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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18화 (318/500)

第七十四章 번개(翻個) (3)

음문촌은 끈 떨어진 연처럼 뿌리 없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귀색무, 구혼음소, 귀색혼령대법…… 모두 음문촌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들이 되었다.

혈마후 토초가 죽고 홀리가 떠났다.

사내들은 혈마에 대해서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다. 혈마후가 되지 못한다.

음문촌은 존재하지만, 혈마와는 전혀 상관이 없게 되었다.

혈천방에서 혈마를 만들라고 넋 빠진 인간을 제공해줘도 더는 만들 방도가 없다.

귀색혼령대법을 시전할 수가 없다.

“음문촌으로 돌아가죠. 괜히 눈칫밥 먹느니.”

둘째가 외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저도 형님 말에 동감입니다. 여기서 혈천방 눈치나 보고 앉아있어 봤자 할 것도 없고.”

사자가 코를 팽 풀면서 말했다.

“아니, 그건 아니지. 그래도 잔칫상 앞에 앉아있어야 고기도 나오지, 밥도 나오지. 지금 산속에 틀어박히면 뭘 하겠다는 거요? 뭐 뾰족한 수도 없잖수.”

삼자가 말했다.

“그럼 넌 거지가 되어도 좋다는 거냐?”

이자가 눈을 흘기며 쏘아붙였다.

“어유, 이미 빌어먹는 거지 신세인데 뭘. 우리 신세가 거지와 다를 게 뭐가 있소.”

“너 주둥아리 많이 살았다?”

“주둥아리는 내가 형님보다 두껍지 뭐.”

“조용히 하지 못해! 아버님 계시는데.”

일자가 동생들을 나무랐다.

그러자 묵묵히 말을 듣고 있던 음문촌장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니야. 마음껏 말들 해. 답답한데 말도 못 하면 어쩌라고. 말이라도 시원하게 해야지.”

“아버님!”

“괜찮아. 말은 할 수 있어야지. 어서들 말해.”

촌장이 말을 하라고 하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토초와 홀리, 이 두 여자는 음문촌에 절대적인 존재였다. 두 여자가 없으니 혈마에 대해서 어떠한 행동도 취할 수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혈통을 따지지 말고 여자란 여자에게는 모두 구혼음소를 외우게 했을 텐데.

“홀리를 다시 찾아와야 하는 거 아닙니까?”

둘째가 말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 생각이에요. 말씀만 주시면 횅하니 다녀오겠습니다.”

둘째 형의 말이라면 쌍지팡이 짚고 나서는 삼자도 동의했다.

“그러시지요. 저도 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첫째까지 같은 뜻을 피력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지금 음문촌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해줄 사람은 홀리뿐이다.

홀리가 있어야만 혈마도 만들어 낼 수 있다. 계속 혈천방에 머물면서 일정한 권한을 양도받을 수 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주축 세력으로 부상할 것이다.

촌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우리 곁에서 떠난 아이야. 온다고 해도 혈마를 만들지는 않아. 그 아이를 아직도 몰라?”

“하긴 그놈은 계집애, 성깔머리가 보통 표독스러워야지.”

삼자가 말했다.

모두 짐작하고 있다. 음문촌에서 홀리를 데려오면 결국은 홀리를 죽이게 될 것이다.

홀리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은 며칠 동안 두들겨 맞아도 고개를 빳빳이 곤두세우고 노려봤다. ‘너 나중에 나한테 죽어’하는 눈빛을 보내면서.

“모두 짐 꾸려라.”

촌장이 결단을 내렸다.

이자가 말하는 대로 결단을 내렸지만, 정작 말을 꺼낸 이자조차도 많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음문촌으로 돌아가면 다시 척박한 생활을 해야 한다.

이제는 혈마를 기다리는 일도 할 수 없다. 구혼음소가 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혈마후를 기다리지도 못한다. 겨우 귀색무와 귀색혼령대법으로 가짜 혈마나 만들 뿐이다.

“뭣들 해! 빨리 가서 짐 꾸리지 않고.”

첫째가 동생들을 보며 다그쳤다.

땅따당 땅땅! 땅땅! 땅따다다당! 땅!

혈천방주에 침소에서는 늘 악기 탄주소리가 울린다.

오늘도 어김없이 악기가 탄주되고 있다. 고금(古琴) 소리아 매우 청아하게 울린다.

‘이 사람도 참……’

음문촌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혈천방주 하면 주흥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술 좋아하고, 여색 밝히고.

술보다는 여색을 더 밝히는 것 같다. 주변에 좀 예쁘다 싶은 여인이 있으면 반드시 찝쩍거린다.

방주를 볼 때마다 곁에 여자가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언젠가 봤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저절로 ‘저 여자도……’라는 생각이 든다.

“음문촌장님께서 드셨습니다.”

밖에 시립해 있던 무인이 보고했다.

“어! 그래! 들어오시라고 해!”

혈천방주가 취한 음성으로 반색했다.

‘쯧!’

음문촌장을 혀를 차면서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 풍경은 예상했던 대로다. 혈천방주의 옷이 거의 풀어 헤쳐져 있다.

그는 여인을 품에 안고 있다.

여인의 옷도 거의 풀어 헤쳐져서 나신 위에 옷가지만 걸쳐 놓은 것 같다.

음문촌장이 들어서자 여인이 깜짝 놀라서 일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혈천방주가 꾹 눌러 앉혔다. 그리고 보란 듯이 여인의 볼에 입을 맞추며 말했다.

“어서 와. 딱 취기 좋을 때 오네. 하하하!”

혈천방주가 눈을 게슴츠레하고 뜨고 음문촌장을 쳐다봤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업무 중인 줄 알았는데.”

“대낮부터 웬 술이냐 이거지? 하하! 요것, 요것이 추파를 던지잖아. 요것이 암내를 살살 풍기는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 하하하! 그러냐, 안 그러냐?”

혈천방주가 여인의 가슴을 어루만졌다.

여인의 볼이 발그레해졌다.

여인은 혈천방주가 말하는 것처럼 추파를 던지는 성격이 못 된다. 아직 순진하고 앳되다.

분명히 방주의 못된 손버릇이 여인을 먼저 건드렸을 것이다.

“앉아. 앉아. 여기 천장 안 무너져.”

혈천방주가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음문촌장이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

“요것아, 이분이 바로 음문촌장님이시다. 어서 술 한 잔 공손히 올려야지?”

혈천방주가 품 안에 안긴 여인에게 말했다.

“네.”

여인이 수줍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여인은 술을 따르기 전에 뒤로 돌아앉아서 빠르게 옷매무시부터 수습했다.

“그래, 어쩐 일로 오랜만에 행차를 하셨나?”

혈천방주가 촌장을 보며 물었다.

“우리가 할 일도 없고 해서, 이제 그만 음문촌으로 돌아갈 볼 생각이야. 그동안 신세 많이 졌네.”

또르르!

여인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그리고 잔을 들어서 촌장 앞에 공손히 놓았다.

“아이휴! 요것 귀여워라.”

혈천방주가 다시 여인을 와락 껴안았다.

혈천방주는 음문촌으로 돌아가겠다는 촌장의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응대를 하지 않는다.

“갈 때는 가더라도…… 요것아, 왜 풀기 어렵게 다시 싸맸어. 어서 풀어.”

혈천방주가 여인의 옷 속으로 손을 쑥 집어넣으며 말했다.

“호발귀가 혈마가 된 건 아나?”

“뭐 그때 그 지경이었으니까 지금쯤은……”

“그런데 그놈, 보통 혈마가 아니라 아주 지독한 혈마가 되어 버렸어. 이건 뭐 모조리 적이야. 아군이 없어. 아군이. 혼자 독불장군식으로 죽이고 다녀.”

“……”

음문촌장은 눈살만 찌푸렸다.

혈천방이 새 터전으로 옮긴 후에는 강호 소식을 일절 듣지 못했다. 알아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냐면…… 혈마후가 없다는 말이지. 혈마후가.”

“음!”

음문촌장은 침음했다.

혈마후가 없는 혈마…… 완전한 혈마다. 아니, 인간 탈을 뒤집어쓴 악마다.

음문촌장은 호발귀의 상태를 짐작했다.

“그 잘난 천살단 책사도, 그렇게 깐깐한 홀리도…… 두 여자 모두 혈마후로 간택되지 못했단 말이지. 다 쫓겨났어. 요것아! 난 너 쫓아내지 않으니까 안심해도 돼. 우리 천년만년 어울려 살자. 얼마나 좋아. 흠!”

‘혈마 혼자서 중원을……’

음문촌장은 미간을 찌푸렸다.

홀리는 잘 될 줄 알았는데, 잘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홀리도 혼자가 되었나.

“어! 표정이 왜 그래? 아!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구나. 쯧! 본방을 새로 옮기면 체계를 잡는 데 오래 걸린다니까. 정말 처음 들었나 보네. 그럼 다른 건 아예 모르겠네?”

“또 뭘?”

음문촌장이 어색하게 물었다.

혈천방은 음문촌에 정보를 주지 않는다. 음문촌도 정보를 받을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다.

혈마에게 그토록 두들겨 맞았는데 무슨 정신이 있어서 무림을 살필 수 있겠나 싶었다.

혈천방도 출혈이 컸으니 다시 옛 모습을 되찾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혈천방주는 무림 소식을 소상하게 알고 있다.

“또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말해줄까?”

“또 무슨?”

“혈마가 살단주 주치균에게 두들겨 맞았다네?”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가 아니라. 천살단에서 그거 뭐지? 생기를 감추는 거…… 무생! 무생인가 뭔가를 연구했나 봐. 무생이 뭔가 하면 슬그머니 다가간다는 거지. 기척을 숨기고 조용히 등 뒤로 가서 칼로 푹 찌른다는 건데, 이게 통했다네?”

“혈마가!”

“정확한 명칭은 무령환살공. 혈마는 처절하게 당했는데, 어떻게 당했는지 알아? 큿큿! 뭐라고 했지?”

혈천방주가 품에 안고 있던 여인에게 물었다.

“파신금령술이요.”

여인이 대답했다.

여인은 아마도 정보를 관리하는 쪽에 있는 수하인 것 같다.

“아! 맞다. 파신금령술.”

“파, 파신금령술!”

음문촌장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후후! 촌장. 혈마도 이렇게 보면 만능이 아닌 거지. 혈마만 되면 무적인 줄 아는데, 사실은 무적이 아니었던 거야.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혈천방주의 음성은 또렷했다. 결코 술에 취한 음성이 아니었다.

“음!”

음문촌장은 마치 바보가 된 느낌이었다.

세상은 바쁘게 핑핑 돌아가는데, 한가하게 앉아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푸념만 늘어놓고 있었다.

“여기서 더 재밌는 건.”

혈천방주가 여인을 옆으로 밀어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호발귀가 파신금령술을 당하고도 멀쩡하게 일어났다는 거.”

“음!”

음문촌장은 신음을 토해냈다.

파신금령술은 오직 혈마를 제압하기 위해 탄생한 금제술이다.

당연히 혈마를 죽일 수 있다면 일반 무인들도 죽일 수 있다. 누구라도 죽인다.

혈마는 구혼음소에도 죽지 않았는데…… 그러면 이백 년 전 혈마와는 전혀 다른 혈마인가?

음문촌장은 혼란스러웠다.

“파신금령술을 당한 혈마가 어쨌는지 알아?”

“파신금령술을 당했는데도 일어나? 음!”

음문촌장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혈천방주가 말했다.

“불마촌이라고 있어. 몽골에서 들여온 개들과 어울려 이상한 놈들이 있는데, 천살단 호음각에서 관리해. 그놈들에게 우리 쪽 무공을 전수한 것 같은데.”

“마공을?”

“우리 흉내만 낸 거지. 아무래도 우리 무공이 나아 보였나? 어쨌든 혈마가 우리 쪽 무공을 수련한 놈들을 삼분지 일이나 몰살시켜 버렸어.”

“파신금령술을 당한 몸으로?”

“파신금령술을 당한 몸으로.”

“파신금령술은 해제가 안 되는데?”

“더 재밌는 것은 이런 사실이 있는데도 천살단주가 직접 양성한 마인을 다시 보냈단 말이야. 그러면 그자들로 호발귀를 상대할 수 있다는 건데. 어때? 이만하면 재미있지 않아? 하하!”

혈천방주가 허리를 잡고 웃었다.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군.”

음문촌장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술 한잔해. 이 아이가 정성스럽게 따른 술인데 안 마시면 섭섭하지. 이 아이 얼굴 봐서라도 마시지? 예쁘잖아. 요것.”

은문촌장은 술잔을 들어서 단숨에 쭉 들이켰다.

여인의 얼굴을 봐서 마신 건 아니다. 갈증이 치밀었다. 세상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이래도 음문촌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이 나오나?”

“음! 그렇다고 남아 있어봤자 딱히 할 일도 없고.”

“할 일이야 만들면 있는 거고.”

음문촌장은 또 갈증이 치밀었다.

그래서 직접 주전자를 들어서 술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단숨에 마셨다.

“후후! 흥미가 생겼나 보네? 자! 이제 너는 가봐라. 나는 촌장님하고 갈 데가 있어. 하하!”

혈천방주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여인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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