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321화 (321/500)

第七十五章 한수혈전(漢水血戰) (1)

저벅! 저벅!

한 사람이 걸어온다.

해자수는 갈대를 해치면서 태연히 걸어오는 검객을 봤다.

대단히 강한 무인이다. 사람이 걸어오는지, 검이 걸어오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응? 저놈이 왜?’

해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상대는 귀검이다. 천하에서 가장 검이 빠르다는 검객이다. 살단주 오택골을 죽인 자다. 하지만 아무리 귀검이라고 해도 이제는 상대할 수가 있다.

‘내가 지금 누굴 무서워해.’

스읏!

해자수는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산책을 하듯 어슬렁거리며 귀검을 향해 걸어갔다.

저벅! 저벅! 스읏! 슷!

두 사람은 갈대밭 한가운데서 마주쳤다.

“아이고! 이거 귀무령 아니십니까? 그런데 바쁘신 귀무령께서 여긴 어쩐 일로?”

해자수가 능청스럽게 말했다.

“혈마를 보러 왔다.”

그렇지! 당연히 이런 말이 나올 줄 알았지.

“지금 그게…… 혈마님은 마음대로 이렇게 보고 싶다고 해서 보실 분이 아니라서. 미리 약속을 잡으셔야지. 오늘은 안 되고, 다시 오셔야지 뭐. 어째? 언제 오신다고 말씀드릴까?”

“비켜라.”

“에이! 귀검이 뭐 칼을 정말 잘 쓴다. 천하제일이다. 이런 소리를 듣는 건 아는데, 뭐 나도 만만치 않은 칼이라서.”

해자수자 말하면서 귀검을 흘낏 쳐다봤다.

귀검은 표정 변화가 없다. 여전히 딱딱한 얼굴도 쳐다보고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뭔 놈의 자식이 생각을 읽을 수가 없어.’

해자수가 말했다.

“나도 칼은 좀 쓴다 이 말이지 뭘. 그러지 마시고 약속을 하셔. 약속을. 언제 오신다고 말씀드릴까? 내가 뭐 그때는 반드시 만나게 해드릴 테니까.”

“혈마가 혼수상태에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봐야겠다.”

“에이! 이러지 마시라니까.”

스릉!

귀검이 검을 뽑았다.

말이 필요 없다는 투다. 계속 앞에서 주절거리면 베고 지나가겠다는 의사표시다.

“아 참 이거…… 무인들은 이래서 싫어. 왜 마음에만 안 들면, 그냥 툭 하면 검을 뽑을까? 그, 그거. 그 검 그거 오히려 당신을 찌를 수도 있어.”

“무공이 늘었다는 소리 들었다.”

“늘었지. 많이 늘었지.”

“어디 한번 볼까?”

스읏!

귀검이 검을 들어 올렸다.

“이거 싸우면 당신 손해야. 내가 아, 이거 참, 말도 못 하겠고. 아! 내가 참 강해졌는데.”

해자수는 제이 낭견대를 물살 시킨 사람이 자신이라고 말할 뻔했다.

백열마공도 거꾸러트린 사람이다. 백열마공을 알까? 귀검 당신 알아? 백열마공?

해자수는 제이 낭견대를 몰살시킬 당시만 해도 백열마공이 무엇인지 몰랐다.

나중에 등여산에게 듣고 알았다.

백열마공은 백열마가 생존해 있을 때는 무적으로 군림했던 마공이다.

백열마 스스로가 자신의 열기에 타죽지 않았다면 아마 천하 최강 무공으로 등극했을지도 모를 마공이다.

그런 마공을 꺾은 사람이 자신이다.

“잠깐! 당신 뭐야…… 혈마하고 약속하지 않았나? 원정만 안 치면 다시 싸우기로. 그때 와, 그때. 좋게 말할 때 가고. 나도 이제 슬슬 짜증이 나려고 하니까.”

스읏!

귀검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검을 흔들었다.

검을 뽑아라. 아니면 바로 친다.

해자수는 격하게 다가오는 검기를 읽었다.

‘이놈 정말로 칠 생각이잖아?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줄은 알아다만, 그래봤자 네 손해지.’

“아, 그럼 나도 어쩔 수 없이 또 한 수 손을 써줘야겠네.”

스읏!

해자수는 단검을 뽑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반개했다.

타앙!

두 눈이 미간에 모였다. 눈이 고정된다. 그리고 순식간에 와선이 일어났다.

화르르! 온몸이 와선에 휩쓸려 들어갔다. 걷잡을 수 없이 끌어당기는 급류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직 철벽은 세워지지 않았다. 귀검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

해자수는 자신의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혈마처럼 무자비하게 상대방을 난자하지 않는다. 단 일격에 급소만 쳐낸다. 아주 짧고 경쾌한 검이다.

순간적인 검이기도 하다. 하지만 철벽을 가를 만큼 철벽을 양분할 만큼 가공할 힘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어떤 병기든, 어떤 무공이든 백열마공을 쳐냈듯이 베어낼 수 있다.

스읏!

귀검이 움직였다.

순간,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갈댓잎이 바람에 살살 간질이는 듯한 소리? 거센 파공음은 아니다. 허공을 찢어발기는 소리가 아니라 갈대 위를 부드럽게 스치는 듯한 소리다.

타앙! 탕!

철벽이 세워졌다.

쒜엑!

해자수는 거침없이 철벽을 갈랐다.

철벽이 세워졌으니 기다릴 필요가 없다.

철벽은 위험, 이것만 양분하면 귀검을 꺾는 것이다. 한데,

까앙!

검이 미쳐 철벽에 닿기도 전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욱!”

해자수는 엉겁결에 비명을 토해냈다.

손아귀가 찢어질 듯이 아팠다. 단검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해자수가 깜짝 놀랄 때, 어느새 철벽이 불쑥 다가와 몸뚱이를 쳤다.

꽝!

해자수는 거센 충격을 받고 나가떨어졌다.

“어!”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타격은 크지 않다. 귀검이 검으로 치지 않고 몸으로 쳤다.

달려오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몸을 들이받았다. 어깨로 어깨를 부딪쳤다.

‘이, 이럴 수가!’

해자수가 너무 놀라서 눈을 끔뻑거렸다.

이것이 귀검의 칼이다. 절대 쾌(快)!

“혈마를 죽일 생각이 없다. 안내해라.”

스릉!

귀검이 검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귀검은 이미 혈마가 어디 있는지 알고 왔다. 절터에 있으며, 지하실에 있다.

“이거 참, 내가 이렇게 당하네. 이럴 리가 없는데……”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생기가 무너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순간, 해자수는 다시 한번 싸워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귀검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생기가 무너진다는 것은…… 이건 도저히 믿을 수 없다.

생기를 펼치는 도중에 집중이 흩어진 것 같다. 맞다. 틀림없이 그랬을 것이다.

생기가 무너지고 진기를 쓴 게 아닐까? 아닌데, 틀림없이 철벽을 치는 중이었는데.

해자수는 상당히 혼란스러웠다.

순간적으로 오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국은 생기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아!”

해자수는 한숨을 토해냈다.

이미 홀리와 등여산은 자신이 당하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이 귀검의 생기를 감지할 때, 그녀들도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격렬하게 부딪쳤고, 한 사람이 나가떨어지는 것도 눈으로 보듯 느꼈을 것이다.

홀리와 등여산은 그의 기운을 읽어낸다. 그러니 자신이 무너졌다는 것도 안다.

“정히 뭐 그렇다면 따라오셔.”

‘정 안되면 셋이서 들이치면…… 그때는 되겠지. 셋이서 설마 이놈 하나를 못 이길까.’

해자수는 귀검을 데리고 절터로 걸어갔다.

저벅! 저벅!

해자수와 귀검이 지하실로 걸어 내려왔다.

역시 홀리와 등여산은 귀검의 등장을 알고 있었다. 손에 검을 잡고 귀검이 내려서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귀검도 혈마 곁에 두 여인이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듯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홀리와 등여산을 힐끗 쳐다보기만 할 뿐, 전혀 경계하지 않았다.

귀검은 죽은 듯이 누워있는 호발귀를 봤다. 그리고 비로소 눈가를 찡그렸다.

귀검이 보이는 첫 번째 반응이다.

귀검은 호발귀에게 걸어갔다.

스읏!

홀리가 검을 쳐들어 귀검을 겨눴다.

귀검은 홀리의 검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홀리의 검에는 싸우려는 투지가 깃들어 있지 않았다.

허튼수작하면 공격하겠다는 협박일 뿐이다. 그런데도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혈마를 죽이려고 온 것이 아니니. 혈마와 나는 비무 약속이 되어 있다. 혈마가 나를 찾아와서 검을 뽑는 그 날까지 내가 먼저 혈마를 치지는 않는다.”

흘리는 귀검의 눈을 봤다. 귀검은 진심이다. 귀검은 혈천방 무인, 마인이지만 그의 말은 믿어도 좋다.

스윽!

홀리가 검을 늘어뜨리고 물러섰다.

홀리와 등여산은 귀검이 왜 나타났는지 모른다.

혈마에게 볼일이 있는 것 같은데. 하지만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잠자코 지켜봤다.

귀검은 혈마에게 다가갔다. 혈마 머리맡에 쭈그리고 앉아서 꼭 감고 있는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동자가 시뻘겋다.

귀검은 호발귀의 목동맥에 손을 대고 맥을 살폈다. 그리고 차분하게 말했다.

“맥도 없다고 들었는데 맥은 있군.”

그 말에 대답하는 사람은 없다. 귀검은 혈마에 대한 부분은 거의 알고 왔다.

“파신금령술을 깰 방법은 없나?”

귀검이 등여산을 보며 물었다.

“없어.”

등여산이 짧게 말했다.

귀검은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한참 동안 호발귀를 쳐다봤다.

“보류.”

귀검이 중얼거렸다.

무엇을 보류한다는 것일까? 호발귀를 죽이려고 왔는데, 이번에는 참겠다는 뜻일까?

“휴우!”

귀검은 마음이 착잡한 듯 한숨을 토해냈다.

“당분간 혈마 옆에 있겠다.”

등여산과 홀리는 서로를 쳐다봤다.

귀검이 무슨 뜻에서 이런 말을 하는지 진의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혈마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겠다. 혈마 상태는 확인해야 하니까.”

“그래서 뭐 하려고?”

등여산이 차갑게 말했다.

그녀는 아직도 혈천방에서 귀검이 자신을 가로막은 일을 잊지 않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검을 쳐내고 싶다.

하지만 해자수가 무너지는 것을 봤다. 그때 얼마나 놀랐는지. 해자수가 무너졌으면 자신들도 무너진다.

해자수의 생기와 자신들의 생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

일단 귀검의 의도를 알아보고, 싸울 생각이 아니라면 굳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귀검이 말했다.

“혈마 상태가…… 미치광이 혈마라면 내가 벤다. 너희가 살인하지 못하도록 산으로 끌고 다녔던 그런 식의 혈마라면 가차 없이 죽일 생각이다.”

“당신, 혈마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서 하는 말인데 혈마가 당신 같은 사람에게 죽을 것 같아? 오히려 혈마 손에 죽지나 마. 혈마가 괜히 혈마가 아니잖아.”

홀리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귀검은 홀리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오직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했다.

“후후! 너희는 벌써 혈마후의 본분을 잊었나? 난 혈의검 소후, 초대 혈천방주님의 유지를 받든다. 세상을 피로 물들이는 혈마라면 벤다. 이것이 혈의검님의 유지이자, 혈마의 유일한 명령이다. 혈마후의 본분은 무엇인가?”

“말했잖아. 혈마가 괜히 혈마냐고. 혈마는 죽이지 못해. 죽이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죽어.”

“죽일 생각은 했나?”

“……”

등여산과 홀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할 말이 없다. 솔직히 혈마를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호발귀를 어떻게 죽이나. 그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면 되지 않나. 그때까지 기다려줄 수는 있지 않나.

“귀무살 일흔두 명이 한수에 매복해 있다. 곧 낭견대가 나타날 텐데. 어떻게? 피할 건가, 볼 건가?”

등여산과 홀리는 어안이 벙벙해서 또 서로를 쳐다봤다.

귀검이 방금 피하겠냐, 보겠냐고 물었나? 싸우겠냐가 아니라 보겠냐라고 물었나?

귀무살이 낭견대를 맞이하겠다는 뜻이지 않나.

“볼게…… 요.”

등여산이 말했다.

귀검의 뜻을 도대체 모르겠다. 하지만 혈의검 소후의 유지를 받든다고 말했다. 혈의검 소후가 누군가. 혈마의 제일 충복이다. 혈마에게 목숨을 건 자다.

혈의검의 유지를 받든다면 귀검도 혈마에게 목숨을 건다.

등여산은 귀검의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래서 혈천방 인물임에도 말을 높여 주었다.

귀검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하실을 걸어서 올라갔다.

“이게 도대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니죠?”

해자수가 말했다.

“어쨌든 귀검과 귀무살이 도와준다면 우리는 천군만마를 얻은 거예요. 그런데 아까 어떻게 된 거예요? 귀검에게 패한 것 같았는데? 생기를 쓴 건 맞죠?”

등여산이 해자수를 보면서 물었다.

“귀검이 내 검보다 빨랐어요. 내 생기가 철벽을 쳐줬는데, 그 철벽을 베러 가는 순간에 이미 나를 쳐버렸어요.”

“그럴 수가!”

등여산과 홀리는 입을 쩍 벌렸다.

무공이 생기를 이길 수도 있다. 새로운 사실이다.

완벽한 무공은 미성숙한 생기를 짓밟는다. 자신들이 펼치는 생기는 절대가 아니었다.

“생기격타!”

등여산이 중얼거렸다.

호발귀의 생기와 자신들의 생기가 가장 다른 점은 생기격타에 있다.

호발귀를 생기를 격타하고 들어간다. 자신들은 그런 것을 하지 못한다.

그러니 무적일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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