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八章 망형이동(網形移動) (3)
쒜엑! 쒜에엑!
월도와 무지가 신형을 쏟아냈다.
그들도 분명 이곳은 처음 와본 곳일 텐데, 한 치의 망설임이 없이 질주한다.
“여기 와본 적이 있나?”
해자수가 물었지만,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마치 잘 아는 길을 달리듯이 쾌속하게 질주했다.
“이 사람들 정말 무서운 사람들이네.”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홀리가 힐끔 해자수를 쳐다봤다.
해자수는 홀리의 눈길을 의식하고는 즉시 생각을 말했다.
“준비가 끝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자들이 있죠? 이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에요. 완전히 준비를 끝낸 후에 퇴로까지 다 살펴보고 그런 다음에 움직이죠.”
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홀리도 그런 점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월도와 무지가 낯선 길에 거침없이 치달리는데, 길이 끊기지 않는다. 막다른 길이 나온다거나 아니면 힘든 길이 나온다거나 하지를 않는다.
이미 주변 지형을 손바닥 보듯이 환히 꿰뚫어 보고 있다.
‘귀무살에 대한 평가를 다시 해야 할지도 몰라. 이런 식으로 도주하면 천살단에서도 곧 비보전을 움직일 텐데…… 누가 이기는지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
홀리는 편안한 마음으로 뒤따랐다.
비보전을 따돌리면 좋고, 꼬리를 잡혀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귀무살을 전적으로 믿지 않는다.
여유가 된다면 이들마저 떼어내고 해자수와 단둘이만 움직이고 싶다.
서둘 필요는 없다. 이들이 비보전을 상대해 준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
쉬이이익!
길을 가는 도중 낯선 자들이 합류했다.
귀무살이다. 여섯 군데로 퍼졌던 귀무살이 달리고 있는 월도를 쫓아와서 합류한다.
이미 어디로 갈지 사전에 약속해 놨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들 역시 지리를 환히 꿰뚫고 있다. 비밀스러운 움직임인데도 귀무살 전원이 움직임을 숙지하고 있다.
누군가가 잡혀서 고문을 당하더라도 비밀을 지켜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왼쪽, 오른쪽!
갑자기 눈앞에 갈림길이 나타났다.
“너희 다섯!”
무지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자 일행에 합류했던 귀무살 중 다섯 명이 무지를 따라서 오른쪽 길로 빠져나갔다.
월도는 왼쪽 길로 달렸다.
이번에도 귀무살은 미리 점찍어 놓은 듯 전혀 거침없이 행동했다.
왼쪽으로 가는 자와 오른쪽으로 가는 자가 망설이지 않는다. 서로 조심해서 움직이라는 인사도 하지 않는다. 마치 당연히 가야 할 길로 간다는 식이다.
“우린 어느 쪽으로 따라가야 하나?”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듯 월도가 뒤돌아보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이리로!”
쒜엑! 쒜에엑!
홀리는 월도만 쫓아갔다.
스스스스! 스스슷!
좌우에서 귀무살이 끊임없이 합류했다.
샛강이 흘러서 큰 강에 섞이듯이 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한 명, 두 명 늘어났다. 대략 반 시진만 달리면 같이 움직이는 사람이 십여 명은 훌쩍 넘어섰다.
길이 없는 숲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커다란 바위에서 훌쩍 뛰어내리기도 했다.
“귀무살이 이렇게 많았나?”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한 명씩 모인 사람들이 갈림길이 나왔을 때는 거의 스무 명 가깝게 불어났다.
“가!”
월도가 명령하면 다시 갈라진다. 절반 가까운 인원이 갈림길 저쪽으로 달려간다.
흩어지고 모이고, 다시 모이고 갈라진다.
스스스슷!
갈림길이 지나자 또다시 귀무살이 모이기 시작했다.
“엇! 저 사람!”
당홍이 깜짝 놀라서 말했다.
첫 번째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달려갔던 무지다. 그가 다시 돌아와서 월도와 합류했다.
“그럼 그렇지.”
해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무살은 인원이 한정되어 있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백 명이 채 안 될 것으로 추측한다. 더 될 수도 있고, 덜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아무리 많다고 해도 중원 천하에 쫙 깔려 있을 만큼 많지는 않다.
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한다.
“이거 의도적인가?”
홀리가 해자수를 보면서 물었다.
모이고 흩어지기를 반복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한길로만 부지런히 도주해도 곧 꼬리를 잡힐 판인데, 이리저리 우왕좌왕 사방에 흔적을 남기면서 도주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번잡하게 움직이면 더 안 좋지 않나?
“이거 망형이동(網形移動)이라는 거예요.”
해자수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망형이동?”
“지금 우리 눈에는 모이는 사람과 갈라져 나가는 사람만 보이지만, 귀무살은 더 바쁘게 움직이죠. 저들은 서너 명씩 뭉쳐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니까. 각각 뿔뿔이 흩어져서 움직일 때가 더 많다 이거지.”
“뭐하러?”
“그렇게 움직이면서 그물 형태를 만들면…… 흔적이 너무 많이 남게 되잖아. 흔적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어떤 흔적을 쫓아가야 할지 난감해지는 거지. 잘못 추격해서 왼쪽, 왼쪽, 왼쪽, 왼쪽하고 따라가면 되돌아가는 수도 있고, 엉뚱한 데로 빠지는 건 틀림없고. 왼쪽으로 갔을까, 오른쪽으로 갔을까? 이걸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니까.”
“무조건 곧장 쫓아오면?”
“하! 그게 어렵다니까. 아씨, 어느 게 ‘곧장’일까? 계속 북쪽으로만 쫓아가는 거? 우린 그렇게 움직이지 않았는데? 중간에 옆으로 몇 번 빠졌지?”
“음! 그러네.”
“이렇게 도주하는 건 정말 힘든데, 쫓아오기는 더 어렵다니까. 아씨처럼 그냥 아무 길로나 앞으로만 나가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앞으로 나가는 길이 한두 개여야지. 이쪽 길도 있고 저쪽 길도 있고. 이러면서 우리는 목표대로 하나씩, 하나씩 방향을 바꿔 나가는 거야. 이건 쫓아오질 못해.”
“흠!”
홀리는 침음했다.
해자수가 쫓지 못한다고 하면 그 말이 맞을 것이다. 이쪽 방면에서는 은인문 술사처럼 정통한 사람도 없다. 그런 사람이 장담하고 있지 않나.
“이거 이론상으로만 있던 추격 회피법인데, 귀무살이 이걸 쓰네. 킥킥! 묘한 놈들이야.”
해자수가 놀란 듯 말했다.
“우리가 귀무살을 잘못 본 것 같지? 귀무살, 이자들…… 적으로 두면은 상당히 피곤한 자들이야. 싸움만 생각해도 피곤한데, 다른 부분까지 생각하면 더 피곤해.”
“그렇죠. 원래 이런 족속들이 피곤한 짓은 많이 하니까.”
쒜엑! 쒜에엑!
홀리와 해자수는 말을 나누면서도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앞에 또 갈림길이다.
착!
월도가 손짓하자 절반이 반대쪽으로 쓸려나가고, 절반은 월도를 따라서 움직였다.
“엇! 저, 저……”
해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삼십여 장 밖을 가리켰다.
쒜에에엑! 쒜에엑!
멀리서도 한눈에 띌 정도로 커다란 사내가 매우 빠른 속도로 쏘아져 왔다.
“자, 저기 도천패…… 맞죠?”
“맞네. 용케 찾아왔네.”
홀리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도천패 옆에는 궁충과 창파가 있다. 귀검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 살아있었네.”
해자수가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쒜에엑! 쒜에엑!
도천패의 등에 업힌 당홍도 두 사람을 알아봤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다.
일행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지금은 한시가 급하지만, 도천패와 당홍을 만났지 않나. 잠시 회포를 풀 시간쯤은 가져도 된다.
“괜찮아?”
“괜찮죠?”
당홍과 홀리가 동시에 물었다.
대답은 들을 필요가 없다. 서로의 모습만 보고도 무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주 놈은 어떻게 된 겁니까?”
“가만? 책사가 안 보이네? 책사는 어디로?”
도천패는 축 늘어져 있는 호발귀 상태부터 물었고, 당홍은 보이지 않는 등여산을 물었다.
“그게…… 호발귀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길어. 가면서 천천히 하고. 책사님은 절에 남았지. 쫓아오는 사람이 천살단주거든. 이번에는 어떻게 된 게 천살단주가 직접 나타났어.”
“음! 천살단주. 오면서 대충 말은 들었는데.”
“책사님이 천살단주를 막아주니까 우리가 이렇게 도망친 거지. 안 그러면 용빼는 재주가 있어도 안 되지,”
“아무리 그래도 책사님 혼자…… 설마 잘못되진 않았겠지?”
도천패가 염려스러운 듯 물었다.
“에이! 그래도 설마……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인데, 무슨 일이 있으려고. 아무 일도 없을 거야.”
해자수가 일부러 활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데…… 많이 변한 것 같네요? 왠지 고수 냄새가 진하게 풍겨. 무슨 일, 있었어요?”
당홍이 해자수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 걸었다.
“그것도 설명이 길어. 기연이라고 해야 할까? 호발귀 덕분에 얻은 건데, 그건 두 사람도 곧 알게 될 거야. 킥킥!”
해자수가 의미 모를 말을 하며 키득거렸다.
천살단 형옥에서 호발귀에게 강력하게 타격을 당한 사람은 기연을 얻는다. 그 타격은 생기를 향한 통로다. 낯선 세계에 눈을 뜨게 해주는 작은 씨앗이다.
씨앗은 몸 안에 숨어있다. 몸 깊은 곳에 자리 잡았다. 그러다가 언젠가 발아할 기회가 닿으면, 씨앗에 물이 뿌려지고 따뜻한 햇볕이 쬐면 그 즉시 싹을 틔운다.
도천패와 당홍은 아직 싹을 틔우지 못했다.
등여산, 홀리, 해자수는 혈마가 된 호발귀를 쫓아다니다가 싹을 틔웠다. 호발귀에게서 부단히 자극을 받은 것이 발아하는 계기가 되었다.
도천패와 당홍도 그런 자극을 받으면 금방 싹을 틔울 것이다.
두 사람이 일으키는 생기는 어떤 것일까? 참 궁금하다. 도천패와 당홍이 생기를 일으키지 못할 것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틀림없이 일으킬 것이다.
“일단 얘기는 나중에 하고, 지금은 시간이 촉박해서. 남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월도가 네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하나 묻자. 네가 월도냐?”
도천패가 싸늘하게 말했다.
도천패는 일행과 합류했을 때부터 월도를 쳐다보고 있었다.
월도가 도천패를 쳐다봤다.
“맞아. 내가 월도다.”
“호발귀가 죽이려던 놈이 여기 있었군. 네놈이 강하에서 와주와 동패, 왕소를 죽였지?”
“그 이야기는 혈천방에서 귀무령과 이야기를 끝냈을 텐데?”
“아! 너무 긴장하지 마라. 넌 내 먹이가 아니야. 호발귀 먹이지. 와주를 생각하면 당장 네 놈을 쳐 죽이고 싶은데, 동패와 왕소 몫도 있으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다. 네 칼 피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임무 중이니까. 어떤 말이든 안전해졌을 때 하기로 하지. 지금은 안전하지 않아서.”
“하하하하!”
도천패가 크게 웃으면서 대도를 만지작거렸다.
월도와 도천패, 두 사람의 병기는 칼이다. 월도는 큼지막한 월도를 병기로 사용한다. 도천패는 칼이라면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두 사용한다.
두 사람의 신경전 속에는 칼을 쓰는 사람의 자존심도 섞여 있다.
“일단은 따라와라.”
쒜에엑!
월도가 신형을 쏘아냈다.
“어떻게 해서 귀무살 도움을 받게 된 거야?”
“귀검이 혈마에게 볼일이 있나 봐요. 호발귀를 보더니 갑자기 도와주겠다고 나서네.”
홀리가 말했다.
“함정이 있는 건 아니야?”
당홍은 여전히 미심쩍은 듯 의심을 거두지 못했다.
“함정이 있으면 또 어때요? 지금 우리 힘만으로는 뚫기가 힘든데 도와준다면 얼씨구나 하고 받으면 되지. 나중에 이빨을 드러내면 그때 부딪치는 되는 거고.”
해자수가 속 편하게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쒜에엑!
힘차게 달려온 끝에…… 길을 잘못 들었나? 월도가 드디어 막다른 곳에 도착했다.
눈앞에 강이 나왔다.
강에는 소선이 십여 척이나 대여 있다.
월도가 그중 하나에 올라탔다. 홀리는 그를 쫓아서 배에 올라타려고 했다.
“아니. 이번에는 바꿉니다. 저쪽 배로.”
월도가 다른 배를 가리켰다.
“도망가는 거 아니다.”
월도가 도천패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쯤이면 쫓아오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만, 눈썰미가 예리한 사람이라면 쫓아올 수도 있으니까. 만에 하나 실수가 있었다면 곧바로 여기까지 쫓아오겠지. 그 마지막 한 수를 여기서 뭉갤 생각이다.”
“후후! 내 칼을 받겠다고 장담한 놈이니 의심하지는 않는다. 걱정하지 말고 네 임무 완수해라. 귀무살은 임무가 우선이잖아?”
“가자.”
월도가 배에 같이 탄 귀무살에게 말했다.
소선 열 척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이리 줘. 노는 내가 젓지.”
도천패가 노를 잡은 귀무살에게 말했다.
작은 소선에 여섯 명이나 타고 있다. 도천패가 워낙 커서 배가 반쯤 가라앉았다.
노는 귀무살 한 명이 젓고 있다.
아무래도 귀무살보다는 도천패가 젓는 것이 더 빠르고 수월할 것 같다.
“아닙니다. 목적지로 가야 해서.”
귀무살이 노를 주지 않고 계속 저었다.
철썩! 철썩!
물살이 뱃전을 때린다.
버드나무처럼 날렵하고 작은 배는 쏜살같이 강물을 헤치고 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