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四章 번개(翻個) (1)
“모두 잘 있겠지?”
당홍이 말했다.
“잘 있을 리가 없지. 그놈이 혈마가 되어 버렸는데, 잘 있을 리가 있나.”
“다시 돌아오지는 않았을까?”
“그러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돌아오지 않았을 거야. 돌아왔으면 벌써 연락을 보냈겠지.”
“맞아.”
타닥! 타타닥! 타닥!
당홍이 도마 위에 채소를 올려놓고 썰었다.
두 사람은 매우 무료하면서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혈마가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이 들어와야, 그 소식을 정리해서 소문을 낼 수 있다. 그런데 혈마에 대한 소문이 뚝 끊겼다.
천살단에 대한 소문도 흘러나오지 않고, 호발귀나 등여산 쪽에서도 소식을 보내주지 않는다.
하루하루가 답답하다.
하지만 신혼 재미만큼은 깨알같이 누리고 있다. 서로를 보기만 해도 행복하다. 무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이대로 은거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늘 또 만나기로 했어?”
당홍이 물었다.
“아니. 그 작자 돈을 너무 밝혀서. 거리를 좀 두는 게 나을 것 같아 다음에 만나자고 했지. 딱히 하오문을 움직일 것도 없고. 관계만 유지하면 되니까.”
“잘했어. 술 먹으면 속만 버리지 뭐. 밥 먹고 한 번 더 할까?”
당홍이 채소를 솥에 넣어 국을 끓이면서 물었다.
“좋지.”
도천패가 활짝 웃었다.
두 사람이 연마하는 쌍학은 거의 절정 단계에 이르렀다. 이제는 두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인다.
당홍은 허공에서 십여 초 이상 변초를 전개할 수 있다. 체공 시간을 입이 벌어질 정도로 길게 늘였다.
그동안 도천패도 사오 합 정도는 펼친다.
도천패의 초수는 당홍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한 손으로 길게 늘어진 당홍의 허리띠를 잡고 있어서 행동이 부자연스럽다. 그런 상태에서 최선을 다한 초수다.
당홍을 끌어당기고, 놓아주고, 허공으로 던졌다가 다시 튕겨 올리고, 밑으로 내려 앉히고……
도천패는 천력을 이용해서 당홍의 허리에 묶은 줄을 조정한다.
도천패가 당홍의 발 역할을 하는 셈이다.
당홍은 신형의 변화만 신경 쓰면 된다. 신법은 알 필요가 없다.
그녀가 어떤 움직임을 머릿속에 그리면, 도천패가 벌써 알아채고 그쪽으로 줄을 움직여 준다.
두 사람의 조합은 완벽하다.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진다.
허공에서 터트리는 그녀의 초식은 가히 일절이다. 위에서 아래를 향해 전개할 수 있는 모든 검학이 총집대성되었다. 빠르고, 난해하고, 강하다.
더욱이 그녀는 허공에서 암기도 쏘아낸다.
독침(毒針), 비표(飛鏢), 비황석(飛蝗石), 오독사(五毒沙) 등등 그녀가 몸에 지닌 암기를 쏘아내기 시작하면 반경 십여 장은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할 죽음의 땅이 된다.
사천당문의 최대절기인 만천화우(滿天花雨)와도 비견할 수 있는 절정의 암기술을 탄생시켰다.
아직 이름도 정하지 않은 당홍의 암기술은 능히 절정 무인을 상대할 수 있다.
사실 암기술을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창안했다.
열 명, 스무 명…… 무리를 지어서 덤벼드는 자들 또는 오궁진(五宮陣), 육합진(六合陣), 칠성진(七星陣) 등으로 공격해 오는 자들을 일거에 처리할 수가 있다.
혈천방도와 싸워본 경험이 있지 않나. 앞으로 그런 상황이 종종 닥칠 것 같아서 대비했다.
두 사람은 하오문과 연락을 유지하는 가운데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천살단에서 사마한테 당한 경험이 있어서 더욱 이를 악물고 수련에 몰두했다.
“오늘도 아무 소식이 없나 봐. 밥 먹자.”
당홍이 저녁상을 차렸다.
“올 사람 있어?”
당홍이 수저를 놓으며 말했다.
“없지.”
도천패는 꿈쩍도 하지 않고 식사에만 열중했다.
“그럼 불청객인데.”
“놔도 봐. 뭐 하나 보게.”
“좀도둑은 아니지?”
“신법이 무척 가벼워. 인근에서 보기 드문 놈이고…… 그러면 우릴 노리고 온 놈들이네. 하오문 놈들은 아닐 것이고. 누굴까? 하! 세상에 원수진 사람이 많아서.”
도천패가 히죽 웃었다.
천살단일 수도 있고, 혈천방도일 수도 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걸 어떻게 알고 왔을까?”
당홍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두 사람은 하오문의 보호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이 머무는 곳도 하오문 비가(秘家)다.
마을 한복판에 위치하지만, 집안까지 들어오려면 일곱 겹의 경계망을 돌파해야 한다.
사실, 이 경계망은 그리 믿을 게 못 된다. 하오문이 비가를 지키는 일에 고절한 무인을 배치할 리 없다.
“내가 할까?”
도천패가 당홍을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할게. 오랜만에 몸도 풀 겸.”
당홍이 말했다.
“좋지.”
도천패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
비가 생활은 매우 평온하다. 이런 생활…… 평범한 사람에게는 좋은 일이지만 당홍 같은 여자에게는 심심하기 짝이 없다. 뭔 일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고 항상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녀가 무공수련에 매진하는 것도 몸이 근질거리기 때문이다.
그런 마당에 손님이 찾아왔으니 양보할 리 없다. 처음부터 손님맞이는 당연히 당홍 차지였다.
퓨웃!
식탁에 앉아있던 당홍이 스르륵 사라졌다.
그녀는 어느새 천장 위로 올라가 있었다.
도천패가 대들보에 앉은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당홍도 눈을 찡긋거렸다.
‘위험!’
밀운은 즉각 위험을 감지했다.
등 뒤가 서늘하다. 어느새 누군가가 슬며시 다가와서 등을 노린다.
‘움직이면 당한다!’
밀운은 도천패와 당홍이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상당히 강해졌다.
당홍의 움직임 정도는 잡아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서 나타났다. 이런 움직임이라면 잡을 수가 없다. 분명히 자신보다 한 수 위다.
“소저, 밀운입니다.”
밀운이 움직임을 멈춘 채 말했다.
“어멋! 몰랐네.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왜 도둑고양이처럼 살살 기어들어 와요? 사람 놀라게.”
“습관이 이렇게 무섭군요.”
“아! 참 어렵게 사시네. 들어가요. 저녁 안 했죠?”
당홍이 밀운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밀운은 복면을 쓰고 있다. 하지만 당홍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복면인의 신법을 보는 순간, 그가 밀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밀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김샜다. 한바탕 몸을 풀 줄 알았는데.
“그런데 방금 그 신법. 무슨 신법입니까. 전혀 감지하지 못했는데.”
“이름은 아직.”
“창안한 겁니까?”
“쌍학을 수련하다가 문득 떠올라서. 나무를 날아다니는 하늘다람쥐를 보고 생각한 건데, 괜찮죠?”
“괜찮을 뿐입니까? 아주 뛰어납니다.”
밀운이 진심으로 찬탄했다.
밀운은 도천패와 당홍이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사람이다. 하오문도를 제외하고는 첫 번째로 만난 지인이기도 하다. 밀운을 지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반갑다.
하지만 그들의 웃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금방 울상으로 변했다.
“그런 일이!”
그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해서 많은 사람을 죽였다.
등여산과 홀리는 비보전 무인과 형옥주를 죽이고, 살단 무인을 죽였다.
무엇보다도 주치균이 혈마를 잡았다는 말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호발귀가 혈마로 변했을 때의 모습은 두 사람도 잘 안다.
그때는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그 흉포함, 살기…… 그걸 누가 막나. 그런데 주치균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주치균이? 차라리 귀검이 잡았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데.
밀운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믿기 어렵다.
“자! 여기가 최종적으로 싸움이 있었던 곳입니다. 호발귀가 낭견대를 몰살시킨 곳이에요.”
밀운이 지도를 펼쳐놓고 설명했다.
지도에는 사마가 호발귀를 이끌고 다녔던 경로가 상세하게 그려져 있었다.
홀리와 해자수가 비보전 무인과 형옥주를 죽인 장소, 사마들을 죽인 곳, 호발귀가 쓰러진 곳, 해자수에게 빼앗긴 곳, 제이 낭견대를 몰살한 장소까지 모든 장소가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천살단은 혈마를 철저하게 따라붙고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행방이 묘연한데. 도주 중이라서. 알아서 찾으셔야겠습니다.”
“고마워요.”
당홍이 밀운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감사는 나중에 천원주님께 하시죠. 천원주님이 알려주라고 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
“천원주님은 잘 계시죠?”
밀운은 천원주가 참회동에 갇혔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쩐지 그 일은 천원주님의 개인적인 일처럼 여겨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원주가 참회동에 갇힐 이유가 없어서다.
“네. 잘 계십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같이 가실 거예요?”
“아니요. 저는 천원주님께 돌아가 봐야겠습니다.”
“그런데 그 복면은 안 벗으실 거예요? 얼굴 좀 보여주셨으면 좋겠는데.”
“그럼 나중에.”
밀운이 일어나서 포권을 취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주무시고 가시지.”
“아닙니다. 제가 필요할지 모르니 바로 가봐야죠.”
밀운은 용건만 전하고는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바로 신형을 쏘아내 사라졌다.
“우리도 가자.”
도천패가 대도를 들고 일어섰다.
“뭐 가져갈 거 없지?”
당홍이 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지난 몇 달간 기거하면서 정도 든 곳이지만, 애착이 가는 물건은 전혀 없다.
두 사람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준비를 해왔다.
“잠이라도 자고 내일 아침에 출발할까?”
“아니, 지금 가.”
“지금 떠나면 노숙해야 할 거야.”
“오랜만에 하지 뭐. 별 보면서 자는 맛도 일품이잖아?”
“이제부터는 계속 노숙해야 할걸? 편안한 침상이 그리워질 텐데, 괜찮을까?”
“가가만 옆에 있어 주면 어디든 괜찮아.”
“후후후! 자, 그럼.”
도천패가 등을 내줬다.
쉬잇!
당홍은 사양하지 않고 신형을 날려 도천패의 등에 업혔다.
당홍에게는 도천패의 등이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편안하다. 쌍학을 수련하면서 사람의 등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방법을 체득했다. 도천패의 등에 그녀만의 자리를 만들었다.
사실, 도천패는 억울하겠지만 당홍은 도천패의 등처럼 편안하고 아늑한 곳이 없다.
푹신한 침상? 전혀 그립지 않다.
“오늘은 달빛 좀 볼 수 있겠네.”
당홍이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마음은 심란하기 짝이 없었다.
호발귀가 파신금령술을 당했다. 파신금령술이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밀운이 말해주어서 알았다.
마공관에 소장되어 있던 살법이라는 사실도 알았다.
밀운이 치를 떨 정도로 치명적인 살법이다.
또한 주치균은 흑포부시단도 사용했다. 호발귀가 어떻게 흑포부시단을 이겨냈는지 의문이지만, 주치균이 복용시킨 것만은 틀림없다고 판단한다.
이게 말이나 되는 짓거린가.
혈천방도 쓰지 않는 수법을 천살단이 사용했다.
소위 정도를 수호한다는 인간들이 사악한 짓거리는 모두 저지르고 있다.
호발귀를 만나게 돼도 답답해진다.
밀운의 말을 빌리면 호발귀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같다. 혈마가 되어서 세상을 유린하고 있다. 또 너무 강해서 적수도 없다.
천살단이 사악한 짓을 벌이고 있지만, 상대가 혈마이니 그 정도 수법은 통용된다는 태도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쒜에엑!
도천패는 지붕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단숨에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뛰며 날아갔다. 하지만 조용하다.
그 큼직한 덩치가 지붕을 건너뛰는 데도 전혀 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쒜엑!
마치 거대한 흑곰이 지붕을 타고 달려가는 듯했다.
“그래도 좋네. 너무 답답했는데.”
당홍이 도천패의 등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