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二章 불기독(不起毒) (2)
해자수는 들 것 하나를 뚝딱 만들어 냈다.
“이거 뭐로 만든 거야?”
홀리가 들것을 보며 말했다.
“어제 주변을 한 바퀴 돌았잖수. 그러다가 눈에 들어와서 몇 개 집어 왔죠. 킥!”
들것은 널빤지 대신에 인근 민가에서 훔쳐 온 옷가지를 엮어서 만들었다. 딱딱한 널빤지나 나뭇가지로 엮은 것보다는 한결 편할 것이다.
그 위에 호발귀를 눕혔다.
“죄송하지만 들것은 두 분이.”
“그래요.”
등여산이 흔쾌히 말했다.
“앞은 제가 뚫어볼 테니까. 같이 가다가 누가 나타나면 일단 제가 막아설 테니까, 두 분은 내쳐 달리셔야 합니다. 절대 뒤돌아보지 마시고. 알았죠?”
해자수가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어제저녁, 등여산과 홀리가 모닥불 옆에서 호발귀를 지키고 있을 때, 해자수는 동굴 밖에서 경계를 섰다. 나무 위에 자리를 잡고 누워서 사방을 경계했다.
그때 등여산이 홀리에게 한 말을 들은 것 같다.
만약 누군가가 나타난다면 해자수는 상당히 강한 적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크게 염려하지는 않는다. 해자수는 생기 사용이 상당히 능숙해졌다. 이제는 어떤 무인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초절정 고수가 되었다.
“그럼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정해야겠다.”
“아뇨.”
해자수가 고개를 저었다.
“가장 재수 없는 일, 천살단주가 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은 상대할 수 있지만, 천살단주나 주치균은 아직 무리라서. 킥킥! 막아서 보기는 하겠는데 잡힐 거는 분명한 것 같고. 일단 몇 번 푸닥거리 하다가 숨어 볼 생각이기는 한데…… 하지만 만에 하나 잡힌다면…… 어디로 가는지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죠.”
해자수는 천살단에 잡히는 것까지 생각하고 있다.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등여산이 말했다.
“그러면 좋고요. 세상에 잡히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킥킥! 자, 가죠!‘
쒜에엑!
해자수가 앞서서 치달렸다.
홀리와 등여산도 들것을 들고 바로 뒤따라 움직였다.
* * *
“후후후!”
천살단주가 턱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웃었다.
살단이 보내온 전서에 따르면 호발귀를 잡았고, 파신금령술을 펼쳐서 제압했다. 그러나 복귀 도중에 등여산의 유인책에 걸려서 빼앗기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호발귀를 빼앗기기 직전, 호발귀를 지키고 있던 무인이 단검을 깊이 찔러넣어서 피가 샘물처럼 솟구쳤다는…… 한 마디로 죽었다는 보고다.
죽음을 확인해서 등여산은 추격하지 않고 귀환한다.
“후후! 재미있어. 얘야.”
“네.”
검벽주 임명강이 대답했다.
“가서 약전주를 모셔와라. 지금 바로.”
“네.”
임명강이 대답했다.
천살단주는 빙긋 웃었다.
혈마의 생기 감지 거리는 삼십 장이다. 기척을 완전히 감추고 숨어 있어도 삼십 장 안에만 들어서면 발각된다. 그뿐만이 아니라 제 발로 호발귀에게 걸어가 죽임을 당한다.
“삼십 장. 후후! 삼십 장 밖에서 존재를 알아낸다. 거기에 섭혼 마력. 대단하군. 그러니 무적일 수밖에. 자, 그러면 혈마 무공에 대한 신비는 다 깬 건가?”
천살단주는 만족했다.
사마를 통해서 혈마가 감지하는 거리를 알아냈다.
괜히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 민가로 끌고 간 것이 아니다. 사람을 죽여서 뭘 하겠다고.
호발귀가 어느 정도의 거리에서 생기를 파악해내는지 알고자 했다.
호발귀의 생기는 날로 발전한다.
어디까지가 한계고 극성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계속 지켜봐야만 한다.
혈기를 높이는 방법은 딱 하나, 많이 죽이는 것뿐이다.
혈마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여야 혈기가 극성에 이르는 것일까?
이것 또한 의문이다. 알아봐야 한다.
기록에 의하면 이백 전 혈마는 일정한 수준까지 혈기가 치솟은 후, 혈기 상승이 멈췄다고 한다.
그 거리가 삼십 장이다.
절정 고수라는 사람들이 십여 장 안팎에서 기척을 감지하는 것에 비하면 무려 세 배나 폭이 넓다.
참응은 촉수에 걸려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국은 혈기에 휘말렸고, 간신히 벗어났다.
그때의 거리가 삼십 장이다.
호발귀의 혈기가 비약적으로 도약한 후에 일어난 일이다.
예전의 혈마는 일차 각성을 한 상태였다. 참응을 잡는 시점에서 이차 각성을 일으켰다. 호발귀의 감응 거리가 십여 장에서 단번에 삼십여 장으로 쭉 불어났다.
이백 년 전, 혈마가 전 중원을 절반이나 피로 물들일 때가 이차 각성 상태였다.
딱 지금의 호발귀다.
산촌 사람들, 화전민들…… 그들은 무림을 위해서 희생한 것이다. 그러니 억울해할 필요 없다. 그들의 죽음은 혈마를 잡는 거름으로 쓰였으니까.
그 덕분에 혈마의 능력을 정확하게 파악했다.
살단주 주치균이 떠나기 전, 그에게 생포해 오라고 말했다.
무령환살공과 파신금령술은 무려 이백 년이나 연구를 거듭한 무공이다. 혈마를 상대할 수 있는 가장 유효한 무공 중에서도 손꼽히는 무공이다.
살단주는 호발귀를 잡을 수 있다!
무령환살공으로 접근할 수 있다면, 그 후는 어떤 무공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만약, 주치균이 비사칠초를 사용했다면 호발귀는 즉사했다. 하지만 살단주는 성격상 파신금령술을 썼을 것이다. 틀림없다. 호발귀를 가장 처참하게 무너뜨리고 싶었을 테니까.
여기에 생포라는 단서가 붙는다.
파신금령술을 사용하면서 목숨을 끊지 않으려면 칼을 아주 세심하게 잘 써야 한다. 칼날이 조금이라도 삐끗하게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다시 말해서 전서에 적힌 대로 호발귀를 지키던 자가 단검을 밀어 넣었다고 해도 죽지 않는다. 이미 단검은 들어갈 대로 들어간 후일 테니까.
전서는 거짓이다.
그런데도 전서는 호발귀가 죽었다고 단정적으로 적혀있다. 호발귀의 죽음을 확인했단다. 파신금령술을 이렇게나 믿고 있는 것인가? 죽지 않게끔 칼을 써놓고?
전서를 보낸 사람은 연소부라는 자이지만, 이 전서는 주치균이 보낸 것이다.
주치균은 호발귀가 죽었다고 확신한다.
“후후후!”
천살단주는 웃었다.
“부르셨습니까?”
약전주가 허리를 숙였다.
“앉으시게.”
“네.”
약전주가 조심스럽게 걸어와서 앉았다.
“내 약전주에게 실망스럽게 한 거 없지?”
“네? 네.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묻는 말에 거짓 없이 말해 줄 것이라고 믿겠네. 그래도 될까?”
“말씀 주시지요. 추호도 거짓 없이 아뢰겠습니다.”
약전주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살단주가 가져간 게 뭔가?”
천살단주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약전주가 깜짝 놀라서 천살단주를 쳐다봤다.
“놀라기는. 무림을 돌아다니다 보면 세 가지는 늘 쓰게 되어 있어. 무공, 계략, 약물. 이번에는 약물을 쓴 거 같은데. 살단주가 가져간 게 뭐지?”
“죽여주십시오!”
약전주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바닥에 털썩 엎드렸다.
“허허! 자네를 죽이자고 이런 말을 물었겠나. 사실을 알고자 물은 거지. 가져간 게 뭔지 말해야지?”
“흐, 흑포…… 흑포부시단입니다.”
약전주가 더듬더듬 말했다.
“흑포부시단? 후후후! 그럴 듯하군. 꽤 센 걸 가져갔어.”
“상대가 혈마라서 뭐든 있어야겠다면 달라기에……”
“그 말, 책임질 수 있을까?”
천살단주가 턱을 만지면서 무심히 말했다.
약전주는 더 말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얼떨결에 말을 해놓고 보니 큰 실수를 했다. 방금 그는 살단주가 약을 달라고 해서 내줬다고 말했다. 그 말은 약전에 흑포부시독이 존재했다는 말이 된다.
약전이 왜 그런 극독을 가지고 있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흑포부시독은 주치균이 만들었다. 약전주가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독성 조절은 주치균이 했다.
약전주는 아주 미세한 분량만 사용하자고 했지만, 주치균이 즉사를 원했다.
결국, 치가 떨릴 정도로 잔인한 흑포부시독이 만들어졌다.
단주의 허락 없이, 살단주와 약전주가 임의로 만들었으며, 중원에 나가서 살포했다.
책임을 묻기에 따라서는 처형도 가능하다.
“쯧!”
천살단주가 혀를 찼다.
“죄송합니다.”
“자네도 많이 늙었군. 아니, 그 아이에게 정이 많이 들었나? 그렇다고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면 어떻게 해?”
“죄송합니다.”
“흑포부시독은 입을 벌리고, 약을 입 안에 넣고, 손가락으로 식도 안까지 밀어 넣어야 하는 독이지. 도대체 그런 독을 어떤 자에게 쓴다고 생각하나?”
“죽여주십시오!”
약전주가 다시 머리를 조아렸다.
천살단주가 말한 그대로다.
흑포부시독은 저항하는 사람에게는 쓸 수가 없다. 포로나 아니면 의식을 잃은 사람들에게만 쓸 수가 있다.
상대가 혈마라서 흑포부시독을 가져갔다는 말도 이치에 닿지 않는다.
“그 아이가 본단에 지인을 많이 든 모양이야. 도와주는 사람이 꽤 많아.”
“그래서가 아니라 혈마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됐네. 그런 물건이 무림에 잘못 흘러나가면 아주 곤란해져. 함부로 내줄 물건이 아니지. 다음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때는 정말 책임져야 할 거네,”
“네. 알겠습니다. 감사…… 드립니다.”
약전주가 고개를 숙였다.
천살단주가 나가보라고 손짓을 했다.
천원주는 삼각, 사전, 십삼당을 관리한다.
삼각은 재각과 정천각(淨天閣), 호음각(沍陰閣)이다.
재각은 천살단 재정을 담당하고, 정천각은 천살단 무공을 연구, 발전시킨다.
호음각은 비각(秘閣)이다.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백 년 전에 천살단이 탄생할 무렵에는 비밀결사 조직으로 천원주의 지휘를 받았다.
지금은 양상이 달라졌다.
호음각주는 천원주 휘하에 있지만, 천살단주의 직접 명을 받는 직속 기구가 되었다. 천원 회합에는 참석하면서도 명령은 천살단주에게 직접 받는 특이한 구조다.
저벅! 저벅!
천살단주가 호음각으로 들어섰다.
호음각주는 고요히 앉아서 책을 읽다가 즉시 일어서서 부복했다.
“단주님께서 이 누추한 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볼일이 있으시면 부르시지요.”
“안에만 앉아있으니 다리에 힘이 빠져서. 좀 걷기도 해야지.”
“앉으시지요?”
호음각주가 자리를 권했다.
천살단주는 호음각주의 자리로 가서 의자에 털썩 앉으며 각주가 방금 읽고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뭘 읽고 있었나?”
“사기(史記)입니다.”
“역사라. 좋지.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인 무인에게는 배부른 말이기도 하고. 후후!”
“그저 소일거리로.”
“내가 할 일을 너무 안 줬나 보군. 자꾸 이러면 눈코 뜰 새 없게 만들 거야.”
호음각주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아이들은?”
천살단주가 대뜸 물었다.
“잘 있습니다.”
“이번에 좀 쓰지.”
“네. 알겠습니다.”
호음각주가 허리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살단주에게 혈마를 잡아 오라고 시켰는데, 그만 죽여버렸다네. 쯧! 혈마는 그렇게 죽이면 안 되는데 말이야. 자네가 가서 혈마 시신 좀 수습해 와.”
호음각주의 눈빛이 다시 빛났다.
겨우 이런 일에 호음각을 움직일 단주가 아니다. 무엇인가 더 강력한 게 있다.
단주가 말했다.
“책사…… 무공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어. 주치균이 무령환살공을 수련했는데도 책사를 잡지 못했어. 일부러 놔준 면도 있다지만…… 홀리와 해자수라는 자는 살단 무인 십여 명을 단번에 도륙했고, 형옥주도 죽였단 말이지. 자네도 알지? 형옥주가 불광노하검을 수련한 거. 허허! 쉽게 질 무공이 아닌데.”
“그렇습니까?”
호음각주의 눈빛이 침착하게 가라앉았다.
“그 아이들…… 여기 형옥에 끌려올 때는 그 정도가 아니었어. 형옥에서 풀려난 다음 갑자기 늘었단 말이지. 무슨 기연이라도 만난 듯한데. 후후! 이만하면 호기심이 당기나?”
“제가 가보겠습니다.”
호음각주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