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六章 사두(蛇頭) (3)
난검난사는 시전이 불가능한 무학으로 알려져 있다.
운공 측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일반적인 상식선에서 보더라도 ‘그게 어떻게 가능해?’하는 말이 저절로 튀어나올 만큼 펼치기가 난해한 공부다.
당장 검만 봐도 그렇다.
허경이 들고 있는 검은 검신이 다섯 개다. 검 자루 하나에 검신 다섯 개를 엮어 놓은 듯 보인다.
아니다. 실질적으로 허경은 검 다섯 자루를 들고 있다.
검신도 얇고, 검 자루도 얇다. 극도로 정밀한 면검(面劍)이다. 어찌나 정교한지 검을 펼칠 때는 알아볼 수 없고, 직접 검을 건네받아서 살펴보아야만 알 수 있을 정도다.
검 다섯 자루를 한 손에 쥐고 초식을 펼친다. 손가락이 각기 다르게 움직이고, 손목의 움직임도 극심하다. 한순간에 검 다섯 자루가 변초를 일으킨다.
이런 변초를 일으키려면 손가락과 손목이 상상할 수 없는 각도로 꺾어야 한다.
당연히 무리가 심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효과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뛰어나다.
똑같은 공력으로 같은 초식을 펼친다면 남들이 한 번 공격할 동안, 허경은 다섯 번을 공격한다. 검 한 자루는 상대방의 공격을 차단하고, 동시에 네 자루가 몸통을 후려친다.
난검난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몸이 검초의 변화를 따라간다.
검이 움직이는 속도만큼 두 발도 빠르게 움직인다. 단지 빠를 뿐만 아니라 몸이 뱀처럼 흐물거린다. 상반신과 하반신이 서로 반대로 움직이는 경우도 있다. 발은 오른쪽으로 내딛는데, 상반신으로 왼쪽으로 꺾이는 경우다.
유연함의 극치…… 그 속에서 빠른 검초 다섯 개가 툭 튀어나온다.
이러한 유연함은 그를 세 배나 빠르게 만들어 준다.
몸의 변화만으로도 다른 사람이 한 번 공격할 시간에 그는 세 번을 공격한다.
몸에서 얻는 이득이 삼(三), 오검에서 일어나는 변초가 오(五), 일수에 열다섯 번의 공격이 이루어진다.
이것이 난검난사다.
말 그대로 수많은 검들이 사방에 어지럽게 흩어져서 소낙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무리만 들어서는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무공이다.
어느 사람도 수련할 수 없는 무공, 죽었다가 깨어나도 연성할 수 없는 무공이라고 말한다.
맞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연성이 불가능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펼칠 수 없는 무공을 억지로 쥐어 짜내니, 몸에 무리가 간다.
허경은 몸이 비비 꼬아서 극심한 고통을 주는 형기(刑器) 회삭륜(回索輪)에 묶여서 십 년을 보냈다. 십 년 동안 머리부터 발끝까지 뼈란 뼈는 모두 다듬었다. 근육과 골격을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시켰다.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자신이 묻힐 묏자리부터 파놓고 시작한다는 난검난사.
해자수가 난검난사를 피했다는 자체가 경악할 만한 일이다.
해자수는 한 가지 느낌밖에 없었다. 허경이 검이 몸 주위를 흘러내린다고.
흘러내리는 검…… 그 속에는 무려 열다섯 번의 검초가 뒤섞여 있었다. 해자수가 일 초를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십오 초를 피해내는 중이었다.
신법을 펼쳐서 사력을 다해서 피해낸 것도 아니다. 단지 상반신의 움직임만으로 난검난사를 벗어났다.
그 과정에서 해자수는 허벅지를 찔렸다.
사실 허경의 검은 매우 독랄했다. 허벅지를 거의 절반 가까이 베어냈다.
당연히 매우 큰 피해를 봤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허경에게는 이것조차도 놀라운 일이다. 난검난사를 펼치고도 겨우 허벅지를 그은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는 것은 상당한 불만이다.
“후후! 내가 전력을 다해야 할 상대였나?”
차아아앗!
허경이 진기를 끌어올렸다.
타탕! 탕! 타앙!
그가 들고 있는 검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렸다. 손바닥 안에서 오검을 비비자, 검신과 검신이 아스러질 듯 비벼지면서 격렬한 마찰음을 일궈냈다.
해자수는 고요하다.
파문 한 점 일지 않은 호수처럼 투명하고 맑다.
사람들은 해자수가 어떤 무공을 사용하는지 알지 못한다.
해자수는 너무도 고요하다. 마치 천 년을 한결같이 한 자리를 지켜온 바위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휘몰아치는 회오리바람에 휩쓸려서 정신없이 이리저리 떠다니고 있다면 누가 믿겠는가.
허경이 난검난사를 펼쳤다.
깡깡깡! 까앙!
한순간, 검과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꽹과리를 치는 듯 요란하게 울렸다.
검이 하늘을 빼곡히 메웠다. 검 열다섯 자루가 하늘을 온전히 감쌌다. 절정 고수 열다섯 명이 일제히 합공을 취해 온다.
더욱이 하나의 뿌리에서 피어난 합공이기에 호흡이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천수여래!
몸통은 하나인데 팔은 열다섯 개다.
파파파팟! 파파팟!
난검난사가 해자수의 몸통을 훑었다.
한데, 해자수가 미꾸라지처럼 살살 빠져나간다.
거센 급류가 몰아치면 살짝 비켜내고, 급류가 지나가면 뒷면을 타고 유유히 솟구쳐 오른다.
해자수는 검초와 검초 사이를 은어처럼 미끄러진다.
깡! 깡앙!
검과 검이 부딪혔다.
해자수가 열다섯 자루를 모두 피해내지 못하고 부득이 검을 부딪쳐서 밀어냈다.
‘됐어!’
허경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해자수가 검으로 튕겨낸 이 동작, 이 한수가 허경에게는 또 다른 변수를 일으키는 단초가 된다.
파라라라락!
그가 들고 있는 검은 다섯 자루, 해자수는 그중 한 자루만 쳐냈을 뿐이다. 아직도 허경 손에는 검, 네 자루가 남아있다. 여전히 맹렬하게 검초를 토해낸다.
그 네 자루의 검이 순간적으로 변화를 일으켰다.
해자수가 쳐올린 검은 검지에 걸린 검과 부딪쳤다. 두 번째 검, 이검(二劍)을 밀어내고 수하를 격살했을 때처럼 겨드랑이 사이로 빠져나갈 생각이다. 순간,
촤락!
허경은 중지 가운뎃마디로 삼검(三劍)을 퉁겨냈다.
이검은 해자수가 쳐낸 검을 맞받았다. 위로 떠밀리지 않고 오히려 위에서 아래로 짓눌렀다.
방금 튕겨낸 삼검은 밑에서 위로 올라가서 해자수의 검을 쳤다.
위에서 한 자루, 밑에서 한 자루…… 해자수의 검이 가위에 낀 검처럼 위아래로 꽉 눌러 잡혔다.
최라락!
엄지, 약지, 새끼손가락이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검 세 자루가 해자수의 검신을 쫓아 들어갔다. 검을 지나고 손목을 지나고, 몸통을 가격한다.
그때, 해자수의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동시에 두 발로 허경의 안면을 가격했다.
허경은 즉시 고개를 숙였다.
쒜엑! 쒜에엑!
해자수가 쳐낸 발길질은 허경의 머리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그가 쳐낸 검, 세 자루도 몸통을 치지 못했다.
그가 발길질을 피해서 머리는 숙이는 순간, 검의 방향이 비틀어졌다.
가가각!
해자수는 몸을 뽑아낸 탄력을 이용해서 가위에 눌린 검을 잡아챘다.
츠츳!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섰다.
이번 겨룸에서는 누구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 그렇다고 승기를 잡지도 못했다.
허경과 해자수는 평수다.
“네 놈 무공 뭐냐? 못 보던 무공인데.”
허경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물었다.
허경이라고 세상에 존재하는 무공을 다 알까. 모두 알 수는 없다.
그래도 이런 물음을 던진 것은 해자수의 움직임이 마치 철저하게 감각에 의존하는 무공 같아서다.
허경의 물음은 다르게 바꿔서 들어야 한다.
- 네 놈, 감각이 비정상적으로 예민하다. 어떤 종류의 무공이냐?
해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고요히 눈을 반개하고 있다. 얼핏 보면 소림 절공 중의 하나인 대반야선공(大般若禪功)을 펼치는 듯이 보인다. 지극한 고요함에 잠겨서 몸 밖의 변화를 살펴본다.
변화가 일어나면 피하고, 피하지 못하는 궁지에 몰리면 퉁겨버리고, 그래도 또 일어나면 격파한다.
피(避), 탄(彈), 파(破)!
대반야선공의 제일 요체는 피하는 것이다. 무조건 피한다. 생사(生死)가 걸린 일이 아니면 어떤 싸움도 벌이지 않는다. 무인이기를 포기하고 물러선다.
생사가 달린 문제라면 손속을 부딪치되, 퉁겨낸다.
죽이지 말아야 하며,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모욕을 주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오해도 일으키지 않는다. 단지 무공만 밀어낸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을 경우에는 격파한다.
대반야선공에서는 운결(運訣)보다도 이 요체를 더 중요시한다.
요체를 이해한 사람만 대반야선공을 수련한다. 조금이라도 투쟁심이 남아있는 사람은 수련하지 못한다.
해자수의 움직임이 꼭 그렇다.
그는 얼핏 피하는 듯이 보인다. 검이 흐르면 신법으로 피해낸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을 정도로 궁지에 몰아넣으면 그제야 검을 쳐온다. 그리고 격파한다.
불문무공(佛門武功)인가, 도가무공(道家武功)인가.
해자수의 움직임 속에는 천지자연이 내뿜는 기운 중 고요함의 정수가 녹아있는 듯하다.
“후후!”
허경이 해자수를 가운데 놓고 빙빙 원을 그리면서 돌았다.
지금부터는 전력을 다할 생각이다. 해자수를 얕잡아 보지 않고 초절정 고수를 대하듯이 마주쳐간다.
허경 자신은 물론이고 싸움을 지켜보는 낭견대 무인들 그리고 귀검까지도 이제부터는 두 사람 모두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될 싸움이라는 것을 알았다.
스스!
귀검이 걸음을 옮겼다.
스스스! 스스슷!
그는 거침없이 낭견대 무인들을 향해 걸었다.
허경과 해자수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은 이 정도로 됐다. 이제 우리 싸움을 하자.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귀검의 뜻은 명확했다.
그는 낭견대가 준비하든 말든 공격을 시작할 것이다. 낭견대가 적극적으로 반격을 취해도 상관없다.
아니면 지금처럼 계속 시간을 끌어도 무방하다.
어떤 전술을 펼쳐도 상관하지 않는다.
‘이 자, 공격할 거야.’
귀검과 마주 선 사람은 당장 날카로운 검기를 피부로 느꼈다. 아니, 귀검이 무서워졌다.
방금까지는 사람 모습이었는데, 지금은 피를 뒤집어쓴 악귀처럼 보인다.
귀검이 지옥유부검을 꺼내 들었다.
단지 그가 걸어올 뿐인데도 지옥에서 튀어나온 칼이 달려드는 듯 섬뜩한 공포가 느껴졌다.
스스슷! 스슷!
낭견대 무인들도 당장 싸울 준비를 했다.
컹! 컹컹! 컹컹컹컹!
지금까지 귀검을 노려보면서 지극히 낮게 으르렁거리던 늑대개들이 사납게 짖기 시작했다.
주인의 절제된 진기 응집이 목줄을 잡고 있는 늑대개에게까지 전해졌다. 주인이 싸울 준비를 하자, 개도 덩달아서 귀검을 노린다. 그리고 잔뜩 경계한다.
늑대개도 귀검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는 두려움을 느낀다.
컹! 컹컹!
늑대개 세 마리가 거세게 짖어댔다
츠읏!
귀검이 검을 들어 올렸다. 순간, 귀검이 검이 사라졌다. 아니다.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보일 듯 말 듯 흐릿해졌다. 어떤 때는 검이 보이고 어떤 때는 보이지 않는다.
날카롭게 갈린 검신이 햇볕에 반사된 탓도 있지만, 진기가 검신으로 밀려들고 있는 현상이다.
‘검에 진기를 극한으로 밀어 넣고 있다. 최선을 다할 생각이야. 한 치의 양보도 없다!’
귀검은 상대가 낭견대 무인이라고 해서 얕보지 않는다.
제일 먼저 달려드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늑대개부터 달려들 게 뻔하다.
그런데도 진기를 극한으로 밀어 넣는다. 개에게까지 최선을 다한다.
낭견대 무인들은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각기 절공을 끌어냈다.
“키키키키! 키키킥!”
귀검을 포위한 다섯 명 중 한 명이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탈혼음소(奪魂音笑). 온갖 마공이란 마공은 다 끌어모았군. 탈혼음소는 혈천방에도 없는 무공인데.”
귀검이 눈살을 찌푸렸다.
탈혼음소는 굉장히 강력한 마공이다.
웃음소리가 상대방의 기분을 건드린다.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 놓는다. 사실, 탈혼음소 자체로는 그렇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두 귀를 붙잡아 놓는 역할은 나무랄 데 없이 한다. 신경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이 점을 우습게 보면 큰코다친다.
처음에는 신경이 분산된다고 느끼는 정도이지만, 곧 저들의 움직임에는 전혀 신경 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든 신경이 탈혼음소에 집중되었다.
상대가 공격을 시작하면 그제야 ‘앗차!’하고 반격을 가해보지만, 벌써 두어 수나 느려졌다. 반격하기는커녕 목숨을 부지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 된다.
“킥킥킥! 키키킥!”
음침한 웃음소리가 귀검의 두 귀를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