라지망을 구성하는 데는 장단점이 확연히 두드러진다.

장단점은 모두 같은 이유에 기인한다.

일단 장점을 보면 다툼이 일어날 공산이 낮다. 일반인은 무인과 싸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웬만한 시비는 알아서 피한다. 그러면서도 수색은 제대로 한다.

장정들을 뒤따르는 무림 문파가 모든 책임을 지고 수색을 지휘한다.

이들 문파는 천라지망에 참여한 대가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서 지휘한다.

중소문파에서 일약 대문파로 전환될 수 있을 정도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싸움을 피하면서 수색을 할 수 있다.

단점은 역시 이들이 무인이 아니라는 데 있다.

너무 약하기 때문에 귀무살이 동시다발적으로 시비를 걸면 수습하기가 곤란해진다. 물론 수색에 참여한 장정들이 알아서 싸움을 피하겠지만.

천라지망은 적을 잡기 위한 포위망이 아니다. 목적이 완전히 다르다. 수색해서 적을 찾기 위한 포위망이지, 잡아채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천라지망은 움직였고…… 움직일 수 있는 무자(無子)가 몇이나 되지?”

“무자도 움직입니까?”

이비자가 되물었다.

이비자의 표정에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냐는 뜻이 담겨 있다.

무자는 예비 비자라고 할 수 있다. 아직은 실전에 사용할 수 없는 예비 비자다. 무자의 목표는 십육비자다. 차기 비자가 되기 위해서 부지런히 수련을 쌓고 있다.

혈천방이 귀무살을 만들기 위해서 귀문을 운용하는 것과 같다.

무자를 천라지망에 투입한다는 것은 다른 문파나 마을 장정들과 합류해서 수색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동안 비보전은 혈천방의 비밀 거점, 안식처를 세밀히 파악해 왔다. 귀무살이 퍼져있는 백 리 안에도 저들의 비밀 거점이 열한 곳이나 있다.

무자는 그곳을 수색한다.

이것 역시 작전 계획 속에 포함되어 있기는 한데, 혈천방과 전면전을 벌일 경우에 시행할 생각이었다. 지금처럼 호발귀를 찾기 위해서 무자를 쓸 계획은 전혀 없었다.

비보전주가 말했다.

“이번 일에 비보전 총력을 쏟아붓는다. 동원할 수 있는 무자는?”

“이백 명 정도 됩니다.”

“준비시켜.”

“역시 백오십 리 안쪽이죠?”

“무자는 내가 직접 운용한다. 한 시진 안에 떠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전주님이 직접 가시게요?”

“내가 가야지. 천라지망을 펼치고, 무자까지 집어넣는 판국에 내가 이곳에 앉아서 할 일은 없어.”

비보전주가 검대에 걸려 있는 검을 들어서 허리에 차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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