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六章 사두(蛇頭) (1)
허경이 옷을 입었다.
물에 젖은 가죽옷도 탈탈 털어서 걸쳐 입었다. 가죽옷은 갑옷 역할도 해준다.
철갑처럼 단단하지는 않지만, 웬만한 검은 뚫고 들어오지 못한다.
스읏!
허경은 언제라도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늑대개를 다독거렸다. 그리고 입마개를 풀었다.
그르르르릉!
늑대개가 나지막하게 으르렁거린다. 하지만 그 소리는 삼사 장 밖을 벗어나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않는다. 오직 가까이에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다.
늑대개가 사납게 짖지 않는다?
입마개만 풀어주면 무조건 짖어대는 다른 늑대개하고는 다르다.
그르르릉!
뱃속에서부터 저려 울리는 진짜 맹수의 울부짖음이다.
“물어뜯을 준비, 되어 있냐?”
그르르릉!
늑대개가 대답했다.
스읏! 슷!
늑대개와 낭견대가 걸어왔다.
“아휴! 내 팔자하고는. 뭐 내가 최대한 하는 데까지 해보겠는데. 너희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까 이리 와 할 수도 없는 거고. 그쪽으로 가는 건 알아서 처리하쇼.”
해자수가 말했다.
“그러지.”
저들이 걸어오자 귀검도 몸을 일으켰다.
“그럼 나 먼저.”
해자수가 귀검에게 말하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자신이 앞장서야만 저쪽에서도 마주쳐오는 자들이 뛰쳐나온다. 그들을 데리고 옆으로 빠지는 거다.
자신이 옆으로 움직이기만 하면 저들은 자연히 따라온다.
귀검과 낭견대주가 싸울 수 있게끔 공간을 만들어준다.
‘앗차! 하면 끝난다 이거지.’
파앗!
해자수는 눈꺼풀을 살짝 내리감아서 반개했다. 그리고 두 눈을 미간에 모았다.
휘르르르릉!
와선이 즉각 일어났다.
거침없이 휘도는 돌풍은 몸 안을 휘젓는다. 몸 바깥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 순간, 해자수는 거대한 통 안에 갇힌 느낌이 든다.
회오리바람을 타고 아무리 멀리 날아가도 거대한 통에서 빠져나가지 못한다.
물론 거대한 통은 몸이다. 회오리가 몸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인데……
몸 안에서 자신의 몸을 볼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희한한 경험이다.
화르르르륵!
와선이 굉장히 빠르게 휘돌았다.
와선은 몸 안에서 빙빙 휘돌지만, 해자수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제 자리에서 빙빙 도는 느낌이 아니라 어딘가 한없이 빨려간다. 끝없이 끌려갔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해자수의 움직임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다다다! 다다다다!
낭견대를 향해서 뛰어가고 있지만 그렇게 빠른 걸음이 아니다. 천천히, 천천히 달려간다. 순간!
컹컹! 컹! 컹컹컹!
늑대개 네 마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로 뒤를 이어서 낭견대 무인 네 명이 해자수를 향해 검을 쳐냈다.
눈앞에서 무엇인가가 번뜩였는데, 아무것도 없다.
쒜에엑!
해자수의 머리 위에서 칼바람 소리가 울렸다.
저들이 어느새 머리 위까지 다가왔다. 굉장히 빠르다. 그렇다고 머리 공격만 방어할 수도 없다. 늑대개들이 밑으로 달려들면서 다리를 물어뜯으려고 한다.
타당! 탕! 탕! 탕!
철벽이 불쑥불쑥 솟구쳤다.
해자수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벌써 숱하게 경험했다. 제이 낭견대와 싸울 때는 철벽이 너무 빨리 세워져서 숨 돌릴 틈도 없이 움직였다.
무조건 와선의 움직임에 몸을 맡기면 된다. 그러면 검을 어디로 휘둘러야 할지 타격목표와 속도가 정해진다. 아니, 자신이 어느새 그런 쪽으로 움직인다.
쫙! 스으읏! 쫘아아악!
검이 철벽을 갈랐다.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철벽이 반으로 갈리면서 틈이 벌어졌다.
해자수는 자신의 싸움을 했다.
제이 낭견대와 싸울 때처럼 여러 번 찌르지 않았다. 단숨에 철벽을 갈라낸다.
그런 행동은 일 초에 사혈을 베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굉장히 빠르고 치명적인 검초가 펼쳐진다.
깨앵!
개가 신음을 토하며 떨어졌다.
늑대개들은 굉장히 힘든 수련을 쌓았다.
이런 맹견들의 특징은 위험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쏟아지는 칼날 속으로 무조건 뛰어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반대, 위험하다 싶으면 즉시 물러선다. 이럴 때는 아주 겁많은 개 같다.
어찌나 겁이 많은지 약간만 위협을 가해도 즉시 몸을 움츠린다. 그 정도로 위험 감지가 예민하다.
위험을 느낀 개가 물러설 때, 다른 쪽에 있는 늑대개들은 더욱 사납게 달려든다.
한쪽이 물러선다는 것은 다른 쪽에는 위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늑대개들은 본능적으로 이런 점까지 알아챈다.
늑대개들의 본능은 해자수가 일으키는 생기와 비슷한 작용을 한다.
그런데 해자수가 검을 휘두르자 늑대개가 물러서지 못하고 단숨에 꼬꾸라졌다.
쒜에에에에엑!
낭견대가 쳐낸 검이 해자수를 비켜서 지나갔다.
“우!”
그릉! 컹컹! 그르르릉!
낭견대 무인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옅은 신음을 흘렸다.
확! 달려들던 늑대개도 으르렁거리면서 기회를 엿볼 뿐, 쉽게 달려들지 못했다.
해자수의 무공은 상상 이상으로 강하고 빠르다.
겨우 소금 장수처럼 볼품없이 보였던 자인데, 강하다고는 하지만 자신들이 충분히 꺾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무공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굉장히 빠르다!
스읏!
개 주인이 한쪽 무릎을 꿇고 죽은 늑대개를 쓰다듬었다.
눈길은 해자수에게 고정했다. 이를 부드득 갈면서 해자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았다.
네가 감히 내 개를!
낭견대 무인의 심중이 쏟아지는 눈길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스읏!
사내는 개의 몸에서 흘러내린 핏물을 손에 묻혀서 혀로 쓱 핥았다.
사내의 입 주변이 개 피로 피범벅이 되었다. 코와 입과 턱에 피가 잔뜩 묻었다.
“흐흐흐!”
사내가 괴소를 흘리면서 검을 들었다. 순간,
팡!
검에서 눈이 부실 만큼 강렬한 섬광이 쏟아졌다.
굉장한 섬광! 빛이 너무 강렬해서 한순간에 눈을 멀게 만든다. 시야뿐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을 마비시킨다.
명멸마검(明滅魔劍)이다.
빛은 환상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터진다. 순식간에 태양보다 강렬한 빛을 뿜어내기 때문에 정면으로 검을 쳐다본 자는 일시 눈이 멀어버린다.
그 순간 검초를 전개한 자는 자신이 치고 싶은 부위를 친다.
상대방은 일시 눈이 멀었다.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재미있는 것은 시각이 감각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시각이 멀어버리는 순간, 감각도 마비된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서도 아무런 기척을 감지하지 못한다. 그러니 베고 싶은 곳을 베어낼 수 있다.
명멸마검은 전신 진기를 손바닥 쪽 손목 한가운데에 있는 대릉혈(大陵穴)에 밀집시켰다가 일시에 쏟아낸다.
진기는 유리로 만든 검, 유리검(琉璃劍)에 집중된다.
유리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진다.
이 빛이 시야를 무너트리는 것인데…… 하지만 명멸마검은 시전자를 해치는 매우 위험한 검법이다.
대릉혈은 수궐음심포경(手厥陰心包經)의 일곱 번째 혈이다.
수궐음심포경은 심장에서 나와 손에 이르는 경맥이다. 오행 중 화목(火木)의 성질을 띤다.
대릉혈은 토(土)의 성질을 지닌다. 그러니 수궐음심포경이 지닌 화목의 성질까지 보태져서 화목토(火木土)의 성질을 지닌 혈 자리가 된다. 몸이 찰 경우, 수시로 만져주면 좋다.
이런 혈에 진기가 집중되고, 일시에 터져나가면 혈이 망가진다. 오행의 균형이 깨진다.
화목토가 무너지면서 수금(水金)이 극성까지 치솟는다.
결국 수궐음심포경의 근원인 심장이 차고 날카로운 경기(勁氣)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칼로 찌르는 듯한 충격을 본인 스스로 만든 셈이다.
쒜에에엑!
명멸을 일으킨 자가 해자수의 가슴을 노리고 마검을 쏟아냈다.
명멸이 일어난 순간 해자수가 움찔거렸다. 눈부신 섬광에 눈이 먼 증상이다.
지금 마검이 가슴을 치고 있지만, 해자수는 어떤 위협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까앙!
해자수의 가슴을 치던 검이 번쩍 위로 쳐들렸다. 동시에 사내의 가슴을 뚫고 검날이 삐죽 삐져나왔다. 누군가가 뒤에서 검으로 등을 찔렀다.
“크윽! 어떤……”
낭견대 무인이 급히 뒤돌아봤다. 그리고 두 눈을 부릅떴다.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떴다.
해자수!
해자수가 어느새 등 뒤로 돌아가서 그를 찔렀다.
낭견대 무인의 검을 위로 쳐올리고, 그 순간에 겨드랑이 밑을 파고들었다. 낭견대 무인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옆으로 스치고 지나서 검을 거꾸로 잡고 뒤로 찔러넣었다.
쿵!
검에 찔린 낭견 무인이 쓰러졌다.
“어!”
“음!”
그제야 모두가 깜짝 놀라서 해자수를 쳐다봤다. 놀라지 않는 사람은 귀검뿐이다.
귀검은 예의 감정 없는 눈길로 해자수를 쳐다본다. 아니, 해자수를 마주 보고 서 있는 허경을 쳐다본다.
스읏!
해자수가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이상한 검법을 쓰는 놈이다! 조심해!”
낭견대 무인들이 즉시 해자수를 포위했다.
해자수가 명멸마검을 깨트렸다. 힘들게 싸운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너무도 손쉽게 무너트렸다.
명멸마검을 환히 꿰뚫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일시에 모든 관심은 해자수에게 집중되었다.
스읏! 슷! 컹컹! 컹!
해자수 대 늑대개 세 마리와 낭견대 무인 세 명이 팽팽하게 대치한 상태다.
그때, 허경이 말했다.
“한 놈은 봤고, 어디 그럼 귀검도 봐야지? 보자.”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낭견대 무인 다섯 명이 일제히 목줄을 놓아버렸다. 순간,
컹컹! 컹컹컹!
늑대개가 귀검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낭견대는 누가 먼저 귀검을 공격할 것인지 예정해 놓았다. 공격할 방법도 짜 맞췄다.
귀검은 사납게 달려드는 개들을 차분히 지켜봤다.
컹컹! 커어어엉!
개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와락 솟구쳤다. 한데 이놈들…… 매우 지능적이다. 한 마리는 머리를 노리고 달려든다.
한 마리는 팔을 노린다. 다른 세 마리는 다리를 물어뜯는다.
늑대개들, 협공을 할 줄 안다.
스릉!
귀검이 검을 뽑았다.
한순간, 눈앞에서 하얀 광채가 번뜩였다.
명멸마검처럼 눈이 부실 정도로 밝지는 않지만, 저절로 눈이 갈 만큼 밝은 빛이다.
“물려!”
허경이 경악성을 토해내듯이 소리쳤다.
다급히 외치는 음성 속에 놀라움이 가득 들어있다.
“삐이이익!”
낭견대 무인들이 허경의 말을 듣고 즉시 휘파람을 불었다. 개들을 뒤로 빼려는 것이다.
그때, 한 줄기 귀화가 뭉실 피어올랐다.
귀검이 만들어낸 귀화는 눈부신 빗살이 되어서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
휘리리리릭! 파파파파팍!
꺼엉! 깨애앵!
칼바람 소리와 울부짖는 비명이 복잡하게 어우러졌다.
머리를 노리고 달려들던 늑대개는 단숨에 머리가 뚝 떨어져 나갔다. 일검에 두툼한 머리를 베어내 버렸다.
머리를 벤 검은 밑으로 휘돌았다.
팔을 물어오는 늑대개의 복부를 휘어감는 것처럼 보였다.
검에 뱃가죽에 찰싹 붙는다고 할까? 순간, 늑대개의 배가 쩍 벌어지면서 창자가 후두둑 쏟아졌다.
귀검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리고 팔방풍우(八方風雨)를 펼쳤다. 팔방풍우라고 하지만 그저 검을 한 바퀴 빙글 돌린 것에 불과하다.
깨앵! 깽! 깽!
다리를 노리며 달려들던 늑대개 세 마리는 다리가 잘리고, 가슴이 베이고, 목을 비켜 맞았다. 팔방풍우 한 초식에 세 마리가 한꺼번에 나가떨어졌다.
세 마리 중 두 마리가 즉사하고 한 마리는 앞발 두 개를 잃은 채 허우적거렸다.
스읏!
귀검은 다리를 잃은 개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검으로 개의 심장을 푹 찔렀다.
깨앵! 끄르르륵!
늑대개가 바르르 떨더니 힘이 축 빠졌다.
귀검이 늑대개 다섯 마리를 일시에 베어버렸다.
늑대개는 위협을 느끼면 즉시 물러나도록 훈련되었다. 아니, 이것은 훈련받기 이전에 짐승의 본성이다.
귀검은 늑대개가 위협을 느낄 틈도 주지 않고 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