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二章 불기독(不起毒) (4)
마차 열 대가 나란히 달려왔다.
마차가 이동하는 동안 마차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래서 마차 안에 사람이 탄 것이 아니라 짐을 운반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덜컹! 덜컹!
꼬박 하루를 달려온 마차가 멈췄다.
그러자 마차 문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열렸다. 그리고 사나운 개들이 득달같이 튀어나오며 큰 소리로 짖어댔다.
컹컹! 컹컹컹! 컹컹! 히히히힝!
개들 짖는 소리에 말들이 놀라서 앞발을 쳐들었다.
마부들은 급히 말들을 진정시켰다.
“워! 워! 워! 괜찮아. 괜찮아. 워!”
“아함!”
마차 안에서는 사람들도 걸어 나왔다.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 맹견과 함께 마차를 타고 온 사람들이 무척 지루한 듯 기지개를 켰다.
그들은 모두 야만인이다.
짐승 가죽을 벗겨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신발도 짐승 가죽으로 만들었다. 머리를 수세미처럼 헝클어져 있고, 씻지 않은 얼굴에는 때가 달라붙어 있다.
그들은 웃을 때마다 누런 이를 드러낸다.
몸에서 풍기는 냄새도 매우 역하다. 개 냄새와 분뇨 냄새가 섞여 있어서 옆에 서 있기가 고약하다.
스읏!
뒤늦게 마차 안에서 사람 다운 사람이 내려섰다.
그러자 야만인들이 언제 느긋했냐 싶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다.
일사불란하게 개들을 움켜잡고 달려갈 준비를 한다. 훈련이 매우 잘 된 투사들이다.
“저 숲 뒤쪽. 호발귀가 누웠던 자리에는 피가 많이 쏟아져 있다는 단서밖에 없다. 나머지는 알아서 찾아.”
“넷!”
야만인이 대답했다.
컹컹! 컹컹컹! 컹컹컹!
늑대개들이 피 냄새를 맡았다.
야산 숲속 뒤쪽에는 핏자국이 여러 개 있다. 그중 하나만이 진짜 호발귀 피다.
불마촌 무인들은 호발귀의 핏자국을 단번에 찾아냈다.
컹컹! 컹컹컹!
앞장선 늑대개가 피 냄새를 맡는 동안, 뒤에 대기한 늑대개들은 혀를 내밀며 숨을 헐떡였다. 숨이 차서 헐떡이는 것이 아니다. 공격 직전에 보이는 흥분이다.
컹컹컹! 컹컹! 컹!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개는 금방이라도 달려갈 듯 으르렁거렸다.
불마촌 야만인들이 목줄을 단단히 움켜잡고 뛰쳐나가지 못하게 막았다.
이윽고 탕호 휘하의 서른세 마리 늑대개가 모두 냄새를 맡았다.
“됐습니다.”
탕호가 호음각주를 쳐다봤다.
호음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탕호는 개 줄을 확 풀었다.
껑껑! 껑껑껑!
개 서른세 마리가 일제히 뛰쳐나갔다.
한 마리당 한 명, 늑대개의 주인들도 쾌속하게 개를 따라서 신형을 쏘아냈다.
호음각주는 늑대개를 쫓아가고 있는 불마촌 제이 낭견대(狼犬隊) 대원들의 신법을 유심히 지켜봤다.
상 칠, 중 십이, 하 십사.
탕호가 말한 제이 낭견대의 무공 수준이다.
뛰어난 자가 일곱, 보통이 열둘, 부족한 자가 열넷이라고 했다.
아니다. 호음각주가 보기에는 모두 뛰어나다. 부족한 자라고 말한 자들도 능히 살단 무인들과 버금간다. 보통은 살단 무인보다 뛰어나고, 뛰어난 자라고 말한 자들은 천살단 당주와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이들은 최강 무인들이다.
이들에게 제재를 가해놓지 않았다면 벌써 중원에 뛰쳐나와 피를 흘렸을 악마들이다.
“음!”
호음각주는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작은 일에 너무 큰 칼을 쓰지 않았나 싶다.
낭견대 무공이 뛰어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작년에 자세히 보았는데, 그때와는 상당히 달라졌다.
낭견대 무공이 이 정도라면…… 지금과 같은 일에는 낭견을 세 마리짜리 내지 네 마리만 데려오면 충분할 것 같다.
호음각주의 신음 속에는 또 다른 의미도 숨겨져 있다.
아마도 불마촌 낭견대는 참을성이 극에 달한 것 같다. 더는 참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듯하다.
저들은 단시간에 마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불마촌 낭견대장 허경은 늑대개가 모두 백이십칠 마리라고 했지만, 아마도 더 되지 않을까 싶다.
허경에게 딴마음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우선 눈앞에 일부터 끝내놓고……’
쒜에엑!
호음각주는 신형을 쏘아냈다.
혈마를 데려간 책사, 그리고 홀리와 해자수가 형옥주를 죽였다. 그들은 또 호발귀를 빼내 가면서 살단 무인 열두 명도 죽였다. 확실히 보통 무공이 아니다.
주치균의 살단은 본 적이 없으니 열외로 치고, 형옥주가 쓰러졌다는 것은 쉽게 볼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이라면, 낭견대라면 책사 일행도 단숨에 쓸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틀림없이 쓸어낸다. 겨우 낭견대 중 삼분지 일만 데리고 왔는데도 충분하다.
컹컹! 컹컹컹컹컹!
늑대개가 입에 거품을 물어가면서 달려갔다. 그리고 그 뒤를 낭견대가 따라서 바람처럼 치달렸다.
껑껑껑! 껑껑!
개 짖는 소리가 거칠게 들려왔다.
“개? 천살단에 개도 있었습니까?”
해자수가 물었다.
“아니, 그런 건 없었어요.”
“지금이 사냥철도 아니고…… 이건 분명히 개가 쫓아오는 소리인데. 여기 지리를 모르니.”
해자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개가 한두 마리 짖어대는 게 아니다. 수십 마리가 일제히 짖어대면서 한 곳으로 달려온다.
확실히 추격이다.
“천살단주?”
홀리가 등여산을 쳐다봤다.
“그런 것 같아. 단주님이 보낸 자라면, 우릴 상대할 자신이 있는 자들이야.”
“우리가 사용하는 게 뭔지 모르니까 그렇지. 아마 기연을 만나서 무공이 높아졌구나 하는 정도만 생각할걸?”
“아직까지는.”
“무슨 말이야? 아직까지는 이라니?”
“단주가 저들을 보낸 기준은 딱 두 개야. 하나는 불광노하검이 깨졌다. 또 하나는 일시에 살단 무인 열두 명이 죽었다. 이걸 깨트릴 수 있는 자.”
“그런데?”
“저들마저 무너지면 그때는 생각이 달라질 거야.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겠지.”
“생기 쪽으로 눈을 돌릴까?”
“그럴 가능성이 커. 우린 호발귀하고 늘 같이 지냈으니까. 호발귀가 뭔가를 가르쳐줬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때, 해자수가 끼어들었다.
“우릴 어떻게 생각하건 말건, 지금은 뭐든 해야겠는데요. 개들이 금방 따라잡을 겁니다. 다가오는 속도가 무척 빨라요. 살단보다 두 배는 빠른 것 같은데.”
“일단 전력을 다해서 도주해요. 어디로 갈래요?”
등여산이 해자수를 쳐다봤다.
“개들을 떼어내려면 강으로 가야 하는데, 강이 어딘지 모르니…… 그렇다고 계속 산을 탈 수도 없고. 좌우지간 빨리 달려보죠, 뭐. 달리다 보면 어딘간 나오지 않겠어요?”
“그럼 그래.”
홀리가 왼발을 땅에 살짝 비볐다.
파츠츠츳!
생기가 일어나고 있다. 땅이 두 발을 잡아당긴다. 발바닥이 땅에 찰싹 달라붙었다.
해자수는 눈을 반개(半開)했다. 절반은 감고 절반은 뜨면서 생기를 일으켰다.
휘르르릉!
머릿속에서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홀리도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었다. 됐다. 모두 빠르게 생기를 찾았고, 몰입해 들어갔다.
쒜에엑!
그들은 섬전처럼 치달렸다.
해자수가 제일 앞에서 달려 나갔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그저 생기가 이끄는 대로 달려간다. 아직 철벽은 일어나지 않았다. 추격이 닿지 않았다.
‘물!’
해자수는 마음속으로 물을 염원했다.
머릿속에서 일어난 회오리가 강물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면 몸이 강물로 이끌어진다.
강을 아주 강하게 갈망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일어난 상상이 현실처럼 느껴져야 한다. 조금이라도 이것이 상상이라고 생각되어서는 안 된다.
약물에 중독되는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지 못하는데, 그 정도까지 깊게 강이 보여야 한다.
실제로 회오리바람이 강물을 지나갈 때는 물살에 숨이 막혀서 죽을 수도 있어야 한다.
쒜에엑!
‘물! 물! 물!’
해자수는 뒤쫓아 오는 개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등여산과 홀리가 잘 따라오는지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머릿속에 물만 그려내면서 달려갔다.
“이거 재미있는데요.”
탕호가 갑자기 낭견대를 멈춰 세웠다.
“놓쳤나?”
“아뇨. 그것보다 더 재미있는 게 있어서요.”
탕호가 정말 재미있는 듯 누런 이를 드러내면서 씩 웃었다.
호음각주는 탕호를 쳐다봤다. 무슨 일이냐고 눈으로 묻는다. 조금 못마땅한 기색도 드러내면서.
“여기.”
탕호가 땅에 떨어진 핏물을 가리켰다.
“피?”
호음각주가 손을 뻗어서 핏물을 찍었다.
금방 흘린 핏물이다. 색깔이 선명한 선홍빛이다. 또 아주 싱싱해서 미끈거린다.
땅 위에는 새빨간 핏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있다.
“누구 피야?”
“호발귀입니다.”
“호발귀?”
호음각주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확실해? 호발귀 맞아?”
“킥킥! 이놈들이 호발귀라고 하고 있잖아요. 이 피만 보면 환장하는 게 안 보입니까? 킥킥!”
탕호가 흉성을 드러내면서 웃었다.
죽은 시신이나 회수하려고 왔다가 살아있는 혈마를 만나니 흥분되는 모양이다.
“살아있다니. 이럴 리가 없는데.”
호음각주는 즉시 품에서 은침을 꺼내 핏방울을 찔러보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은침이 변색하지 않았다. 피는 어떠한 독성도 포함되지 않았다.
‘흑포부시단!’
인간이 어떻게 흑포부시단을 복용하고도 멀쩡할 수 있나. 흑사 껍질은 위장으로 들어가기만 당장 녹는다. 위액에 닿는 즉시 녹기 시작한다.
“탕호.”
“네. 말씀하시죠.”
“호발귀를 생포해라. 생포하기만 하면 너와 제이 낭견대, 자유를 주겠다. 그리고 중원에서 무슨 짓을 하든 향후 이십 년 동안은 추격하지 않겠다. 천살단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킥킥킥! 그 말씀 진심이죠?”
“쫓아! 반드시 생포다. 병신이 되고 좋고, 반쯤 죽여놔도 좋은데 반드시 살려서 잡아!”
“책사와 다른 계집이 있다던데…… 흐흐!”
“마음대로 해.”
“그 계집들, 제가 가져도 된다는 말씀으로 알아들어도.”
“잿밥에 눈이 어두워지면 목숨을 잃는 법이야. 난 지금 이 일을 단주님께 보고할 거다. 네게 말한 혜택도 함께 보고하지. 지금부터 이번 일은 천살단 제일 임무가 된다. 단주님이 직접 보고 계시는 일이 된다는 말이야. 가!”
호음각주의 말에 탕호도 움찔거렸다.
천살단주가 두 눈 빤히 뜨고 지켜보는 일이라면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실패하면 혜택은 고사하고 목숨을 부지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탕호가 즉시 돌아서서 말했다.
“지금부터 삼로(三路)로 쫓는다. 너, 위! 너, 아래. 난 바로 쫓겠다. 합류 지점은 십 리로 하지. 이것들 바로 코앞에 있으니까. 실수 없도록!”
“넷!”
수하들이 힘차게 대답했다.
서른세 명이 열한 명이 쪼개서 삼로로 추격한다.
탕호는 가운데를 맡는다. 핏자국을 따라서 계속 추격한다.
위와 아래를 맡은 자는 탕호의 개소리로 방향을 잡으면서 무작정 앞으로만 치달린다.
등여산을 포위할 생각이다.
십 리가 되는 지점에서 앞으로 치달려간 두 부류가 돌아선다. 등여산의 앞을 막아선다.
그러면 뒤늦게 쫓아온 탕호와 더불어서 포위망이 형성된다.
위와 아래를 맡은 자들이 재빨리 입마개를 꺼내서 개 입에 채웠다.
입을 벌리지 못할 정도로 꽉 채운 것은 아니다. 공간이 넉넉해서 충분히 입을 벌릴 수 있다. 다만 짖지 말라는 신호다. 헐떡이는 숨소리 빼고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그럼 저희 먼저!”
타타타탁! 쒜에엑!
개와 낭견대 무인들이 일시에 위와 아래로 갈라져서 질주했다.
“가자!”
탕호도 수하들을 즉시 몰아쳤다.
컹컹컹! 컹컹컹컹!
개들이 다시 거칠게 짖어대면서 핏자국을 쫓아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