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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39화 (339/500)

第七十八章 망형이동(網形移動) (4)

당홍은 근 한 시진에 걸쳐서 호발귀를 살폈다.

맥을 잡아보는 데는 촌각이면 된다. 진기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당홍은 한 시진 동안이나 정신을 집중해서 살펴봤다.

“어때?”

도천패가 물었다.

당홍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그녀는 이미 어떤 의원보다도 뛰어난 의원이다. 독섬칠공에 통달해서 독의의 수준에 올랐다.

그런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게…… 분명히 흑포부시단을 복용했는데, 왜 아직 멀쩡하지?”

해자수가 물었다.

이런 물음은 다른 사람에게는 할 수 없다. 상대가 당홍이기 때문에 물을 수 있다.

“독성은 없어요.”

“흑포부시단을 먹었는데?”

“그게 이상해. 정말 흑포부시단에 당한 것은 맞아요? 부시독 흔적이 전혀 없어서.”

“정말 아무 이상 없어요?”

홀리가 되물었다.

“없어. 괜찮아.”

“정말 이상하네요. 우리는 호발귀가 독섬칠공을 수련해서 무의식중에 그게 발동했나 생각했거든요.”

“삼기(三氣), 삼법(三法), 화독강(化毒剛). 어떤 것도 일어나지 않았어. 나는 흑포부시단에 당했다는 말을 믿을 수 없는데? 전혀 흔적이 없잖아.”

“그럼 왜 깨어나지 못하는 거죠?”

“파신금령술 때문인 것 같아.”

“상처는 거의 아물었는데……”

홀리가 말끝을 흐렸다.

“외상 문제가 아니야. 내상 문제야. 겉은 나아도 속은 들끓고 있어. 처치를 잘해서 상처는 곧 나을 것 같은데, 깨어나는 것은…… 그리고 깨어나도 정상은 아닐 거 같아. 눈에 혈기가 맺혀 있어. 그것도 아주 지독하게.”

‘혈마!’

홀리와 해자수는 ‘혈기’라는 말에 혈마를 떠올렸다.

혈마가 된 호발귀는 누구도 감당하지 못한다. 애꿎은 사람을 죽이지 않기 위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거나, 아니면 주치균에게 당하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언니, 혈기를 치료할 수는 없을까? 기회는 지금뿐이야. 정신이 들기 전에 치료하지 않으면 영영……”

홀리가 말을 맺지 못했다.

“이 부분은 누구도 치료하지 못할 거 같은데.”

당홍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후유!”

홀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긴 하지만 당홍이 말하는 것에는 또 다른 뜻이 내포되어 있다. 당홍마저 어쩔 수 없다는 것은 이제 누구도 호발귀를 도와줄 수 없다는 뜻이다.

호발귀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홀리는 그동안 있었던 모든 일을 말해주었다.

귀무살이 옆에서 노를 젓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모두 말했다. 단, 생기를 얻은 부분은 말하지 않았다. 그 부분은 귀무살이 알아서는 안 되는 자신들만의 비밀이다.

나중에는 말하겠지만, 귀무살이 듣고 있을 때는 말해주기가 싫었다. 또 생기를 사용하는 것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했다.

귀검조차도 눈치만 챘을 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는 상태다.

일부러 이쪽 비밀을 알려주어서 사전에 대비하게끔 만드는 것은 바보짓이다.

“주치균이 이렇게까지 독하지는 않았는데.”

당홍이 중얼거렸다.

“옛날에 뭐냐, 여자가 한이 맺히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맺힌다고 하잖아. 남자가 한이 맺혀도 마찬가지지. 그 한 품어서 좋은 거 있나. 오뉴월에 살이 맺힌 거지 뭐.”

해자수가 말했다.

주치균은 정도의 상징이나 마찬가지다. 공명정대하고 성격이 밝고 강직하다.

불의를 참지 못하고 악을 행하지 않는다. 악을 징벌하는 사람이니 더욱 악에 대해서 철저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파신금령술 같은 독한 수법을 썼다. 혈마를 잡는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반쯤 죽여놨다. 외상이 나아도 절대 정상으로 돌아오지 못할 만큼 근육을 짓이겨 놨다.

굉장히 악독한 손속이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해도 결코 정도인의 손속이라고 보기가 어렵다.

혈마를 제거하는 게 천살단 제일 임무라는 것을 안다. 혈마에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어떤 식으로든 죽이는 게 최상이다.

모두 다 이해한다. 하지만 그런 의미라면 혈마를 죽였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고통을 가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그것도 주치균이 이런 식으로 손을 썼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음! 주치균. 후후! 다음에는 날 만나지 말아야 할 거야. 만나면 죽어.”

도천패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 * *

한 무더기가 둘로 갈라지고, 반으로 쪼개진 무더기에 다시 사람이 모여서 한 무더기를 이룬다.

‘느낌이 쎄한데.’

십이비자는 곧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주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뒤도 안 돌아보고 내빼도 모자랄 판인데, 여유 있게 이리저리 도피 움직임까지 보인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말이다.

‘추격자가 단주님이라는 사실은 알았을 것이고…… 그런데도 이런 짓을? 풋! 단주님이 쫓아와도 피할 수 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면 틀림없이 망형이동!’

인원도 얼마 되지 않는 귀무살이 설마 망형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인가?

망형이동을 하려면 대단히 많은 인원이 필요하다. 오백 명, 천 명…… 그 이상이 한마음으로 움직여야 한다. 귀무살도 적지 않은 인원이지만, 망형이동을 펼칠 정도로 많지는 않다.

적은 인원으로도 망형이동을 펼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러려면 개개인이 모두 고수이거나 아니면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쉬지 않고 치달려야 한다.

어쨌든 백여 명 안짝의 인원으로는 망형이동을 제대로 표현해내기 어렵다.

설마…… 설마!

한 무더기가 다시 둘로 쪼개지고, 쪼개진 무더기가 또 쪼개지고, 이제 몇 명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설마가 아냐! 망형이동이야!’

십이비자는 확신했다.

귀무살이 망형이동을 펼친다면 어떻게 쫓아야 할까? 혼자 쫓는 것은 불가능하다. 망형이동을 쫓으려면 펼치는 사람만큼이나 쫓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쫓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가능성이 희박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 사람만 쫓는 거다.

이들 모두 귀무살이지 않은가. 그러니 쫓고 쫓다 보면 언젠가는 한 무더기로 모일 것이다. 한 사람만 지정해서 대륙 끝까지라도 쫓아가면 반드시 귀무살 전체와 만날 수 있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망형이동의 끝이 분산에 있다면 이건 정말로 곤란하다. 귀무살이 뿔뿔이 흩어진 채 다시 모이지 않는 것이다. 적어도 서너 달, 길게는 반년 이상 뿔뿔이 흩어져서 생활한다. 그리고 추격 가치가 사라지면 다시 모인다.

이렇게 망형 이동의 끝이 집합이 아니라 분산이라면 호발귀를 쫓는다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좋아! 너!’

십이비자는 한 사람을 찍었다.

바로 심상치 않은 병기를 든 자, 월도를 들고 있는 자다.

다른 자들은 검을 들기도 하고 칼을 들기도 하고 창을 들기도 했다. 하지만 딱 한 사람만은 삼국시대 관우가 썼을 법한 월도를 들고 있다.

그리고 그자가 귀무살을 지휘하기도 한다.

귀무령은 아니지만 적어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자인 것만은 틀림없다.

실제로 홀리와 해자수가 그자 뒤를 쫓아가고 있다.

‘저놈! 저놈만 쫓으면 돼.’

십이비자는 이합집산에 일절 눈길을 주지 않았다. 누가 흩어지고 누가 모이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뒤에 남겨진 자도 있는데, 그때는 조심해서 지나쳤다.

귀무살의 이목을 속이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 정도는 빠져나갈 수 있다.

스스스!

십이비자는 월도만 쫓았다.

“망형이동!”

비보전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귀무살이 망형이동을 사용할 줄이야.

이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움직임이다. 진실로 귀무살이 이런 식으로 움직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게 어디 가당키나 한 말인가!

백 명이 망형이동을 펼친다면 추격자는 최소한 오십 명이 필요하다. 절반은 버리더라도 절반은 따라붙어야 한다. 흩어지고 모이는 과정이 계속되겠지만, 추격자도 끈기 있게 따라붙어야 한다.

끈기의 싸움이다.

비보전은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문제는 귀무살이 망형이동을 사용할 것이라는 걸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처 그만한 사람을 동원하지 못했다.

“이거 한 방 얻어맞았군.”

비보전주가 의자에 깊숙이 몸을 뉘었다.

이 순간, 비보전주의 머릿속에는 귀무살을 유유히 쫓아가고 있는 천살단주의 모습이 그려졌다.

단주는 호발귀를 놓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 당장 호발귀의 위치를 말해주지 못하는 비보전을 책망하고 있을 터이다.

귀무살이 망형이동을 펼쳤다. 그렇다면 저들을 따라잡지 못한다. 십이비자가 뒤쫓고 있다지만 그 역시 믿을 수 없다. 아마도 곧 놓치지 않을까 싶다.

이번 추격에서 놓치더라도 긴 안목에서는 귀무살을 따라잡을 수 있다.

‘곤란하네. 단주는 당장 따라잡을 수 있는 위치를 요구하고 있는데. 할 수 없지. 일단은 기다려보는 수밖에.’

비보전주는 의자에 몸을 묻은 채 눈을 감았다.

십이비자가 따라가 주면 좋지만…… 놓칠 가능성이 더 클 것이다.

월도가 강을 건넌다.

‘강을 건너면 이합집산이 어렵지. 여기서부터는 원점. 강을 건너지 않은 자들은 쫓을 필요가 없는 거야.’

십이비자는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서 문짝을 떼어냈다.

문짝을 뗏목 삼아서 강에 띄운다. 문짝에서 떼어낸 널빤지로 노를 젓는다.

십이비자는 월도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강을 건너기 전에 월도와 홀리가 갈라졌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십이비자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추격하는 중이다.

홀리의 무공이 상당히 높아서 가까이 접근하면 당장 발각된다. 그래서 상당한 거리를 두고 간신히 머리 끝자락만 잡은 채 쫓아가는 형태다.

사실 이것도 상당히 위험 부담이 크다.

‘강을 건너면 망형이동을 풀 공산이 높아. 그러면 본격적으로 쫓아가게 되는데…… 거리를 어느 정도나 벌리고 쫓아가야 하나? 너무 벌리면 놓칠 우려가 있고.’

십이비자가 강심에 도착했을 때, 월도는 강변에 배를 대고 신형을 쏘아내는 중이었다. 십여 명이 한 몸처럼 재빨리.

“음!”

비보전주는 침음했다.

역시 예상했던 대로다. 월도가 양곡(陽谷)이란 곳에 도착한 후, 여장을 풀었다는 소식이다.

월도가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들 무리 속에 호발귀가 없다는 점이다. 중간 어딘가에서 갈라진 게 틀림없다.

놓친 것이다. 십이비자가 두 눈을 부릅뜨고 쫓아갔는데도 놓치고 말았다.

“예상은 했는데 그래도 씁쓸하군.”

비보전주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제는 보고하지 않을 수 없다. 단주가 기대하는 보고가 아니라서 어쩌나.

“망형(網形)에는 망형으로 응수해야겠지. 강에서부터 전역 수색한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해서 수색해. 주변 백 리에 천라지망(天羅地網)을 두른다.”

“백 리 안에 있다고 보십니까?”

일비자가 말했다.

“다른 의견이 있나?”

“강에서 흩어진 배 열 척…… 그들이 흩어진 지역이 상당히 넓죠? 백 리는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만.”

일비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백 오십 리로 할까?”

“백오십 리는 사람이 뒤지고. 혹시 모르니까 참응을 써볼까 합니다.”

“직접 가겠다는 소리군.”

일비자가 히죽 웃었다.

수색 범위는 백 리로 충분하다. 귀무살은 강을 건너는 즉시 잠적했다. 그렇다면 은신한 곳도 강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넓게 잡아도 백 리다.

일비자는 자신이 직접 귀무살과 부딪쳐보고 싶은 것이다.

“안에 있는 것도 지루할 테니, 가보고 싶으면 가봐. 아! 그럼 가는 길에 단주님께 서신 좀 전하고.”

“놓쳤다는 서신이죠?”

“그래.”

“킥킥! 전주님은 꼭 껄끄러운 일은 절 시키시더라.”

일비자가 히죽히죽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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