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七章 대면(對面) (5)
한수에서 큰 싸움이 벌어졌다.
흉측한 무인들이 몹시 사나운 개떼를 몰고 한수를 건너려다가 화살 공격을 받고 물러섰다.
이런 일은 은밀하게 감출 수가 없다. 이미 인근 마을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들 중 몇몇은 불화살이 하늘을 벌떼처럼 날아가던 장면을 구경한 사람도 있다.
희생자도 많이 나왔다.
사람도 죽고 개도 불에 타죽었다.
강에 떨어진 화살이 물살에 떠밀려서 하류로 밀려왔는데, 그 양이 엄청나다.
마을 사람들에게 징집한 배는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그 모습을 보면 ‘처참하다!’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난다.
낭견대가 많이 죽어서 처참한 게 아니다. 배에 꽂힌 화살을 보면 공격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말해준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니 사람이 아니라 귀신처럼 보이기도 한다.
공격한 자들도 대단하지만, 살아남은 낭견대도 위대해 보인다.
당연히 한수 근처에 얼씬거리는 사람은 없다. 아직도 싸움이 진행 중이다.
하지만 몇몇 사람만은 이런 일이 벌어지면 오히려 바싹 다가서서 구경한다. 처절하고 힘든 싸움일수록 큰돈이 될 가능성이 커서 위험을 무릅쓰고 달려든다.
하오문도 그런 문파 중 하나다.
이 싸움은 얼마짜리로 둔갑할까? 이 싸움에 대한 정보를 사갈 사람이 있을까? 이쪽이고 저쪽이고 상당한 자들 같은데 괜히 목숨만 거덜 나는 거 아냐?
그렇게 불안한 판에 불쑥 돈뭉치가 달려들었다.
“한수 이쪽 편에 절터가 있다는데. 부상자가 있어서 약도 사 갔다면서? 그쪽 사정 좀 알고 싶은데.”
불쑥 나타난 두 사람.
그들은 하오문주가 귀빈에게만 주는 영패를 제시했다. 하오문 최대 손님이라는 뜻이다.
“자, 우리가 파악한 건 이게 전부. 데려다 달라고 하면 데려갈 수는 있는데 수고비는 받아야 하고.”
얼굴이 생쥐처럼 생긴 사내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미륵불이라는 놈, 생전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굴을 일곱 군데나 파? 너무 많잖아?”
도천패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원래 비밀 통로라는 게 워낙 은밀해서.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것보다 더 있을 수도 있고.”
“그럼 다른 통로를 발견했을 수도 있겠네?”
당홍이 물었다.
“그거야 뭐…… 하지만 우리도 나름대로는 샅샅이 뒤진 거니까.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나서 이 중에는 막힌 것도 있을 수 있고. 굴이란 게 무너지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생쥐처럼 하관이 얄팍한 사내가 말했다.
해자수가 약재와 식량을 대량으로 사간 이후, 하오문은 절터를 주시해 왔다. 엄밀히 말하면 절터 주변을 주시했다. 절터에 가까이 다가서는 것은 매우 위험해서.
이건 돈이 된다!
돈이 될지 안 될지는 알지 못한다. 지금처럼 한창 싸움이 벌어질 때는 정보의 가치가 시시각각으로 달라진다.
싸움 중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정보도 싸움이 끝난 후에는 푼돈 가치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니 팔 곳이 있으면 즉각 팔아치워야 한다.
만일에 대비해서 절터에 관한 모든 자료를 찾아냈다.
과거, 미륵불이 사람들에게 매 맞아 죽은 후에 하오문은 절을 샅샅이 뒤졌다. 혹여 미륵불이 남겨 놓은 비밀 재물이 있을지 몰라서 구석구석 뒤졌다.
그때, 여우굴 일곱 개를 찾아냈다.
원하는 재물은 찾지 못했다. 다만 비밀 통로가 있다는 사실만은 기재해 놓았다. 나중에 어떤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고, 이대로 사장될 수도 있다.
그 정보가 이번에는 돈을 벌어주었다.
‘등여산이 이 중에 몇 군데나 찾아냈는지 몰라도 만약에 비밀 통로를 통해서 탈출했다면 이 중 한 곳이야.’
“좀 더 범위를 좁힐 수는 없나? 일곱 군데는 너무 많은데. 이쪽에서 저쪽까지 거리가 십 리나 떨어져 있어. 이건 뭐 들으나 마나 한 소리지.”
당홍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생쥐같이 생긴 사내가 간사하게 웃으면서 두 손을 비비적거렸다. 돈을 더 달라는 소리다.
“아는 거 있으면 다 말해봐. 어차피 다른 사람은 이런 거 물어보지도 않잖아. 이대로 우리가 떠나면 푼돈도 못 받아. 몇 푼이라도 받으려면 아는 거 다 말하지? 또 알아? 기분 좋으면 생각지도 못한 돈을 건네줄지.”
도천패가 하오문주의 영패를 슬쩍 내비쳤다.
‘문주가 큰 손이라고 인정…… 제길! 이건 뭐 견적이 나와야지. 어느 정도가 큰 손인 거야?’
“우리가 가까이 다가붙지는 못하고…… 여기, 여기, 여기.”
사내가 일곱 군데 중 여섯 곳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갈대밭에 있던 사람들이 이쪽으로 움직이더라고.”
‘귀무살이 추격을?’
당홍은 별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사내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봤다. 귀무살이 추격한다는 말에 매우 놀랐지만,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 부분이 매우 곤혹스럽다.
등여산이 천살단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안다. 혈천방과도 싸웠다. 물론 귀무살과도 싸웠다.
그런데 지금은 한수를 두고 귀무살과 천살단이 싸운다.
이때까지만 해도 등여산이 귀무살에게 잡혔다는 생각을 가졌다. 천살단이 혈마를 되찾으려고 하고, 귀무살은 포로를 지킨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그런데 지금은 양쪽 모두 움직이고 있다. 귀무살도 움직이고, 한수를 건너온 낭견대도 움직인다.
등여산은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았다.
‘지금 당장 가서 도와주어야 해.’
“갈대밭 무인들이 이쪽으로 움직인다면 일곱 군데 중 한 곳은 제외하는 거네. 남은 곳은 여섯 군데. 그래도 너무 많아. 자칫 잘못 따라가면 완전히 놓쳐.”
당홍은 짐짓 절터 사람들에게 원한이라도 있는 듯이 말했다.
한수 정보를 건네주는 자들은 하오문 분타 사람들이다. 무림 정세를 자세히 알지 못한다.
절터에 혈마가 있다는 사실도, 갈대밭에 숨은 자들이 귀무살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낯선 무인들이 거칠게 치고 박는 줄로만 안다.
“흐흐흐! 진짜 정보가 있는데……”
사내가 말끝을 흐리면서 다시 두 손을 비볐다.
“거참 주는 것은 없으면서 바라는 것만. 진짜 정보가 아니면 한 대 맞을 줄 알아!”
도천패가 거칠게 말하며 은자 한 냥을 던져주었다.
사내는 재빨리 은자를 낚아채서 품속에 찔러넣었다. 그리고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한수 강변에서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싸움에서 다리에 검을 맞은 자가 있지. 그자가 핏물을 뚝뚝 흘리면서 가는 곳이 있는데, 바로 여기.”
사내가 여섯 곳 중 한 곳을 지목했다.
‘해자수!’
도천패와 당홍은 ‘다리에 칼 맞은 자’라는 말을 들었을 때, 당장 해자수를 떠올렸다.
자신들 일행 중에서 남자라고는 호발귀와 해자수밖에 없다. 호발귀는 상당히 크게 다친 상태이니 틀림없이 해자수가 나서서 싸움했을 것이다.
검을 맞은 자는 해자수다.
도천패가 사내를 보며 물었다.
“이 사람들보다 우리가 더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먼저 가서 대기하고 있었으면 좋겠는데.”
“에이, 그런 방법은 없지. 앞서기는커녕 뒤따라 잡기도 빠듯할걸? 이 사람들 무척 빠르게 움직여.”
사내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이들은 귀무살이나 귀검의 움직임을 따라잡지 못한다. 감히 그들 곁에 가까이 다가서지도 못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곁눈질로 지켜볼 뿐이다.
“여기라. 할 수 없지. 가장 빠른 길이나 말해줘.”
도천패가 지도를 보면서 말했다.
도천패와 당홍은 당금 무림에서 귀무살을 두려워하지 않는 몇몇 무인에 속한다.
두 사람은 귀무살과 싸워본 적이 있다. 그것도 귀무살의 본거지인 혈천방에서 싸웠다. 귀무살 전력과 정면에서 부딪혔으며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비록 상황이 여의치 못했지만, 지금도 귀무살을 두렵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쒜에엑! 쒜에엑!
도천패는 사력을 다해서 치달렸다.
투심문의 독문 신법인 은허신법이 유유하게 펼쳐졌다. 둔중한 몸이 날렵한 바람이 되어서 훨훨 날아갔다.
“도무지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호발귀는 혈마 상태였는데…… 혈마가 다치질 않나. 누가 혈마에게 상처를 입혀?”
도천패의 등에 업힌 당홍이 무심히 중얼거렸다.
“혈마에게 상처를 입힐 사람은 없지.”
도천패도 단호하게 말했다.
생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두 사람이 나누는 말에 헛웃음을 흘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기를 안다면 어떤 말을 해도 수긍할 것이다.
“호발귀가 다시 정상인으로 돌아온 건가? 그럼 상처를 입을 수도 있잖아.”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 좋아. 그까짓 부상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
도천패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상처쯤은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나면 된다. 혈마 상태에 빠지는 것이 문제이지 다치는 것은 조금도 겁나지 않는다. 아무리 심한 상처를 입었어도 혈마가 되는 것보다는 낫다.
“이쪽이야.”
당홍이 방향을 가리켰다.
쒜엑! 쒜에엑!
도천패는 당홍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신형을 쏘아냈다.
도천패와 당홍은 따로 떨어져서 달릴 수도 있다. 하지만 업고 달리는 것에 비해서 속도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는다. 도천패는 당홍에게서 무게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호발귀도 이해되지 않지만…… 홀리와 등여산을 누가 밀어붙일 수가 있지? 이 점도 이해가 안 돼.”
“흐음!”
도천패가 침음을 흘렸다.
누가 그 여자들을 밀어붙일 수가 있을까? 귀무살이라고 해도 함부로 밀어붙일 수는 없을 것 같은데. 그리고 해자수가 낭견대와 싸웠다는 말은 또 뭔가?
두 사람은 홀리, 등여산, 해자수가 생기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니 해자수가 낭견대와 싸웠다는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물며 하오문의 말을 빌리자면 해자수가 갈대밭 무인들을 이끄는 우두머리, 즉 귀검과 비슷한 무위를 떨쳤다고 하지 않던가. 이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나.
“앗차!”
부지런히 치달리던 도천패가 탄식을 쏟아냈다.
“왜?”
당홍이 얼굴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우리가 가는 곳 말이야. 거기서 나오면 어디로 가야 추격을 따돌릴 수 있는지 물어봤어야 하는데. 책사나 홀리 같으면 탈출로를 잘 파악할 것 같아서.”
“아무 데도 못 갈 거야.”
“어! 왜?”
“지금 무슨 사정으로 쫓기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쫓기고 있잖아. 싸우지 못하고 쫓긴다? 부딪치면 안 될 사정이 있는 거지. 부딪치면 아무 데도 못 가.”
“아! 그러면 더 빨리 가야겠네.”
“……”
당홍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도천패는 현재도 최선을 다해서 달리고 있다.
도천패가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은 목덜미에 흐르는 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은허신법이 절정에 달해서 거의 바람처럼 움직인다.
여기서 더 빨리 달릴 수는 없다.
하오문도가 말한 것처럼 거리가 워낙 벌어져 있어서 충돌 전까지 따라붙을 가능성도 없다.
자신들이 도착하기 전에 일이 벌어진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 누가 뒤쫓는 거지? 뒤쫓는 사람이 없잖아.’
당홍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오문도는 갈대밭에 있는 무인들이 일제히 움직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들이 움직인 방향을 설명했다.
그 속에 절터에서부터 뒤쫓아간 귀무살은 없었다.
귀무살이 여섯 곳으로 달려가서 앞을 막는다는 것은…… 뒤는 막지 않고 앞만 막는 일이 된다.
홀리와 등여산이 뒤로 돌아서 다시 절터로 돌아가면 어떻게 되나?
아니, 이런 점들보다도 더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해자수가 왜 귀무살과 함께 움직이느냐는 것이다.
그것도 주인처럼 모시던 홀리를 쫓아서.
이 부분은 약간 설명이 된다.
무리하게 꿰어맞추는 것이기는 하지만 음문촌 촌장이 직접 해자수에게 명령을 내렸다면 그럴 수 있다.
해자수는 홀리보다는 음문촌장 말을 먼저 듣는다.
‘귀무살이 앞을 막고…… 뒤를 쫓는 자도 있어. 누군지는 몰라도 틀림없이. 후우!’
당홍은 도천패 몰래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도천패에게 말해봤자 괜히 걱정만 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저들을 막을 방법을 모색할 필요도 있었다.
무공으로 싸울 수는 없다. 그것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자칫하면 오히려 당할 수도 있다.
‘독을 써야겠어. 어떤 독이 좋을까?’
최소한 귀무살의 발길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독을 사용해야 한다.
귀무살은 틀림없이 따라붙을 것이고, 그 외에 홀리를 추격하는 자가 또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음문촌이 직접 뒤를 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충분히 준비해오길 잘했어.’
당홍은 소매를 들어 도천패의 목덜미를 닦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