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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12화 (312/500)

第七十三章 요요무기(遙遙無期) (2)

“킥킥킥! 킥킥!”

해자수는 호발귀처럼 괴소를 내질렀다.

늑대개 서른세 마리를 죽이고, 사람도 서른세 명이나 죽였다.

혈마가 되기 위해서 주위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였다.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많은 살생을 한 날이다.

철벽은 더 이상 세워지지 않는다.

‘끝났어.’

“크크크! 크크!”

해자수는 싸움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떻게 싸웠는지 모르겠다. 자신이 어떤 식으로 단검을 휘둘렀는지도 모른다.

방금 있었던 일인데도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피에 절어있다.

손에 들고 있는 단검도 새빨간 핏물에 젖어서 미끈거리면서도 끈적거렸다.

호발귀의 모습이 생각났다.

호발귀가 피에 젖어있는 모습을 보고 혈귀, 악귀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이 딱 그렇지 않나.

해자수는 어슬렁거리면서 주위를 돌아다녔다.

사실은 쓰러진 시신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숨이 붙어 있는 생명체가 있는지 살폈다.

사람이든 개든 숨이 붙어 있으면 안 된다.

호발귀가 죽이는 것은 생기다. 사람이나 짐승을 죽이는 게 아니다. 호발귀 입장에서는 푸른 빛을 소멸시킬 뿐이다. 오직 생기를 번뜩이는 것만 죽인다.

혈마는 사람을 죽인다는 생각조차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니 혹여 살아있는 사람이 있다면 호발귀가 죽인 게 아닌 것이 된다.

살아있는 사람이 있나? 살아있는 개가 있나?

이것을 분간해내기가 쉽지 않다. 아주 미약한 숨이라도 붙어 있으면 살아있는 것이다. 금방 죽을 테지만, 혼절한 상태로 쓰러져 있으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호발귀는 이런 상태를 만들지 않는다.

‘혈마가 되기도 어렵군.’

해자수는 한 명, 한 명 세심히 살폈다.

그는 호발귀처럼 사람을 마구잡이로 죽이지 못한다. 그래서 단검을 택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잔인하기는 해야 해서 연타를 선택했다.

연타로 내리치면 철벽에 구멍이 뚫린다.

하나, 둘, 셋…… 구멍이 계속해서 뻥뻥 뚫린다.

구멍이 십여 차례나 뚫릴 때까지 내리쳤다. 그렇게 치면 생명이 확실히 끊긴다. 또 시신도 처참해진다.

누가 봐도 혈마가 한 짓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해자수는 아직도 책사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한다. 책사가 혈마로 위장해 달라고 했을 때, 선뜻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사실은 이 방법이 더 위험해 보인다.

혈마가 살아있으면 당장 천살단주가 쫓아올 텐데, 그러면 더 힘들었을 텐데.

주치균이 다시 올 가능성도 크다. 주치균에게는 무령환살공이 있다. 생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극성이다. 만약, 이 자리에 주치균이 있었다면 자신이 당했다.

이들을 공격하는 동안, 해자수는 거의 환각 상태였다.

그는 오직 소용돌이만 봤다. 소용돌이에 온몸을 내맡겼다. 감각적으로 소용돌이 안에 들어온 자를 공격했다. 눈으로 보고, 감각으로 느껴서 공격한 것이 아니다.

이게 생기 작용인데,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주치균은 무생이다.

자신이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가면 보지 못하게 된다.

그가 지척에 다가와도 철벽이 세워지지 않는다. 조용히 검을 내밀면 찔릴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이 방법은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모르겠다. 등여산이 이런 방법을 선택했을 때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녀의 머리는 해자수가 생각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두 수, 세 수, 네 수 앞을 본다.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지 뭐. 이만큼 살펴봤으면 됐어.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없어.’

해자수는 신형을 펼치지 않았다. 느릿느릿 걸었다.

생기는 풀지 않았다. 정신은 여전히 회오리바람에 휘날리고 있다. 몸 안쪽에서 미친 듯이 휘돌고 있다.

그는 발길 닿는 대로 걸었다.

주위에 따라붙는 사람은 없다. 호발귀처럼 삼십 장 밖까지 읽지는 못하지만 십 장 밖은 볼 수 있다. 빨리 걸어보기도 하고, 늦게 걷기도 했다.

‘추격자는 없고.’

그렇게 백 장 정도 걸어간 후, 그때야 비로소 신형을 쏘아냈다.

쒜에엑!

해자수는 바람처럼 치달렸다.

혹여 쫓아오는 사람이 있어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빠르게 치달렸다.

* * *

천살단주는 두 통의 전서를 받았다.

한 통은 호발귀가 살아있다는 내용이다.

혈마가 아직 죽지 않았다. 정확하게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늑대개가 선명한 피에 반응한다.

호발귀가 흘린 피로 추정된다. 등여산이 부상한 호발귀를 데리고 도주하는데, 끝까지 추격하겠다.

곧이어 날아든 전서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혈마가 멀쩡히 살아서 펄펄 날뛴다. 낭견대와 혈마와 거칠게 부딪쳤는데, 결과는 전멸이다. 늑대개 서른세 마리가 죽고 제이 낭견대가 깡그리 몰살당했다.

기가 막힌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곤란해지는데.’

천살단주는 미간을 찡그렸다.

혈마가 살아있다는 것은 기쁜 소식이다. 혈마를 생포해 오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혈마에 대해서 알 것을 모두 안 후에 잡아 오는 것은 백 번 환영한다.

하지만 아직도 혈마에 대해서 모르는 게 있다면, 이건 곤란하다.

‘파악할 건 다 파악했다 싶었는데.’

천살단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백 년에 걸친 연구가 혈마에 대한 대부분의 의문을 풀어냈다.

혈마가 나타났을 때 혈천방은 그동안 연구해온 결과물을 토해냈다. 그 결과 완패다. 혈천방은 아직도 혈마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

혈마를 만들어 내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강시 같은 인간들은 백 명, 천 명 만든다고 해도 한순간에 무너질 병기일 뿐이다.

천살단주가 괴마 하구량이 만든 사마를 가볍게 여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사마 같은 괴물은 한 번 만들어 냈으면 됐다.

두 번씩 만들 필요가 없다. 혈마와 붙는 족족 잡아먹히는 밥 덩이를 뭐하러 만든단 말인가.

사마를 만드는 것은 혈마를 연구하는 기본 재료일 뿐이다.

사마를 만들면서 혈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모르던 부분을 알면 된다.

결과를 보라. 음문촌이 만든 혈마, 하구량이 만든 사마는 모두 사라졌다.

무령환살공은 남아 있다. 아직도 혈마를 상대할 수 있는 최강의 무공으로 존재한다. 아니, 무령환살공이 통한다면 그 밖에도 시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러면 여기서 끝난 것인가? 혈마를 죽이면 끝인가?

천만에! 이제 시작이다.

혈마를 완전히 이해하고, 혈마의 시작을 알아낸다. 생기가 혈기로 전환되는 과정을 막을 수 있다면……

혈마 무공은 불로장생을 안겨줄 수 있는 획기적인 의술이 된다.

인간이 창안한 모든 무공, 모든 의술, 천하에 산재한 그 어떤 영약보다도 뛰어난 보물이 된다.

천살단주는 생전에 이런 영광을 보고 싶다.

그러니 주치균이 호발귀를 죽였다고 할 때, 분노가 얼마나 컸겠는지 상상해보라. 오죽하면 호음각주를 시켜서 시신이라도 찾아오라고 시켰겠나.

혈마가 살아있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혈마가 흑포부시단을 복용하고도 죽지 않았다면, 혈마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뜻이다.

이 말은 뜻을 달리하면, 혈마를 사로잡아도 자신의 생전에 혈기를 제외한 순수 혈마를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된다.

혈천방은 혈마를 이용해서 무림을 제패하려고 한다.

천살단은 표면적으로는 혈마를 죽여서 무림의 안정을 취하려고 한다. 하지만 천살단주 개인에게 묻는다면 혈기로 전환되지 않는 순수 생기체를 원한다고 말할 것이다.

혈천방과 천살단은 목적이 다르다.

이런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호발귀를 이백 년 전 혈마 상태, 이차 각성까지 끌어올렸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켜봤다. 삼차 각성이 있을지 몰라서.

이백 년 전 혈마는 중원을 반이나 피로 물들이고도 삼차 각성이 없었다.

주치균을 호발귀에게 보낸 것도 삼차 각성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더는 알아볼 것도 없고, 발전할 것도 없다. 이제는 잡아들여서 혈마 근원을 파보자.

그런데…… 이건 정말 너무 했다.

파신금령술에 흑포부시단까지 보탰으면 이제 그만 죽어줘야 하지 않나. 뱃속에다가 생살을 썩히는 독액까지 들이부었는데도 살았다면 너무하지 않나.

혈마는 도대체 어떤 인간인가? 아직도 혈마에 대해서 모르는 게 뭔가?

‘흐음!’

천살단주는 턱수염만 쓰다듬었다.

* * *

“혈마가 살았습니다.”

암동이 웅웅 울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이내 맑은 여인의 음성이 암동 안에서 흘러나왔다.

“여긴 두 번 다시 오지 말라고 했는데, 참 말 안 듣네.”

“단주님께서 낭견대를 썼습니다.”

“……”

“불마촌은 역시 예상했던 대로 호음각에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호음각주가 직접 나서서 낭견대를 이끌고 호발귀를 추격했습니다.”

“……”

“혈마를 쫓다가 정면충돌했는데, 제이 낭견대 전원이 전멸했다는 보고입니다.”

“그 아이는?”

천원주가 물었다.

“이번에 혈마가 제이 낭견대와 싸울 때는 책사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혈마 곁에 있을 수 없으니 떨어져서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자세한 내용은 더 알아본 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니. 됐어. 더 이상 오지 마”

슥! 툭!

작은 창문을 통해서 보자기 하나가 떨어졌다.

“드시는 게 변변치 않을 것 같아서 먹을 거 좀 싸 왔습니다.”

“밀운, 정말 말 안 들을 거야?”

“저는 천원주님께 목숨을 바친 사람입니다. 제가 할 것이 또 뭐가 있겠습니까.”

“휴우!”

천원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염려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살단은 내 집 안방처럼 잘 알고 있습니다. 발각되지 않게 잘 다닐 테니 염려 놓으십시오. 여기서 절 잡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알았어. 기왕 움직일 바에는 심부름 좀 해줘.”

“네! 말씀하십시오.”

밀운이 반색했다.

“중원에 도천패하고 당홍에 나가 있어.”

“네.”

“그 사람들을 찾아가서 호발귀 사정을 말해줘. 지금 하오문과 밀착해 있는데, 지금은 거기 있을 때가 아냐. 호발귀 곁에서 뭐라도 도와주는 게 좋아.”

“그 사람들이 뭐 도움이 되겠습니까?”

“도움이 될 거야. 도천패는 성(省)을 살 만한 재물이 있어. 당홍은 호발귀 상태를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의술이 있고. 상당한 도움이 될 거야.”

“알겠습니다. 전하겠습니다.”

“도움이 안 된다고 해도 하다못해 따뜻한 밥이라도 편히 먹을 수 있겠지.”

“네. 찾아가서 바로 말해주고……”

“그들과 함께 책사에게 가. 지금 밀운이 힘을 쓸 곳은 내가 아니라 책사 곁이야. 책사를 지켜줘.”

“천원주님!”

“나는 괜찮아.”

“궁금한 게 있습니다.”

“……”

천원주가 침묵했다.

“지금 단주님은 혈마를 제거하려고 합니다. 물론 정도를 넘으셨습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아니. 잘못되지 않았어. 혈마를 잡는데 정도에 연연할 필요는 없겠지. 전혀.”

“그러면 혈마가 보통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보십니까?”

“아니. 돌아오지 못할 거야.”

“그런데도 참회동에 갇혀 계십니까?”

“……”

천원주는 또 침묵했다.

단주가 하는 일이 옳고 천살단이 하는 일이 옳다. 그런데도 그 일에 반대해서 참회동에 갇혀 있다.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호발귀가 등여산의 정인이라는 것은 안다. 천원주가 책사를 아끼는 것도 알고. 하지만 이미 혈마가 된 이상 사적인 연분은 지워버려야 한다.

그 정도는 아시는 분이 왜 이럴까?

밀운은 답답했다.

“그만 가봐.”

천원주가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밀운은 끝까지 등여산 곁에 있겠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 아마도 도천패와 당홍에게 사실을 전하고는 바로 돌아올 것이다.

천원주는 밀운이 참회동에 넣어준 보자기를 풀었다.

소고기 볶은 것, 당면, 신선한 야채 볶음……

음식은 아직도 따뜻했다.

참회동까지 올라오려면 꽤 시간이 걸리는데, 방금 만들어서 가져왔다고 해도 이렇게 따뜻할 수는 없다.

밀운은 이 음식을 가져오면서 자신의 품 안에 넣고 왔을 것이다. 체온으로 열기를 감싸면서 올라왔다

“바보네.”

천원주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딱히 배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 음식을 품에 안고 산에 올라왔을 밀운을 생각해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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