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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27화 (327/500)

第七十六章 사두(蛇頭) (2)

짝! 짝! 짝!

허경이 손뼉을 쳤다.

“귀검, 귀검 하기에 빠르면 얼마나 빠를까 했는데, 이건 정말 귀신이잖아. 움직임이 너무 빨라서 보지도 못했어.”

허경은 말을 하면서 손을 들어 올렸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그리고 다시 팔방풍우를 펼치듯이 둥글게 원을 그렸다.

“한 번, 두 번. 두 번이군. 우리 개 다섯 마리 움직이는데, 검을 쓴 횟수가 두 번이야.”

귀검은 분명히 한 마리씩 정확하게 겨냥하고 검을 펼쳐냈다. 하지만 그 연결 순간이 너무 빨라서 마치 일 초에 모두 쓰러뜨린 것처럼 보였다.

슷!

귀검이 허경을 향해 돌아섰다.

이제는 네 차례, 와라!

귀검이 몸으로 말한다. 검이 섬광을 토해낼 준비를 마쳤다.

허경이 말했다.

“모두 봤지?”

“네!”

낭견대 무인들이 자신 있다는 듯 힘있게 대답했다.

“잡을 수 있을까?”

“넷!”

“후후! 귀검, 얘들 말하는 거 웃기지? 얘들이 당신을 잡을 수 있다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

허경이 귀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귀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허경이 무슨 말을 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오직 검이 말할 때만 움직인다.

“귀검, 표정 변하는 거 봤지?”

허경이 수하들에게 말했다.

“네!”

“너희 정도는 우습다잖아. 대꾸할 가치도 없고. 내 생각도 그래. 너흰 아직 안 돼. 아무리 봐도 너희가 잡을 만큼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냐. 물고 늘어지기만 해.”

허경이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방금 개를 잃은 낭견대 무인 다섯 명이 귀검 앞으로 나서며 오방진(五方陳)을 펼쳤다.

다섯 명이 오행 방위를 점거한 채 차분하게 검을 겨눈다.

돌격해서 분쇄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전으로 끌고 가서 체력 소모를 유도하려고 한다.

스으으읏!

낭견대 무인 세 명이 늑대개를 데리고 오방진 바깥에 섰다.

오방진 뒤에 삼재진(三才陣)을 펼친 형국으로 오방진의 빈틈을 채워준다.

장기전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가 확실하게 보였다.

이건 이상하다. 기습을 걸어온 쪽은 다급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장기전으로 유도한다?

바로 귀검을 부수고 안으로 들어가서 궁충을 잡아야 한다. 한시도 머뭇거릴 틈이 없다. 시간 끌기는 오히려 귀검이 원하지 않을까?

낭견대가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바로 나왔다.

저벅! 저벅!

허경이 해자수를 향해 걸어왔다.

가장 강한 자, 가장 먼저 잡아야 할 자…… 귀검을 내버려 두고 오히려 하찮게 보였던 해자수에게 향했다.

“한 발 뒤로.”

해자수를 포위하고 있던 낭견대와 늑대개가 스윽! 한 발 뒤로 물러섰다.

귀검은 해자수에게 떨거지를 상대하라고 했는데, 낭견대가 상황을 비틀었다. 귀검에게 수하가 몰려들고 정작 허경은 해자수에게 검을 겨눈다.

“그래도 사람 보는 눈깔은 있군. 내가 귀검보다 상수로 보인다 이거지? 잘 판단했어. 킥킥!”

해자수가 히죽 웃었다.

“후후후!”

허경도 웃으며 검을 쳐들었다.

‘응?’

해자수는 허경의 검을 보면서 살며시 눈살을 찌푸렸다.

검이 이상한 것 같다. 눈이 바빠서 그런가? 검신이 두 겹, 세 겹 겹쳐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맞다. 매미 날개처럼 얇은 검신 다섯 개가 겹쳐 있다.

검 자루에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검신 다섯 개를 박아놓았다. 연검(軟劍)이 묶여서 강검처럼 보인다.

파라락! 파락!

허경이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허경이 검을 휘두르자 날카로운 칼바람 대신에 벌떼가 날아오르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요상한 검이네. 저걸로 뭘 할 수 있을까?”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때, 귀검이 지극히 차게…… 혼잣말로, 하지만 모두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또렷하게 말했다.

“난검난사(亂劍亂射).”

해자수는 난검난사라는 말에 움찔거렸다.

난검난사는 원래 혈천방의 마공이다. 악불사왕 중 검마(劍魔)의 무공이 난검난사다.

검마의 무공은 오직 난검난사 일 초식뿐이라고 한다. 그 이상도 있을 수 있지만, 무림사에는 강호를 종횡할 때 구사한 초식은 난검난사밖에 없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혈마 다음으로 강했던 자들…… 혈의검 휘하 악불사왕의 무공이 연달아 등장했다.

궁마의 진전을 이은 궁충, 검마의 난검난사를 물려받은 허경.

혈천방 귀무살이 궁마의 진전을 이은 것은 이해되지만, 천살단 무인이 검마의 진전을 이은 것은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다.

허경이 천살단 낭견대 무인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면 난검난사를 보이지 말아야 했고, 난검난사를 드러내 보였다면 천살단 무인이라는 점은 밟히지 말아야 한다.

천살단 무인이 마공을 사용한다는 것은 모순을 넘어 죄악이다.

이래서 낭견대는 생존자를 남겨두지 않는다. 자신들의 무공을 본 사람은 반드시 죽여서 입을 봉한다.

“이거 어찌 불안 불안한데. 그렇다고 싸우지 않을 수도 없고. 좋아. 까짓거 해보지 뭐. 지가 강하면 얼마나 강하려고. 일 대 일이면 누구하고도 상대할 수 있단 말이지.”

휘릭!

해자수가 허공에 검을 휘둘렀다.

허경에게 싸울 준비가 되었으니 공격해 보라는 신호다.

“후후후!”

허경이 해자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해자수도 허경을 향해 마주쳐갔다.

타악!

철벽이 쳐졌다.

그 순간 해자수는 그야말로 사력을 다해서 철판을 쪼갰다. 허경이 펼치려는 검공을 짐작하기 때문에 더욱 강렬하게, 전심전력을 다 쏟아부어서 철벽을 쪼개갔다. 그때,

촤라라락!

철판이 갑자기 여러 조각으로 확 불어났다.

‘웃!’

해자수는 깜짝 놀랐다.

놀라면 안 된다. 어떤 순간이든 그는 회오리바람에 휘말려서 끝없이 빨려 들어가야 한다.

와선에 휩쓸린다는 것,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끌려들어 간다는 것은 고도의 정신집중과도 상통한다.

오직 딸려가는 것 외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대여섯 개로 확 불어난 철판이 일렬로 나란히 서서 거칠고 빠르게 덮쳐왔다.

“이익!”

해자수는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꽈앙! 꽝! 꽝!

강한 철판과 해자수의 검이 부딪혔다.

해자수는 두 귀로 굉장히 묵직한 소리를 들었다. 손목도 끊어질 듯 얼얼했다.

이런 느낌도 처음이다.

격전이 벌어진 후, 어떤 소리를 듣거나 통증을 느낀 적이 없다.

철벽이 세워지기 전이나 후나 육신이 와선 따라서 끝없이 빨려가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소리를 듣고, 통증을 느꼈다.

‘안 돼!’

순간적으로 각성이 일어났다.

몸 밖에서 일어나는 소리와 통증에 신경을 끌려 나가면 안 된다. 몸 안에서 일어나는 회오리바람만 쳐다봐야 한다. 몸도 마음도 올곧이 맡겨야 한다.

쒜엑! 쒜에엑!

철판이 목덜미를 노리고 내리쳐왔다.

절체절명…… 이미 철판을 베어낼 시간은 없다. 바로 피하지 않으면 격타당한다.

해자수는 이토록 위급한 순간에도 와선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미간에 붙인 두 눈을 움직이지 않았다. 온전히 내리치는 철판에 온몸을 맡겼다.

쒜에엑!

철판이 몸을 따라서 흘러내렸다.

아슬아슬하게…… 가끔 옷을 부우욱! 찢어내면서, 살점을 살짝 떼어내기도 하면서 흘러내렸다.

퍼억!

허경이 해자수의 허벅지를 찍었다. 원래는 머리를 찍으려고 했지만, 제대로 찍어내지 못하고 흐르다가 검을 빼내기 직전에서야 간신히 허벅지를 타격했다.

“크윽!”

해자수가 비틀거리면서 뒤로 물러섰다.

해자수는 다리를 연신 절룩거렸다. 맑은 핏물이 샘솟듯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면 혈관을 다친 듯하다.

귀검에 이어서 허경까지…… 두 번이나 생기가 무너졌다.

“아! 이거 정말 무적이 아니었네. 무적인 줄 알았더니. 이거 왜 이렇게 실망이 크냐?”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스읏! 휘리릭!

허경이 검을 휘둘러서 검에 묻는 핏물을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검을 겨눴다.

“제길! 그런데 그쪽은 싸움 안 하나?”

해자수가 귀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낭견대 무인들은 귀검을 포위하고 있을 뿐, 검을 쓰지 않았다. 귀검이 움직이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다.

허경과 해자수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은 아니다. 옆에서 어떤 싸움이 일어나든 상관하지 않고 귀검만 쳐다봤다.

귀검도 서두는 눈치가 아니었다.

하기는…… 귀검에게는 해자수가 죽든 말든 상관할 바가 없다.

지금 당장 귀무살을 데리고 사라진다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아니, 천살단 앞을 막아서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

이 싸움은 귀무살이 원하는 싸움이 아니다.

내용이 어떻든 간에 겉모양만 놓고 보면 혼절한 호발귀를 지키는 모습이지 않나.

이들이 혈마를 지켜줄 리는 없고…… 호발귀가 정신을 차리면 뭔가를 얻어갈 요량인 것 같은데…… 어쨌든 우선 당장 앞을 막아준다니 그러라고 할 밖에.

그러니 이 싸움은 귀검의 싸움이 아니라 해자수의 싸움인 것이 맞다. 해자수가 귀검을 돕기 위해서 왔다고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해자수가 막았어야 할 싸움이다.

“쳇! 이래서 거들 필요가 없다고……”

해자수는 무심코 중얼거리다가, 문득 등여산이 한 말을 떠올렸다.

책사는 자신이 귀검을 따라가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했다. 귀검 혼자는 불안하다.

자신들이 쫓아갈 생각을 해도 불안해진다. 하지만 해자수가 붙어준다고 생각하니 편안해진다.

그 말뜻이 뭔가? 자신에게 위험이 없다는 거다.

책사의 생기는 십분 믿을 수 있다. 자신의 생기는 믿지 못해도 책사의 감정 변화는 믿는다.

‘내가 죽는 게 아무렇지도 않다면 몰라도, 내게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았으면 당장 슬픔을 느꼈을 거야. 책사의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것은 여기서 내게 해를 끼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거지. 저놈도 날 어쩌지 못해.’

해자수는 갑자기 그런 생각이 일어나자 마음이 턱 놓였다.

방금 허벅지에 일격을 당했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허벅지 상처가 꽤 깊은 데도 비실비실한 모기에게 물린 것처럼 가볍게 여겨졌다.

“큭! 큭큭큭!”

해자수는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믿기만 하면 되는데, 그걸 못해서…… 어휴! 머저리. 가장 강하고 자신 있는 걸 안 믿으면 어쩌라는 거니?’

해자수는 자신에게 질책했다.

난검난사라는 말을 듣고 너무 겁을 먹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혈마로 변신해서 제이 낭견대와 싸울 때, 놀란 적이 있었나?

백열마공을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상대가 백열마공을 쓰든 난검난사를 펼치든 신경 쓸 필요가 전혀 없다.

진기를 사용해서 펼치는 무공이라면 매 순간 상대방의 움직임에 집중해야 하지만, 생기 무공은 그보다 더 선급한 것이 있다. 몸통 안에서 움직이는 자신을 보아야만 한다.

몸통 안의 자신을 보지 않고 몸통 밖에 있는 상대방을 신경 쓴다는 것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휩쓸려 떠다니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이번에는 귀검이 문제였다.

귀검이 깜짝 놀라지 않았나. 자신을 꺾은 귀검이 놀라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정신이 위축되었다.

난검난사라는 마공을 주시할 필요가 없었다. 생기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되는 거였다. 왜 마공을 알아보고, 지레짐작하고 겁먹고 더 강하게 부딪히려고 하고……

난검난사가 원래는 이토록 강한 검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검이었는데, 마음이 훨씬 더 강한 검으로 만들어 낸 것은 아닌지.

생기는 진기처럼 정확하지 않다.

진기는 다섯 개의 힘을 쏟아내면 딱 그만큼의 힘이 발휘된다. 하지만 생기로 쳐내는 힘은 측량할 수가 없다.

어떤 때는 열 개로 되었다가, 어떤 때는 한 개로 줄어들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삶의 기운에 따라서 달라진다.

‘좋아! 다시 한번! 선입견만 버리면 너나 백열마공이나 다를 바 없어.’

“뭐해? 공격하지 않고?”

해자수가 검을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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