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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03화 (303/500)

第七十一章 탈취(奪取) (3)

“이게……”

연소부는 너무 기가 막혀서 할 말을 잃었다.

순식간에 여덟 명이 죽고 한 명이 심한 중상을 입었다. 뒤쪽에서도 네 명이 죽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만약, 저들과 전면전을 펼쳤다면 장담하건대 몰살당했을 것이다. 무공 차이가 너무 벌어진다. 저들은 살단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찬 고수들이다.

철고방진, 칠성합격진…… 모두 나가떨어졌다.

지금까지 상대를 전혀 몰랐다. 정말 저런 자들일 줄 모르고 까불어댔다.

저들의 목표는 호발귀를 빼내 가는 것이다. 그리고 빼내 갔다.

“후후!”

연소부는 썩은 나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우물 안 개구리였다. 정말 우리는……’

할 말이 없다. 세상에 이토록 강한 무인들이 있었나. 저들이 살단을 몰살시키지 않은 것만도 감사해야 한다.

홀리는 철고방진에 갇혀서 쩔쩔맨 것이 아니다. 뒤에서 호발귀를 빼내 가도록 시간을 끌어준 것이다.

연소부도 그 정도는 읽어낸다.

“죄송합니다.”

살단 무인들이 고개를 숙였다.

연소부는 손을 들어 올렸다.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우린 최선을 다했다. 이게 최선이야. 내가 아니라 부단주가 살아계셨어도 어쩔 수 없었어. 우리는 적을 완전히 잘못 알았어.”

‘이 사태의 책임은 단주에게 있다.’

마지막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수하들에게 할 말이 아니다. 패배의 책임을 단주에게 돌리는 짓은 차마 못 하겠다.

하지만 이 책임…… 확실히 단주에게 있다.

단주는 저들의 무공이 어느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호발귀를 잡은 무공이니, 저들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호발귀를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호발귀를 지키는 자는 죽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장 못난이에게 호발귀를 지키라고 지시한 건가. 그래도 내 목숨은 살려주었군. 후후!’

연소부는 쓰게 웃었다.

단주는 호발귀를 본단으로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편하게 내주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이를 악물면서 지킨 결과가 이것이다.

이로써 살단주도 단주에게 할 말이 생겼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빼앗겼으니 어쩌랴. 책사와 음문촌 마녀가 이토록 강할 줄 어떻게 알았나.

패배의 원인은 저들의 무공을 정확하게 몰랐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연소부는 호발귀를 쳐다보던 살단주의 눈빛을 기억한다. 증오와 원한이 잔뜩 묻어있는 눈길이었다. 아니, 질투가 담긴 눈빛이었다.

그런 눈빛을 가진 자는 적을 살려주지 않는다.

살단주 주치균과 등여산의 비애(悲愛)는 들어서 알고 있다. 등여산이 변심한 이후, 주치균이 어떻게 변해갔는지도 안다.

아마도 천살단 무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주치균은 호발귀를 증오한다.

그 어떤 이유가 있어도 호발귀를 산채로 내주는 일만은 막을 사람이다.

그런데 왜……? 막지 못할 것을 알면서 자신들에게 호발귀를 지키라고 했을까? 마지막 순간에 못난이가 호발귀를 죽이는 것에 승부를 걸었을까?

아니다. 그럴 것 같으면 오히려 자신에게 시켰다.

살단 무인 중 가장 뛰어난 칼잡이에게 호발귀의 마지막을 처리하라고 말했을 것이다.

“우리가 적을 잘못 알았을 뿐이야.”

연소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면 승부로는 백전백패다. 저들의 상대가 안 된다.살단 무인보다 두세 배는 빠르다.

두세 배는 강하다. 두세 배는 정교하다.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부인이었다.

연소부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휴우!”

한숨만 내쉬어진다.

스읏!

주치균은 걸음을 멈췄다.

등여산은 주치균이 멈춘 후에도 십여 장이나 더 달려갔다. 사력을 다해서 치달렸다.

철컥! 철컥!

단검이 검집에 꽂혔다.

앞으로 치달리던 등여산은 단검을 거두는 소리에 비로소 걸음을 멈췄다.

두 사람 간의 거리는 십여 장이나 벌어져 있었다.

“왜?”

등여산은 걸음을 멈추자마자 즉시 뒤돌아서며 물었다.

“후후후!”

주치균은 웃었다.

주치균은 등여산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잡지 않았다. 잡을 듯, 잡을 듯 다가붙으면서도 단검을 쳐내지 않았다.

신법으로 따라잡지 못하면 단검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따라붙기만 했다.

“놀랍군. 무공이 굉장히 강해졌어. 그런 무공이면 나와 싸워도 될 텐데?”

주치균은 등여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무공이 발전한 것만 말했다.

“이제 알았어. 호발귀를 어떻게 잡았는지.”

등여산도 자신이 물은 말에 대답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주치균의 감탄에도 응대하지 않았다.

눈빛을 반짝이면서 놀라운 사실을 알아낸 듯 말했다.

“알았다고?”

“네가 쫓아오는데 전혀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어. 분명히 쫓아오고 있을 텐데 돌아갔나 싶어서 돌아봤더니 바로 등 뒤에 따라붙고 있는 거야.”

“그래서?”

“무생. 생기를 완전히 숨겼어.”

등여산이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사실은 뒤돌아봐서 안 것이 아니다. 주치균이 쫓아오는데 아무런 감정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불길한 느낌이라거나 슬픈 느낌, 께름칙함, 하다못해 찝찝한 감정이라도 일어나야 하는데, 전혀 감정이 동요하지 않았다.

생기가 반응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주치균에게 자신의 생기를 설명할 시간이 없다. 가장 좋은 말이 쫓아오지 않는 것 같더라는 느낌 이야기다. 이런 말이면 누구든 알아듣는다.

“하하하!”

주치균이 웃었다.

“맞지? 생기를 숨기는 것.”

“역시 머리 하나는. 아무리 머리 좋다고 해도 이렇게 단번에 알아챌 수가 있나.”

주치균은 굳이 부인하지 않았다.

“무슨 무공이야? 전혀 들어보지 못한 무공인데.”

“파신금령술은 어떻게 알았나?”

“내가 마공관에서 살다시피 했다는 거 알잖아. 마공관에 수집된 무공이라면 거의 알아. 패공뿐만이 아니라 사마외공도 거의 다 읽어봤을 거야. 혈마록을 연구해야 하니까.”

“그렇군. 그래서 쉽게 알았군.”

“지금 내가 쓰는 무공은 거기 없었나?”

“그래서 묻잖아. 어떤 무공인지.”

“모르면 됐다. 적에게 내 무공을 가르쳐 줄 이유는 없잖아?”

등여산이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고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너 그 무공 쓰지 마.”

“뭐라고?”

“너, 호흡이 거칠어. 폐가 정상이 아니야. 망가지고 있어. 그 무공이 널 망가뜨리고 있어.”

“건방진!”

“또 하나, 그 무공은 호발귀 같은 사람에게만 통해. 정신을 잃은 마인.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어.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눈으로 보고 식별할 수 있잖아. 무생은 기습할 때는 좋겠지만, 진검 결전에서는 쓸모가 없어.”

등여산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주치균의 무공은 등여산에게 생기를 쓰지 못하게 한다. 홀리와 해자수도 생기를 쓰지 못한다. 생기를 쓰는 순간, 호발귀와 똑같은 경우를 당한다.

주치균이 바로 곁에 서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그러니 무공으로만 싸워야 한다.

한데 무공은 주치균이 훨씬 강하다. 주치균은 황궁 무학에, 검신의 비사칠초를 수련했다.

살단주의 반야호신공도 습득한 듯하다. 백인백팔투도 절정으로 치닫는다.

무공만 놓고 보면 주치균은 귀검의 상대로 올라섰다.

등여산이 한 말 중에 맞는 부분도 있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에게는 무생이 아무런 쓸모가 없다.

눈앞에서 검을 들고 마주 선 상대는 생기를 죽여도 존재를 알아본다. 사람이 멀쩡히 서 있는데 몰라볼 리 없다.

등여산은 진심으로 주치균이 이 무공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한다.

주치균의 안색이 창백하다.

입술도 까맣게 죽어간다.

등여산이 말했다.

“전임 살단주의 반야호신공을 수련했지? 그거에 비사칠초를 운용하면 무적이 될 것 같아. 그걸 사용해.”

“후후후! 넌 정말 구제 불능이구나.”

주치균이 비웃었다.

“그게 적에게 하는 조언인가?”

“네가 먼저 추격을 멈췄잖아. 걸음을 멈춘 건 추격을 포기했다는 거지?”

주치균이 웃으면서 손을 들어 허공을 가리켰다.

등여산은 주치균의 손을 따라서 허공에 눈길을 주었다.

허공에 붉은 폭죽이 터졌다. 이미 연기가 바람에 흩어져 사방으로 번져 나가는 중이다.

‘홀리가 성공했어!’

등여산은 폭죽의 의미를 단박에 알아챘다.

“저 의미 알지?”

주치균이 씩 웃으면서 물어왔다.

“알아.”

“네 목적을 이뤘군.”

“미안. 그 사람…… 천살단에 들여보낼 수 없어.”

“괜찮아. 빼내 가라고 던져준 거야.”

“뭐?”

“그렇다고 고마워할 필요가 없고. 그놈, 어차피 곧 죽을 테니까. 파신금령술, 알지?”

“알아.”

“그게 문제야, 그게. 넌 호발귀 모습만 보고도 무슨 수에 당했는지 알아내잖아. 그럼 또 나는 호발귀가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걱정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넌 너무 많이 알아. 너무 많이 알아서 어떤 걸 알고 있는지 불안해. 그래서 호발귀를 넘겨주기 전에 약간 장난을 쳤어.”

“……”

등여산은 마른침을 삼켰다.

주치균이 장난을 쳤다고 말한다. 매우 치명적인 암수를 전개했다는 말로 들린다.

주치균이 말했다.

“호발귀를 살려서 데려오라고 하는 거는 단주님 명령. 난 그 명령을 지켰을 뿐이고. 그런데 네가 빼내 갔네? 그리고 호발귀가 죽어. 다시 말해서 호발귀를 죽인 건 너야.”

“뭐라고!”

“호발귀가 너무 먹은 것이 없어 보여서 몸보신하라고 흑포부시단(黑包腐屍丹)을 먹였는데.”

“뭐, 뭣!”

등여산이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지금 호발귀가 누구 손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창자가 녹아 들어가고 있지 않을까? 후후! 그러니까 호발귀는 네가 죽인 거야. 네가 그 잘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으면 흑포부시단을 먹일 일도 없었어.”

“너!”

등여산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치균을 쳐다봤다.

“그래. 걸음을 멈춘 건 추격을 포기하겠다는 거야. 맞아. 그래도 낭군이 죽기 전에 얼굴은 봐야지?”

“호발귀가 죽으면…… 너 용서하지 않아!”

“네 용서 따윈 바라지도 않는다. 네가 그런 걸 할 자격도 없고. 네가 뭔데? 하하하!”

천살단이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등여산, 똑똑히 들어. 나도 널 용서할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용서 어쩌고 하는 낯간지러운 말은 하지 말고. 다음에 만나면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죽자.”

쒜에엑!

등여산은 주치균의 말을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먼저 신형을 쏘아냈다.

흑포부시단은 매우 강렬한 독단이다. 부시독을 얼려서 얼음덩어리로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독액으로 무두질해서 부패 성분을 깔끔하게 제거한 흑사 껍질을 덧씌운다.

부시독은 흑사 껍질 속에서 녹는다. 하지만 흑사 껍질을 부패시키지는 못한다.

흑사 껍질은 위액에 녹는다.

안에는 부패시키지 못하지만, 밖에서는 약간의 자극만 가해도 스르륵 녹아버린다.

부시독이 위장 속에서 터진다.

그래서 흑포부시단을 복용하면 백약이 무효다. 위장이 쇠로 만들어진 사람이라고 해도 죽는다.

그 시각은 대략 반 시진 정도다. 반 시진이 지나면 흑사 껍질이 터진다.

“안 돼! 안 돼!”

등여산은 신형을 날리면서 연신 중얼거렸다.

살단 무인들이 부시독을 쓴다. 부시독에 죽은 사람들을 봤다. 곧 호발귀가 그런 모습으로 썩는다. 피와 살과 장기가 모두 떨어져 나가고 검은 뼈만 남는다.

파신금령술만 문제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어린애 장난이었다.

“아! 안돼! 안돼!”

쒜엑! 쒜에엑!

등여산은 전력을 다해서 치달렸다.

“후후! 가라! 내가 아픈 만큼 너도 아파봐야지.”

주치균은 웃었다.

“다음에는 정말 너 아니면 나, 둘 중 하나가 죽겠구나.”

주치균은 돌아섰다.

오늘 이후로 등여산과의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우호적인 부분은 모두 끊어지고, 원한만 남았다.

“하하하! 하하하하!”

주치균은 웃으면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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