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七十一章 탈취(奪取) (4)
해자수는 금잠사를 풀고 있었다.
금잠사가 워낙 가늘고, 살단 무인의 매듭이 매우 기묘해서 푸는 데 애를 먹었다.
“비켜봐요!”
등여산이 재빨리 앞으로 달려들어서 금잠사를 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천살단 매듭이다 보니 모르는 사람보다는 아는 사람이 더 풀기 쉽다. 하지만 등여산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아예 해자수를 밀치다시피 했다.
등여산은 늘 사람을 배려했는데……
홀리는 호발귀의 상태를 점검하는 중이었다.
일단 단검은 뽑아내지 않았다. 단검을 뽑으면 어떤 작용이 일어날지 몰라서 뽑기가 망설여진다.
하지만 계속 꽂아놓은 채 보고 있을 수도 없다.
“이상해. 숨이 없어.”
홀리가 등여산을 보며 말했다.
“이 사람 죽을 거야.”
등여산이 덜덜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달려오면서 계속 눈물을 흘린 것 같다.
“후우! 이미 예상했잖아. 파신금령술을 이런 식으로 당했는데, 어떻게 살겠어.”
“그게, 그게 아니라……”
등여산이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였다.
“왜 그래? 무슨 일인데?”
홀리가 이상한 예감을 느끼고 등여산을 쳐다봤다.
“이 사람…… 흑포부시단을 복용했어.”
“뭣!”
“뭐라고요!”
흑포부시단이라는 말에 홀리와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흑포부시단이라고 했어?”
홀리가 등여산의 어깨를 홱 낚아채며 물었다.
“맞아. 흑포부시단. 그거 먹였어. 주치균이.”
등여산은 금잠사의 매듭을 풀다 말고, 아예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어서 매듭을 풀지도 못했다.
“하아!”
해자수가 망연히 호발귀를 쳐다봤다.
홀리는 호발귀를 꽉 끌어안았다. 잠시동안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용히 고개를 쳐들었다.
“뭐해? 이거 풀어. 아직 흑포부시단이 녹지 않았잖아. 녹기 전에…… 편하게 해줘야지. 정신 차리고.”
홀리의 말에 등여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달라붙어서 매듭을 풀기 시작했다.
투욱!
매듭이 풀리면서 호발귀의 두 발이 땅으로 떨어졌다. 두 손도 등 뒤로 뚝 떨어졌다.
등여산은 두 손과 두 발에 묶인 두 번째 매듭을 풀어나갔다.
첫 번째 매듭이 풀리자, 홀리는 호발귀를 돌려서 바로 눕혔다. 하지만 단검 세 자루가 앞뒤, 그리고 옆구리에 박혀 있어서 모로 눕힐 수밖에 없었다.
“해자수, 이거 뽑아줘.”
홀리가 해자수를 보면서 말했다.
“뽑다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홀리가 피식 웃었다.
‘아!’
해자수는 속으로 탄식했다.
호발귀는 흑포부시단을 복용했다. 파신금령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곧 내부가 썩기 시작할 텐데, 잘못되면 뭐가 얼마나 잘못되겠나.
단검을 뽑다가 동맥을 잘못 건드려도 상관없다.
홀리와 등여산은 이미 호발귀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다. 아니, 예감하는 정도가 아니다. 지금은 이미 죽은 사람의 장례를 준비하는 것 같다.
스읏!
겨드랑이 밑에 틀어박힌 단검을 뽑았다. 순간, 붉은 피가 분수처럼 파악! 솟구쳤다.
해자수는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서 침착하게 옷가지로 상처를 틀어막았다. 붕대는 아니지만 깨끗이 빨아놓은 옷이니 감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흐유!’
해자수는 또 탄식했다.
홀리와 등여산은 호발귀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데, 감염 걱정이 웬 말인가.
스윽!
등 뒤에 꽂힌 단검도 뽑아냈다.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피가 콸콸 쏟아져 내렸다.
해자수는 으깬 고약 한 덩어리를 상처에 틀어막았다.
상처를 치료할 목적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피를 막는 목적이 더 크다. 살지는 못해도 피를 줄줄 흘리는 모습으로 보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아씨, 하나 남았는데.”
해자수가 홀리를 보면서 말했다.
“뽑아.”
해자수는 홀리를 쳐다봤다.
복부에 꽂힌 단검을 뽑으면 피가 아래로 흘러내린다. 호발귀를 안고 있는 그녀의 몸에 듬뿍 쏟아진다.
하지만 홀리는 비킬 생각이 없다.
“그럼.”
해자수가 복부에 꽂힌 단검도 뽑았다.
푸아아악!
핏물이 쏟아졌다.
해자수는 금창약을 꺼내서 상처에 덕지덕지 처발랐다. 아예 금창약을 몸 안으로 밀어 넣어 뻥 뚫린 구멍을 막았다.
그동안에 등여산은 두 팔과 두 다리에 묶인 금잠사를 모두 풀었다.
이제 호발귀는 자유다. 가고 싶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생기를 쫓아가서 죽일 수도 있다. 뭐든지 할 수 있는데…… 그는 인사불성이다.
호발귀는 주치균에게 파신금령술을 당할 때만 해도 의식이 있었다.
맹수의 눈빛으로 주치균을 쳐다봤다. 하지만 파신금령술의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그가 비록 생기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역시 살과 뼈로 이루어진 인간이다.
육신은 한계에 도달했고, 혼절했다.
파신금령술이 혈기의 순환을 방해했다. 새로운 생기가 들어오는 길목을 막았다.
실제로 호발귀는 죽음을 향해서 한 발, 한 발 내딛고 있다.
“계집아, 정말 흑포부시단은 대책이 없는 거지?”
“……”
등여산은 대답 대신 눈물만 흘렸다. 소리는 내지 않고, 눈으로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홀리는 어금니를 잘끈 깨물었다.
“그럼…… 닦자.”
“응?”
“깨끗하게 보내야지. 너무 지저분하잖아.”
홀리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마른 수건을 꺼내서 호발귀의 얼굴을 닦았다.
호발귀는 혈마로 지내는 동안 전혀 씻지 않았다.
수염도 정리하지 않아서 매우 지저분하다. 손발은 핏물이 굳어서 피떡처럼 두껍게 쌓여있다.
자신이 흘린 핏물은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나. 짐승은 또 얼마나 난자당했나. 다른 생명을 빼앗으면서 몸에 튄 핏물이다.
홀리는 호발귀의 머리를 허벅지 위에 눕히고 단검을 꺼내 수염을 깎았다.
사각! 사각!
강철 같은 수염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다.
“그나마 정신을 잃고 있어서 천만다행이야. 그렇지 않아?”
홀리가 등여산을 보며 말했다.
등여산도 마른 수건을 꺼내서 손발을 닦아주는 중이었다.
호발귀가 뒤집어쓴 핏물은 워낙 많아서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개울물에 풍덩 담가놓고 핏물을 불리고 싶다.
하지만 호발귀에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곧 부시독이 위장부터 썩이면서 번져 나올 것이다. 부시독이 손에 묻었다면 잘라내기라도 한다. 발에 묻었다면 다리 하나 없는 셈 친다. 하지만 위장부터 썩힌다면 방법이 없다.
호발귀는 오장육부가 썩어들어가는 고통을 온전히 감수해야 한다.
그런 교통을 혼절한 상태에서 겪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정신을 차린 상태였다면 어절 뻔했나.
“잘 생겼네.”
수염을 다 깎은 홀리가 호발귀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 사람 좋은 데 갈까?”
“계집애, 바랄 걸 바라야지. 이 사람이 어떻게 좋은 데를 가.”
“못 갈까?”
“못 가. 그러기에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였잖아. 그러니까 우리도 이 사람 만나려면 지옥으로 가야 해. 난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천살단 놈들 모조리 죽여버릴 거거든.”
홀리가 엄청난 말을 너무 태연히 했다.
등여산은 홀리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 가면, 우리도 찢어지자.”
“……”
“난 천살단을 요절낼 테니까, 계집애 넌 혈천방을 모조리 없애버려. 천살단을 치기는 껄끄럽잖아. 난 혈천방을 치기가 껄끄러워. 혈천방에는 아버지와 형제들이 있거든. 뭘 얻어먹겠다고 거기 있는지 몰라도 내 손으로 죽이기는 그렇지.”
“그래.”
등여산이 힘없이 대답했다.
“넌 혈천방, 난 천살단. 모두 이 세상에서 지어버리는 거야.”
홀리가 이를 으득 악물면서 말했다.
“그놈들이 어디 보통 놈들이야 말이죠. 그놈들을 다 없애버리려면 평생을 가도 모자랄 겁니다요. 열 명을 죽이면 뭐 합니까? 이쪽에서 열 명 죽이면 저쪽에서 또 열 명을 또 만들어 낼 텐데. 이건 끝나지 않는 싸움이에요.”
해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한 명을 만들면 한 명을 죽이고, 백 명을 만들면 백 명을 죽이면 돼. 문제없어.”
홀리가 단호하게 말했다.
해자수는 홀리의 말에서 진한 피 냄새를 맡았다.
음문촌 사람들은 원래부터가 싸움꾼이다. 빚지고는 못 하는 성격들이다.
한 대를 맞으면 반드시 열 대를 돌려주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악귀다.
중원은 혈마만 두려워할 게 아니라 혈마후를 무서워해야 한다.
홀리가 천살단을 치기 시작하면 천살단은 홀리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이제 막 알기 시작한 생기까지 이용하면 장난처럼 쓰러질 것이다.
“후유!”
해자수는 한숨만 내쉬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게 있어. 살단주 주치균. 생기를 죽일 줄 알아. 그것으로 호발귀를 잡은 거야.”
“생기를 죽인다니?”
홀리가 무표정한 얼굴로 등여산을 보며 물었다.
등여산은 주치균과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자신이 느낀 것, 그리고 대처할 방법까지 모두 다.
그녀는 홀리가 천살단을 공격한다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
그녀 자신도 살검을 들 것이다. 홀리가 말한 대로, 그녀가 천살단을 향해 떠나면 자신은 혈천방을 향해 걷는다.
홀리…… 아무도 평생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두 사람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걸을 것이고, 이 싸움을 평생에 걸쳐서 이뤄질 것이다.
천살단이나 혈천방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주력 몇 명, 고수 몇 명, 분타 몇 개 없앤다고 해도 여전히 강한 생명력으로 맞설 것이다.
이 두 문파는 무려 이백 년 동안 무림을 지배해왔다.
세 사람은 주치균의 무공에 대해서 상의를 했다.
홀리가 천살단을 몰살시켜 버린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타당성이 있다. 만약 천살단에 생기를 잡을 수 있는 특별한 무공이 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천살단이 당한다.
여기 한 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
홀리가 호발귀처럼 정신을 놓쳐서는 안 된다. 정신이 무너지면 오직 생기만 쳐다본다. 그리고 주치균의 무생에 당한다.
정신이 무너지지 않으면, 일부 진기를 일깨우고 있으면 전신 감각이 여전히 활성화된 상태다. 주치균이 무생을 펼쳐도 알아낼 수 있다.
생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전신 감각도 함께 써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생기에 몰입하면 오직 생기만 보게 된다. 진기는 사라진다.
숙의 끝에 해자수가 동반하기로 했다.
홀리가 생기를 일으켜서 천살단을 휩쓰는 동안, 해자수는 진기로 사방을 살핀다. 주치균이 나타나는지 알아본다. 또는 주치균처럼 생기를 숨기는 자가 또 있을 수도 있다. 하여튼 진기를 사용하면 모습을 볼 수 있다.
눈으로 보고 식별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해자수의 무공이 고절하지 않으니, 서로 처지를 바꿀 수도 있다. 홀리가 진기로 살피고, 해자수가 생기로 천살단 무인들을 격살하는 것이다.
이 문제만 해결된다면 천살단 물락은 허언이 아니다. 사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
“휴우!”
해자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지났다.
흑포부시단이 약효를 발휘하는 시간은 반 시진이다. 반 시진이면 위액이 흑사 껍질을 녹인다. 위장부터 썩기 시작해서 피부를 썩힌다. 몸이 거품 꺼지듯이 푹 꺼져 버린다.
그런데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호발귀는 아직도 생생하다. 전혀 썩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직 흑포가 벗겨지지 않은 것 같다.
“아! 배를 가를 수만 있다면. 콱! 배를 째서 흑포부시단을 꺼낼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해자수가 답답해서 말했다.
“정말 갈라볼까?”
홀리가 등여산을 쳐다보며 말했다.
해자수는 농담으로 말했지만 홀리는 진담이다.
등여산은 낯빛을 굳혔다. 배를 가르고, 위장을 가르고, 그 안에 있는 독단을 꺼내면 호발귀는 죽는다
중원 전체를 뒤져도 그만한 부술(剖術)을 구사하는 의원은 없다.
“우선 이 사람 좀 씻기자. 옷도 좀 갈아입혔으면 좋겠는데.”
등여산이 말했다.
죽을 시간이 남아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다. 흑포부시단이 금방 터질 것 같아서 마른 수건으로 피를 씻어냈지만, 여전히 더럽기는 마찬가지다.
호발귀는 반 시진을 훌쩍 넘기고도 썩지 않았다. 아니, 한 시진은 더 넘긴 것 같다.
“허름하지만 내게 여벌이 하나 있는데. 괜찮죠?”
해자수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