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八章 망형이동(網形移動) (2)
퍼엉!
하늘 높이 폭죽이 터졌다.
“저기!”
당홍이 손을 들어 폭죽 터진 곳을 가리켰다.
“역시!”
도천패가 고개를 끄덕였다.
폭죽은 귀무살이 터트렸다. 신호용으로 폭죽을 사용하는 문파는 많지만, 지금 터진 폭죽은 귀무살만의 독특한 특징을 지닌다.
붉은 폭죽 속에서 노란 황린(黃燐)이 반짝거린다. 어둠 속에서도 볼 수 있게끔 섞어놓은 것이다.
황린 섞인 폭죽은 오직 귀무살만 사용한다.
이제 폭죽을 본 귀무살 전원이 움직인다. 다른 통로를 지키고 있던 귀무살들은 폭죽 터진 곳으로 달려오지 않는다. 대신에 미리 약속된 장소로 달려간다.
아마도 폭죽이 터진 곳은 이미 텅 비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잘 따라왔네.”
당홍이 말했다.
“어. 잘 따라왔어.”
“호발귀는 걱정하지 마. 상처를 입었다지만, 귀무살 정도는 너끈히 감당할 수 있어. 호발귀, 몰라? 홀리와 등여산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당홍이 자신 있게 말했다.
호발귀를 쫓는 자들이 귀무살이라는 걸 아는 순간부터 많은 독을 준비했다.
그러지 않아도 생기격타 덕분에 내공이 급진전했다.
당홍은 이미 독섬칠공에 능통한 상태다. 독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가 있다. 굳이 독을 준비하지 않아도 주변에 있는 야생화만으로도 독을 만들고 사용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그녀가 일부러 많은 준비를 했다.
그녀는 품에서 독을 꺼내 차분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열 손가락에 특별히 제작한 가락지를 끼웠다. 가락지 안이 비어 있어서 독을 담을 수 있다. 침통을 붙인 손목 아대도 찼다. 아대에는 침통이 스무 개나 붙어 있고, 각 침통에는 독 묻은 세침(細針)이 삼십 개씩 들어있다.
세침에 바른 독은 그녀가 특별히 만든 십고독(十苦毒)이다. 성질이 각기 다른 독 열 개를 배합해서 독성을 극한으로 끌어냈다. 그러니 말 그대로 스치기만 해도 죽는다.
이마에 머리끈도 묶었다.
머리끈 역시 평범한 물건은 아니다. 머리끈 정중앙에는 독사(毒砂)가 숨겨져 있다.
언제 어디서든 이마에서 독 모래가 쏟아져 나갈 것이다.
접전을 벌이는 자가 누구이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비밀 암기다.
쒜에엑!
도천패는 숨이 턱에 닿을 정도로 급하게 달렸다. 그런데도 등에 업힌 당홍은 싸움 준비를 차분히 할 수 있을 정도로 편안했다. 도천패가 치달리고 있다는 점은 전혀 방해되지 않았다.
도천패의 등은 매우 넓다.
쌍학을 수련할 목적으로 도천패의 등을 빌렸지만, 지금은 어떤 보금자리보다도 안락하다.
“거의 다 왔어.”
쒜에엑!
도천패가 앞으로 치달리면서 말했다.
‘살기!’
임명강은 눈살을 찡그렸다.
막 암굴을 벗어나려는 찰나, 맑은 바깥 공기와 함께 강렬한 살기가 휘몰아쳤다.
“멈춰!”
임명강은 옆에서 달리던 수하에게 말했다.
수하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는지 계속해서 앞으로 치달려 나가려고 했다.
임명강은 손을 뻗어서 수하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수하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임명강을 쳐다봤다. 두 눈에 ‘왜?’라는 의문을 담고.
“여기 있어라.”
“네.”
스릉!
임명강은 검을 뽑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구까지 다가간 다음 암굴 밖으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쒜에엑!
무엇인가 탁! 하고 퉁겨지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섬광이 눈앞까지 다가왔다.
임명강은 즉시 내밀던 머리를 뺐다.
쒜에에에엑!
눈앞으로 화살 한 자루가 스치며 지나갔다.
‘휴우!’
임명강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불어냈다. 비록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속으로는 깜짝 놀랐다.
간발의 차이로 머리가 뚫리지 않았다. 아직도 앞머리를 스치면서 지나간 화살 깃 감촉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단연코 처음 보는 명궁이다.
‘상당히 빠른데.’
자신이 충분히 주의하면서 고개를 내밀었는데도 간발의 차이로 피해냈다. 만약 수하가 아무 생각 없이 몸을 튕겨냈다면 여지없이 꿰뚫렸을 것이다.
‘이만한 활 솜씨를 가진 놈이라면……’
임명강은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호발귀 주위에 이런 자가 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귀무살 중에서 활을 이 정도로 잘 다루는 자가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너, 누구냐!’
활을 쏜 자가 누군지는 모르지만, 함부로 고개를 내밀 수 없다.
임명강은 품에서 동경을 꺼내 검집 끝에 묶었다. 그리고 천천히 동경을 암굴 밖으로 내밀었다. 순간,
쒜에엑! 타악!
여지없이 섬광이 번뜩이고, 검집에 매달아 놓은 동경이 멀리 십여 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정확하다!’
임명강은 멀찍이 떨어진 동경을 보면서 호흡을 추슬렀다.
이 정도 활이라면 벌써 명성이 자자하게 퍼져야 옳은데, 누군지 알 수조차 없다. 뛰어난 무공을 지녔으면서도 아직까지 무명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틀림없이 귀무살이다.
귀무살 중에는 초강 고수가 상당히 많다. 하지만 이름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가끔 귀무살끼리 부르는 별호가 흘러나오기는 하지만, 그것도 가뭄에 콩나물 나듯 드물다.
전혀 바깥 동정을 살펴볼 수 없는 상황이다.
“제가 나가볼까요?”
수하가 말했다.
밖으로 나가면 화살이 꿰뚫린다. 그런 점을 각오하고 바깥 동정을 살펴보겠다는 거다. 죽음을 감수한 정찰이지만, 때로는 이런 희생이 필요할 때도 있다.
더욱이 지금은 호발귀를 추격하는 중이다. 천살단주가 기필코 되찾겠다고 작심한 물건이다.
약간 자신감도 섞여 있다. 화살에 꿰뚫리게 하겠지만, 설마 목숨을 잃을까 하는 자신감이다.
“그만둬. 그렇게 급한 일도 없다.”
임명강이 암굴 밖으로 나갈 생각을 포기하고 제자리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십이비자가 등여산을 계속 따라붙었다.
지금 당장, 호발귀를 놓친다고 해도 십이비자라면 즉각 따라붙을 것이다. 또 아직 호발귀를 놓친 것도 아니다. 약간 숨통을 놓아주었을 뿐이다.
“너도 앉아서 운공이나 해라. 단주님이 오시면 바쁘게 따라붙어야 하니까.”
“네.”
수하가 임명강처럼 털썩 주저앉아서 운공조식을 취했다.
상황이 급할수록 자신의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끌어올려 놓아야 한다.
검벽 무인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는 소양이다.
궁충과 창파는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지금 같은 경우, 한 번 더 정찰을 시도할 수 있다. 어쩌면 목숨 걸고 달려 나올 수도 있다. 혈마와 관계된 일이니 어떤 경우도 배제하지 못한다.
‘됐지?’
‘된 것 같아.’
의견이 일치되었다.
만약, 쫓아오는 자가 혈천방이었다면 한 번 더 정찰을 시도한다. 한 명이 목숨을 내놓는다.
급박하게 부딪칠 수도 있다. 일제히 뛰쳐나오는 것인데, 그럴 때는 창파가 즉시 가세한다.
하지만 천살단은 어떤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다. 더 있을 필요가 없다.
쉬이이잇! 스으으읏!
그들은 소리 없이 움직였다.
홀리를 쫓아온 자는 바깥에서 일어나는 기척을 능히 감지할 수 있는 고수다. 그러니 매우 은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쒜에엑!
두 사람은 십여 장까지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스럽게 움직인 후, 급속하게 신형을 쏘아내려고 했다. 그런데,
“웃!”
창파가 깜짝 놀라면서 창을 들어 올렸다.
이미 활을 거두고 신형을 쏘아내던 궁충도 재빨리 화살을 꺼내서 손에 쥐었다. 몸을 붙이고 싸우는 육박전, 박투(搏鬪)가 벌어질 것을 대비한 움직임이다.
두 사람이 막 신형을 쏘아내려는 순간, 다른 움직임을 감지했다.
‘강하다!’
두 사람은 긴장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칼날이 불쑥 튀어나온 느낌이다.
스읏!
두 사람 앞에 거대한 불곰이 나타났다.
‘뭐 이렇게 큰 놈이!’
하지만 두 사람은 거대한 불곰이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라는 사실을, 또 나타난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았다.
도천패와 당홍!
스읏!
당홍을 업고 있는 도천패가 대도를 들어 올렸다.
상대는 귀무살이다. 언제든 베어 넘겨도 무방하다는 생각이다.
도천패는 궁충이나 창파를 알아보지 못했다. 알아봐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들이 부대주라는 사실도 몰랐다. 도천패에게 두 사람은 수많은 귀무살 중 하나일 뿐이다.
그때, 어느새 활을 뽑아낸 궁충이 화살을 겨누며 나타났다.
“칼 내리지?”
궁충이 말했다.
그러자 도천패의 어깨 위로 가녀린 손 하나가 얹어졌다. 당홍의 손이다.
당홍이 등 너머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너야말로 활 치워. 그러지 않으면 죽어. 내 말 믿어.”
당홍의 음성은 단호했다.
그러자 궁충이 즉시 활을 거두었다. 장창을 겨누고 있던 창파도 창을 거뒀다.
두 사람은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도천패와 당홍은 두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지만, 두 사람은 도천패를 알아봤다.
궁충이 말했다.
“우린 적이 아니다.”
“호호! 그런 말을 천연덕스럽게도 하네. 적이 아닌데도 그렇게나 죽이려고 하셨어?”
당홍이 여전히 도천패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말했다.
손목 아대에 묶인 세침이 궁충을 겨누고 있다. 언제라도 독침을 쏘아낼 수 있다.
“믿든 안 믿던 자유인데, 지금은 적이 아닌 보호자의 입장에서 혈마를 보호하고 있다. 홀리와 호발귀는 이미 빠져나갔다. 해자수도. 등여산은 저 안에 남은 것 같고.”
궁충이 암굴을 눈으로 가리켰다.
“뭐라고?”
도천패가 무슨 말이냐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궁충을 쳐다봤다.
‘적이 아닌 보호자의 입장’이라는 말부터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왜 귀무살이 호발귀를 보호한다는 것인지.
이번에는 창파가 말했다.
“이 굴에서 쫓아오는 사람은 천살단주다. 우리는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해서 후퇴하는 중인데, 막을 수 있으면 막고. 굳이 우리 앞길까지 막을 이유는 없을 것 같은데?”
“뭐?”
도천패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천살단주! 천살단주가 굴에서 쫓아와? 천살단주가 직접 왔다는 말이냐?”
“호발귀를 만나고 싶다면 우릴 따라서 움직이는 게 좋아. 귀무령께서 직접 탈주를 지휘하고 계시니, 빠져나가는 것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저놈 말, 믿을 수 있어?”
도천패가 당홍에게 물었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데? 저놈들 무공도 만만치 않잖아. 굳이 우릴 피할 이유도 없고. 일단 홀리가 빠져나온 건 사실이잖아. 폭죽이 터졌으니까.”
“믿어라. 언제 서로 검을 겨누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적이 아니다.”
궁충이 말했다.
이들의 말은 믿기 힘들다. 하지만 당홍은 믿어도 좋다는 뜻으로 도천패의 어깨를 두들겼다.
궁충과 창파의 무공은 매우 고절하다. 싸움이 벌어지면 지지 않을 자신은 있다. 하지만 쉽게 승부를 가를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굳이 이런 식으로 싸움을 회피할 이유가 없다.
“좋다. 가자. 너희들을 따라가면 호발귀를 만날 수 있다고?”
“따라와.”
궁충이 앞장서려고 했다.
“잠깐! 홀리가 나온 후에 또 나온 사람은 없어?”
당홍이 물었다.
“안에 두 명 있는데, 화살로 발목을 묶어둔 상태다. 하지만 우리와 필적할 정도로 강한 자야. 천살단주는 아닌 것 같고, 그렇다면 검벽주가 아닐까 싶다.”
“가.”
누구에게 한 말인가? 당홍이 나직이 말했다.
그러자 도천패가 재빨리 암굴로 신형을 퉁겨냈다. 아니, 암굴 주위를 한 바퀴 빙글 돌았다.
그러는 동안 당홍의 손에서 안개처럼 뿌연 가루가 뿌려졌다.
“뭐야?”
도천패도 가루의 정체를 모르는 듯 물었다.
“개구리를 말려서 빻은 분말. 뱀이 환장하도록 몇 가지 더 보탰고. 냄새가 매우 강렬해서 곧 뱀들이 새카맣게 몰려들 거야.”
“그런 것도 준비해?”
“뭐든 쓰기 나름이거든. 이런 건 만들기도 쉬워.”
탁!
당홍이 다시 도천패의 등을 쳤다.
그러자 도천패가 신형을 돌려서 두 사람 앞으로 왔다.
“뭐해? 가자며?”
도천패가 앞장서서 신형을 쏘아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