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二章 불기독(不起毒) (3)
호음각주는 단주가 내준 지도를 쳐다봤다.
지도에는 여러 장소가 표기되어 있다. 살단주가 호발귀를 잡은 산골짜기, 이동 경로, 홀리에게 호발귀를 빼앗긴 장소까지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비보전 작품일 것이다.
현재 살단에는 비보전 십이비자가 동행하고 있다. 눈으로 본 듯 상세한 지도가 전해져도 하등 이상하지 않다.
“흑포부시단.”
호음각주가 중얼거렸다.
호발귀가 파신금령술에 당했다면 빨리 움직이지 못한다. 급하게 움직이면 상처가 말썽을 일으킨다. 아니, 그것보다도 흑포부시단이 더 큰 문제다.
구출한 시점부터 호발귀에게 남은 시간은 반 시진뿐이다.
파신금령술 때문에 느리게 움직여야 하고, 흑포부시단 때문에 반 시진밖에 살지 못하고.
호발귀는 멀리 가지 못했다. 겨우 삼백 장? 사백 장? 죽을힘을 다해서 달렸어도 십 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십 리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단주가 무엇 때문에 죽은 시신을 수습해 오라고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책사가 아직도 죽은 호발귀 곁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자칫하면 호음각은 정말 하찮은 일에 움직인 것밖에 되지 않는다.
“일단 책사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본 것이고…… 그럴 수 있지. 책사라면…… 적어도 십여 일 정도는 무덤을 지킬 터…… 홀리, 해자수. 이상한 사람들과 싸우게 생겼군. 살아있는 혈마도 아니고 겨우 죽은 시신을 차지하겠다고. 후후!”
호음각주가 웃었다.
흑천(黑川)은 시궁창 물이 흐르는 개울이다. 세상이 버린 온갖 오물이 흑천으로 모여들어서 흘러간다.
개울 양쪽에는 오 장 높이의 제방을 쌓아놨다.
제방의 길이는 이십 리에 이르며, 제방 양쪽으로는 빈민촌이 형성되어 있다.
모기, 파리, 쥐들이 득실거리고 악취 때문에 두통을 달고 살지만, 세금은 내지 않는다. 또 세금을 거두러 오는 관원이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범죄자들도 모여들었다.
흑천을 끼고 사는 사람들은 시궁창에서 풍기는 악취를 담담하게 맡고 살아간다.
“냄새가 아주 고약합니다. 문을 닫으시죠?”
마차를 모는 마부가 말했다.
“괜찮네.”
호음각주는 인상조차 찡그리지 않은 채 땟국물에 쩔어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쳐다봤다.
다각! 다각! 다각!
마차가 흑천을 지나갔다.
보통 마부들은 흑천으로 들어서려고 하지 않는다. 가는 곳이 흑천이라고 하면 요금을 두 배, 세 배로 쳐준다고 해도 손사래를 치기가 일상이다.
코를 질질 흘리던 아이가 마차를 쳐다봤다.
흑천 사람들도 마차를 보기는 정말 오랜만일 것이다.
보통 이럴 경우, 마차는 습격당한다. 흑천민이 도적 떼로 변해서 달려든다. 마차에 관원이 탔다는 표식을 해놔도 마찬가지다. 흑천민은 관원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다각! 다각! 다각!
마차 구르는 소리가 흑천을 울렸다.
흑천민은 도끼, 낫, 곡괭이 등을 들고 튀어나왔다. 이번에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습격할 생각이다. 하지만 습격은 하지 못했다. 달려들려고 다리를 움찔거리기까지 했지만, 호음각주의 눈빛을 보고는 다시 들어가 버렸다.
흑천 구석에는 커다란 공터가 있다.
싸리나무로 울타리를 해놓고,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우렁차게 나오니 공터는 아니다.
원래는 공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사나운 흉인들이 점거했다.
그 후부터는 흑천민도 공터에는 얼씬거리지 않는다. 괜히 기웃거렸다가는 실종되기 십상이다.
컹컹! 컹컹컹! 컹컹!
공터에 들어서기도 전에 고약한 비린내가 풍겼다.
개 냄새다. 배설물 냄새와 개 특유의 비린내, 음식물 썩는 냄새가 섞여서 골치가 아프다.
다각! 다각! 다각!
마차는 공터 안으로 들어갔다.
“어? 여기…… 아무도 없는데요? 개들 밖에는…… 이놈들 밥은 누가 주나?”
마부가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됐네. 그만 가봐.”
호음각주는 마부를 돌려세웠다.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은 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다시 올 생각도 하지 말고.”
“아이고, 누가 이런 데를. 감사합니다!”
마부는 호음각주가 금을 건네주자 넙죽 절했다.
공터에는 개가 백여 마리 정도 있다.
검은 개도 있고 누런 개도 있지만 하나같이 이빨을 곤두세우고 으르렁거린다.
컹컹! 컹! 컹컹컹!
개 백여 마리가 호음각주를 물지 못해서 안달이다. 개를 묶어놓은 철책이 금방이라도 뿌리 뽑힐 듯 덜컹거렸다.
“그놈들……”
호음각주는 개들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몽골 유목인에게는 아주 좋은 개가 있다. 몽골견이다. 몽골에 있다고 해서 전부 몽골견은 아니다.
검은 털이 길게 자라있고, 목과 어깨에 뽀얀 털이 있는 개만이 몽골견이다.
몽골견은 몸집이 크지만, 성격이 무척 온순하다. 사람 말을 잘 듣고 충직하다. 추위에도 강해서, 삭풍이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바깥에서 잠을 잔다.
이런 몽골견이 뛰쳐나가서 늑대 무리와 어울리거나 늑대 새끼를 낳는 경우가 있다.
늑대와 잡종이 되는 것인데, 이런 개를 늑대개라고 한다.
늑대개는 매우 사납다. 오히려 늑대는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피한다. 하지만 늑대개는 늑대의 공격성만 물려받아서 곧바로 사람을 공격한다.
공터에 있는 개들은 늑대개다.
“모두 몇 마리냐?”
호음각주가 개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큿큿! 오랜만입니다. 연락이나 주고 오시던가. 이렇게 갑자기 오면 곤란한데.”
늑대개 속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려왔다.
아! 사람과 늑대개가 함께 섞여 있다. 사람들이 철창 안에 드러누워서 잠도 자고 술도 마신다.
개 우리는 지붕이 없다. 늑대개를 가둘 우리일 뿐, 비바람에는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있다.
호음각주의 눈길이 가늘게 좁혀졌다.
“너희는 몇 번을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니. 말 안 듣는 개는 도살한다고 말했을 텐데.”
순간, 사방에서 살기가 뭉실 피어올랐다.
‘도살’이라는 말에 공터 전체가 살기로 휘감겼다.
“나와라. 아직은 목줄 끊겠다고 발광할 때가 아니야. 못 믿겠거든 시험해보고.”
호음각주는 공터 한가운데로 걸어가서 털썩 맨땅에 주저앉았다.
철컹! 철컹!
개 우리가 열렸다.
“백스물일곱 마리입니다.”
우리 안에서 걸어 나온 세 명 중 한 명이 말했다.
“그새 열네 마리가 늘었군. 너무 빨리 늘리는 거 아냐? 양보다 질을 따져야지.”
“큭큭큭! 언제든 시험해보시면.”
“시험해보려고.”
파앗!
세 명의 눈가에 번뜩 흉광이 떠올랐다.
“그럼, 사람을 죽여도 된다는 말씀?”
호음각주는 눈살을 찡그렸다.
이들은 마공관 마서를 수련했다. 정종 무공이나 사공은 제외하고 오직 마공만 건네주었다.
이곳 공터에 뿌려진 마경(魔經)이 서른 권이다.
이들은 마공을 최소한 두 가지 이상 구사할 줄 안다. 절대 마인들의 무공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 자도 있다.
무공만 가지고 겨룬다면 호음각주도 이들 상대가 되지 못한다.
한두 명까지는 상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너 명을 넘어서면 곤란해진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백이십칠 명이다.
늑대개 한 마리에 마공을 수련한 주인 한 명.
맨 처음 공터에 집어넣은 늑대개는 세 마리였다. 늑대 오십 마리, 순종 몽골견 오십 마리도 남겼다.
사람도 세 명이 남았다.
눈앞에 있는 자들, 호음각주의 수하들이자 충직한 천살단 무인.
그들이 이십 년을 지나오는 동안, 백이십칠 명으로 늘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백십삼 명이었는데, 일 년 사이에 열네 명이나 늘었다. 무척 빠른 속도다.
이들은 이미 정도인이 아니다. 마공을 수련해서인지 성품이 사악하게 변했다.
사람 죽이는 맛에 사는 사악한 사마가 바로 여기 있다.
방금 말한 자, 탕호(蕩昊)의 옷소매에는 붉은 피가 물들어 있다.
호음각주가 공터에 들어설 때, 누군가를 납치해서 죽이는 중이었을 것이다. 각주가 즐거운 쾌락을 방해하니 저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고.
이들은 정말 사악한 마두가 되었다.
원래 이들을 양성한 목적은 혈마를 상대하기 위해서다. 혈마에게 던져지는 첫 미끼다.
정종 무공으로는 혈마에게 타격을 주기 힘들다. 정종 무공을 수련하면 종래 어떤 경지에 이를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만한 경지로는 혈마를 이기지 못했다.
마공은 끝을 알지 못한다.
마공의 끝자락은 혈천방이 잘 알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정종 무공의 끝을 알지 못한다.
혈천방과 천살단이 서로 정보를 나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고…… 그래서 직접 마공을 수련시키기로 했다. 마공의 끝자락에 이른 자가 혈마와 부딪치는 것이다.
이들을 이곳에 남긴 본래 목적부터가 처절했다.
이들은 마공을 수련하기 전까지는 너무도 멀쩡했다. 결코 피를 탐하는 자들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런 모습이 더욱 안타까웠다. 지금은 무덤덤해졌지만.
“너희 전부는 필요 없고. 한 명만 가자. 누가 갈래?”
“킥킥! 한 명이라면 당연히 나지.”
탕호가 말했다.
“무슨 소리. 내가 가야지.”
안도(侒櫂)가 얼굴을 붉히면서 쏘아붙였다.
하지만 두 사람…… 탕호와 안도는 한 사람의 눈치를 봤다. 세 명 중 한 명 허경(許京)이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허경이 물었다.
“시신을 찾아오는 일이다.”
“뭐요? 하!”
탕호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
안도도 심드렁한 표정으로 돌아앉았다. 그는 손을 코에 넣고 후비적거렸다.
“이십 년 만에 우릴 찾는 걸 보면 재미있는 일 같은데, 좀 더 자세히 말해주시죠?”
“혈마 시신이다.”
“혈마!”
이번에는 허경이 눈을 부릅떴다.
그들은 혈마가 세상에 나왔다는 것도 알지 못했다. 하물며 혈마가 자신들 외에 다른 사람 손에 죽었다는 사실은 더 믿기 어려웠다. 이렇게 되면 지난 이십 년 세월이 뭐가 되나.
“혈마를 누가 죽였습니까?”
“살단주.”
“오택골, 말씀입니까?”
“아니. 오택골은 귀무령에게 죽었고, 지금은 검벽주였던 주치균이 살단주를 맡고 있다.”
“그 애송이가!”
허경의 눈에 분노가 어렸다.
“너무 서둘 것 없어. 살단주가 이번에 일을 조금 잘못한 것 같은데, 바로 잡아야지. 용건부터 말하지. 우린 혈마 시신을 찾으러 간다. 혈마 시신을 지키는 사람이 있다. 책사 등여산.”
“이거 뭐라는 건지. 갑자기 그 젖비린내나는 계집 얘기는 또 뭐요?”
탕호가 머리 복잡한 듯 미간을 확 찡그렸다.
이곳…… 불마촌(不魔村) 무인들은 강호 사정을 전혀 모른다. 오직 늑대개와 함께 살 뿐이다. 비바람을 온전히 맞아가면서 마공 수련에만 매진한다.
이들은 살인도 많이 한다.
호음각주가 앉아있는 공터를 파보면 사람 뼈가 부지기수로 나올 것이다.
호음각주는 그동안의 일을 짧게 이야기해 주었다. 형옥주가 홀리에게 당한 것까지, 모두.
“이번에는 탕호가 가라.”
허경이 정리를 해주었다.
“넵! 킥킥! 자아알 다녀오겠습좌!”
탕호가 기뻐서 펄쩍 뛰었다.
호음각주가 지도를 펼쳐 보이며 말했다.
“이곳까지는 마차로 갈 것이다. 여기에 가면 호발귀 피가 떨어져 있을 테니, 여기서부터 추격을 시작한다. 길어야 이틀 안에 끝날 일이지만, 또 모르지.”
“키키키! 그냥 여기서부터 휩쓸고 가도 되는데.”
“하나 더. 네놈 수하들에게 행동 단속 입단속 잘 시켜놔라. 내 말에 토를 달거나 삐딱한 놈은 즉시 죽인다. 이곳을 벗어나는 즉시 개인행동은 철저하게 통제한다.”
“하! 그럼 개들까지 입단속 시킬깝쇼?”
탕호가 호음각주를 보며 놀리듯이 말했다.
“내가 죽이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본보기로라도 몇 명은 죽일 생각이니까.”
탕호가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금제를 당했다. 호음각주가 금제를 발동하면 앉은 자리에서 즉사한다.
천살단에서 마공을 전수할 때는 충분한 안전장치를 깔아놓는다. 당연하지 않나. 천살단은 여차하면 불마촌을 완전히 소각시켜버리겠다는 독심으로 마공을 전수했다.
그걸 모를 줄 아나.
불마촌이 세상에 드러나고, 문젯거리가 되면 천살단은 단번에 불마촌의 존재를 지워버릴 것이다.
그걸 조심하면서, 그때가 되면 즉시 도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눈치를 보면서 지내왔다.
“네. 알겠습니다. 농담 좀 한 걸 가지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 잘 듣겠습니다.”
탕호가 정색하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