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四章 번개(翻個) (5)
홀리가 사마를 죽였고, 그녀들이 사마 대신 호발귀를 유인해서 살생하지 못하게 만든다. 세상 속으로 뛰어들지 못하게끔 산으로만 달려간다.
그즈음이다. 귀검에서 귀무살이 찾아온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냐?”
“사실입니다.”
“으음!”
귀검은 침음했다.
호발귀가 드디어 혈마가 되었다. 혈천방에서 그토록 원하던 혈마가 탄생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혈천방의 숙원이 드디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보고를 하는 귀무살의 표정이 어두웠다.
귀검이 그런 표정을 놓칠 리 없다.
“좋지 않구나.”
“네.”
“어느 정도나?”
“아무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곁에 다가서는 자는 무조건 다 죽입니다. 검권 안에 들어선 자는 섭혼술인지 최면술인지 모를 사공을 펼쳐서 본인 스스로 죽음을 맞게 합니다.”
“미치광이 혈마가 됐구나.”
“네.”
“후후! 재밌군.”
귀검은 웃었다.
혈천방은 혈마를 위해서 존재한다. 하지만 혈마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를 위해 충성할 것인가. 충성하고 싶어도 충성할 방도가 없다.
또한 혈천방은 이백 년을 지내오는 동안 성질이 변했다.
무조건 혈마라고 하면 허리를 숙이지 않는다. 혈천방의 이해타산에 맞아떨어져야만 손을 잡는 정도다.
어쩌면 혈마를 휘하로 거둘 생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치광이 혈마라면…… 이 모든 계획이 무너졌다. 혈천방은 무조건 혈마를 버린다.
“방주님은?”
“움직이실 생각이 없으신 듯합니다.”
“그렇겠지.”
귀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천살단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혈마와 대신 싸워줄 사람이 있으니 일부러 나설 리가 없다. 혈마와 싸워줄 사람이 없어도 혈천방은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은 무조건 뒷전에 물러나서 구경만 할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계속 지켜볼 수 있나?”
“네. 다른 소식을 접하는 대로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가 오지 못하더라고 소식은 닿도록 하겠습니다.”
“무리는 하지 마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부탁 하나 하자.”
“네.”
“등여산과 홀리, 해자수가 호발귀를 유인하고 있다고?”
“네.”
“그들 위치를 파악해놔. 중원에 들어가면 바로 찾을 수 있게. 항상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파악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대략적인 위치라도 알아야겠지.”
“중원에 들어오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고민 좀 해봐야겠다. 중원에 들어가면 연락해주마.”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슷!
귀한 정보를 가져온 귀무살이 사라졌다.
혈천방주는 귀검을 죽도로 보냄과 동시에 사천, 운남, 광동에 있던 귀무살을 대거 불러들였다.
그들의 숫자가 이백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그들 중 태반은 방주가 아니라 귀검에게 충성한다.
방금 소식을 가져온 자도 ‘귀무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귀무령뿐’이라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혈마에 대한 소식을 취합하여 달려온 것이다.
귀검이 오라고 해서 온 것이 아니다. 본인 스스로 자발적인 충성심으로 달려왔다.
죽도에서 떠나는 자란 일흔두 명이지만 중원에 도착하면 그 수는 훨씬 불어날 것이다.
귀무살은 단순한 무인 집단이 아니다. 강력한 군대다
귀무살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귀무령뿐이다. 혈천방주가 임명하는 귀무령이 아니라 귀무살이 인정하는 귀무령이어야 한다.
현재, 귀무령은 귀검이다.
이 사실은 귀검은 죽은 후에나 변경될 수 있다. 귀검이 죽기 전에는 혈천방주가 직접 귀무령 직무까지 수행한다고 해도 복종하지 않는다.
귀검은 일어섰다.
오랜만에 바닷바람이나 쐴 생각이다.
끼륵! 끼륵! 끼륵!
갈매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올랐다.
바닷가를 거닐면서 갈매기 소리를 듣다 보면 이 세상에는 오직 갈매기 울음소리만 존재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일어난다.
귀검은 검을 품에 끼고 망망대해를 바라봤다.
쏴아아악! 철썩!
거친 파도가 몰아치더니 바위를 후려쳤다.
죽도의 파도는 거세다. 웬만한 배는 접안을 포기할 정도로 물결이 사납다.
죽도에서 이 년을 머물 생각이었다. 한데 겨우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아서 혈마 소식이 들어왔다.
‘벌써!’
예상은 했지만, 혈마의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
벌써 혈마가 되었다니. 이렇게까지 빨리 혈마가 탄생할 줄을 미처 몰랐다.
그런데 생각했던 혈마가 아니다.
정신을 놓지 않은 혈마, 하다못해 혈마후에게 조정받는 혈마라도 원했는데……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말살시키고 있다니.
호발귀는 최악의 혈마가 되었다.
휘이이잉!
바닷바람이 밀려와 귀검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귀검이 바다를 보면서 말했다.
“창파(槍把), 궁충(弓漴), 월도, 무지!”
“넷!”
귀검의 등 뒤에서 네 명의 대답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을 준비시켜라. 중원으로 돌아간다.”
“넷!”
네 명이 일제히 대답했다.
귀검은 혈천방주에게 약속한 대로 월도와 무지를 부대주로 키워냈다. 자신의 귀무살을 손대지 말라는 뜻으로 그 두 명을 부대주 운운하면서 말했던 것이 아니다. 진실로 그 두 명은 부대주가 될 만한 제목이었다.
창파와 궁충은 늘 귀검 곁에 있던 자들이다. 이어서 월도와 무지까지 부대주 네 명을 만들었다.
이들이 각기 열여덟 명씩 귀무살 일흔두 명을 이끈다.
본단에서 함께 온 귀무살과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귀무살 중 연락이 닿는 자들을 끌어모았다.
귀무살과 부대주가 일흔두 명의 귀무살을 이끌고 중원으로 돌아간다.
귀검이 말했다.
“아이들을 준비시키면서…… 내 의도를 분명히 말해줘라. 나와 뜻이 다르다면 기꺼이 놓아줘라. 어떠한 강압이나 회유도 하지 마라. 그건 나에 대한 모욕이야.”
“넷!”
부대주가 힘차게 대답했다.
방주의 생각은 다르겠지만, 귀검의 생각은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혈천방은 혈마를 보조하기 위해서 탄생했다!
이 문제 때문에 혈천방주와 의견이 갈렸다. 서로 가장 뜻이 맞지 않는 부분이다.
혈마가 탄생했으니 귀무살은 혈마 곁으로 간다.
혈마에게 충성할 수 있으면 충성한다. 이백 년 전 혈마처럼 혈마후에게 조정받는 혈마라면, 혈마후에게 충성한다. 그렇게 하라고 귀무살을 만들었다.
하지만 방금 보고 받은 대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는 혈마라면 귀무살이 제거한다.
주인을 죽였다고 억울해할 필요는 없다.
혈마를 죽이는 것 또한 귀무살에게 안겨진 숙명이다. 그리고 귀무살 또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혈마가 사라지는 순간이 귀무살을 해체하는 순간이다.
- 혈마가 숨을 쉬면 소휘도 숨을 쉰다. 혈마가 죽자, 소휘도 죽었다. 혈마가 자진하자, 소휘도 혈마 곁에서 자진했다. 혈천방 방주이자 그야말로 혈마의 충복이다.
혈마 옆에서 평생 충복으로 지냈던 혈의검 소휘의 이야기다.
혈의검 소휘는 당시 천살단 단주를 꺾었다. 하지만 혈마가 단주의 죽음을 원치 않았기에 살려서 돌려보냈다.
이야기가 이상하지 않나?
분명히 혈마가 원치 않았다고 한다.
혈마는 혈마후에게 조정당했는데, 무슨 의식이 있어서 원하는 바를 말했을까?
이심전심(以心傳心).
혈의검 소휘는 혈마의 마음을 읽었다.
자신도 혈마에게 간다.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어 버린 혈마이지만 만나본다.
혈의검처럼 이심전심할 수 있으면 그를 위해서 충성할 것이고, 아무런 교감도 없는 혈마라면 죽인다.
사실, 혈의검의 가장 큰 임무는 혈마를 죽이는 것이었다.
혈마가 혈의검에게 준 사혼진령음이 바로 혈마를 죽이는 주문이다.
귀검은 사혼진령음을 전수받지 못했다. 그것은 방주가 차지하는 권한이다.
‘가보지. 만나보지.’
귀검은 거칠게 몰아치는 파도를 묵묵히 지켜봤다.
죽도에서 육지까지…… 별로 멀지 않은 뱃길을 건너오는 사이, 상황이 급박하게 변했다.
“파신금령술?”
“네. 흑포부시단도 복용했다고 합니다.”
“그 후의 소식은?”
“아직.”
“아직?”
“네.”
귀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포부시단은 약효가 매우 빠르게 나타난다. 흑포부시단을 배 속에 넣었다면 혈마가 진작 죽었어야 한다. 지금쯤 혈마가 죽었다는 소문이 중원 천하게 떠돌아야 한다.
“혈마는?”
“해자수가 빼내 갔다고 하던데, 어디에 있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자수에게 그럴 만한 능력이 없는데. 후후! 재미있는 일이 계속 벌어지는군. 이번 중원행, 아주 재미있겠어. 계속 혈마를 쫓아라. 살면 사는 대로, 죽으면 죽은 대로.”
“네!”
이번에 보고를 한 귀무살은 광동(廣東) 지방에서 활동하고 있다.
죽도에 소식을 가지고 온 귀무살이 아니다. 본인이 직접 오지 못하고 연락을 취한 것 같다.
“가자!”
귀검은 죽도에서 이끌고 온 귀무살을 데리고 빠르게 이동했다.
저벅! 저벅! 저벅!
귀검은 갈대를 헤치면서 걸었다.
귀무살은 혈마가 숨어 있는 곳을 찾아냈다. 아니, 천살단이 찾아냈다.
그 소식이 혈천방에 전해졌고, 혈천방 귀무살이 귀검에게 연락을 취해왔다.
모든 소식의 출처는 천살단이다.
혈천방주가 듣는 소식들도 모두 천살단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혈천방에는 천살단 간자가 있다. 그렇다면 천살단에도 혈천방 간자가 없겠는가.
한수 건너에 폐허가 된 절터.
혈마는 너무 쉽게 찾았다. 아니, 쉽지 않았다. 한동안 혈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기 위해서 천살단 비보전과 세작전 무인들이 주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등여산과 홀리가 한수를 건너갔다는 정보는 들어왔다.
하지만 한수 건너는 허허벌판이다. 드넓은 평야가 십 리에 걸쳐서 펼쳐져 있다.
곱사등이 같은 낙타봉이 있지만, 산 전체가 암산(巖山)이라서 사람이 살지 못한다.
혈마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단서가 너무 쉽게 나왔다. 해자수가 아주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는 약방에 들러서 약초를 사 갔다. 쌀, 닭, 소고기 등등 먹을거리도 눈에 띌 정도로 많이 사 갔다. 옷도 샀다. 사내가 여인의 옷을 샀기 때문에 인상에 깊게 남았다.
해자수는 눈에 띄는 행동을 일부러 한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유도된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 발각되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먹을 것과 옷가지를 사 갈 만큼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갔을 수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역시 약이다.
호발귀가 당한 상처는 매우 중해서, 붙이는 약만으로는 쉽게 치료되지 않는다.
아마도 탕약을 복용시켰을 것이다.
시골에서 자상(刺傷)에 필요한 약을 듬뿍 사고, 탕약까지 사들인다면 ‘나 여기 있소’ 하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기왕 드러난 바에는 잘 먹고 잘 입자는 심산이다.
등여산은 발각되는 것을 각오했다.
그렇다고 싸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가 머무는 절터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당장 포위 공격을 감행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과거를 조사해보면 당장 암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륵교 교주가 맞아 죽었을 때, 암로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실인지 확인되지도 않은 소문이 떠돌 뿐이다. 실제로 암로를 찾아본 사람도 있지만 모두 헛수고에 그쳤다.
하지만 귀검은 확신한다.
해자수가 이토록 대담하게 모습을 드러냈다면, 이미 암로를 찾은 것이다.
누군가가 공격해 오면 당장 암로를 통해서 빠져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빠져나간 곳은 적어도 지금 귀검이 눈에 보고 있는 평야 안쪽은 아닐 것 같다.
저벅! 저벅! 저벅!
귀검은 한수와 낙타봉 사이에 있다는 절터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