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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06화 (306/500)

第七十二章 불기독(不起毒) (1)

사람이 언제 죽을까 기다리는 일은 정말 못 할 노릇이다. 머릿속에 지난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름다웠던 추억, 고통스러웠던 기억들이 모두 떠오른다.

“처음 천살단에 잡혀 왔을 때는 상당히 패기가 있었어.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으면서도 감히 천살단에게 조건을 내걸었거든. 호호! 혈마록을 모두 외운 사람이나 가능한 거지.”

“그걸 어떻게 외웠을까?”

“그러니까. 난 아직도 그게 어느 시대, 어느 나라 문자인지 모르고 있어.”

등여산과 홀리가 지난 일을 주고받았다.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낸 당사자는 죽은 듯이 누워있다. 좀처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홀리.”

“왜?”

“아무래도 말이야. 우리 바쁘게 생겼는데.”

“훗! 바쁠 일이 뭐가 있어. 어차피 죽음 찾아서 떠나는 여행인데. 천천히…… 엇!”

홀리는 무심히 말을 잇다가 뒤늦게서야 등여산이 한 말의 뜻을 알아챘다.

개울에 온 지 반 시진이 더 지났다.

호발귀를 대낮에 데려왔는데,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석양이 물든다.

흑포부시단이 작용하지 않고 있다.

“옮겨야겠어.”

등여산이 말했다.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모두 지금 당장 호발귀를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제는 헛된 희망이 아니다. 어쩌면 호발귀가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 시진 전까지만 해도 막연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흑포부시단이 터지지 않고 있다.

정말로 주치균이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호발귀 몸속에서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최소한 호발귀가 흑포부시단에 죽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질 거였다면 벌써 벌어졌다.

아니, 이것은 장담하지 못한다. 흑포부시단을 복용했다면 아직도 몸속 어딘가에는 흑사 껍질에 휘감긴 부시독이 있을 것이다. 언제 어디서 흑포가 터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지금은 터지지 않고 있다.

“머물 곳! 머물 곳을 알아봐 줘요!”

등여산이 빠르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알아보는 건데. 잠깐만 기다려요. 금방 살펴보고 올 테니까.”

쒜엑!

해자수가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홀리와 등여산은 부지런히 상처를 살폈다.

지금까지 단검에 찔린 상처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부시독이 체내에서 터질 판인데 그까짓 상처는 돌봐서 뭐 하나.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부시독이 터지지 않는다면 당장 상처 치료가 선급하다.

“이쪽 혈맥은 괜찮아.”

홀리가 아랫배를 살펴보며 말했다.

“이쪽도.”

등여산은 겨드랑이 밑을 살폈다.

“단주가 호발귀를 생포해 오라고 한 모양이야. 주치균이 파신금령술을 쓸 때 혈맥을 피했어. 신경도 끊지 않았고…… 단지 깊게만 박힌 정도?”

“뼈는 닿지 않았지?”

“응. 뼈를 베어내려면 중간에 있는 혈맥을 피하지 못해. 혈맥을 피해서 검을 쓰려면 뼈에 닿을 수 없어. 단지, 칼만 깊게 들어간 거야. 하늘이 보살폈어.”

“이렇게 해도 파신금령술이 통하나?”

“살짝만 찔러도 통해.”

등여산이 희망 있게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좋지 않다. 홀리나 등여산 모두 좋은 점만 말하고 있다. 단지 검이 깊게 들어간 정도? 아니다. 침도 조심해서 놔야 할 곳을 단검으로 찔렀다. 주치균이 칼을 조심해서 썼다고 하지만 매우 치명적인 상처다.

두 여인은 계속 희망적인 말만 했다.

“심각한 상처가 아니야. 상처만 나으면 되겠어.”

“천운이야. 호호호! 주치균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홀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녀들이 말하는 것은 즉사 부분이다. 주치균이 단검을 잘 써준 덕분에 호발귀가 즉사를 피했다.

하기는 천살단 본단까지 호발귀를 살려서 데려가려면 혈맥을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다. 제대로 파신금령술을 펼쳤다면 당장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무엇보다도 주치균 흑포부시단을 십분 믿었다.

누구라도 마찬가지다. 흑포부시단을 복용시키면 살 방법이 없다.

그런 걸 안 믿으면 뭘 믿나. 주치균의 믿음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호발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데, 그것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비정상이다.

등여산과 홀리는 재빨리 금창약을 꺼내서 상처를 다시 치료하기 시작했다.

해자수가 너무 급하게 지혈하는 바람에 상처가 짓뭉개져 버렸다.

그 당시에는 해자수도 철철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할 뿐, 치료할 생각이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금창약을 바꾸고 옷자락을 찢어서 상처를 감싸 맸다.

스읏!

해자수가 재빨리 다가왔다.

“근처에 꽤 깊은 굴이 있어요. 안에 박쥐 떼가 살아서 냄새는 좀 많이 나는데.”

“박쥐가 있으면 상처에 균이 들어가지 않을까?”

“아휴! 아씨!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땝니까? 호발귀는 흑포부시단을 씹어먹었어요! 그런데도 살았다는 것은 지옥에서도 거부당했다는 거잖아요. 뭘 걱정합니까? 걱정하지 말고 가세요.”

“호호호!”

홀리가 기분 좋게 웃었다.

다른 때 같으면 당장 타박했을 말이지만, 지금은 모든 말이 듣기 좋았다.

호발귀가 살 수 있다.

이것보다 즐겁고 기쁜 일은 없을 것이다. 오늘만은 해자수가 욕을 해도 웃을 수 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해자수가 신형을 날려서 동굴로 쏘아갔다.

등여산이 말한 것처럼 세 사람 모두 상당히 분주해졌다.

해자수는 밖에 나가서 살단 무인들이 추격해오는지 살폈다.

그놈들이 추격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추격을 살피는 신세가 되었다.

해자수는 산을 십 리나 수색했다.

생기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서 비호처럼 치달렸다. 그러면서 생기란 생기는 모두 읽었다.

많은 생기가 읽혔다.

그중에는 사람이 내뿜는 생기도 있다. 하지만 살단 무인들의 생기는 아니다. 한두 명 정도가 생기를 드러냈지만, 철벽이 세워지지는 않았다.

위험하지 않은 생기다.

슈우우웃!

해자수가 다시 동굴로 돌아왔다.

“밖은 어때?”

“쥐새끼 한 마리 없어요. 안심해도 됩니다.”

“추격대를 안 보낸 거야?”

“흑포부시단을 먹였으면 됐지 뭘 보내요. 나 같아도 안 보내겠다. 아니야. 형식적으로라도 보내야 하나?”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주치균은 안 보내.”

등여산이 말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은 내 고통이야. 호발귀의 죽음을 보면서 아주 많이 아프기를 바래. 추격대를 보내면 쫓길 거고, 쫓기면 슬픔을 잊어버리잖아. 보내지 않을 거야.”

“하!”

해자수가 혀를 내밀면서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었다.

여인이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맺힌다고 한다. 하지만 사내의 한도 그에 못지않다. 사내가 한을 품으면 태산도 평지로 만들 수 있다.

“그건 뭐야?”

홀리가 화제를 돌렸다.

해자수는 손에 새끼 멧돼지 한 마리를 손에 들고 있었다.

“어미 잃은 놈이 돌아다니길래. 우리도 요깃거리는 해야겠다 싶어서 집어 왔죠.”

“아무리 추격대가 없다고 해도 불 피우면 안 되지 않을까?”

“킥킥! 아씨. 천하에 음문촌 홀리가 언제부터 이렇게 새가슴이 되셨나? 살단 무인은 코빼기도 안 보인다니까 그러시네. 방금 책사님도 추격대는 없을 거라고 하시지 않았수.”

“해자수, 오늘 말 너무 막 한다?”

“오늘 같은 날 막 하지 않으면 언제 하라고. 킥킥! 아씨, 수발들어줄 사람은 나밖에 없다니까. 다시 말해서 아씨가 나한테 잘 보여야 한다 이 말씀.”

“수발 받기 위해서 잘 보이라고?”

“그럼 안 받을 거요?”

“안 받고 주워 패지 뭐.”

“킥킥킥!”

해자수가 킥킥대며 웃었다.

홀리와 등여산은 교대로 호발귀를 지켜봤다.

지금 호발귀는 숨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해가 지고 밤이 깊었는데도 좀처럼 숨을 쉬지 못한다.

숨이 겨우 끊어지지 않고 간신히 붙어있는 정도?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숨만 붙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식이 엄연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절박하다.

하지만 세 사람은 호발귀가 어째서 이런 상태에 빠졌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세 사람이 지닌 무공지식이나 의술, 무리(武理)…… 모든 걸 다 종합해봐도 호발귀가 이토록 숨이 경각에 달린 상태에 이른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흑포부시단이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만큼 위급하다.

세 사람이 막연히 생각하는 것은 아마도 파신금령술이 제대로 통한 게 아닐까 하는 추측뿐이다.

파신금령술이 여전히 호발귀의 영혼을 옥죄고 있나? 혈도가 풀리지 않아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나? 호발귀가 정신을 차리려면 파신금령술이 풀려야 하나?

불행히도 등여산은 파신금령술이 있다는 것만 알 뿐, 깊게 들여다보지 않았다. 파신금령술을 알아보기는 해도 진행 과정이나 파해법을 전혀 모르는 상태다.

단검에 찔린 부위가 나으면 파신금령술이 풀리려나?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단지 숨이 제대로 돌아오기만 바랄 뿐, 의식이 회복되는 것조차 기대할 수는 없다.

타탁! 타탁! 타타탁!

모닥불이 어둠을 밝게 비친다. 차가움을 밀어내고 따뜻한 열기를 전해준다.

호발귀는 모닥불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다.

며칠 동안 잔뜩 긴장해서인지 온몸이 물 먹인 숨처럼 무겁다. 그런데도 잠이 오지 않는다.

“아직이지?”

홀리가 물었다.

숨이 돌아올 기미가 있냐고 묻는다.

“잠이 안 와?”

호발귀를 지키고 있던 등여산이 홀리를 보며 말했다.

“잠이 올 리가 없잖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 의식은 돌아왔어야 하는데.”

“안 되겠다. 네가 먼저 자. 내가 지켜볼게.”

홀리가 일어섰다.

“아니. 난 아까 눈 좀 붙였잖아. 잠이 안 와도 자.”

“잠이 안 온다니까.”

“그래도 자. 내일부터는 정말 바쁠 것 같아서 그래.”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어?”

“응.”

“뭔데?”

“단주님.”

“단주님은 무슨! 아직도 단주님이야? 단주 새끼라고 해도 모자랄 판에. 단주 새끼가 왜?”

“난 아무래도 단주님이 마음에 걸려. 단주님은 호발귀를 살려서 데려오라고 했어. 주치균은 죽었다고 보고 할 테고. 흑포부시단을 복용시켰으니까 그렇게 보고할 거야. 그러면 ‘그러냐, 알았다.’하고 말 분이 아니라서.”

등여산은 모닥불을 쳐다보면서 혼잣말처럼 말을 이었다.

등여산은 천살단주의 성품을 어느 정도 안다. 평소에는 무척 자상하고 인자하시다. 하지만 일이 벌어지면 매우 집요하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절대 놓치지 않는다.

수하들을 관리하는 면은 매우 비정하다.

단주는 수하들의 능력을 매우 냉정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딱 할 수 있는 일만 시킨다. 적당하게 시키는 것이 아니라 능력 최대치까지 밀어붙인다.

일곱 개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여섯 개나 여덟 개를 시키지 않는다.

딱 일곱 개만 시킨다. 한데 그것이 바로 개인에게는 능력 최대치다. 죽을힘을 다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단주는 그런 성격이다.

천살단에 있을 때는 이것이 수하를 강하게 키우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능력을 최대한까지 밀어붙이면 자신도 모르게 없는 능력까지 끌어내게 된다.

어떻게든 해내려고 하다 보면 결국 해내게 된다. 그러면 일곱이었던 능력이 여덟으로 올라간다.

천살단을 벗어나 한 걸음 떨어진 곳에서 다시 보니 매우 잔인한 방법이었다.

사람을 극한으로 밀어붙이면 해낼 가능성보다는 못 해낼 가능성이 더 크다. 가벼운 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죽을힘을 다해야 이룰 수 있으니.

단주가 주치균을 보낼 때는 호발귀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생포해 올 수 있다고 절대 확신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생포해 오지 않았다. 놓쳤고, 죽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렇게 되면 단주가 직접 와서 확인하던가, 아니면 이런 일을 십분 해낼 수 있는 다른 사람을 보낸다.

누가 오든 호발귀의 죽음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올 것이다.

“그럼 억지로라도 잠을 좀 청해야겠네.”

홀리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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