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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31화 (331/500)

第七十七章 대면(對面) (1)

꿀꺽!

허경이 마른 침을 삼켰다.

귀검은 난검난사를 말하면서 자신이 펼칠 수 있는 한도를 구식이라고 말했다. 보통 이런 말을 할 때는 대충 십 식 정도를 말하는 법인데, 더도 덜도 아니고 딱 구식이라고 잘라서 말했다.

난검난사를 모르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다.

허경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입술을 달싹였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난검난사를 수련해 온 세월…… 그 세월이 귀검의 얕은 지식보다도 못한 것이었나.

귀검이 말했다.

“내 진기는 너보다 두 배는 정순하다. 물론 이건 내 판단. 그런데도 구식밖에 펼치지 못해. 그걸 너는 어떻게 십오 식, 십육 식이나 펼칠 수 있을까? 결국, 정수를 알지 못했다는 거지. 네 딴에는 난검난사를 환히 알았다고 생각하겠지만.”

“네 말, 검으로 증명하면 되겠군.”

허경이 검을 들어 올렸다.

같이 왔던 수하는 모두 죽었다. 늑대개도 몰살당했다. 오늘은 대실패다.

허경은 아쉬운 마음을 떨쳐냈다.

이제, 천살단의 명령을 이행하느냐 못하느냐 하는 것은 머릿속에서 떠나고 없다. 남은 것이 있다면 귀검과 한바탕 신나게 검을 섞어보는 것이다.

귀검이 말했다.

“한 가지 더 말해줄까? 이백 년 전, 악불사왕이 혈의검님과 함께 혈마를 모실 때, 악불사왕의 무공은 모두 최절정이었다. 혈마가 그들 무공을 최정상에 올려놨지. 그 당시, 검마는 진기 부족으로 난검난사를 팔 식밖에 전개하지 못했다.”

“뭐! 뭐라고!”

“그 사실은 몰랐나 보군. 후후! 그런 면에 비하면 내가 구식을 펼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오만이라고 해야겠지. 검마보다 딱 한 수 위, 그 정도면 족하니까.”

허경은 입을 쩍 벌린 채 말을 하지 못했다.

귀검은 검마를 적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적어도 검마는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귀검이 난검난사를 알아서 구식까지 펼칠 수 있다고 말한 게 아니다.

검마는 이길 수 있으니 그보다 한 초식 정도는 더 펼칠 수 있다는 뜻이다.

검마를 적수로 여기지 않는 사내!

귀검이 검마보다 강할 수도 있고, 반대로 검마가 귀검보다 강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허경과는 차이가 크게 벌어진다.

“그랬나. 마공이라는 것…… 배우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나. 그래서 진 건가?”

허경이 피식 웃었다.

“저놈들이 죽은 것은 그래서 죽은 게 맞고.”

귀검은 자신에게 죽은 자들을 가리켰다.

“여기 이 자들.”

귀검이 주위에 죽어있는 몇 명을 쳐다봤다. 해자수에게 죽은 수하들이다.

“이놈들은 희대의 사기술에 걸려든 거고.”

“사기술?”

“후후! 혈마에게 귀동냥으로 몇 수 얻어 간 자에게 죽었으니 이도 저도 아닌 사기술이지.”

그때, 해자수가 옷을 찢어서 허벅지 상처를 묶으며 말했다.

“그 좋은 말 다 놔두고 사기술이 뭐요? 사기술이.”

귀검은 해자수를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 쪽 무공을 익힌 후배이니 네 목숨은 내가 취한다. 다른 놈들이야 누구 손에 죽든 상관없지만, 그래도 악불사왕의 후인은 내가 직접 죽여주는 게 맞겠지.”

“후후!”

허경이 실소를 흘리면서 검을 들어 올렸다.

슈웃!

귀검은 어느새 허경 앞에 이르렀다.

바람 한 줄기가 불어오는가 싶었는데, 눈앞에서 불쑥 유령이 솟구쳤다.

“웃!”

허경이 깜짝 놀라면서 검을 쳐냈다.

쒜엑! 쒜에엑! 퍽!

허경이 쳐낸 난검난사가 공기를 찢으면서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사이에 귀검의 검이 가슴을 뚫었다.

귀검…… 너무 빠르다.

허경이 너무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이것이 지옥유부검이다. 마공에 평생을 쏟은 놈이니 마공으로 보내주마. 그래도 쓸만한 마공이니 보고 가라고.”

“고맙……”

툭!

허경이 고개를 떨궜다.

“놀랐군. 난검난사를 쳐낼 줄은 몰랐어.”

귀검이 차갑게 말했다.

말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칭찬이 분명한데, 음성이 너무 차서 좋게 말한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난검난사를 볼 줄은 나도 몰랐지. 그런데 이 자들…… 뭔가 이상해서…… 강한 것 같으면서도 약하고, 약한 것 같으면서도 강하고. 마공이든 정종 무공이든 십 년 이상을 수련했다면 일단 한수 먹어주고 들어가는 거 아닌가?”

“후후!”

귀검은 옅은 웃음을 흘렸다.

해자수조차도 모르는 것이 있다. 마공도 무공이니 십 년 이상을 수련하면 정통해지는 게 맞다.

위력도 극강해서 감히 맞받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른다.

실제로 낭견대는 그런 수준까지 수련했다.

그런데도 부족한 점이 있다. 이들이 늑대개를 묶어놓고 세상에 데려가서 사람들과 섞이게 하면 어떻게 보일까? 상당히 거친 사람? 시비 걸면 안 되는 사람?

그렇다면 틀렸다. 둘 중의 하나가 걸려들어야 한다. 살심을 철저하게 숨겨서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이 되거나, 아니면 보기만 해도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야 한다.

마공은 마태(魔態)를 드러내게 되어 있다.

낭견대는 마태가 없다. 마공을 수련했지만, 아직도 살인하는 데 걸림돌이 많다. 꼭 명령을 받았을 때만 사람을 죽여야 하고, 적이 아니면 함부로 검을 쓰면 안 된다는 제약이 있다.

이런 제약이 마태를 죽인다. 정상적인 마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만든다.

“저기…… 그런데 우리 다시 한번 붙어볼까? 나 이제는 이길 수 있을 거 같단 말이지.”

해자수가 귀검을 보면서 말했다.

“안돼. 아직은.”

“아! 그런가?”

해자수는 즉시 수긍했다. 기어이 승부를 보자고 부득부득 우기지 않았다.

“나도 지금은 안 될 것 같아. 상수가 보기에 내가 언제쯤이나 검을 맞댈 수 있을 것 같아?”

“후후!”

귀검은 웃기만 했다.

* * *

등여산은 손으로 가슴을 툭툭 쳤다.

“왜? 속이 안 좋아?”

홀리가 물었다.

“응. 이상해. 속이 불편하네. 점심 먹은 게 얹혔나?”

“타혈(打穴)해줘?”

“아니. 그 정도는 아냐. 속이 약간 더부룩하기는 한데…… 조금 있으면 나아지겠지.”

등여산이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런데 조금 안 좋은 정도가 아니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뽀송뽀송하게 맺혔다.

낯빛도 창백해지고, 입술은 점점 파랗게 질려간다. 확실히 어디가 좋지 않다.

“어디 아픈 것 같은데. 뒤로 돌아봐.”

홀리가 말하며 다가왔다.

무인은 이럴 때 대체로 운기를 하는 편이다. 진기를 휘돌리면 경맥이 뚫리고, 막힌 부분도 뻥 뚫린다.

하지만 그래도 경맥이 시원하게 뚫리지 않으면 억지로 진기 타통을 시키기도 한다. 별로 어렵지는 않다. 안마하듯이 툭툭 쳐주면 된다.

“아니. 괜찮아.”

등여산이 빙긋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부터 계속 가슴을 치고 있잖아.”

“아까부터? 내가 많이 이랬나?”

“한 반 시진 정도? 그럼 많이 한 거지?”

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반 시진!’

순간, 등여산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반 시진! 반 시진이면 귀검과 해자수가 강을 건너온 낭견대와 부딪칠 무렵이다.

그때부터 속이 답답했다?

두 사람에게 이상한 일이 생긴 것인가? 생기가 불길한 예감을 말해준 것인가?

‘아냐. 그렇지는 않을 거야.’

등여산은 불길한 생각을 떠올렸다가 곧 지워버렸다.

싸움이 잘못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귀검과 해자수라면 낭견대를 막을 수 있다.

마공관 마공을 수련한 마인일지라도 막아낸다. 그 일을 결정할 때, 불길한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러면 이 답답함은 무엇인가?

“불안해!”

등여산이 불현듯 소리쳤다.

“무슨 소리야? 불안하다니.”

홀리가 불안한 눈빛으로 등여산을 쳐다봤다.

등여산의 기분은 막연한 느낌이 아니다. 점쟁이가 미래를 예견하듯이 앞으로 닥쳐올 일을 예견해 준다.

“호발귀!”

“뭐?”

“호발귀 데리고 빨리 도주해!”

“뭐라는 거야? 왜?”

“빨리! 빨리 도주해!”

홀리는 다급히 말하는 음성에서 매우 위급한 사태가 터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등여산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위험하다고 말하지만 어떤 위험인지, 왜 위험한지 말하지 못한다. 무조건 위험하다고 말한다.

이 말, 믿어야 한다.

“어디로 갈까?”

홀리가 다급히 호발귀를 등에 업으며 말했다.

“첫 번째! 제일처(第一處)로!”

홀리가 등여산을 쳐다봤다.

미륵불이 파놓은 미로를 찾으면서 만일의 경우, 어떻게 행동할지 대처방법도 세워놓았다.

가장 좋은 것은 위기를 재빨리 눈치채고 다 같이 도주하는 것이다.

가장 안 좋은 것이 지금처럼 한 사람만 빠져나가는 것이다. 남은 사람은 뒤에서 위험을 막는다.

“너는? 빠져나올 수 있겠어?”

“지금 내가 문제가 아니야. 빨리 가!”

등여산이 다급하게 말했다.

무슨 일인지 어떤 위험인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빨리 빠져나가라고만 한다.

“최대한 빠져나가 볼게.”

“빨리!”

“정말 그렇게 답답한 거야?”

“말할 시간 없어! 빨리 가!”

등여산이 홀리의 등을 떠밀었다.

홀리는 망설이지 않고 미로 속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미로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번 등여산을 쳐다봤다.

“너도 빠져나와야 해. 여차하면 도망치는 거 알지? 귀검을 이용하면……”

“빨리 가라니까!”

홀리는 즉시 암로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 절터에는 여우굴이 상당히 많다. 미륵불이라는 사기꾼이 여우굴을 무려 여섯 개나 파두었다.

아니, 여섯 개만 파놓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그녀들이 짧은 시간 동안에 찾아낸 것만 여섯 개이니까, 어쩌면 찾지 못한 여우굴이 또 있을지도 모른다.

여우굴 여섯 군데는 각기 다른 곳으로 향한다. 모두 여섯 군데의 도착지가 있다.

그중에서 첫 번째 도착지로 가라고 얘기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첫 번째 도착지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무조건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했다.

지금 휘몰아치는 위험이 어떤 것인지 알면, 도착할 곳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터인데……

“하아……”

등여산은 홀리가 사라진 후에야 비로소 큰 숨을 몰아쉬었다.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진다. 먹은 것이 얹힌 듯 답답했는데, 이제는 시원하다.

역시 호발귀 때문에 불안했다.

‘뭐지? 왜 불안한 거지?’

등여산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불안감을 일으킨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뭐가 잘못된 것일까?’

낭견대는 귀무살이 막아줄 것이다.

상류 쪽에서 벌어질 기습은 귀검과 해자수가 제거한다.

이 두 부분은 전혀 불안하지 않다. 홀리가 호발귀를 데리고 떠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니 불안감은 귀검 쪽 싸움과는 전혀 상관없이 일어났다.

혹여 귀무살을 뚫고 들어올 만한 적이 있을까? 귀무살이 방비하지 못한 곳은? 한수를 건너지 않고 아니면 멀리 떨어진 곳에서 한수를 건넌 후에 배후로 들이친다면?

귀무살을 거치지 않고 절터로 들어설 방법은 존재한다.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낭견대 같은 주력을 전면에 내세우고 기습…… 소수 정예로 치고 온다는 건데, 혹시 주치균이 다시 오는 건가?’

등 여사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서 자신의 가슴을 툭 쳤다.

탁! 탁!

가슴이 답답하다.

무언가가 있는데 정확히 짚어내지 못해서 그런 거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답답할 리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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