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305화 (305/500)

第七十一章 탈취(奪取) (5)

세 사람은 호발귀가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호발귀가 당한 상처가 중해서가 아니다. 흑포부시단을 복용했다고 해서 하는 말도 아니다.

세 사람은 혈마처럼 생기를 감지한다.

호발귀만큼 강한 생기를 느끼지도 못하고, 동종의 생기도 아니지만, 분명히 느낀다.

그들이 느끼는 생기가 혈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등여산의 마음은 진작 무너졌다. 희열은 사라지고 슬픔만이 가득하다.

호발귀가 숨을 떨구기 직전인데, 이런 상황에서도 기쁨이나 희열을 느낄 만큼 미치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생기를 읽지 못한다.

하지만 해자수와 홀리는 다르다. 분명히 느낀다. 마음이 급해서인지 더욱 또렷하게 감지한다.

땅이 두 다리를 끌어당긴다.

땅이 다리에 자유를 주지 않는다. 혈마가 앞에 있으나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거다.

해자수도 마찬가지다. 철벽이 세워지지 않는다.

혈마 같은 강력한 마인이 눈앞에 있는데도 위험하지 않단다.

호발귀가 혼절해 있어서 생기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 호발귀가 잠을 자고 있을 때도 작동했었다. 사정권 안에만 들어가면 무조건 경계심이 일어났다.

두 사람이 느끼는 생기에 따르면…… 호발귀는 이미 혈마가 아니다. 죽은 시신이나 다름없다. 눈을 뜨더라도 전혀 혈기를 일으키지 못한다.

그럴 때만, 지금과 같은 생기가 감지된다.

“해자수, 개울 좀 알아봐 줘. 지금 당장 독기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좀 씻겨야겠어.”

마른 수건으로 얼굴과 손발에 묻은 피를 닦아냈지만, 몸에는 여전히 핏물이 얼룩져 있다.

‘그러다 썩기 시작하면 더 힘들 텐데.’

해자수는 만류하고 싶었다.

두 여인이 호발귀를 씻기면서 혹시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게 될까 봐 두렵다.

해자수인들 몸 전체가 썩어서 함몰되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좀 깨끗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겠는가. 호발귀를 안고 개울로 갔다가 그때 썩기 시작하면……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해자수가 호발귀를 안아 들었다.

개울에 도착하자 등여산은 죽통(竹筒)에 물을 받아서 호발귀 입에 흘려 넣었다.

“뭐해?”

“이 사람, 살인한 후에는 물을 그렇게 마셨잖아. 혹시 물을 마시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까 해서.”

“다시 혈마가 되면 어떻게 해?”

등여산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파신금령술을 당했잖아. 그걸 당했는데 어떻게 살아. 설혹 혈마로 깨어나도 옛날처럼 혈기를 마음대로 쓰지 못해.”

‘맙소사!’

해자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두 여자가 말하는 내용이…… 호발귀가 깨어나기를 기대하는 투이지 않나.

호발귀는 이미 생기가 희미해졌다. 호발귀에게서 생기를 느끼기가 정말 어렵다.

악기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띄우는 생기가 소멸하고 있다.

세 사람은 위협이 되는 악기만 못 느끼는 것이 아니라 숨까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깨어나지 못한다. 그런데도 깨어났을 때를 대비해서 말하고 있다.

아직도 호발귀가 죽는다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다.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깨어날 수나 있으면 좋겠는데.”

등여산이 막연한 바람을 말하면서 물을 먹였다.

물을 먹이면 소생하지 않을까? 다시 혈마가 되어서 시뻘건 눈을 부릅뜨고 죽이려고 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어도 좋으니 깨어나기만 하면 좋겠는데.

홀리는 호발귀를 닦기 시작했다.

흐르는 개울물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머리를 감겼다.

얼굴도 닦았다. 옷을 벗기고 몸에 묻은 피를 깨끗이 씻겼다. 하지만 이때도 상처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했다.

흑포부시단이 터지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고 있다.

아니, 안다. 곧 흑포부시단이 터질 것이다. 호발귀의 육신이 썩은 진물이 되어서 흐를 것이다. 하지만 혹여 터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를 걸어본다.

해자수는 헛된 희망을 보면서도 아무 소리 하지 않았다.

그 역시 두 여인처럼 헛된 희망에 기대를 하는 중이다. 어쩌면 흑포부시단이 터지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물론 망상에 불과하겠지만.

호발귀를 씻긴 물이 금방 핏물로 변해서 흘러내렸다.

호발귀는 정말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친 것일까? 단지 몸에 튄 피만 해도 이 지경이면.

상처를 피하느라고 조심스럽게 닦고 있지만, 흐르는 물에 몸을 완전히 밀어 넣고 묶을 피를 싹 씻겨내고 싶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는 뭔가 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피비린내가 풍기는 것 같아서 개운치 않았다.

“물 좀 마셔?”

홀리가 등여산을 보며 물었다.

등여산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죽통에 든 물을 입안에 흘려놓고 있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모두 주르륵 흘러버렸다.

호발귀는 의식이 없다.

“혹시 그거…… 흑포부시독…… 그거 주치균이 괜히 공갈친 것 아닐까요? 시간이 걸려도 너무 오래 걸리는데?”

해자수가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면서 말했다.

“주치균은 거짓말 못 해요. 복용시켰을 거예요.”

“에이. 사람이 머리가 헤까닥 하면 거짓말보다 더한 짓도 하는 법인데. 난 아무래도 공갈치는 것 같아. 그렇지 않으면 아직까지 멀쩡할 리가……”

“그럼 지금쯤 살이 썩었어야 하네?”

홀리가 사납게 말했다.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어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 요놈의 주둥이가 말썽이라니까.”

해자수가 자기 입을 탁 때렸다.

하지만 홀리나 등여산은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니, 희망을 얻었다.

호발귀를 구출하고 한 시진쯤 지났을 때, 그를 개울로 옮겨왔다. 개울에서 정성스럽게 씻기기 시작한 것이 또 반 시진은 된다. 한 시진 반이라는 시간 동안 흑포부시독이 작용하지 않고 있다. 위장을 녹이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이런 바람은 말 그대로 희망일 뿐이다. 주치균은 결코 거짓말이나 공갈을 치는 위인이 아니다.

틀림없이 독단은 복용시켰다. 그 말은 사실일 것이고…… 다만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혈기가 독기를 누르는 것은 아닐까? 호발귀의 혈기가 워낙 강성했으니까.

아니다. 홀리, 해자수 두 사람은 생기를 읽지 못한다. 악기도 보이지 않는다. 호발귀는 위험한 사람도 살아있는 사람도 아니라고 말한다.

“죽지 않았으면 다행이죠, 뭐.”

해자수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다행이긴 다행인데…… 너무 마음이 조마조마하네요. 이게 언제 터질지 몰라서.”

등여산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나도 그래. 불안해 죽겠어.”

홀리가 호발귀 머리맡으로 오며 말했다.

마음은 불안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호발귀가 죽거나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 * *

“호발귀를 뺏겼습니다.”

연소부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희생은?”

“사망 열두 명, 부상 한 명입니다.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데, 살단에서 움직이기에는.”

“살단에서 싸운 건 이게 처음인가?”

“네.”

“그전에는?”

“사람은 꽤 죽여봤습니다.”

연소부가 대답을 회피했다.

“사람은 백 명도 죽일 수 있다. 많이 죽이는 게 능사가 아니라, 정작 죽이라는 자를 죽일 수 있어야지.”

“……”

연소부는 말을 하지 못했다.

주치균은 호발귀를 빼앗긴 일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다. 홀리와 해자수를 놓친 일에 대해서만 말한다. 임무가 아니라 싸움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너희가 싸워야 할 귀무살은 하나같이 정예다. 그놈들은 하나하나가 각기 정예 백 명 이상을 죽인 자들이야. 그자들과 붙었다면 너흰 전멸이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명심만으로는 곤란하지. 다음에 또 무림에 나올 때도 지금 같다면 너희는 쓸모가 없어.”

“알겠습니다.”

연소부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말했다.

“단에 전서를 보내라. 호발귀를 뺏겼다고.”

“쫓지 않고 보고합니까?”

“보고에 한 줄 더 써. 등여산이 호발귀를 죽였다고.”

“……”

연소부는 또 말을 하지 못했다.

등여산이 호발귀를 죽일 리 있나. 호발귀에게 가해진 금제를 말하는 것인가?

단검이 꽂혀있는 상태에서 지금처럼 움직이면 창칼이 내부를 가닥가닥 찢어버린다. 정말 조심해서 살짝 언 살얼음판을 걷듯이 움직여야 한다.

‘죽을 수밖에 없어.’

연소부는 호발귀의 상태를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는 흑포부시단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또 주치균도 말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전서를 보내겠습니다.”

연수부가 대답했다.

‘단주.’

주치균은 천살단주를 떠올렸다.

오래전부터 할아버지처럼 따랐던 분이다. 또 자신과 등여산에게는 무척 자상하셨다.

하지만 지금은 자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계집 말이 맞아. 무령환살공은 오직 호발귀에게만 특화된 무공이지. 아니면 간자들. 살인청부업자에게 딱 알맞으려나? 그런 무공을 나한테 주었다 이거지.’

호발귀가 사라진 지금, 무령환살공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누군가를 암습할 때는 유용할 것 같다.

등여산이 말한 대로 무령환살공은 두 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걸 몰랐던 게 아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수련했다.

호발귀를 잡을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버릴 정도로 절망스러운 상태였다. 그때 주어진 것이 무령환살공이고, 훌륭하게 잡았다.

그러면 이제는 이 쓸모 없어진 무공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버릴 수가 없다.

이미 몸에 오래된 습관처럼 찰싹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등여산을 쫓으면서 그 사실을 알았다.

무령환살공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쓰였다. 의식하지 않아도 어떤 상태가 되면 저절로 일어났다.

등여산을 쫓으면서 굳이 무령환살공을 쓸 이유가 있는가.

열 명 중 여덟 명이 폐병으로 죽었다고 했나. 나머지는 정신 이상이 되고.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무령환살공을 펼쳐야 한다.

단주는 이 부분을 말해주지 않았다.

일단 이 무공을 수련하면 평생 떼어놓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말해줬어도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폐병으로 죽는 게 아니고 호발귀처럼 혈마가 되어서 날뛰다가 죽는다고 해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무령환살공…… 좋은 무공이다. 이제 평생 함께 간다.

다만, 단주는 혐오스러워졌다. 아주 더러운 오물처럼 여겨져서 생각하기도 싫다.

단주가 이런 무공을 주었다고 해서가 아니다. 이번에 무령환살공을 수련하고, 중원에 나와서 호발귀를 잡는 과정을 통해 단주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단주는 결코 할아버지처럼 자상한 분이 아니다.

어찌 되었든 천살단주이지 않나. 혈천방과 맞서 싸우는 집단의 수장이다.

냉철하고 잔인한 성품이다.

때로는 수하들도 기꺼이 죽음 속으로 밀어 넣는 독심을 가진 사람이다.

무서울 정도로 냉철하고, 계산적이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다른 건 몰라도 이번에는 단주가 자신을 도구로 썼다.

이제 천살단주에 대한 존경심은 완전히 사라졌다. 남은 것은 당신이 이런 식으로 나를 대했다면, 나도 당신을 이런 식으로 대한다는 계산적인 마음뿐이다.

단주가 자신을 도구로 대했으니 자신도 단주를 도구로 대한다.

단주가 진정 천살단을 위해서 호발귀를 잡아 오라고 했다면 기필코 그렇게 움직였다.

등여산에 대한 증오는 그녀를 죽이면서 풀었을 것이다.

천살단주는 명령을 내렸다. 생포해 오라고.

어떤 이유에서 생포해 오라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천살단이나 중원을 위해서라면 혈마가 사라지는 편이 훨씬 낫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가.

천살단은 천살단주의 명령이 사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무엇인가 혈마에게 알아볼 것이 있다고 여겼다. 개인적인 욕망 혹은 무공 증진을 위해서.

그런 명령이라면 듣지 않는다.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빼앗겼고, 호발귀를 죽였다.

어떻게 할 것인가.

천살단에서 야망을 펼칠 것이다. 자신이라고 천살단주가 되지 말란 법은 없다.

그런 부분을 생각하니 당장 문제가 생겼다.

천살단주는 자신에게 무령환살공과 파신금령술을 전수했다.

이 무공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면 단주가 가진 것은 무엇인가? 단주는 한 번도 무공을 드러낸 적이 없다.

사실, 단주가 무공을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혈천방주와 더불어서 천하를 조종하는 거물이다.

조급할 필요는 없다. 자신은 젊고, 단주는 너무 늙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이십 년이면 천살단 주인이 바뀐다. 제이인자 살단주가 부상한다.

다만 이십 년을 기다릴 수 없을 뿐이지.

“어떤 무공일까? 궁금해지네.”

주치균의 눈가에 기광이 번뜩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