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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10화 (310/500)

第七十二章 불기독(不起毒) (5)

“안 되겠어.”

등여산이 말했다.

홀리가 들것 앞부분을 들고 등여산이 뒤를 들었다.

홀리는 호발귀의 몸에서 피가 떨어지는 줄도 알지 못했다. 오직 등여산만 보았다.

“왜?”

홀리가 뒤돌아보며 물었다.

“피가 계속 새어 나오고 있어.”

“뭐?”

홀리가 깜짝 놀라서 호발귀를 쳐다봤다.

홀리와 등여산이 너무 빠르게 치달렸다. 들것에 누워있는 호발귀를 생각하지 못했다. 상처를 꿰매고, 지혈시켜놔서 괜찮을 줄 알았는데.

“언제부터 이랬어?”

홀리가 호발귀의 상처를 살펴보며 말했다.

“좀 됐어. 처음에는 점점이 떨어져서 괜찮겠지 했는데, 이제는 심해지네.”

“하! 이거 난감하네. 어쩌지?”

해자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개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온다. 달리기 전에 비하면 상당히 떨어트려 놨는데……

피를 흘리면서 왔다면 말이 달라진다. 개들이 금방 들이닥칠 것이다.

“할 수 없지. 싸워야죠, 뭐.”

해자수가 말했다.

“아!”

등여산이 갑자기 뭔가가 생각난 듯 손을 들어서 자신이 이마를 '탁' 쳤다.

“또 왜?”

홀리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등여산을 쳐다봤다.

“피!”

“피가 왜? 피는 이미 지혈했잖아. 급하게 지혈했지만, 이 정도면 괜찮을 거야.”

“아니, 그 말이 아니라. 저 개들. 저 개들 지금 피 냄새 맡고 따라오는 거잖아.”

“아뿔싸!”

홀리와 해자수가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걔들이 피 냄새를 맡고 쫓아온다. 그러면 피를 흘린 사람은 누군가? 호발귀다. 죽은 사람이 피를 흘릴 리는 없으니 살아있다. 부상이 심하지만, 목숨을 부지하고 있다.

저들이 호발귀가 살아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어쩌지?”

홀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들이 쫓아오는 것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호발귀가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되면 천살단주가 바로 쫓아올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주치균이 다시 올 수도 있고.

어쨌든 그들은 호발귀를 잡을 수 있다.

더욱이 지금 호발귀는 의식도 차리지 못한 상태다. 천살단이 본격적으로 추격해오면 마음 놓고 싸울 수가 없다.

생각에 잠겼던 등여산이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해자수님, 호발귀로 변장해 주실래요?”

“호발귀로요? 제가요?”

등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호발귀가 되어서 저들을 공격하라는……”

“네.”

그때, 홀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 반대. 지금 호발귀를 아예 드러내자는 거잖아. 호발귀가 의식을 차렸으면 몰라. 지금 이 상태에서 멀쩡한 모습까지 보여주면 정말 치열하게 공격해 올 텐데, 그럼 더 힘들어. 반대.”

“아니. 여기서 야무지게 치면 쉽게 못 와.”

“야무지게?”

“혈마가 공격하는 거야. 혈마는 모두 잘 알고 있으니까 쉽게 못 와. 호발귀를 잡을 수 있는 사람들만 올 거야. 주치균이라거나 또 다른 사람들. 차라리 그들이 오는 게 지금처럼 떼거리로 달려드는 것보다 훨씬 나아.”

“주치균이 오는 게 더 힘들지 않을까?”

해자수가 말했다.

“일단 시간은 벌 수 있어요.”

“그럼 뭐 그렇게 하지 뭐. 사실 이건 내겐 고문이나 마찬가지인데. 해보지 뭐. 까짓것!”

“혈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알아?”

홀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해자수를 쳐다봤다.

혈마는 생명체를 살려두지 않는다. 사람이고 짐승이고 사정권 안에 들어선 모든 생명을 끊어버린다.

혈마의 특성을 철저하게 따르라는 말은 모든 생명체를 죽여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해자수는 살인을 꺼려한다.

어쩔 수 없이 천살단 무인들을 죽이기는 했지만, 살인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아왔다.

“호발귀의 사정권이 얼마죠?”

“삼십 장.”

“맞아요. 삼십 장. 할 수 있으시겠어요?”

“하아!”

해자수가 한숨을 토해내며 머리 끈을 풀었다.

그러자 머리가 어깨까지 쭉 흘러내렸다.

“어때요? 좀 혈마 같아 보여요?”

“안 될 것 같은데.”

해자수의 모습을 본 홀리가 등여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해자수는 영 어리숙해 보인다. 혈마의 잔혹함, 냉정함, 섬뜩함이 보이지 않는다.

“하! 아씨는 이 지경까지 와서도 날 무시하시네. 조금만 기다려봐요. 금방 혈마가 될 테니까.”

해자수는 호발귀에게 다가가서 그가 흘린 피를 손에 묻혔다. 그리고 얼굴이며 손이며 옷에 바르기 시작했다.

“뭐 하는 거야?”

“피! 피를 묻히는 거잖아요. 그래야 저놈의 개새끼들이 이놈을 쫓아가지 않고 날 쫓아오지.”

해자수가 툭 쏘아붙였다.

“해자수님, 미안해요. 이런 일까지 부탁드려서.”

“아유! 아유! 책사님은 정말 말씀도 곱게 하셔. 사실 이런 건 아씨가 말해줘야 하는데. 이놈이 뭐 책사님 신랑만 되나? 그런데도 아씨는 입도 벙긋 안 하고.”

“해자수, 고마워.”

홀리가 말했다.

“아니, 뭐 꼭 그렇다고 엎드려서 절 받겠다는 건 아닌데. 히히! 그래도 듣기는 좋네.”

해자수가 활짝 웃으면서 피를 듬뿍 발랐다.

“혈마 살인 방식 알지? 정말 할 수 있어?”

홀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혈마는 사람을 끌어들인다. 그리고 사지를 잘라서 죽인다. 아주 처참하다.

해자수가 허리를 툭툭 치며 말했다.

“마침 나한테는 이놈이 있어서.”

해자수가 허리에는 단금 세 자루가 꽂혀있었다. 주치균이 호발귀를 찌르면서 사용한 단검이다.

“이놈이 굉장히 묘하더라고요. 이게 빚이 안 나. 햇빛에 비춰도 달빛에 비춰도 반사가 안 돼요, 반사가. 암습하는 데는 이만한 물건도 없다니까. 킥킥!”

“그걸 가지고 있었어?”

“이놈을 사용하면 호발귀처럼 난자할 수 없지 않나? 그냥 내 방식대로 좀 처참하게 죽이면 될 것 같은데.”

“고마워서 어떡해요?”

“다음에 술 한 잔. 알죠?”

“네. 술 받아드릴게요.”

“술도 안 좋아하면서 술타령은.”

등여산은 곱게 웃었고, 홀리는 미간을 찡그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해자수에게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 찾아올 수 있지?”

“아!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어서 가세요. 어서.”

해자수가 손을 휘휘 내저었다.

생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생기를 읽을 줄 안다. 하지만 생기가 지나간 길을 더듬어 갈 수는 없다.

생기는 발자취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생명이 존재하면 생기가 드러나고, 생명이 떠나가면 생기도 사라진다.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해자수가 홀리나 등여산을 찾아갈 방법은 없다.

하지만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은 곳이 중원이지 않은가. 해자수 같은 사람에게는 등여산이나 홀리를 찾는 일이 비교적 쉬운 일에 속한다.

“해자수, 정말 고마워.”

쒜엑! 쒜에엑!

등여산과 홀리가 쾌속하게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자! 그러면 나도 슬슬 준비해볼까? 호발귀 피를 듬뿍 묻혀 놨으니 이놈들이 날 쫓아올 거라 이거지.”

호발귀는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는다. 그리고 멀리 사라졌다.

개들은 해자수가 몸에 묻힌 피 냄새를 따라서 달려올 것이다.

스윽!

해자수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으릉! 그르르릉!

늑대개가 일제히 달리기를 멈췄다.

개 열한 마리가 일제히 멈춰서서 앞을 보고 으르렁거린다. 아니, 몸을 낮게 수그리고 공격 태세를 갖춘다.

“뭐냐?”

호음각주가 물었다.

“큭큭! 앞에 있습니다.”

“앞이라면. 개 짖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싸우겠다는 거군.”

“킥킥! 그래봤자 개밥 되는 것밖에 더 있습니까? 더는 도주할 수 없다고 여긴 거죠. 킥킥!”

“호발귀는 생포해라.”

“휘이이이익!”

탕호는 호음각주의 잔소리가 귀찮다는 듯 고개를 홱 돌리더니 길게 휘파람을 내불었다.

앞서서 달리는 두 무리에게 그만 달리고 회군하라는 신호다.

사실은 신호를 보낼 필요도 없다. 저들은 늑대개가 짖어대는 소리를 듣고 방향을 정한다.

달리는 와중에는 늘 늑대개가 짖어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런데 늑대개가 울부짖음을 멈추고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이것이 공격 신호라는 것은 저들도 잘 안다. 탕호가 신호를 보내기도 전에, 저들은 벌써 뒤돌아섰다. 그리고 등여산의 배후를 노리며 달려오고 있다.

“혈마가 부상 중인 것 같은데…… 기분 좀 내도 됩니까? 혈마 몸에 칼자국 하나 새기고 싶은데.”

“쓸데없는 소리!”

“그런데 말이에요. 그런데. 만약에, 정말 만약에 말입니다. 저기서 기다리는 놈이 혈마라면 어떻게 합니까? 부상을 당했다고는 하지만 반격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죠.”

“응?”

호음각주는 즉답을 주지 못했다.

만약에 저기서 기다리는 게 책사가 아니고 혈마라면? 정말 그때는 어떻게 하지?

그때는 낭견대의 목숨을 보장하지 못한다. 잡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삶을 도모하지 못한다.

호발귀는 살려서 데려가야 한다. 하지만 혈마가 공격해 온다면 이들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때는 주객이 전도된다. 이들이 강자가 아니라 약자가 된다.

“어쩔 수 없지. 그때는 최선을 다해야지.”

“그렇죠? 킥킥! 킥!”

탕호가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탕호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기어이 혈마 몸에 칼자국 하나를 남길 심산인 것 같다.

‘어? 이놈들 봐라?’

해자수는 미간을 찡그렸다.

개 서른 마리가 사방에서 기어 온다. 배가 땅에 닿을 정도로 낮게 깔고 기어 온다. 슬금슬금 다가오다가 눈치를 본다. 그러다가 괜찮다 싶었는지 다시 기어 온다.

탕탕탕! 탕탕탕탕!

사방의 철벽이 세워졌다. 아주 강력한 철벽이다.

‘이건 일 검에 무너트릴 수 없겠는데?’

해자수는 곤혹스러웠다.

저들이 세운 철벽은 너무 강력해서 일 검에 잘라버릴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진다.

일 검에 베지 못하면 드잡이질을 벌여야 한다. 수십 명에게 에워싸여서 난장을 치러야 한다. 당연히 부상도 많아질 것이고, 자칫 중상을 입을 수도 있다.

한낱 개가 이런 철벽을 세울 리는 없다.

개를 몰고 온 사내들이 일으킨 철벽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철벽이라면…… 능히 형옥주와 버금간다.

이놈들이 누군데 이렇게 강하지? 형옥주가 다섯 명, 여섯 명…… 떼로 몰려온 것 같지 않나.

‘내가 당할 수도 있겠는데.’

해자수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철벽이 세워지는 강도가 너무 강해서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이 순간 해자수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생기를 믿어야 한다. 생기는 의심하는 순간 사라진다.

절대적인 믿음 속에서 생기와 어울려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청해야 한다.

자신은 지금 생기를 일으키면서 잡념을 떠올리고 있다. 적과 싸울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러면 생기가 온전히 유입되지 않는다.

생기를 그렇게 여러 번 사용하고도 아직도 의심하고 있나. 생기가 포기할 때는 오죽하면 포기하겠나.

자신이 죽을힘을 다해도 그 정도에 미치지 못한다면 철저히 생기를 믿어야 한다.

'의심 금물! 의심은 생기를 약화시킨다! 좋아!‘

타앙!

해자수는 두 눈을 미간에 집중시켰다. 어둠 속에서 두 눈이 미간에 달라붙었다.

이제 두 눈은 움직이지 않는다.

보는 것도 없고, 듣는 것도 없다. 그 속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난다. 그를 싣고 회돌이 친다. 정신없이 빨려 들어간다. 잡념이 일어날 틈조차 없다.

엄청난 회오리 속에 몸을 맡긴다.

휘리리링!

몸이 날아간다. 어디로 날아가는지 모르겠다.

낮게 배를 깔고 기어 오는 개떼는 생각나지 않는다. 주위에서 철벽이 쳐올려지고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텅텅! 텅텅텅!

강력한 철벽이 연이어 세워지면서 그를 포위했다.

해자수는 철벽에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회오리바람에 몸을 맡긴 채 철벽이 세워지는 모습을 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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