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五章 한수혈전(漢水血戰) (3)
컹컹! 컹컹컹! 컹!
사나운 개들이 한수 너머를 향해 거칠게 짖어댔다.
개들은 거의 백여 마리에 이르렀다. 하나같이 곤두선 이빨을 드러내놓고 있다. 눈은 광기로 번들거린다. 곧 사람 살을 뜯어 먹어도 되는 사냥이 시작된다.
“후후!”
안도가 입가에 잔악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한수 너머에 살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진기로 감지하거나 피부로 느낀 것은 아니다. 막연히 그런 생각이 일어난다.
강을 건너서 갈대밭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 지옥이 펼쳐질 것이다.
지옥을 준비하는 곳이 또 있다.
낭견대 역시 상대방 못지않게 잔인한 지옥도를 펼쳐 보일 준비가 되어 있다.
“저놈들이냐?”
이제 도착한 하경이 물어왔다.
“귀무살이랍니다. 귀무령도 있다던데요?”
“어디서 들어온 소식이야?”
“십이비자.”
“그놈이 여기 있었어?”
“말만 전해주고는 사라졌어요. 자기는 뭐 혈마를 지켜봐야 한다나? 귀무살 놈들이 싸울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합디다. 그래봤자 비린내만 풍길 테지만.”
“숫자는?”
“일흔 명 정도라던데요.”
“그럼 숫자는 우리와 비슷하고…… 후후! 저놈들이 수련한 것은 잔악한 살공 우리는 마공. 마공 대 살공. 후후후!”
허경이 웃으면서 갈대밭을 쏘아봤다.
마공의 장점은 속성(速成)에 있다. 제대로 길만 잡으면 상당히 빨리 수련할 수 있다.
정종 무공으로 십 년 수련해야 할 것을 일 년이면 수련해낸다.
두 번째 장점은 파괴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점이다.
무공에 따라서 ‘파괴력’이라는 말은 속도가 될 수 있다. 힘이 될 수도 있고, 변화되기도 한다.
여러 가지 형태로 드러나지만, 상태를 무너트리는 힘이 매우 강력하다.
세 번째 장점은 예측 불가다.
기괴 신랄한 변초가 많아서 상대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알고 있어도 당하곤 한다.
이런 마공을 이십 년 이상 수련했다.
당연한 말인지만 바깥세상에 나가면 단숨에 확 뒤집어 버릴 줄 알았다.
그런데 첫 상대가 귀무살이다.
저들 역시 죽음 속에서 튀어나온 귀신들이다. 저들은 각기 최소 백 명 이상을 죽였다.
귀무살은 수련한 지 이십 년이 되는 해에 사망대장정이라는 죽음의 여행을 한다.
백 명이 한 개 단위가 되어서 북해까지 갔다 오는 긴 여정이다.
떠날 때는 백 명, 하지만 돌아올 때는 한 명이다.
북해까지 다녀오는 동안 같이 출발한 동료들을 죽여야 한다.
독, 계략, 암기 등등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잠잘 때 목 졸라 죽여도 되고, 등 뒤에서 칼을 찔러도 된다.
다시 말해서 귀무살은 마공을 수련한 마인을 상대로 살인 공부를 닦은 것이다.
혈천방은 마공 종문(宗門)이다.
자신들이 수련한 마공도 저들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다. 자신들이 수련한 마공 역시 마공관에 소장되어 있던 것이다.
마공 중에서도 최상승 마공이다. 어느 마공이든 일대를 풍미하지 않은 것이 없다.
허경은 자신의 낭견대를 패주(覇主)라고 부른다.
한 지역을 제패한 패주 백이십칠 명이 모여 있는 것이다.
이들은 대문파의 문주는 되지 못해도 중소 문파의 문주 정도는 충분히 될 수 있다.
중소 문파의 문주 백이십칠 명이다. 아니, 서른세 명이 죽었으니 이제는 아흔네 명이다.
귀무살 대 낭견대, 해볼 만하다.
“원래 귀무살을 상대하던 놈들은 살단인데, 훗! 어쩌다가 우리 차지가 됐는지.”
허경이 코웃음을 쳤다.
“저놈들을 치고 난 다음에 바로 튀실 겁니까?”
안도가 물었다.
“귀무살은 만만한 상대가 아냐. 일단 저놈들을 잡고 난 다음에 생각한다. 가서 배를 끌고 와. 크든 작든 상관하지 말고 배란 배는 모두 끌고 와.”
“큭큭! 그러죠.”
안도가 웃었다.
낭견대가 나무 의자를 가져와서 한수가 잘 보이는 곳에 놓았다. 허경이 앉을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허경은 당연하다는 듯 나무 의자에 앉았다.
낭견대가 마련한 자리에서는 한수와 갈대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드넓은 갈대밭을 조금 높은 위치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갈대밭은 조용하다.
분명히 귀무살이 숨어있는 것을 아는데…… 마치 개미 한 마리 들어있지 않은 것 같다.
‘한가운데를 곧바로 뚫고 지나간다.’
늑대개를 앞세우고 벼락같이 치고 들어간다. 저들은 상상하지 못한 폭풍을 만날 것이다.
‘두고 보자. 너희들이 어떻게 싸우는지.’
안도가 배 서른 척을 모아왔다.
강을 건너는 나룻배로 있고, 간신히 서너 명만 앉을 수 있는 작은 고깃배도 있다.
작은 배는 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빈 배를 끌고 왔다.
큰 배는 당연히 사공이 달려왔다. 낭견대가 두렵기는 하지만 겨우 강을 건너는 것뿐이지 않나.
싸움판에 휘말리는 것 같아서 두렵지만, 전 재산을 빼앗길 수 없다.
사공들은 벌벌 떨면서도 노를 잡고 있다.
사실, 낭견대는 상당한 공포감을 준다.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숨만 쉬어도 무섭다.
낭견대는 몸에서 굉장한 악취를 풍긴다.
이들은 개들과 함께 생활한다. 개들과 함께 자고, 먹고, 눈비가 쏟아지면 고스란히 맞는다, 두툼한 가죽옷 한 벌이 눈과 비를 막아주는 담요다.
허경은 자신과 낭견대를 가장 비천한 위치에 놓았다.
처음에는 혈마에게 죽을 몸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 세월이 흐르자 이 지옥을 벗어나서 반드시 세상을 움켜쥐겠다는 야망에 들떠서 고통을 참았다.
야지에서 개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상당히 게을러진다.
낭견대 중에는 일 년 열두 달 단 한 번도 씻지 않은 자들이 수두룩하다.
냄새인들 오죽할까.
낭견대의 몸에서는 분뇨 냄새가 난다. 짐승의 비린내도 풍긴다. 악취가 너무 지독해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하면 독분(毒粉)을 흡입한 것처럼 머리가 아프다.
그래도 사공들은 감히 냄새가 난다고 말하지 못했다. 당연하지. 누가 말하겠나.
컹컹컹! 컹컹컹컹!
개들이 한수 너머를 향해 사납게 짖었다.
허경은 개들이 짖도록 일부러 내버려 두었다. 개들의 울부짖음은 때로는 공포감을 자극한다.
귀무살은 지금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것이다.
“으으!”
개들이 짖어대자 사공들이 바싹 얼어붙었다. 늑대개가 짖어대는 소리는 일반 개들이 짖는 소리가 확연히 구분된다. 호랑이의 포효만큼이나 사납다.
사공 중 몇몇은 바지에 오줌을 지리기도 했다.
“타라!”
허경이 승선 명령을 내렸다.
낭견대가 늑대개를 이끌고 배에 올랐다.
컹! 커컹! 껑껑!
늑대개들은 사공을 물려고 와락 달려들었다. 하지만 낭견대가 목줄을 낚아채자 당장 양순해졌다.
“으으! 으……!”
사공들은 두려워서 덜덜 떨었다.
“하하하! 하하!”
낭견대가 두려워하는 사공들을 보면서 낄낄 웃었다.
스읏! 슥! 스으으윽!
배가 강심을 향해 나아갔다.
갈대숲에서는 어떠한 변화도 없다. 배 서른 척이 일제히 도강하고 있는데, 여전히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이제 곧 지옥을 만날 것……’
허경의 눈가에 살기가 맺혔다. 그때!
‘응?’
허경은 미간을 확 찡그렸다.
갈대숲에서 비린내가 풍겼다. 짐승의 비린내와는 종류가 다른…… 그렇다! 기름 냄새다. 바람을 타고 미미한 냄새가 전해져 오는데, 분명히 기름 냄새다.
‘기름!’
제일 첫 번째 드는 생각은 귀무살이 갈대숲을 불바다로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리 없다. 귀무살이 무엇 때문에 갈대밭을 태우겠나. 그러자 퍼뜩 한 생각이 치밀었다.
“화공! 화공이다. 불화살이야! 대비해!”
허경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강 위에 있는 사람에게 화공을 펼칠 방법은 불화살밖에 없다. 특히, 귀무살 중에는 활을 매우 잘 쏘는 자가 있다.
부대주 궁충(弓漴)!
활을 쏘는데 소낙비 쏟아지는 소리가 난다고 해서 활 궁, 소나기 충으로 불린다.
귀무살 모두가 궁충처럼 뛰어나지는 못하겠지만, 궁충이 지휘하면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다.
차앙! 창!
낭견대 무인들이 일제히 병기를 뽑았다.
낭견대는 어떤 공격에도 대응할 수 있다. 화공(火攻), 수전(水戰) 등 모든 싸움을 대비했다.
탁탁탁! 타타타타타탁! 쒜에에에에엑!
갈대밭에서 줄이 퉁겨졌다. 그리고 하늘을 찢어발기는 파공음이 터졌다.
하늘에 불화살이 잿가루처럼 뿌옇게 번졌다.
“저 새끼들 정말 치사하게! 이따위 짓거리에 당할 놈이 누가 있다고 지랄이야!”
낭견대를 코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재빨리 입고 있던 겉옷을 벗었다. 두툼한 가죽옷이라서 이불도 되고, 담요도 되어 준다. 겉은 털이라서 따뜻하고, 안은 방수 처리가 되어서 물이 스며들지 않는다.
쒜에에에에엑! 쒜에엑!
불화살이 요란한 소리를 울리면서 뱃전으로 내리꽂혔다.
그 순간, 낭견대는 들고 있던 가죽옷을 세차게 휘둘렀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배나 사람을 노리고 떨어지는 화살만 쳐낸다.
퍽! 퍼어억!
불화살은 화살촉에 기름 솜이 감싸여 있다. 화살만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솜에서 떨어진 기름이 불덩이를 품고 떨어진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진다.
퍼어억! 퍽!
낭견대는 침착하게 불화살을 처리했다. 그때,
퍼억!
“크윽!”
낭견대 무인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어떤 한심한 놈이 이런 화살에……’
낭견대 무인은 비명이 터진 곳을 쳐다봤다.
불화살은 사람을 겨냥하고 쏜 것이 아니다. 배를 노리고 쏘았다. 한마디로 말해서 유시(流矢)다. 무공께나 수련했다는 놈이 이런 화살에 맞아서 죽는다면 어지간히 바보다. 한데,
“응?”
낭견대는 눈을 부릅떴다.
비명을 토해낸 낭견대 무인이 막 강물로 떨어지고 있었다. 한데 화살 한 대가 몸통은 관통했다. 대나무 화살이 정확하게 가슴을 치고 들어와서 등 뒤에까지 삐져나왔다.
“궁충이다! 조심해!”
안도가 소리를 빽 내질렀다.
“크아아악!”
그 사이, 또 한 명이 화살을 맞고 강물로 풍덩 떨어졌다.
불화살을 쏘아서 시선을 하늘로 빼앗은 후, 정작 살법은 수평에서 터져 나온다.
그런데 묘한 것이…… 화살이 보이지 않는다.
불화살은 보이는데, 정작 가슴을 꿰뚫는 화살은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겠다.
‘궁충이라면 소낙비 소리가 울려야 하는데……’
“화살이 어디서 날아오는 거죠?”
안도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허경도 대답하지 못했다. 불화살에 신경을 쓰는 바람에 암수를 보지 못했다. 화살이 자신을 노리고 날아왔다면 당장 감각이 곤두섰을 것이다. 어디서 날아오는지 즉각 알아챘다. 하지만 화살은 수하들만 노렸다.
타 타 타 탁! 쒜에에에에엑!
하늘에서 또다시 불화살이 터졌다.
허경은 하늘은 주시하지 않고 갈대밭만 노려봤다. 예상이 맞는다면 궁충은 이번에도 화살을 쏠 것이다. 배를 태우려는 화살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화살이다.
쒜에엑!
아니나 다를까, 화살이 날아왔다.
허경은 갈대밭에서 쏘아져 나오는 화살을 똑똑히 봤다.
땅에 바짝 붙어서 날아온다. 갈대 뿌리를 훑어내면서, 그리고 수면을 스치듯이 날아온다.
“방천(昉喘)! 위험해!”
허경은 즉시 방천을 향해 소리쳤다. 화살이 제삼 낭견대 무인 방천을 향해서 날아간다.
방천이 허경의 경고를 듣고 즉시 임전 태세를 갖췄다.
그때, 수면에 바싹 붙어서 날던 화살이 비스듬히 호선을 그리면서 위로 솟구쳤다.
화살이 아래에서 위로 흐른다. 그리고 미처 두 번째 경고를 토해내기도 전에 방천의 가슴을 꿰뚫었다.
퍼억!
“크아악!”
방천이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방천은 단단히 싸움 준비했다. 그런데도 화살을 보지 못하고 절명했다.
쒜에에에에엑!
화살이 또 날아왔다. 갈대밭에서 계속 쏘아진다.
낭견대는 수면을 쳐다볼 겨를이 없었다. 불화살이 벌떼처럼 날아들어서 정신없었다.
타 탁! 탁!
낭견대가 죽을힘을 다해서 화살을 막아내고 있는데도 역부족이다. 불화살이 배에 꽂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길이 배에 당겨졌다.
물론 즉시 조처를 취했지만, 불붙는 횟수가 늘어간다.
“으음! 물러나라!”
허경은 후퇴 명령을 내렸다.
지금 같아서는 강변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하를 꽤 많이 잃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