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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34화 (334/500)

第七十七章 대면(對面) (4)

타타탁! 타타타탁!

홀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암굴을 달려나갔다.

미륵불이라는 자는 힘든 것을 무척 싫어했던 것 같다. 어쩌면 평생 써보지도 못할 비밀 통로를 백 년 이상 너끈히 유지될 정도로 견고하게 파놓았다.

그 덕분에 달리기는 편하다.

평소 같으면 이런 암굴은 질색을 한다. 앞으로 치달릴 때마다 거미줄이 얼굴과 손에 끈끈히 달라붙어서 기분이 영 좋지 않다.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평평하게 다듬어진 암굴이 더없이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도 홀리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지 못했다.

‘이상해. 두 발이 차분하게 가라앉지 않아.’

뛰면 뛸수록 다리에 힘이 풀린다. 두 발이 땅을 딛지 못하고 자꾸 허공으로 붕 떠오른다.

단단하게 다져진 땅을 밟고 있는데, 미끄러운 기름 위를 달리는 듯 자꾸 헛발질한다.

정말로 발이 미끄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꼭 그런 느낌이다.

‘아직도 쫓아와!’

홀리는 당장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등여산의 기분이 좋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두 발도 위험을 예고해준다.

위험이 다가오고 있다!

‘도망가는 곳도 한 군데, 쫓는 곳도 한 군데.’

암굴로 도주하고, 암굴로 쫓아온다.

암굴 여섯 곳 중 자신이 도주한 암굴을 정확하게 따라 들어왔다면 따돌릴 방법은 없다.

‘그래. 어차피 이 길뿐이야.’

스릉!

홀리는 검을 뽑았다.

계속 빠르게 치달리는 데도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오히려 점점 가벼워진다.

몸이 위험을 느끼고 있다는 신호다.

지금 상황에서 위험을 느낄 만한 요소는 딱 하나밖에 없다. 추격자가 바로 이 길로 들어섰다. 검벽 무인 정도는 위협이 되지 않는다. 천살단주가 쫓아온다.

쒜에엑! 쒜에엑!

홀리는 있는 힘껏 천정을 향해 혈맥참을 터트렸다.

가각! 가가가각!

천정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긁혔다.

그렇게도 단단해 보이던 석벽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흙먼지, 돌무더기가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오랜만에 펼쳐보는 음문촌 무공이다.

‘치잇! 너무 단단해.’

홀리는 이를 악물었다.

천장 일부가 무너지기는 했지만, 워낙 단단하게 만들어놔서 추격을 막을 정도는 안 된다.

미륵불이 견고하게 다듬어 놓은 암굴이 이럴 때는 방해가 된다.

미륵불이 암굴에 석회를 발라놨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돌덩이가 되어 버렸다.

‘한 번 더!’

쒜엑! 쒜에엑!

전신 진기가 가득 실린 혈맥참이 도도하게 터져나갔다. 강하디강한 검기가 천장 구석구석을 파고들었다.

우수수수!

이번에도 돌무더기가 떨어졌다. 하지만 홀리가 기대했던 만큼 크게 무너지지는 않았다.

‘이걸로는 안 돼. 그렇다면……’

홀리는 호발귀를 등에서 내려 잠시 옆에 뉘었다.

진기로는 암굴을 무너트리지 못한다. 시간을 두고 차분히 내리치면 무너지겠지만, 그럴만한 여유가 없다. 그렇다면 생기는 어떨까? 무너트릴 수 있을까?

홀리의 생기는 빠름 위주다.

두 발에 힘이 풀려서 허공을 쏘아가면 곧바로 바람이 된다. 빈틈을 여지없이 파고든다.

그녀가 일으킨 빠름과 검의 강함이 조화를 이루어서 적을 공격한다.

홀리는 일부러 검을 강하게 쳐낼 필요가 없었다.

빠르게, 빠르게…… 몸이 움직일 수 있는 최대한까지 빠르게.

홀리는 생기가 만들어 주는 빠름에 만족했다. 혈맥참 대신에 오직 빠름만 시도했는데도 서너 배는 강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혈맥참까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강한 힘이 필요하다.

생기가 강한 힘까지 만들어 줄까? 단단한 천정을 무너트릴 만큼 강한 힘이 필요한데.

츠으읏!

두 발로 굳게 땅을 디뎠다. 물론 두 발은 금방이라도 날아갈 듯 풀풀 날린다.

좀처럼 땅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위험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그런 점을 알면서도 여전히 두 발을 땅에 붙이려고 애썼다.

지금 자신이 할 일은 딱 하나, 두 발로 굳건히 서는 것이다. 발바닥에 당의 감촉을 여실히 느끼는 거다.

위험을 말해주면서 풀풀 날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두 발에게 ‘아니. 지금은 안전해. 그러니까 여전히 땅에 딛고 서 있어도 돼’ 하고 말해주려고 한다.

단지 의욕이나 생각만 해서는 아무런 효과도 없다.

생기는 실질적인 반응이다.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 것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생기를 강력히 유지하려면 그만한 일을 해줘야 한다.

그녀가 원하는 일은 암굴 천정이 무너진 후에야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추격이 차단되니까.

그런 식으로 현실로 밝혀주어야만 생기도 반응하니까.

쒜에엑!

홀리는 두 발이 가장 자유롭게 날아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검광을 쏘아냈다.

꽈작! 꽈자자자작!

그녀의 손에서 뻗어 나간 검초가 암굴 천정을 후려쳤다.

어디를 어떻게 쳤을까? 검을 쏘아낸 것은 그녀이지만, 어디를 쳤는지는 모른다.

혈맥참을 사용할 때는 분명한 타격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 생기에 의지하면 어디를 쳤는지 의식하지 못한다.

해자수가 자신은 철벽을 무너트린다고 하는데, 그 말이 가장 적합한 표현이다. 지금 현상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 싶은 곳으로 검초를 날린다.

구르르르릉!

암굴 천정에서 이상한 소리가 울렸다.

겉이 쪼개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뱃속에서부터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쿵쿵! 꽈르르르릉! 쾅!

천정에서 흙더미가 우수수 쏟아졌다. 돌무더기도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떨어졌다.

‘깼어!’

홀리는 즉시 뒤로 물러섰다.

암굴은 일단 금이 가기 시작했고, 곧 무너졌다. 거침없이 무너져 내렸다.

스읏!

홀리는 땅을 디뎠다.

비교적 두 발이 땅에 붙는다. 하지만 여전히 힘이 단단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이거로도 안된단 말이야? 도대체 뭐야?’

천살단주가 그렇게 강한 건가?

흘리는 망설일 틈도 없이 재빨리 호발귀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암굴을 따라서 신형을 쏘아냈다.

할 만큼 다 했다.

이만큼 뒤를 막았는데도 쫓아온다면 어쩔 수 없다. 암굴 천정까지 무너트렸는데, 뭘 더 어떻게 하나.

천살단주가 무너진 굴을 어떻게 헤집고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자신도 쉽게 따라잡힐 생각은 없다. 아니, 잡히지 않는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

임명강은 앞만 보고 치달렸다.

홀리가 간 길을 정확히 짚어서 쫓아간다. 곧 뒤쫓아올 천살단주에게 표식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차피 두 사람은 홀리를 상대하지 못한다. 싸우기 위해서 쫓는 게 아니라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서, 천살단주에게 길을 안내하기 위해서 쫓는 것이다.

‘놓치지만 않으면 돼.’

굳이 가깝게 따라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 이런 추격처럼 편한 추격도 없을 것이다.

휘이이이잉!

앞에서 매캐한 냄새와 함께 흙먼지가 몰아쳤다.

“굴을 무너뜨린 것 같습니다.”

옆에서 같이 달리던 검벽 무인이 말했다.

“뚫으면 되지.”

임명강이 태연히 말했다.

검벽의 제일 임무는 천살단주를 보호하는 것이다. 제일 임무 앞에서는 여타의 모든 임무가 뒷순위로 밀린다.

단주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한다.

그런데 가용한 모든 수단 방법을 사용하는 것에도 능력이 요구된다. 입으로만 ‘무슨 일이든 하겠다’라고 중얼거려서는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정말로 필요할 때,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춰놓아야 한다.

그래서 검벽 무인은 무공도 수련하지만, 잡다한 잡기들도 다양하게 숙달한다.

홀리가 굴을 막았다면 뚫으면 된다.

어떻게 뚫을지는 무너진 모습을 봐야 판단이 서겠지만, 지레 인상부터 찡그릴 필요는 없다.

쉬이잇! 쉬잇!

두 사람은 빠르게 달려서 무너진 암굴 앞에 도착했다.

“이거 완전히 막았는데요.”

검벽 무인이 무너진 모습을 보며 말했다.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지. 바람이 들어오잖아.”

임명강이 돌무더기 사이에 손을 대며 바람의 세기를 살폈다.

“음! 정말 바람이 들어오네요. 그럼 틈새가 벌어져 있다는 건데. 터트릴까요?”

무너진 정도가 약하면 쳐내거나 들어내는 게 빠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강하게 무너졌다. 가로막은 돌무더기의 폭이 깊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곧 단주님께서 오실 것이다. 그 전에 길을 열어야지.”

임명강은 품에서 화약을 꺼냈다.

검벽 무인은 항상 소량의 화약을 지니고 다닌다. 비상용 화약이기 때문에 암벽을 터트린다거나 건물을 무너트리지는 못한다. 하지만 지금처럼 길을 막은 돌무더기 정도는 치울 수 있다.

“제가 설치하겠습니다.”

검벽 무인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방향 잘 보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검벽 무인이 자신 있게 말했다.

폭발은 자칫하면 굴을 더 무너뜨릴 가능성이 있다. 또 협소한 공간에서 터트릴 때는 파편이 쏟아져 나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번 경우에는 파편이 앞쪽으로 쏟아져 나가야 한다.

위아래로 강하게 터지면 굴이 무너질 것이고, 뒤로 터트리면 자신들이 위험해진다.

상당히 고난도의 작업이지만, 검벽 무인에게 이 정도 일은 간식거리도 안 된다. 검벽 무인은 화약 다루는 법을 배우려고 일부러 탄광을 찾는다.

스스슷!

검벽 무인이 돌무더기 사이에 구멍을 뚫고 화약을 채워 넣었다. 그리고 심지를 끌어낸 후 불을 붙였다.

화아아악!

심지가 타들어 간다.

“무너진 지 얼마 안 됐으니…… 코앞에 있겠네요.”

“방심하지 마라. 반격을 가해오면 감당할 수 없어. 늘 일정한 간격을 유지해.”

“검주님께서 속도를 정해주시는데 제가 뭐 신경 쓸 게 있나요. 전 검주님만 따라가면 되죠. 하하!”

“그러다가 죽는다.”

“단주님께서 혈마를 놓친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던 것 같은데요. 설마 사마가 그렇게 죽을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으니 바로 잡아야죠. 단주님이 혈마를 거둬갈 수 있다면 이까짓 위험쯤은 얼마든지 감수합니다.”

“위험한 말!”

임명강이 검벽 무인을 질책했다.

검벽 무인은 속에 있는 말을 꺼내서는 안 된다. 단주를 지키다 보면 단주가 하는 일도 환히 보이게 된다. 그런 상황에도 입 다물고 묵묵히 할 일만 하면 된다.

“아! 죄송합니다.”

검벽 무인이 즉시 시정했다.

임명강은 대꾸하지 않았다. 심지가 타들어 가는 동안 벽에 몸을 찰싹 붙이고 앞만 주시할 뿐이다.

꽈앙! 꽈아아앙!

앞에서 강력한 폭발음이 들렸다.

두 번의 폭발음, 그리고 암굴을 막았던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앞쪽으로 폭사 되었다.

길이 단번에 뚫렸다.

“가자!”

스스스스스!

두 사람은 아직 폭발이 끝나지도 않아서 흙먼지가 자욱한 암굴을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꽝! 꽈아아앙!

두 번의 폭음이 들렸다.

‘벌써?’

홀리는 이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안다. 저들이 암굴을 화약을 뚫었다.

암굴 속에서 화약을 터뜨리려면 매우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데, 하필이면 검벽 무인들이 그런 기술까지 습득하고 있다. 일부러 걸음을 멈추면서까지 굴을 막았는데.

굴을 무너뜨리느라고 잠시 지체했던 것이 오히려 더 거리를 단축하는 역할만 했다.

‘치잇! 괜히 시간만 허비했어.’

두 번의 폭발음이 등을 강타하듯이 가깝게 들렸다. 그만큼 저들이 가까이 따라붙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녀는 천살단주를 본 후에야 움직였다. 바로 코앞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단주가 바로 따라붙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아마도 암굴에 들어서자마자 바로 잡혔을 것이다.

등여산이 가로막아준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지금도 벌려놓은 거리가 넉넉하지 못하다. 지금 정도의 거리라면 순식간에 따라 잡힐 수 있다.

폭발음은 천살단주도 들었을 것이다.

‘단주가 따라붙는다면…… 시간이 얼마 없어. 빨리 굴을 벗어나야 해. 이 안에서 부딪치면 어디로 몸을 빼낼 곳도 없잖아. 하다못해 숨기라도 해야 하는데.’

쒜엑! 쒜에엑!

홀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암굴을 치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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